2014년 4월 8일 화요일

보릿고개 - 1부

그해 겨울은 정말 추웠다. 잎사귀가 떨어진 나뭇가지에 고드름이 매달리고 길가에는 얇은 얼음이

생겼으니까.

집이 이사를 하게 되었다. 주인의 횡포에 많은 시달림을 당해야 했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다행으로 빈집이 하나 생겼다. 하지만 주인집이 큰 부자였고 하인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린 그렇게라도 살고 싶었지만 그럴 배짱과 용기가 없었다. 남편과 3명의 아이가 있다.

남편은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두 다리를 잃고 지금은 자리에만 누워 있다. 지병까지 얻어 더욱 힘든

살림을 하고 있다.

새로 이사한 집. 대문 옆쪽에 위치해 있는 우리집은 쓰러져가는 다른 집보다 좋았다. 비싼 세를 내고 살지만

인심 좋은 마님이 특별히 싸게 주신 집이다.

저녁이 오고 간단한 끼니를 챙기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이슬에 온 집이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

불이 꺼졌나?

잠결에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가보았다. 아궁이에서 피어오르는 장작불을 기대 했으나 추위의 서리에 꺼져버린

불씨만이 나를 반겼다.

장작도 없는데... 이를 어쩐다...

한참을 고민하던 중 주인집 부엌이 생각이 났다. 부엌옆에 있는 창고에는 장작이 가득했으니까.

별생각없이 주인집 부엌으로 발을 향했다. 나도 모르게 뻗쳐지는 나의 두 팔들.

사방을 훌터보며 주인집 장작 몇토막을 가슴에 품었다. 가족이 추울까봐였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우리집 부엌으로 향했다. 아직 살짝 피어있는 불꽃위에 조심히 입을 가져갔다.

후.. 후...

짚푸라기 한줌을 손에 쥐고 불이 붙기를 기달렸다.

부엌구석에 장독대가 보였다. 내일 아침에 할 아침밥을 걱정해야 했다.

털컹~

뚜껑을 열어보았지만 텅빈 항아리. 불연듯 떠오는 주인집 쌀독.

안돼. 그러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생각을 고쳐먹고 나는 그 자리에 다리를 쭈그리고 앉았다.

멍하니 타오르는 아궁이를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용기가 솟아났다.

한줌만.. 한줌만이야... 딱 한줌만...

빠른 걸음으로 주인집 부엌에 다달으고 쌀독의 뚜껑을 열었다. 백옥같은 흰 쌀들이 나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아주 유혹적으로...

쌀을 한줌 앞치마에 넣고 나는 불이나케 우리집 부엌으로 달렸다.

그렇게 새벽이 흐르고 아침이 왔다. 밥을 하려고 잠자리에 일어났지만 어제밤에 훔쳐온 쌀로는 한끼도

불가능했다. 더군다가 장작불 역시 거져 있었다.

다시 주인집 부엌 앞에서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마음 착한 한 아주머니가 나를 불렀다. 손짓으로...

새댁, 이거 가져가.

아주머니는 고구마와 감자를 각각 2개씩 주셨다. 눈물이 났다.

감.. 사합.. 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고구마와 감자를 익혀먹을 불이 없었다. 다시 주인집 부엌으로 갔다.

아무 말도 못하고 주변만 배외하던 중에 아까 그 착한 아주머니가 나를 뚜러지게 쳐다보았다.

부끄러웠다. 어디든 도망가고 싶었다.

새댁, 이것도 가져가.

아주머니...

아주머니가 내민 손에는 장작 3개가 쥐어 있었다.

어떻게 이것을...

지금 안가져 가면 오늘은 못가져가. 빨리가져가.

아주머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작을 받고 머리를 쪼아리고 부엌으로 달렸다.

아뿔싸... 달리던 중 주인집 대감마님과 마주치고 말았다.

안.. 녕하세요...

인사만 불이나케 하고 달려가려는 찰라 대감님이 나를 불렀다.

이보게. 가슴에 그게 무엇인고?

............

대감마님은 나를 쳐다보며 내 물음을 기달리고 있었다.

심장이 터질듯이 뛰었다. 제가 훔친게 아니에요... 훔친게 아니에요...

이따 점심전에 사랑채로 들거라.

사랑채로 들라는 대감님의 말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너무 무서웠다.

고구마와 감자가 익어가는 동안 많은 생각이 교차 하였다.

'대감님한테 나는 도둑년으로 오인받고 있을꺼야...'

손에 잡힌 나뭇가지를 화로에 집어 넣고 뒤척이며 두려움과 이런 저런 생각을 하였다.

'대감님한테 가서 혼나는 건가...'

아침을 해먹고 막내을 재우고 신랑도 잠들었다. 둘째와 첫째는 소학교로 등교했다.

뭐랄까. 그냥 평온과 고요? 어떤걸 선택 할지도 몰랐다.

해가 점점 점심시간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대감님이 불러 사랑채로 가야 했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긴장해서 인가...

어렵게 도착한 사랑채 앞. 입에서 맴도는 말이 있었다.

대감님... 정말 부르기 힘든 말이 였지만 들어가야 했다. 가볍게 대감님을 불러보았다.

대감... 님...

방안에서 낮은 헛기침소리가 들리며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귓구멍을 막고 싶었지만 두주먹을 쥐고 방으로 들어갔다.

드르륵... 방문을 열고 구멍난 버선을 방안으로 들이밀었다.

부르셨어요.

거기 앉거라.

그렇게 무릎을 꿀고 앉아 한참을 있었던거 같다. 대감님은 책을 보시며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

에헴.

헛기침만을 할뿐이였다. 대감님의 입술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은 먹었더냐.

예....

무엇을 먹었더냐?

고구마와 감자를 먹었습니다.

양이 차드냐.

............

배가 고팠느냐.

............

대감님의 질문에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숨소리만 들릴뿐...

책장을 한장 넘기시더니 나를 째려보신다.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는고?

나이를 묻는 질문에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주 작게...

뭐라고? 내가 귀가 막혔나?

서른넷이어요...

내 나이를 듣고 대감님이 책이 올려져 있는 탁자를 옆으로 치우시더니 나를 쳐다보신다.

이 방이 따뜻하느냐.

네?

이방이 따뜻하냐고 묻지 않느냐.

아... 예...

갑자기 방이 따뜻하냐는 질문에 당황했지만 혼나는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 안심이 되는 순간이였다.

고개를 들어 대감님을 봤는데 아주 따뜻하고 온화한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

이리와서 앉거라.

.............

이리오라니? 어디로 말인가...

내 옆으로 와서 앉으란 말이다.

갑자기 무서웠다. 옆에 앉으란 말에 나는 입고 있떤 저고리의 고름을 한손으로 꼭 붙들었다.

아닙니다... 이곳이 좋습니다.

간단한 거부였지만 왕강한 거부의 표현이기도 했다.

어허~ 이리오래도.

대감님의 호통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손을 잡고 자신의 품으로 나를 품었다. 놀라서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대... 대.. 감님...!

니가 나를 알것이다. 내가 자손이 없어 고민하는 것도 알것이다. 나를 도와준다면 쌀과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장작을 주겠다.

호의는 고마웠으나 지금 이순간이 나는 너무 무서웠다.

왜이러셔와요...

나를 품에 품으시고는 한손으로 나의 허벅지를 잡아당겼다. 부끄러운 포즈였다.

아들을 셋이나 낳았다고? 하나 더 낳아주지 않으련?

소인은 그런 여자가 아닙니다!

대감님의 순아귀를 소리치듯 빠져나왔다. 두손으로 허벅지까지 올라와 있는 치마를 내리고 저고리를 쥐어

잡았다.

대감님, 저는 씨받이를 할 수 있는 몸이 아닙니다. 그러니 부디 저를 보내주셔요.

너에게 쌀과 불을 준다 하지 않더냐.

대감님의 말을 무시하고 나가고 싶었다. 나에게는 지아비가 있고 자식이 있다.

나의 마음을 해아려주거라.

대감님이 나에게 다가와 내 손을 잡고 자신의 가슴으로 옴겨 빌듯이 말하였다.

'쌀과... 불...'

흔들리기 시작한다. 내 마음이... 조금씩...

아.. 아니 됩니다. 이러지 마셔요!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미친듯이 K아지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었다.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 사랑채에서 뛰쳐 나왔다. 서러움에 눈물이고 두려움과 무서움의 눈물이였다.

그날밤...

가족을 재우고 나는 우리집 부엌에 혼로 앉아 아궁이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관리를 하고 있었다.

부엌 밖으로 보이는 달이 그날따라 유난히 밝았다. 보름달인가... 둥근 달이 마치 옥구슬과 같이 아름다웠다.

아침에 있었던 대감님과의 일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허벅지 사이로 뭔가가 흐르기 시작했다.

'남편이 저리되고 10년째 이밤을 지새고 있어. 여자로서 하고 싶은 마음을 숨기면서...'

대감님의 품에 안기는 상상을 해봤다. 포근하고 따뜻하고 아늑했다.

살과 살이 닺는 순간 따뜻함의 온기를 느끼고 부드러운 살갓에 녹아드는 기분이랄까...

사랑채쪽을 봤다. 불이 켜져 있었다.

'아직 안주무시는건가...?'

대감님이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는 생각이 나를 자꾸 그쪽으로 한발 한발 향하게 했다.

늦은 밤이라 소리내어 대감님을 부를 순 없었다. 사람이라도 나오면 나는 불륜을 저지른 천하의 못된년이

되고 말테니까.

어슬렁 거리는 나의 귓가에 대감님의 소리가 살포시 들려왔다.

밖에 누구더냐?

나는 그 목소리에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그자리에 서서 사랑채 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누구냐고 묻지 않더냐.

고민을 하다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빨리 우리집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내가 발걸음을 돌리고 달려가고 있을 때쯤 사랑채의 문이 반쯤 열리고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대감님은...

집으로 와서 나는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대감님과의 밀애를 상상하고 있었다.

걱정이 들었다. 내일 아침에 대한 아련한 고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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