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이그 재수 대가리 없게 시리… 영감, 소금 좀 가져다 한 바가지 퍼 부으소.’
마누라는 여지없이 소리를 바락바락 쳐대면서 나에게 잔소리를 퍼부어 댄다. 식전 댓바람 부터 주막을 기웃거리는 걸뱅이 들로 인해 하는 소리다. 사실 이즈음 이면 장작불에 익어가는 가마솥 밥의 구수한 내음과 걸죽 하게 끓어가는 장국으로 인해 보통 사람도 시장기가 도는 것인데 하물며, 피죽 한 그릇 못 챙긴 각설이 패들에게야 오죽하랴 만은…게다가 하늘까지 찌부득 하니 흐려오는 것이 눈이라도 오시려는 갑다. 오늘은 개성에서 내려오는 상단패들이 쉬어가는 날이라 방들을 모두 비워 놓았다. 오랜 만에 큰 숙객들 이라 아내는 어제부터 닭을 잡아 살을 발라 놓고, 나물들을 다듬느라 밤잠도 설쳤었다. 아내는 초저녁부터 아랫마을 고릿터에 사는 석촌 아지매 에게 부탁해 놓은 술이 아직 않 왔다고 내내 신경질이 하늘 끝까지 였고, 해가 지기 어스름 전에 술과 잠자리 시중을 거들 들병이 들은 애초부터 부뚜막을 꿰차고 앉아서 아내가 벼락을 치는지도 아랑곳 하지 않고 어제 지져 놓은 전쪼가리를 광주리에서 살곰 살곰 빼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그래도 식전에 장정들을 데리고 술독을 지고 온 석촌 아지매가 고마웠다. 아내의 지랄 같은 성깔을 그나마 받아주고 돈쩐이라도 챙겨가지만 언제나 별다른 내색이 없다. 맞춘 것처럼 술이 도착하고 나서 상단패 들은 저마다 등짐을 지고 마당으로 들어선다. 그들이 호되게 추운 날씨를 피해 삼삼오오 짝을 맞추어 방으로 들어가고, 아내는 그때부터 정신이 없었다. 두 사람이 자는 방과 들병이들이 기거하는 방까지 내주었으니 오늘은 꼼짝없이 부엌 바닥에 거적을 깔고 새우잠을 자야 하는가 싶다. 저녁상에 더하여 들병이 들은 저마다 점 찍어 놓은 방으로 술을 나르기 바빴고, 나는 오뉴월 똥파리 같이 어느새 냄새를 맡고 아닌 초저녁에 주막에 기어들어 온 순라꾼 에게 국밥을 말아 주었다. 귀신 같은 놈들…가는 길에 허리에 차는 대죽통에 탁주를 한 사발 넘게 담아가는 것이 미웁기가 여적스럽다. 밤이 깊어 가면서 방안은 점차 장정들의 코고는 소리가 높아 가고, 가끔 방안의 고랑내와 담배 연기를 내치려고 문을 열어 제끼거나, 술을 찾는 일 이외에는 한가해 지고 있었다. 나는 부뚜막 앞에서 잔가지로 밑불을 보고 있던 터 였는데, 밖에서 아까 곰살 시럽게 공밥에 공술까지 챙겨간 순라꾼인 듯 싶은 호령소리가 쩌렁쩌렁하니 들려왔다.
‘저 놈 잡아라!’
나는 적막한 허공에 외쳐지는 호령에 놀라 마당의 싸릿문 앞에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 목소리로 보아 가까운 곳이긴 한 것 같았는데, 아직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다. 곧 이어 허벌 나게 뛰어오는 세 사람의 순라꾼과 기찰포교는 내 얼굴을 보고는 숨이 턱에 까지 차서 묻는 것이었다.
‘여리 뛰어 오는 놈들을 못 보았소? 허, 참! 구신 곡허겄네, 어쩜 그리 빠르디야!’
‘아니, 뭔 일 있소?’
‘그건 알거 없고, 봤소, 못 봤소?’
나는 정말 보질 못했다. 부엌에서 걸어 나와 문 앞까지 가는 동안 아무도 지나가질 않았다고 얘기해주자, 그들은 이 길이 아닌 갑서 하면서 이내 달려서 길로 사라졌다. 유시를 조금 넘겼는데 저렇게 순라꾼 들이 설칠 리가 없는데 기찰포교까지 워쩐 일이데 하면서 나는 다시 부엌으로 돌아섰다. 잠이라도 잘라치면 잘 마른 거적을 골라 와야 되는데, 광에 있는 것들은 죄다 쥐들이 쏠아놓고 해서 제대로 잘 수 있을 지 걱정이 앞섰다. 나는 개중 나은 것을 안고서 부엌으로 들어섰다.
‘할마시, 이 것 좀 받질 않고 뭐혀? 팔 떨어 지겄구만.’
그래도 마누라는 대답이 없다. 잠이 들었나? 나는 그제야 앞이 안보이게 들고 있던 거적을 부엌 바닥에 턱 하니 내려 놓았다. 그런데, 아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부엌 안에는 아궁지 에서 타오르는 불꽃의 일렁임만이 있었기에 부엌의 구석에 멀뚱하니 서 있는 아내의 모습은 자못 가관 이었다. 그러나, 나는 자세히 보고서는 아이구 머니나 하면서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아내의 목에는 날이 시퍼런 장검이 겨누어져 있었고, 뒤로는 장정과 남자 한명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나는 그 사람들이 순라꾼 들이 쫓는 자들임을 알아 보았다.
‘누..누..누..누구요?’
‘조용히 하기만 하면 목숨은 해하지 않으리다.’
살기가 도는 음성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하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방금 있었던 바깥의 동정을 얘기해 주었다. 그 자는 칼을 거두었다. 순식간에 칼 집에 칼을 거두는 품새가 보통 무예가 아닌 듯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남자의 시선이 어쩐지 나를 쳐다보질 않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이 않 보이슈?’
‘허, 할아범, 눈치 한번 빠르구랴.’
마누라는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는 시늉을 한다. 그제서야 두 사람은 긴장을 풀고 자리에 앉고, 마누라는 부엌의 쪽문을 이내 닫아 버렸다.
‘여기는 괜찮어요. 아무도 오지 않으니…’
그래도 그들은 마음이 않 놓이는지 허리춤의 칼을 손에서 놓지를 못한다. 나는 그자들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탁주나 한 순배 들자고 해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 보다 끼니를 떼울 것이 없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며칠을 굶은 것 같았고, 아내는 숙객 들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음식들을 주섬주섬 챙겨 그들 앞에 차려왔다. 아내의 성격은 어쩔 수 없는지, 상을 차리면서도 한마디 쏙 내뱉는다.
‘주막에 먹을 것이 없으면 되간 디?’
나는 앞이 보이질 않는 남정네에게 술잔을 건네 주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술을 들이켰다. 상을 치우는 도중에도 옆에 앉은 남자는 남장을 한 여인 같았고, 누가 볼세라 먹다 남은 전쪼가리들을 개나리 봇짐 같은 곳에 쑤셔넣기 바빴다. 나는 전을 조금 싸주라고 마누라에게 눈짓을 하였고, 마누라는 궁시렁 대면서도 이제는 살았다는 생각에서 인지 듬뿍이나 음식을 집어 봇짐에 넣어 주었다.
‘워쩐 일로 쫓기고 있으쇼?’
나는 다짜고짜 물었다.
‘얘기 하자면 길지요.’
나는 어차피 이 좁은 부엌에서 네 사람이 발 뻗고 잘 수도 없는 지경이니 이야기나 하면서 날밤을 까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술도 있겠다. 아궁지에서 나오는 열기도 적당히 후끈 허겄다, 별로 가릴 것은 없었다.
‘무쉰 연유인지 한번 들어나 봅시다.’
그 남자는 조금 망설이는 것 같더니만 칼을 남장 여인네에게 맡기고는 얘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무슨 이유에서 인지 바람같이 몸을 날려 부엌의 쪽문을 열어 제꼈다. 문 앞에는 와들와들 떨고 있는 단심이가 서 있었다. 아마도 부엌으로 들어오려다가 닫혀 있는 문으로 인해서 오도가도 못하고 서 있었지 싶었다. 그 남자는 단심이의 팔을 나꿔 채서는 부엌 안으로 끌고 들어섰다. 바깥의 동정을 한 번 살피고는 이내 문을 또다시 닫아 버리고는,
‘이 처자는 누구요?’
‘걱정할 거 없수다. 단심이라고 우리 집에 기거하는 들병이요.’
그제서야 그 남자는 긴장을 풀고 그녀에게 목례를 했다. 종만도 못한 들병이 에게 예까지 갖추는지라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주막, 저 장터에서 동가숙 서가식 하는 들병이 들은 주거지도 불분명하고 이렇게 바쁜 날들이 아니면 사당패들을 따라 장터를 전전 하거나, 돈이 없어 볼모로 붙잡힌 주막에서 끼니나 때우며 터잡이로 들어 앉아 몸도 팔고, 술시중도 드는 이른바 떠돌이 신세였기 때문이었다.
‘잠도 안자고 워쩐 일이여, 시방?’
‘하도 그 상단패 놈들이 치근덕 대는 통에 웃 목에서 잘 수가 있어야 지유, 으이그, 썩을 놈들…’
방에 손님이 없을 때는 살도 섞어 주지만서도 이렇게 떼사리로 기숙할 시에 들병이 들은 방의 웃 목에 옹기종기 모여서 벽을 벗삼아 잠이 들기 마련인데, 잠을 안자고 허리춤을 질러대는 인간들로 인해 잠을 못자는 경우가 허다하기는 했다.
‘이 냥반은 누구래요?’
그 남자는 말이 없었다. 나는 다시 그에게 술을 권했다. 안 사람과 단심이는 아궁지 곁에 자리잡고, 부엌 구석에 나와 그 남정네, 그리고 남장여인이 자리 했다. 비좁았지만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루가 고단했던지 아내와 단심이는 이내 고개를 꺼덕이며, 졸고 앉았다.
‘저는 서맛골 이라는 곳에서 갖바치로 살았던 놈이지요.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동네에서 빌어 먹다가 그 고을에서 잔뼈가 굵었던 덕쇠 라고 하는 갖바치의 도움으로 그 업을 이어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운이 좋았던 편이지요. 그 영감님은 연로하셔서 무두질도 힘들고, 여러가지로 손이 귀할 때라서 저를 아들처럼 데리고 있으면서 키워주신 것입니다. 손끝이 매운 편이라 한양에서도 주문이 내려오기 바빴고, 언제나 일에 치여서 저는 영감을 돕느라 세월 가는 줄을 몰랐더랬습니다. 갖바치의 일이라는 것이 온 종일 죽치고 앉아서 하는 짓이라 하체가 부실해 질 수 있다면서 달포에 한번 씩 근처에 있던 덕흥사로 저를 올려 보내 셨지요.’
‘절은 왜?’
‘다리도 단련하고, 아울러 절에 계신 스님께 무예를 배우라는 것이었지요. 제 사부는 소명스님이라고 그 부근에서는 선승이라고 알려진 대단한 분 이셨습니다. 유달리 근골이 장대한 저의 신체로 인해 그 분께서도 무예를 익히면 좋을 것이라고 하시었죠.’
그 남자의 호걸기풍의 근골과 품세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 옆에 앉아 얘기를 듣고 있는 남장여인은 시간이 흐르고 있음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남자의 눈이 보이질 않음으로 인해 그 대신 번을 서는 것 같은 형국이었다.
‘노친네가 몸져 눕고, 그 일은 모두 제 몫이 되었습니다. 누워 지내신 지, 1년도 채 못 되어서 돌아가시고, 저는 갖바치의 일을 물려 받아 나름대로 잘 해나갈 수 있었습죠. 저를 보고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으로 인해 일을 하는 도중에도 언제나 조심하곤 했지만…’
‘뭐라 하셨는고?’
‘저를 거둘 때부터 하시던 말씀 이었지요. 제 눈은 그 속이 너무 깊으니 아무나 쳐다 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대개 가죽신을 지으러 오시는 분들은 아랫것들을 거느리고 오시느라 도저히 눈을 맞출 형편도 되지 않을 뿐더러 감히 양가댁 규수들의 버선발을 재다가 올려다 보는 날에는 끌려가서 흠씬 두들겨 맞고 올 수도 있기 때문 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가죽때기를 마름질 하는 도중에 먼발치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장옷을 입고 있어서 먼 발치에서는 얼굴을 잘 보질 못하였으나, 옆에서 따라오는 남자의 형색으로 보아 대단한 집 자제분들 같았지요. 아랫것들을 세 명이나 데리고 행차 했었던 것을 보면…. 저는 머리를 조아리며 그 분들을 맞았습니다. 지금은 낙향하여 선산을 지킨다는 말로만 듣던 윤 대감댁 자제였었지요. 두 사람은 남매간 이었구요. 혼사에 맞추어 신을 것들을 마련하러 오누이가 같이 왔던 것입죠.’
‘그래서?’
‘목소리도 가냘프게 들리는 그 처자는 그 집안의 보배처럼 여기는 외동따님 이셨습니다.’
그 남자는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이 보이는 것처럼 허공을 응시 하면서 옛 생각에 잠기는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멀리서 보았어도 온 사방이 환할 정도로 빛나던 그 양미간 하며, 새초롬한 입술에, 그 눈빛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저는 잠시 돌아간 노친네의 당부를 잊고 말았습니다. 오빠와 아랫것 들이 지어 놓은 신들을 둘러 보는 사이에, 나는 용기를 내어 발을 내밀고 평상에 앉아있는 그 규수의 얼굴을 기어이 훔쳐 보고야 말았지요. 운명이었는지, 그 처자도 저와 눈이 마주치고… 찰나의 순간 이었으되, 두 사람 사이에는 영원의 촌각처럼 느껴졌었습니다.’
‘허어, 큰 일일세.’
나는 그의 말에 추임새를 넣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 남자의 세어가는 머리 결 하며, 대강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막 사십을 넘긴 것 같은 나이였다.
‘나는 온 몸이 떨리면서 그 날부터 그 처자의 신을 짓는 동안 얼마나 많은 실수로 다시 신을 지어야 했는지 모릅니다. 그 신을 주어 버리고 나면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저는 글을 몰랐기에 그 당시 저의 애끓는 심사를 전할 방도 조차 알지 못했지요. 게다가 도저히 올려다 볼 수도 없는 신분의 차이는 저를 더욱 깊은 아픔의 수렁으로 빠지게 했고…그래서 신을 완성하기 이틀 전에 스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스님은 산사에 들어선 저를 보지도 않으시고 대웅전에 엎드려 천 배를 하고 부처님께 제 죄를 빌며 용서를 구하라고 하셨지요. 아마도 모든 것을 짐작 하신 듯 싶었습니다. 말이 천 배이지, 무예를 닦은 저 같은 사람에게도 천 배는 죽기 직전까지 가라는 말과도 같았습니다. 온 몸이 땀에 젖고, 정신이 혼미할 대로 혼미해져서 대웅전 바닥에 자지러질 때 즈음에 스님께서 나오셨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는 남장여인은 그의 말을 집어 삼킬 듯이 뚫어지게 쳐다보며 듣고 있었다.
‘스님은 말씀 하셨지요. 산을 내려가서 다시는 오지 말라고 말씀 입니다. 그리고는 기름종이에 싼 편지를 하나 건네 주시는 겁니다.’
‘자네는 글을 모른다고 하질 않았는가?’
‘그랬지요. 스님께서는 그 편지를 처자의 한쪽 신 밑에 깔아 넣고서 꿰매라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저의 심정을 그 멀리 떨어져 있는 산사에 앉으셔서도 환히 꿰뚫고 계셨는가 봅니다. 저는 글의 내용은 몰랐지만 차마 물어 볼 용기도 없어서 그냥 산을 내려 왔지요. 스님께서는 돌아서는 저의 뒤에 다 대고 억겁의 연을 풀 길이 없구나 라는 말씀 만을 하셨습니다. 날듯이 산을 내려와 저는 완성되지 않은 처자의 한쪽 신을 뜯어 바닥에 고이고이 스님께서 주신 기름 종이에 싼 편지를 넣었지요. 누구도 모를 것이고 처자만이 그 신을 신은 후에 느낌이 다른 것을 알아 차릴 수 있을 것이기에…대부분의 신은 장피와 갑피에 소의 엉덩이 가죽을 대는데 혹시나 처자가 뜯기 쉬울 수 있도록 색동 천을 교묘하게 편지위로 덮어 꿰매 버렸습니다. 달포가 안되었을 무렵에 대감 댁에서 사람이 하나 왔더군요. 신발을 화선지에 곱게 싸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아랫것 하는 말이 아씨께서 신이 불편하니 바닥을 손 보아 달라고 하더이다. 나는 그 신을 받아 들고도 두 식경이 지나도록 건드리질 못했지요. 밤이 이슥해서야 저는 그 신을 싼 화선지를 풀어 볼 수 있었습니다. 신은 그대로 였고, 바닥에 흙도 붙어있질 않았는데, 한가지 달라진 것은 왼쪽 바닥에 넣어두었던 편지가 없는 것이 달랐지요. 그 위에 꿰매었던 색동 천 만이 너덜거린 채로 끼워져 있었구요.’
‘처자가 그 편지를 읽었남?’
‘내용을 모르니 알 수는 없어도 색동 천이 뜯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읽은 것은 분명 하였고. 그런데 이상한 것은 색동 천에서 향초의 냄새가 나는 게 아니겠습니까?’
사대부 집 규수들은 매달 치루는 달걸이(월경)때에 방안에서 나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 꽃가루즙을 섞어서 만든 향초를 피우곤 했다.
‘그래서?’
‘맨 처음에 저는 그냥 어디서 냄새가 묻어 온 줄 로만 알았지요. 그러다 문득 그 천의 뒷 부분을 촛불에 비추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무언가 씌어져 있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지요. 저는 그 천을 불에 살짝 그을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천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무언가 써 있었습니다.’
‘자네는 글을 모르잖나?’
그래서 그는 그 천을 들고 그 한밤중에 무서운 것도 모르고 산사로 달려 갔다고 한다. 스님은 평소와 다르게 마당의 석등에 불을 붙여 두시고 그 자를 기다리셨다고 하는데,
‘스님께서는 천을 갖고 오라고 하시더니 저에게 찬찬히 말씀을 내려 주셨습니다.’
‘거 대단한 스님이시네.’
나는 놀랍기도 하고 산속에 들어가 있는 중이 속세의 일을 꿰뚫고 있는 사실이 두렵기도 하고 재미 나기도 했다.
““잘 듣거라. 속세에서의 인연은 언제나 전생과 연계되어 있는 법. 너와 그 처자는 이 생에서 맺어질 운이 아니다. 다만 너와 그 처자로 하여금 태어날 생명은 그 날과 시를 점지 받아 있구나. 그 처자가 보낸 글 귀에는 너를 본 순간,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져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얘기 이더구나. 그것이 인연인 것을…쯧쯧. 내일 밤, 자시를 조금 넘기고 그 처자를 찾아가거라.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게야. 방안의 불이 꺼지는 것을 신호로 방으로 들어가렴. 단,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처자와 합궁을 하더라도 잠이 들어서는 안되느니….그러나…””
‘스님은 말씀을 하시다 말고 한숨을 내 쉬셨지요. 지금 에서야 생각해 보니 짐작이 가기도 합니다만.’
이야기는 점입가경으로 흘러 들고 흥미진진해 지기 시작했다.
‘저는 그 날 저녁, 일찌감치 길어 온 물로 생전 안 해본 목욕을 했지요. 장롱 깊숙이 넣어 두었던 새 옷을 꺼내 입고, 이제나 저제나 밤이 깊어지기 만을 기다렸습니다. 자시가 되기 전, 저는 한 걸음에 윤 대감 댁의 담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숨을 죽인 채, 규방의 불이 꺼지기 만을 기다렸지요. 이윽고, 불이 꺼지는 것과 동시에 저는 담을 뛰어 넘었습니다. 평소 활공술을 익혔던 탓에 그깟 낮은 담장 쯤이야 문제가 아니었지요. 발소리를 죽여가며, 온 신경을 곤두세워 그 처자가 있는 규방의 툇마루에 올라 섰습니다. 그리고, 주위를 살핀 후에 조용히 방문을 열었죠.’
내가 침을 삼키는 꼴깍 소리에 잠시 이야기가 끊어졌다.
‘방안은 칠흙 같이 어두웠고, 열어진 방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교교한 달빛만이 방안에 가득했지요. 그 방의 정면에 송장 마냥 그 처자가 나를 쳐다 보면서 캄캄한 방안에 앉아 있었고, 저는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 이었습니다. 저는 문을 닫고 그 처자의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아씨, 이 무례한 쌍놈을 용서 하십시오. 주제도 모르고 이렇게 미친 놈처럼 찾아오지 않고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한 시각도 아씨를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부디 이 놈을 물리치지 마시고 어여삐 살펴 주십시오.””
““….내가 어찌 그대의 마음을 모르겠소? 허나, 이승에서의 인연은 너무도 험난하니 심정이 곤난 하구려. 남녀가 유별하나, 이렇게라도 그대를 만나보지 않고서는 나도 살아갈 의미가 없기에 죽기를 결심하고 전언을 보낸 것이라오. 이 밤이 그대와 마지막이 된다고 할지라도 내 절대 서운해 하지 않으리다. 어차피 혼사에 마음이 없던 터, 그대를 만나고 나서 홀연히 속세를 등질 생각을 굳혔으니, 오늘 밤만은 부부의 연으로 나를 대해 주시기를 부탁 드리오.””
‘처자는 통성명도 없이 제 앞에서 일어났지요. 그리고는 제 앞에 나와서 저와 맞절을 했습니다. 부부의 연을 맺기 위한 시작 이었지요. 처자는 고개를 숙이고, 제가 옷을 벗겨 주기만을 기다리고... 저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떨리는 손을 진정하지도 못한 채, 저는 처자의 저고리를 벗기기 시작 했습니다. 이미 겉옷을 벗은지라 속곳 저고리의 매듭을 푸는 일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지요. 저고리를 거두어 내자, 치마에 가려진 고운 어깨와 가냘픈 이목구비 하며,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이 아리따운 처자의 상체가 나를 반기 더이다. 속곳치마를 벗기기도 전에 처자의 부풀어 오른 젖몽우리가 치마를 뚫을 듯이 솟구치고 있었고… 치마를 걷어내자 고쟁이와 버선발 만이 남았던지, 부끄러운 듯이 두 다리를 접으면서 가슴을 가리는데, 나는 세상이 돌아버리는 줄 알았소.’
나는 그의 입가 주위로 떨리는 경련을 읽을 수 있었다. 꿈에도 그리던 처자의 나신을 그것도 바로 앞에서 만질 수 있었던 그 자의 기쁨은 말로 형용키 어려운 감격 이었을 것이다. 그는 곧바로 품에 안기 힘들었다고 토설 했다. 고쟁이를 내리려 하자, 처자는 이불로 들어가자고 하며, 그를 잡아 끌었으나, 오늘 밤이 마지막 밤인데, 촛불조차 켜지 못하고 모습을 확연히 볼 수도 없는 처지에 이불 속에서 촉각만으로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가슴에 담기는 싫다며, 이불위로 자리를 옮겼다 한다. 처자는 자신의 손으로 버선을 벗고, 고쟁이를 내리더니 한동안 그 자가 자신을 보도록 내버려 두었다는데,
‘저는 처자의 마음을 읽었지요. 이제 마지막인데 이렇게 라도 부부의 연을 맺은 서방에게 자신의 아리따운 한 시절을 가슴 깊이 남기게 하고자, 양반댁 규수의 체통도 망각한 채, 자신의 여물지도 않은 나신을 아낌없이 내 놓는 것을…’
그는 보이지 않는 눈을 껌벅 이면서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니 목이 메고 있었다. 옆에 앉은 남장여인도 그에 따라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고…
‘처자는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저에게 서방님이라고 불러주었지요. 저는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눈만 껌벅 이면서 이제는 부부의 연이 된 아내를 가슴에 안아 주었습니다. 소리가 새어나갈 까봐 흐느낌 소리도 죽여가며, 아내는 제 등을 거세게 껴 안았지요. 내 품에 안겨 제 속으로 아예 들어가 버리고 싶다고 하는 말소리에 가슴이 미어 지더이다. 이제는 갑피처럼 돌덩어리같이 변한 제 손을 부여잡고 자신의 볼에 부비면서 어찌 이런 인연이 있을 수 있는가 라며, 눈을 감았을 때는 정말 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소이다.’
그랬을 것이다. 두 사람은 촛불처럼 순간을 영원처럼 불태우고 있었으니…
‘처자는 아니, 아내는 자리에 누워서 나를 이끌었소. 나는 거칠 것 없이 솟구친 나의 육봉 으로 아내를 달래주어야 한다는 일념 뿐이었고, 이 밤이 가기 전에 아내에게 나의 흔적을 깊이 남겨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점차 그의 얼굴이 상기되어 갔다. 옆에 앉은 남장여인의 손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어깨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말을 하다 말고, 돌아다 보지도 않은 채, 그 여인의 손을 부여잡았다. 보기에도 어려 보이는 것이 꼭 서당에 다니는 학동의 모습인데 어찌 이런 험난한 여정으로 이 남정네를 따라 왔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되 보여도 스물은 안되 보이는 나이였고…
‘아내는 나를 껴 안고 끊임없이 머리를 쓰다듬었지요. 내가 설령 부부의 연을 맺으려 한다 해도 방사의 경험이 없는 것을 알고 저어 할까 봐, 저를 안심시키는 손짓 인 것을 알게 되었지요. 여인의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째 합궁을 하는지도 모르는 나는 그저 커다랗게 변해버린 육봉자락 만을 비벼댈 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그 당시, 사대부의 규수들이 혼기를 앞두고 사주 단자가 오가면 친정 에미 들은 중국에서 들여온 분첩이며, 연지 등을 팔러 다니는 방물 장수 등을 통해 합궁 장면을 손으로 그린 춘화도를 구해다가 딸의 초야를 위해서 교육을 시키는 것이 보통 이었다. 아마도 그 처자가 남정네에 비해서는 한 수 위였을 게다. 그도 그럴 것이 방사의 경험이 없는 남정네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육봉을 휘두를 줄 만 알았지, 경도가 어딘지 감히 상상도 못 할 것이 분명혔고…
‘아내는 넌지시 나의 육봉을 자신에게 이끌었다우. 나는 영문을 몰라 꼬뚜레가 꿰여 끌려가는 것 마냥 아내의 입가로 질질 끌려가고… 급기야 오줌이나 지릴 줄 알았던 내 물건을 인절미 삼키듯이 입안으로 쑥 넣는 것이 정말 기절할 듯한 느낌이었지요.’
지금은 그렇지만 한 때, 내 내자도 방사라면 내노라 하는 인물이었음을 나는 기억한다. 내가 허리가 부실허여 지금은 누운 채로 위에서 진저리를 치도록 놀아대는 꼴을 지켜 보기만 하나, 얼마 전만 해도 실했던 내 육모방망이 만한 물건을 고아놓은 소꼬리 빨아먹듯이 신나게 빨아 제끼던 때가 있어서 안다.
‘…그리고는 얼마를 놀리더니 슬며시 입안에서 물건을 꺼내더니만 육봉을 잡은 채로 가랑이를 벌리 더이다. 그리고는 멀거니 주춤하고 있는 나를 아내는 자신의 샅으로 이끌었소. 나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아내의 몸 위에 엎드렸는데, 글쎄, 내 물건이 도둑괭이 같이 뜨끈한 살 속으로 숨는 것이 아니겠소? 미간이 찌푸려지며, 입으로는 고통을 호소하는 지경이라 나는 하마터면 합궁을 빌미로 이 여인내를 죽이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하늘을 찔렀다오. 지금 생각하면 아련하기만 한 것인데…’
그 자는 아내의 샅이 그런 형태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처음에는 들어가지 않는 듯이 실갱이를 벌이다가 고만 살이 째지는 느낌과 함께 여인의 경도를 꿰뚫고 만 그자의 남근은 영문도 모른 채, 칼을 쓴 죄수의 모가지 마냥, 여인의 음구 초입에 걸린 채, 댕그렁 거렸을 테고…
‘아무튼 나는 제 정신이 아니었소. 아내의 몸 위에 있었지만 그 가녀린 몸을 타고 누를 생각을 하니 팔에 힘만 들어가고 꿈적을 못 하겠더이다. 그런데, 아내가 벌린 가랭이도 모지란지 다리를 내 허리 뒤로 휘감아 제끼는 데 나는 아내의 창시가 내 물건으로 뚫리는 것이 아닌가 걱정 될 정도로 아내의 몸 안 깊숙히 가라앉았소. 그렇게 다리로 조이고 풀고 하니, 나도 그 에 맞추어 허리를 움직이게 되고, 자연스럽게 아내가 이끄는 대로 나는 들기름을 바른 듯이 미끈덕 대는 아내의 음곡을 지칠 줄 모르고 왕래하고…’
옆의 남장여인이 있는 것도 불사 한 채, 남정네는 초야의 합궁을 얘기하느라 정신의 분별이 모호했고, 옆에 앉아 있는 처자는 벌써 얼굴이 발갛게 상기 되었음에도 졸린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어느 한 순간, 내장이 찢어지는 것 같은 느낌에 스스로 억 하는 비명 아닌, 비명을 내 질렀지요. 뱃속의 창시가 모두 쏟아져 내려 하초로 터져 나오는 듯하여 짐짓 나는 이 중요한 순간에 오줌을 지리는 것이 아닌가 했소. 땀은 비오듯 하고, 나는 온 몸에 기력을 잃고 아내의 몸 위로 절구통 쓰러지듯이 널부러 졌지요.’
나는 얘기를 듣고 있으면서 머릿 속으로 그려지는 흠씬한 합궁의 장면으로 인해 아랫도리가 오랜 만에 불끈 하는 것이 왠간히 기분이 좋았다.
‘나는 그 황홀한 합궁의 기분에 도취되어 스님께서 하신 명을 까맣게 잊고 있었지요. 아내도 날이 밝거든 떠나라는 부탁에 서로의 알몸을 부등켜 안은 채, 마지막 밤을 지샜지요. 새벽이 어스름 할 때까지 우리 두 사람은 끊임없이 서로를 찾았고, 못내 아쉬운 마음에 나는 아내와 교접한 상태로, 잠이 잠깐 들었지요. 그런데…’
‘그런데?’
‘잠깐 인줄 알았던 것이 진시를 훨씬 넘기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바깥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깨고 말았습죠. 바로 처자의 에미 였습니다. 나는 황급히 옷가지를 주워 들고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아내는 병풍 뒤로 숨으라고 하더이다. 나는 그러마하고 뒤로 숨고 얼마 되지 않아 아내가 옷을 차려 입고 방문을 열었는데, 그 에미가 사람들에게 들킬까 방안에 벗어 둔 제 짚신을 본 것이지요. 무어라 대답도 못하고 에미의 추궁에 닥달을 당하고 있을 즈음에 나는 이렇게 있어서는 물골은 커녕, 목숨조차 보존하기 어려울 듯 싶어 병풍을 박차고 바깥으로 튀어 나갔지요. 그 어미는 혼절하여 쓰러지고, 방안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나는 황급한 마음에 아내에게는 후 일을 기약 하겠노라는 말만을 남 긴 채, 황망히 서있는 아내를 뒤로 하고 그 곳에서 줄행랑을 쳤지요. 집으로 돌아 갈 수도 없고, 곧 이어 포졸들과 가신들을 거느리고 저를 추격해 올 것이 자명하야, 그 길로 나는 정처 없이 고향을 등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기찰포교가 자네 일행을 뒤쫓고 있는가?’
‘그것은 그 후에 벌어진 일들 때문 이옵지요. 제가 도망을 치고, 혼절한 아내의 어미는 그 충격으로 끝내 정신을 되돌리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답니다. 대감마님은 사대부의 망신살 이라며 아내를 덕흥사로 쫓아 보냈고, 그예 절에서 핏덩이를 생산 했지요. 아내의 천박한 행위에 더하여 어미까지 비명횡사한 데에 격분한 오라버니가 관과 짜고서 저를 어미의 살인범으로 몰아 전국 각지에 수배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아하, 그렇게 된 거로구만, 화가 날만도 하지. 그런데, 그 일은 내가 보기에도 십 수년은 더 전에 일어 난 일인 것 같으이만, 내자 되는 그 처자는 어찌 되었누?’
‘저는 그 길로 산사에 들러 스님으로부터 숨어 지낼만한 암자가 있겠느냐고 여쭈었지요. 스님은 준비 하시었던 서찰을 건네 주시면서 그 산사에서 울목 쪽으로 산을 네 개 정도 넘으면 있는 도선사로 가라고 일러 주시었습니다. 저는 그 산사에서 폐관을 하고 묵상에 들어가는 참선용 토굴에 숨어서 3년을 지냈지요. 그 3년은 정말이지 30년과도 같은 세월이었습니다. 빛도 통하지 않고, 작은 구멍을 통해 하루 한번, 전달되는 음식물과 저의 대소변을 받아내던 오강이 오가는 것이 유일한 접촉 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저는 세상과 등진 채로, 아내의 소식도 듣지 못하고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지내야 했지요. 3년이 되기 얼마 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들어오던 음식이 끊기고, 오강 마저도 내가지 않는 일이 벌어 졌습니다. 그 폐가 같은 암자를 지키고 계시던 스님께서 그만 입적하신 것이었지요. 한 열흘 가량을 음식도 없이 제 오줌을 받아 먹고, 기어 다니는 지네 등을 잡아먹으면서 지내던 중에 누군가 문을 열었는데 아무것도 보이질 않더이다. 나는 바깥 구경을 못하다가 눈이 약해졌지 싶은 생각에 아무리 눈을 비벼도 망가져 버린 눈은 더 이상 제 구실을 할 수 없었지요. 문을 연 분은 바로 소명스님 이셨습니다. 저를 부축해서 갖은 약재를 이용해서 눈을 돌려 보려고 하셨지만 역부족 이었지요. 스님께서는 저에게 바리때와 승복을 주시면서 돌아가신 스님의 승적을 몸에 지니고 그 곳을 떠나라고 명하셨습니다. 저는 눈이 멀었기에 제 몸을 제가 다스릴 수 있을 때 까지만 머물 수 있게 해달라고 하자, 곧바로 저의 머리를 자르자고 하시더이다. 머리를 자르면서 저는 3년동안 묻고 싶었던 바깥의 일들을 물어보았지요.’
‘말씀해 주시던가?’
‘제가 떠나고 관가에서는 방을 붙이고 저의 목에 현상금까지 걸고서 잡아들이려 혈안이 되었고, 절로 쫓겨 들어간 아내는 절에서 아이를 낳으려 했지만 난산으로 말미암아.아이와 산모 모두, 죽었다고 하더이다…..’
한동안 그 남자는 말을 멈추었다.
‘안되었구먼. 스님도 아이의 운명은 못 알아보신 게야.’
‘그런데, 그게 아닌 것을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던 겝니다.’
‘그게 아니라니?’
‘스님께서는 내자와의 인연에 연연해 할까 두려우셔서 저에게는 모두 죽었다고 하신 것이지요. 실은 아내가 딸아이를 낳고, 친정으로 돌아오려 하자, 오라버니 되는 자가 아이를 뺏고 아랫것들을 시켜 그 핏덩이를 내다 버리라고 시켰는데, 항상 아내의 탑돌이때 마다 절에 따라오던 언년이라는 몸종이 그 아이를 절로 데리고 온 것이지요. 아내는……….. 아이를 뺏긴 슬픔을…………. 견디질 못하고….. 친정 집 서까래에………… 목을 메고……….’
두 사람의 인연은 핏덩이 만을 남긴 채, 불행한 결말을 자초하였던 것이다.
‘저는 그때부터 그 오라버니를 죽이기로 작정을 하고 겉은 승복을 입고 사방을 떠돌면서도 하루가 다르게 무예를 익히고 또 익혔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음으로 인해 닥칠 수 있는 한계를 극복하려고 명산대천을 안가 본 곳이 없고, 내노라 하는 무예의 명인을 찾아가 사사를 받기 위해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지요. 그러던 세월이 바로 엊그제 같습니다.’
‘그런데, 저 처자는 누구길래, 사연이 있는 듯 남장을 하고 자네를 따라 나선겐가?’
그 말과 동시에 바깥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바깥은 벌써 동이 터 오는지 어스름한 미명이 밝아오고 있었고…
‘누구쇼?’
내가 쪽문을 열고 나가자, 싸릿 문 밖에는 여럿은 되 보이는 기찰 포교들과 양반차림의 사람들이 둘러서 있었다.
‘어이, 할아범! 어제 누구 수상한 사람이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관가에 신고가 들어와서 그런데 방마다 임검을 해야겠소이다.’
나는 머리칼이 쭈뼛 곤두섰다. 손에 칼을 들고 서있는 양반 차림의 무리는 그 오라버니가 이끌고 온 무사들과 가신들 이었고, 기찰 포교는 무언가 짐작하고서 들이닥친 듯 싶었다.
‘아이고 무신 말씀을 하십니까요? 저희 주막에는 개성에서 내려오신 상단패 밖에는 없는댑쇼?’
잔말말고 문을 열라는 소리와 함께 우지끈 하며, 부엌의 쪽문이 바수어지는 것이 보였다. 새벽의 희미한 공기를 뚫고 한 마리 매처럼 부엌으로부터 공중으로 몸을 내닫는 이가 보였는데 바로 그 갖바치였다. 주막의 마당은 너나 할 것 없이 빼든 칼로 인해 번뜩이는 섬광이 가득 찼고, 둘러선 무사들을 경계하면서 갖바치가 장검을 서서히 빼어 들었다. 바닥을 향하고 있는 얼굴이어서 어디를 공격할지 알 수 없었기에 누구도 선방을 할 여유는 없었다. 기찰 포교중의 한명이 겨누고 있던 칼을 부리면서 먼저 갖바치의 후면을 치고 들어 갔다. 나는 그냥 장승처럼 그가 서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기찰포교의 목젖에서는 선혈이 튀겨 나오면서 자지러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공중으로 가볍게 비월 하는가 하더니 둘러선 가신들 중, 여럿의 면상을 그 말로만 듣던 공중제비를 이용하여 발로 후려치니 고만 서너댓 명이 짚단 쓰러지듯이 고꾸라지고…갖바치의 월등한 무예에 그들은 기선이 꺾인 듯 보였다. 그에 멈추지 않고 그는 사람들이 보이는 것처럼, 품안에서 손바닥 크기보다도 작은 단검으로 보이는 암기를 날려 따로이 벌벌 떨고 있는 기찰 포교들의 무릎에 자로 잰듯이 칼침을 박아 넣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미 일부는 전의를 상실했고, 기찰포교중의 다른 무리는 관가로 지원을 부르겠다며 자리를 피해 버렸고, 그 오라버니로 보이는 남자와 그 앞을 지키고 있는 외눈박이 무사만이 서로의 빈틈을 노리면서 서있었다.
‘오냐, 네 놈일 줄 알고 있었느니, 오늘 에서야 집안의 원수를 내 손에 죽일 수 있겠구나. 뭐하고 섰느냐, 어서 저 놈을 베지 않고?’
그 외눈박이 무사는 아직까지 등의 칼을 뽑질 않고 있었다. 천천히 그가 갖바치의 앞으로 다가가면서 등의 칼을 빼들었다.
‘진검을 다루는 솜씨가 제법이구나.’
갖바치가 그 무사에게 말을 건넸다. 두 사람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그 검은 옷의 무사가 먼저 갖바치 에게 일검을 날렸다. 그 검기가 하도 대단해서 활공술로 공중으로 몸을 날린 그를 비켜간 바람이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싸릿 나무 버팀목을 강정 뿌러 먹듯이 대번에 반 토막을 내면서 그 자도 함께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아직 밝아오지 않은 새벽의 여명을 배경으로 두 사람은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검과 검사이의 부딪침으로 번쩍이는 첨광을 쏟아 내면서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몇 십 합의 승부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고…두 사람이 땅으로 내려 왔을 때, 한동안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격한 교합으로 인해 서로의 진기가 소모된 줄 알았는데, 그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외눈박이 무사의 저고리가 저절로 풀리는 것이 보였다. 저고리가 풀리면서 앞이 열려지는 것 같더니만 보기에도 끔찍하게 허리가 뒤로 꺾여 지면서 배안의 창시를 마당으로 온통 쏟아 내놓는 것이 아닌가! 그 뿐만이 아니었다. 건너편에 있던 갖바치의 칼을 쥔 팔이 아래로 스르륵 힘을 잃더니 덜렁거리면서 맥없이 바닥에 뒹굴어 버리고… 마지막 무사까지 목숨을 잃은 찰나의 순간에, 오라버니라는 작자가 몸을 날리면서 무방비 상태로 서있는 갖바치의 가슴을 향해 장검의 일격을 가했다. 그러나, 무릎을 꿇은 것 같은 갖바치와 오라버니라는 사람, 둘 다 몸을 부르르 떨기는 마찬가지 였다. 나는 천천히 사시나무 떨리듯 오금이 재려오는 몸을 질질 끌다시피 하면서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 앞에 섰을 때, 오라버니라는 자가 먼저 옆으로 거목이 쓰러지듯이 넘어갔다. 형상을 보아하니 오라버니는 갖바치에게 칼을 꽂는 것과 동시에 갖바치가 자신의 잘린 팔에서 칼을 거두어 번개 같은 동작으로 치고 들어오는 오라버니의 목젖에 최후의 일격을 가한 과정인 것으로 짐작되었다. 누구도 살아남은 자가 없었다. 무릎에 암기를 맞고 쓰러진 작자들은 갖바치의 서슬에 놀라 다리를 끌면서 줄행랑들을 쳤고, 마당에는 순식간에 피비린내와 시체로 가득 찼다. 나는 갖바치의 몸을 일으키려 했다.
‘괜찮소?’
‘…………향……………이를……………… 불러………………….주시오.’
‘향이가 누군데, 그 처자 말이우?’
내가 부르기도 전에 부엌에 숨어있던 내자와 향이라는 남장여인, 그리고 아직도 잠이 덜 깬 듯한 단심이가 땅을 기어가듯이 밖으로 나왔다. 그 앞에 향이라는 여자가 주저앉았다.
‘우리… 향이…향이를 혼자 두고 가는게……몹시도….가슴 아프구나…..향아! 마지막으로 말을 해두고 싶은 게 있다. ……나는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단다. ….나를 찾아 온 너를… 처음 본 순간, ……네 몸에서 흐르던….. 그 향내를 …….통해서 말이다. 그 향은…… 내가 꿈에도 있지 못하던……. 네 에미가 나에게 보낸 ……색동신에 담겨 있던 향초의 냄새라는 것을….네가 나를 따라 다니면서…… 잠이 들때도 빼앗길까…. 가슴에 품고 자던 그 봇짐 안에 있던 그 신은 ………바로 내가 만들어 주었던 ………..그 신이란다. 한 쪽의 ….색동천이 뜯겨져 나간 그 신….너도 알고 있었지? 쿨럭쿨럭….’
갖바치는 마지막 힘을 다해 자신의 딸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목구멍에서 울컥하며 올라오는 피덩이로 인함인지, 간간히 말이 끊겼다.
‘….우리 향이를 …..제발 부탁합니다…..불쌍한 아이 입니다. 에미, 애비 없이…… 또 긴긴 세월을 …..혼자 살아가야 할 …….기구한 아이입니다. …..제발….제발…… 내치지 마시고 이놈의 불쌍한 인생을…….. 가엽게 여기신다면……. 거두어 주십시오. 제발……’
그렇게 갖바치는 그 어두운 가시밭길 인생의 막을 접었다. 그 옆에서 울고 있는 향이라는 처녀는 관가에서는 남자로 알고 있기에 본래의 여장으로 돌아온다면 알아보지도 못할 뿐더러 문제가 없을 것도 같았기에….나는 관가에서 다른 포졸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단심이와 내자의 입단속을 시키고 향이의 옷을 숙객들 모르게 갈아 입혔다. 얼마가 지나 일이 마무리 되고 향이는 우리와 살게 되었다. 피붙이 없이 살아온 우리 두 부부에게 향이는 정말 좋은 딸과 같았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어느 즈음에 향이는 불러오는 배를 어쩌지 못하다가 아이를 낳았다. 살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향이는 태어나면서 부터 말을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손짓과 발짓으로 해서 그녀의 사연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아이의 아비가 기가 탁 막히게도 그 갖바치라는 것, 그리고, 스님이 향이가 10살 되던 해에 기어코 아비를 찾으라고 에미의 유품과 함께 갖바치를 찾아 나선 것 등 하며, 놀라운 일들을 출산과 더불어, 들어 알게 되었다. 긴 긴 세월동안 같이 지내면서 서로의 깊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지내다가 살을 섞게 되었을 부녀간의 운명은 한마디로 기구하다라고 밖에는 달리 할말이 없었고…그러나, 그렇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향이를 아비에게 보내며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했던 스님의 마지막 유언때문 이었다. 천륜을 어기는 셈이나 아비와의 사이에서 낳게 될 그 아이를 반드시 스님이 되도록 절로 보내 사바세계에서 한 맺혀 죽어간 원혼들을 달래줌과 동시에 천기를 누설한 죄 값을 그렇게나마 평생 갚을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스님의 깊은 뜻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적 향이는 울고 있다. 내일이면 덕흥사로 보내져 동자승이 될 아이를 껴 안고 말도 못하는 에미의 찢어지는 심정으로, 울부짖음 으로나마 서러움을 달래려고…..인생은 원래 그리도 기약이 없는가 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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