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0일 목요일

금지된 사랑 - 3부

용일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소설 세상’ 카페에 접속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어제 써놓은 게시물에 많은 사람들이 댓글들을 달아놨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용일은 사람들의 댓글이 반가웠다. 그만큼 자신의 게시물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고, 그것은 자신의 의견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줬다는 뜻이기도 했다.

“후후.”

용일은 이 시간이 즐거웠다. 수만의 입대로 용일은 친구 하나 제대로 없었는데, 알지도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쓴 글에 관심을 갖고 또 댓글을 달아줬기 때문에 비록 온라인상이지만 새로운 친구들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로테?.”

용일은 많은 사람들의 댓글 중에서 닉네임이 ‘로테’인 사람의 댓글에 관심이 갔다. 로테라는 사람은 자신의 게시물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한 대사를 적어놓았던 것이었다. 그 대사는 소설 속 베르테르가 로테에 대한 짝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던 심정을 나타낸 것이었고 용일도 익히 알고 있었다. 더구나 용일이 ‘소설 세상’ 카페에서 쓰는 닉네임이 ‘베르테르’였기 때문에 ‘로테’라는 사람의 댓글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 밖 에 없었다.

“옳지.”

비록 로테라는 사람의 댓글에 직접적으로 다시 댓글을 달지는 않았지만, 용일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작품에서 가장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던 장면을 정리해서 게시물로 올렸다.




제목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에서 가장 슬펐던 장면입니다.
작성자 : 베르테르 작성일 : 20XX 년 X 월 X 일 조회 1

[베르테르] 그럼, 말할게요. 제가 오늘 산보를 나갔거든요.

[오르카] 그거 매일 하시잖아요. 그런데요?.

[베르테르] 그런데 제가 그만 돌부리에 걸렸어요.

[오르카] 그래서요?.

[베르테르] 넘어졌죠.

[오르카] 그게 고민이요?.

[베르테르] 그래서 무릎이 깨졌어요. 그래서... 아팠어요.

[오르카] 저런 안됐네. 그런데 그건 고민이 아니라 고통이라고 하는 거요. 사람이 살다 보면 다 다치고 깨지고 그러는 거지. 이제까지 한 번도 안 넘어지고 살았나 보네. 허허.

[베르테르] 그런데 그 돌부리가 내 무릎을 막 때렸어요.

[오르카] 아이고. 세상에 그런 돌부리가 다 있어?.

[베르테르] 막... 제 무릎을 막 때렸어요. 그리고 가슴으로 성큼성큼 올라오더니 제 가슴을 또 때려요. 그래서 시퍼런 멍을 만들더니 저를 낭떠러지로 밀어요. 그 돌부리를 어쩌죠. 어쩌면 좋죠. 그런데 전 그 돌부리를 어쩌지 못하겠어요.


어떠신가요?. 여러분들의 사랑은?.
젊은 베르테르처럼 아프신가요?.




용일은 사랑에 대해 알지 못했다. 아직 여자를 만나 본 적도, 사귀어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사랑이란 단어의 뜻을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 느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보면서 사랑이란 저런 아픔까지 동반함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저런 아픔과 고통까지 이겨낼 수 있을는지 생각도 해보았다. 물론, 아직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용일이기에 사랑에 대해 생각만 할 뿐, 그 어떤 장담이나 확신도 할 수는 없었다.

“됐고... 다른 게시물 좀 볼까.”

하나의 게시물을 올린 용일은 ‘소설 세상’ 카페를 다시 훑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용일의 모니터에는 하나의 쪽지가 왔음을 알리는 창이 떴다.

“누구지?.”

용일은 자신에게 쪽지를 보낼 사람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자신에게 쪽지를 보냈다고 하니,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매우 궁금했다. 그래서 자신의 쪽지함을 확인했다. 뜻밖에도 자신에게 쪽지를 보낸 사람은 ‘로테’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었다.

- 안녕하세요. 베르테르님. 이렇게 불쑥 쪽지를 보내서 죄송합니다. 그냥 올려주신 글 잘 봤다고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어요. 방금 전에 올려주신 게시물, 저도 소설을 보고 참 좋아하는 장면이었는데... 다시 한 번 상기 시켜줘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용일은 쪽지 하나가 이렇게 사람을 기쁘게 만들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비록 로테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도 없었지만, 온라인상에서 자신이 쓴 글을 통해서 공감하는 사람이 생겼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직접 자신에게 쪽지를 보낸 것은 일종의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홀로 지내는 용일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용일은 곧바로 ‘로테’라는 사람에게 답장을 보냈다.

- 고맙습니다. 로테님. 공교롭게도 저나 로테님이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소설 속 인물들의 이름을 닉네임으로 쓰고 있네요. 앞으로 제가 게시물을 또 올릴지는 알지 못하겠지만, 혹여나 게시물을 올린다면 관심 바랄게요. 로테님도 좋은 하루 되 시길...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하는 것, 이것은 소통이고 참 즐거운 일이다. 더구나 같은 취미, 같은 취향, 같은 관심사,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 용일의 지금 심정이 딱 그랬다.

“음?.”

용일이 로테라는 사람에게 쪽지를 보내고 다시 ‘소설 세상’ 카페를 훑어보려는 찰나 또 쪽지 함에 새로운 쪽지가 왔음을 용일은 확인 할 수가 있었다. 용일은 곧바로 다시 새로운 쪽지를 확인했다. 쪽지를 보낸 사람은 또 로테였다.

- 지금 접속해 있으신 가 봐요?. 실시간으로 답장 쪽지를 받아서 참 반가웠어요. 저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소설을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로테라는 닉네임을 쓴 거 에요.^^*

이쯤 되니, 용일은 로테라는 사람과 쪽지를 주고받는 게 즐거웠다. 그래서 지체할 것 없이 바로 답장을 했다.

- 네. 지금 접속해 있는데... 로테님이 보내주신 쪽지를 받고 참 기뻤습니다. 제가 쓴 글이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받을 줄은 몰랐거든요. 그리고 저 역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소설을 정말 좋아해요. 그래서 로테님처럼 ‘베르테르’라는 닉네임을 쓴 것인데...

용일은 로테라는 사람에게 재차 쪽지를 보냈고,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답장이 도착했다.

- 그렇군요. 저랑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또 좋아하는 소설도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여기 소설세상 카페에 가입을 한 지, 며칠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로테라는 사람의 쪽지를 받은 용일 역시 놀랐다. 자신 역시 소설 세상 카페에 가입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그래요?. 저도 여기 가입을 한지, 며칠 안 지났는데... 참 신기하네요.

그러게 용일은 로테라는 사람과 쪽지를 통해서 서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번의 쪽지를 더 주고받았는데, 로테라는 사람이 용일에게 하나의 제안을 했다.

- 쪽지는 시간이 걸리는데... 제가 알기로 이곳에서는 채팅 기능이 있는 걸로 알거든요. 어때요?. 채팅으로 대화를 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용일은 로테라는 사람과 쪽지를 주고받으며 매우 즐거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바로 답장을 보냈다.

- 네. 그렇게 해요.

그리고 쪽지를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용일의 컴퓨터 모니터에는 큰 창 하나가 뜨기 시작했다.

- 베르테르님이 대화에 참여 했습니다 -

***

은경은 오랜만에 아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사람과 직접 만나서 입으로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온라인상에서 우연찮게 알게 된 ‘베르테르’라는 사람과 채팅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의 주제는 대부분 공통된 관심사인 ‘소설’ 관련이었다.

* 베르테르 - 그러시군요.

“네. 제가 책을 좋아해서 10대 때, 아마 중학교 2학년이었을 거 에요. 제 짝지랑 저랑 단짝 친구였는데, 그 친구 집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책이 있었던 것 같네요. 그거 친구에게 빌려가서 밤새 봤던 기억이 나요. 많이 울기도 했고... 감동도 받아서... 결국에는 아주 여러 번 보게 되었는데... 그 때문인지 친구에게 책은 돌려주지 못했죠. 푸훗.”

* 베르테르 - 하하. 저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친구에게 빌려서 처음으로 보게 되었는데...

“그래요?. 우와... 공통점이 많네요.”

은경은 베르테르라는 사람에 대해 단 하나도 알고 있는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어서 매우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일단 말이 통했고, 대화를 하다보면 비슷한 부분도 많았다. 비록 온라인상이지만, 이런 사람을 친구로 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다시 긴 시간이 지났지만 대화는 끊기질 않았다. 꽤 깊은 시간이 되었지만, 여전히 은경은 베르테르와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고, 이쯤에서 대화의 주제는 다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돌아와 있었다.

* 베르테르 - 요새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있는데, 특히 자신이 좋아하고 존경하던 인물이나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죠. 이러한 사회적 전염을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라고 하기도 하고요. 참 안타까운데...

“그러게요.”

* 베르테르 - 비록 베르테르가 사랑에 고통스러워하며 스스로 삶을 포기하게 되긴 하지만... 그래도 왜 하필 ‘베르테르 효과’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개인적으로는 이것도 안타까운데... 이 부분에서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더군요.

“어떤?.”

* 베르테르 - 아시겠지만, 괴테의 경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소설을 25살에 세상에 발표했지요. 그 전에는 풋내기 작가였는데, 이 소설을 집필한 후 단번에 스타 작가가 됩니다. 한 번 읽은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 나폴레옹도 십 수번을 읽었다고 할 정도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에 열광했는지 알 수 있겠죠. 그런데 문제는 이 책에 깊게 빠진 독일 청년들 가운데에서는 베르테르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사람도 다수 생겨났는데, 이들 가운데 베르테르가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생겨났습니다. 심한 경우는 책 속에서 묘사된 베르테르가 그랬던 것처럼 파란 연미복을 입고 권총으로 머리를 쏘는 것까지 따라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네요.

“그렇군요. 몰랐었는데...”

* 베르테르 - 다른 이야기지만 하나 더 재밌는 사실은... 괴테를 스타로 만들어 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괴테는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글쎄요.”

* 베르테르 -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고 합니다.

“왜 그렇죠?. 자신을 인기 작가로 만들어줬는데....”

* 베르테르 - 괴테의 인생 대작은 ‘파우스트’입니다. 이 파우스트에 괴테는 모든 것을 다 걸었죠. 하지만, 그 파우스트조차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인기를 넘지는 못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자신의 쓴 작품에도 불구하고 불만이 많았다고 하더군요.

은경은 베르테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베르테르라는 사람은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책에 대한 배경까지 알고 있었다. 은경은 베르테르가 참으로 박학다식하다고 생각했다.

“놀랍네요. 베르테르님... 정말 많은 것을 알고 계신 듯... 흥미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되네요.”

* 베르테르 - 뭘요. 하나 더 재밌는 이야기 해드릴까요?.

“뭔데요?.”

* 베르테르 - 로테라는 이름이 우리나라에도 있는 것 아세요?.

“무슨 말이죠?.”

은경은 베르테르의 질문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마 ‘로테’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이 진짜 있단 말인가. 물론, 있을 수도 있겠지만, 베르테르라는 사람이 질문한 의도는 그게 아닐 터인데 말이다.

* 베르테르 - 롯데요.

“네?. 롯데요?.”

* 베르테르 - 네. 롯데요.

“기업 말씀하시는 건가요?.”

* 베르테르 - 네. 롯데 기업의 영문 이름을 보면 Lotte죠?. 소설 속 베르테르가 사랑하는 인물은 ‘로테’와 영문 이름이 같습니다.

“그러네요.”

* 베르테르 - 그 이유는 롯데의 신격호 회장이 청년 때 이 소설을 읽고 감명 받아서 자신의 사업체 이름을 로테의 이름을 따서 롯데라고 지었다고 하더군요.

“푸훗. 재밌는 사실이네요. 다시 말하지만 베르테르님은 정말 많은 것을 알고 계신 듯 해요. 시간만 안 늦었으면 밤새라도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데...”

* 베르테르 - 아, 벌써 새벽 2시가 다 되가네요. 저도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즐거웠습니다. 로테님.

“저야 말로요.”

* 베르테르 - 그러면 이만... 나가보도록 할게요.

베르테르라는 사람이 채팅방을 나가려고 하자, 은경은 급하게 베르테르를 잡았다.

“아참. 베르테르님.”

* 베르테르 -네?.

“또 볼 수 있겠죠?.”

* 베르테르 - 저도 소설세상 카페에 자주 올 테니, 기회가 닿으면 또 볼 수 있겠죠.

“나중에 또 재밌는 이야기 듣고 싶어서... 그래요.”

* 베르테르 - ^^

대화를 마치고 베르테르라는 사람이 채팅방을 나갔고, 은경은 이제야 현실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시간은 벌써 새벽 2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출근해야 하는데... 빨리 자야겠네.”

은경은 컴퓨터 전원을 끄고 자신의 침대로 가서 누웠다. 그리고 잠을 청하기 위해서 눈을 감았다. 그런데 잠은 오지 않고 방금 전에 베르테르라는 사람과 대화를 했던 내용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렇게 오랜만에 즐거운 대화를 나눈 것이 언제인지...’

그렇게 은경은 한참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꿈나라로 갈 수 있었다,

***

조심조심 옆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전우들이 깨지 않도록 환복을 한 수만은 관물 대에서 편지지와 함께 볼펜 한 자루를 꺼냈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 엎드린 채로 편지지를 바닥에 펼쳤다.

‘휴...’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수만은 방금 전까지 야간 경계 근무를 다녀왔는데, 피곤한 몸 상태에서도 바로 잠을 자지 않고 편지를 쓰려고 했다. 사실 일과가 끝나고 편지를 쓰려고 했지만, 자신의 실수로 인해서 소대 전체가 1시간 넘게 얼차려를 받았기 때문에 편지 쓸 시간도 없었고, 무엇보다 시간이 있더라도 같은 소대원들의 눈치 때문에 편지를 쓸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남들이 다 자고 있는 상황 - 불침번이 근무를 서고 있긴 했지만 -에서 어두운 취침 등 아래 볼펜을 집어 든 것이었다.

‘엄마한테 쓰고... 일룡이한테도 써야하고...’

물론, 당장 이 시간에 편지를 쓰지 않는다고 해서 큰 문제가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수만은 이 시간에라도 편지를 써서 내일 당장 우체통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군대(훈련소)라 그런지 같은 소대원인 전우들이 수만을 괴롭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호적인 것도 아니었다. 특히 수만과 같은 조에 속해서 훈련을 하는 전우들은 불만이 많았다. 매번 수만의 잘못 때문에 연대책임으로 얼차려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위 수만은 군대에서 말하는 고문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과 시간이 끝나더라도 전우들의 눈치를 보기 일쑤였다.

쓱쓱쓱.

편지지에 글을 적는 것도 조심스러운 수만이었다. 혹여나, 편지지 소리나, 글씨를 쓰는 소리에 옆 전우가 깨면 안 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 엄마. 잘 지내?. 아들이야. 여기 훈련소인데... 힘들기도 하지만, 나름 재밌기도 해. 당연히 몸 건강하지. 같이 생활하는 전우들도 잘해주고... (생략)

- 일룡이냐?. 형님인데... 대학 다닐 만 하냐?. 군대 와보니까 참 재밌네. 물론, 당연히 힘들지. 하지만, 이렇게 힘든 훈련 하나 넘기다 보면 멋진 남자가 되는 거 아니겠냐?. 내 걱정 하지 마. 난 잘 이겨내고 있으니까... (생략)

‘휴우...’

수만이 엄마인 은경과 친구인 용일에게 편지를 다 썼을 때에는 벌써 새벽 4시가 다 되어 있었다. 지금부터 자더라도 2시간 후면, 그렇게 지겨운 기상나팔 소리가 자신의 귀를 괴롭히고 또 힘든 훈련이 시작될 것이었다. 수만은 자신이 쓴 편지를 관물대에 잘 넣어두고, 잠을 자기 위해서 자신의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또 어떤 하루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조금이라도 몸을 쉬어야 할 때였다.

그러나 수만은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기상 나팔소리를 들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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