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로테님은 괴테와 베토벤이 친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 로테 - 같은 독일인인 것은 알았지만... 친분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네요.
용일은 며칠 째 ‘소설 세상’ 카페를 통해서 로테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의도적으로 로테라는 사람에게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소설 세상 카페에 접속하는 게 일상이 되고 있었는데, 매번 비슷한 시간대에 로테라는 사람도 접속해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이게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약속을 하지 않았지만, 소설 세상 카페에 접속을 한 후, 서로를 찾기 시작했다.
* 로테 - 그런데 두 사람 나이 차이가 있지 않나요?.
“괴테가 21살이 많았지요.”
용일은 로테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사람과 대화를 하는 이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 친한 친구였던 수만의 부재가 매우 아쉬웠던 시기였지만, 생전 만나보지도 못한 로테라는 사람이 그 아쉬운 부분을 채워주고 있었다. 더구나 자신과의 관심 사항도 비슷했고, 무엇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재밌게 들어주는 것이 좋았다.
“괴테와 베토벤에 대해 몇 가지 재밌는 일화가 있어요.”
* 로테 - 네. 이야기 해주세요. 베르테르님 이야기는 매번 흥미로워서...
“괴테는 그가 살던 바이마르에서는 하느님과도 같은 존재였어요. 그만큼 많은 존경을 받고 있었는데, 자존심 강했던 괴테가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 로테 - 문제가 쉬워요. 괴테와 베토벤의 일화를 말씀한다고 하셨으니... 당연히 베토벤이겠죠.
“네. 괴테는 자신보다 한참 어린 베토벤을 존경했다는군요. 베토벤이 서곡 ‘에그몬트’ 를 막 완성했을 무렵 괴테가 몇 주일간 머무를 예정으로 빈을 찾았대요. 아참, 베토벤은 괴테의 작품을 음악화 하기도 했는데. ‘에그몬트’의 부수음악으로 작곡된 에그몬트 서곡이 가장 유명해요.”
* 로테 - 아하...
“아무튼 괴테가 빈에 온 뒤로 두 사람은 만날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네요. 그런데 어느 날 괴테가 감상에 곧잘 빠지는 베토벤과 프라타 공원을 산책했는데, 지나가는 시민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두 사람을 향해 머리를 숙이면서 경의를 표현했어요. 이때 두 사람의 행동은 각기 달랐는데, 어땠을까요?.”
* 로테 - 글쎄요. 전 잘 모르겠어요.
“일일이 답변하는 것은 괴테였어요. 베토벤은 상념에 잡혀서 먼 하늘만 바라봤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괴테가 시민들의 인사를 답례하기 위해서 손이 너무 자주 모자에 가야하니 귀찮은 거 에요. 그래서 옆에 상념에 빠져있던 베토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선량한 시민들은 매우 따분 하군요.덮어놓고 자꾸 절만 하니 말이오.’ 그러자 괴테의 이 말을 들은 베토벤이 무슨 대답을 했을까요?.”
* 로테 - 음... 역시 모르겠어요.
“베토벤의 답변은 이랬어요. ‘저, 괴테 선생님.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섭섭해 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전부 저에게 인사하는 거랍니다.’ 어때요?. 재밌죠?.”
* 로테 - 후후훗. 그러네요.
“바이마르에서는 괴테였겠지만, 빈에서는 베토벤이었으니까요.”
* 로테 - 정말 재밌네요. 자존심 강한 괴테의 표정이 어땠을지...
용일은 신이 났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말했을 뿐인데, 로테라는 사람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 그래서 더욱 더 흥이 나서 타자를 치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런데 괴테와 베토벤은 서로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교제가 끊기게 되죠.”
* 로테 - 무슨 일 때문에 그렇죠?.
“여기에도 일화가 있는데....”
* 로테 - 말씀해 주세요.
“괴테가 빈에 있을 때, 어느 날 베토벤과 점심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때 괴테는 오스트리아 황후는 예술에 대하여 훌륭한 생각을 지니고 있으므로 존경한다라는 자신의 뜻을 밝혔어요. 그런데 베토벤은 괴테와 생각이 달랐죠. 괴테의 의견을 들은 베토벤은 격한 말투로 귀족 따위가 당신이나 나의 귀한 예술을 왈가왈부 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응수했다고 해요.”
* 로테 - 사람들은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네. 생각이야 다를 수가 있는데... 문제는 이후에 벌어졌어요. 괴테와 베토벤이 길거리를 산책하고 있었는데, 마침 방금 화제로 삼은 오스트리아 황후가 신분 높은 귀족들에게 싸여 걸어오고 있었대요. 이때 두 사람의 행동은 또 달라요.”
* 로테 - 대충 예상이 되네요.
“베토벤은 귀족들도 우리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길을 양보할 것이니 계속 걷자고 했지만, 괴테는 그에 응하지 않았어요. 괴테는 먼저 길가로 비켜서 모자를 벗고 귀족들에게 경의를 표했죠. 그것을 본 베토벤은 혼자 무표정하게 걸어갔어요. 그러자 황후와 귀족들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 로테 - 베토벤의 말이 맞았나요?.
“네. 베토벤의 말대로 황후와 귀족들은 그를 위해 길을 사양하고 베토벤에게 먼저 인사를 한 것이었어요. 그 후 베토벤은 괴테에게 '어떻습니까?. 제 말이 맞았지요. 선생도 이제부터는 저런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지 말고 저런 사람들이 경의를 표하게 만드시오'라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 로테 - 괴테로서는 자존심이 상했을 것 같네요. 안 그래도 자의식이 강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네. 그 사건 이후 괴테는 베토벤을 사귈 수 없는 사람으로 생각했어요. 그리고 나중에 베토벤이 이 사건을 만나는 사람마다 웃기는 말투로 떠들어서 괴테를 마치 귀족들에게 굽신거리는 속물인 것처럼 생각하게끔 만들었죠. 결국 괴테의 귀에도 들어갔고, 다시 한 번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괴테는 베토벤과의 교제를 끊어버렸어요.”
* 로테 - 그런 일이 있었네요.
“그런데 또 재밌는 일화가 하나 더 있어요.”
* 로테 - 그래요?.
“괴테와 베토벤이 틀어지면서 이 둘을 화해시키려는 사람이 있었어요. 베티나라는 여성이었는데, 괴테와 베토벤을 둘 다 존경하는 사람이었죠. 그런데 이 베티나를 두고 괴테와 베토벤이 연적관계였다는군요.”
* 로테 - 오늘 흥미 있는 이야기를 많이 듣네요.
“저야 로테님이 재밌게 들어주셔서 고맙지요.”
* 로테 - 무슨 말씀을요. 베르테르님에게 제가 더 고맙죠. 매번 제가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들을 해주시니...
용일은 로테라는 사람에게 칭찬을 들으니, 더욱 기분이 좋았다. 현실에서는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는데, 비록 온라인상이지만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은 현재 로테라는 사람 단 하나 뿐이었다.
“시간이 또 이렇게 됐네요.”
* 로테 - 베르테르님과 대화를 하다보면, 아니 이야기를 듣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저 역시도... 그래요. 즐겁습니다.”
* 로테 - ^^
또 새벽 2시를 넘겨버린 용일은 빠르게 지나가버린 시간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밤새 로테라는 사람을 붙잡고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는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기에 로테라는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던 용일이었다.
* 로테 - 아참.
“네.”
* 로테 - 사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어떤?.”
* 로테 - 오해하지 마시고... 며칠 간 베르테르님과 대화를 하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셔서...
“책을 많이 본 것 뿐 인데...”
* 로테 - 후훗. 그건 이미 알고 있었죠. 제가 느낀 건 뭐랄까. 베르테르님이 나이 좀 있으신 것 같아서... 그냥 물어보는 거 에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로테라는 사람의 질문을 본 용일은 적잖이 당황을 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았다. 생각해 보면 지난 며칠 간 로테라는 사람과 하루에 수 시간씩 대화를 했는데,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만약에 용일이 현실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많이 당황 하면서 대답을 잘 하지 못했겠지만, 어차피 얼굴이 보이지 않는 온라인상이었기 때문에 고민이 길어지지는 않았다.
“저... 나이 진짜 어린데...”
* 로테 - 그래요?. 전 그래도 최소한 30살은 넘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아니... 더 어려요.”
* 로테 - 우와. 진짜요?. 27?. 26?.
“아닌데... 더 어려요.”
* 로테 - 헉.... 몇 살이에요. 베르테르님.
“음... 올해 신입생이에요. 20살.”
***
베르테르라는 사람과 채팅을 하던 은경은 크게 놀랐다. 자신과 며칠 간 늦은 시간까지 대화를 하던 사람이 아들 수만과 동갑인 20살의 대학 신입생이라니... 사실 믿기지가 않았다.
“에이... 거짓말...”
* 베르테르 - 사실인데...
“진짜요?.”
* 베르테르 - 네.
베르테르라는 사람에게 재차 확인을 한 은경은 이제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20살의 어린 나이에 전문가 뺨 칠 정도로 고전 문학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니... 은경은 새삼 베르테르라는 사람의 독서량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 베르테르 - 로테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그게....”
먼저 베르테르라는 사람의 나이를 물어 본 은경이었지만, 막상 자신의 나이를 밝히려니 조금은 망설여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베르테르라는 사람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그 부분이 의식이 되었다.
“저는... 베르테르님과 달리... 나이가 좀 많아요.”
* 베르테르 - 그래요?.
“네... 꽤 많은데....”
* 베르테르 -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사람 생각 비슷하고... 대화가 통하면... 친구도 할 수 있듯이...
베르테르라는 사람의 ‘친구’라는 말에 은경이 용기를 냈다.
“사실... 저... 43살인데...”
* 베르테르 - 아... 네.
“놀랐죠?.”
* 베르테르 - 아... 아니요.
“에이... 놀랐으면서...”
* 베르테르 - 아닌데...
“솔직히 말해도 되요. 놀랐죠?.”
* 베르테르 - 음... 아주 조금....
은경은 베르테르라는 사람과 자신의 나이 차이를 계산해 보았다. 무려 23살의 차이였다. 베르테르가 지금까지 살아 온 인생을 다시 한 번 살아도 3년이 남았다. 그런데 이런 베르테르와 친구를 할 수 있을까.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 베르테르 - 음... 괴테와 베토벤도 21살 차이였지만... 친구였는데...
“후훗. 아... 그러네요. 그런데...”
* 베르테르 - 네?.
“결국 괴테와 베토벤은 교제를 끊었다면서요?.”
* 베르테르 - 그 두 사람은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달랐으니까요.
“풋... 우리도 생각이 다를 수도 있잖아요.”
* 베르테르 - 지금은 민주공화국 시대라... 최소한 괴테나 베토벤처럼 귀족과 황족에 대한 논란은 없을 것 같은데요?.
“호호호.”
은경은 센스가\ 있는 베르테르라는 사람의 말을 듣고 손뼉을 치며 웃었다.
* 베르테르 - 그리고...
“네?. 또 뭐가 있어요?.”
* 베르테르 - 최소한 로테님과 저는 연적관계로 사이가 멀어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런가요?. 호호호.”
은경은 다시 한 번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베르테르에게 말을 했다.
“유쾌하게 마무리를 지어 주시네요. 잘 주무세요. 친구인 베르테르님.”
* 베르테르 - 네. 친구인 로테님도 좋은 꿈꾸시길...
베르테르라는 사람과 채팅을 마친 은경은 소설 세상 카페 접속을 끊은 후,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그래... 나이가 뭐가 중요해. 친구 할 수도 있지.”
은경은 새로운 친구 하나가 생겼다는 기쁜 마음을 안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
“김일경.”
“네!. 12번 훈련병 김일경.”
“이찬민.”
“네!. 21번 훈련병 이찬민.”
“홍재기.”
“네!. 5번 훈련병 홍재기.”
수만이 소속된 3중대 2소대 내무실에서는 조교 하나가 훈련병들의 이름을 부르며 편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2소대 훈련병들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 기대하면서 조교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수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주태.”
“네!. 31번 훈련병 김주태.”
“이상. 앞으로 1시간 동안은 개인정비 시간이다. 알아서 각자 개인 정비를 하도록 하고... 소대선임.”
“네!. 1번 훈련병 최진식.”
“소대선임은 지금 나를 따라와 행정반으로 간다. 그리고 경고 하지만, 2소대.”
“넵!.”
“조용히 해라.”
“넵!.”
조교와 소대선임이 내무실을 나간 후, 대다수의 2소대원들은 입대 후 자신에게 처음으로 온 편지를 뜯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수만을 포함한 몇몇 훈련병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만 봐야 했다.
‘왜... 편지가 안 오지.’
수만은 엄마인 은경과 친구인 용일에게 분명히 편지를 보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답장이 없었다. 편지를 받았더라면 답장을 보내지 않을 리가 없을 텐데...
‘편지가 잘 못 갔나?.’
수만은 편지가 잘 못 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다시 편지를 보내야 했다. 엄마인 은경과 친구의 용일은 자신이 훈련하고 있는 훈련소의 주소를 알 길이 없을 테니 말이다.
‘아휴...’
수만은 애인에게 한꺼번에 수십 통의 편지를 받아서 입이 귀까지 벌어진 옆의 전우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매우 부러웠다. 힘들고 낯선 훈련 속에서 그나마 버팀목이 될 수 있는 것은 사회에 남아 있는 가족이나 애인, 친구의 소식일 뿐이니...
‘휴... 편지나 다시 쓰자.’
대부분의 훈련병들은 편지를 읽으면서 표정이 밝아지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수만은 관물대에서 편지지와 볼펜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은경과 용일에게 자신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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