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나잇 - 1부

미소의 말소리가 번가의 시끌벅적함을 뚫고 내게 닿았다.

“이열, 연규.”

목소리에서 꾸며낸 티가 묻어 나왔다. 어색한 기류가 흐르기 전 선수 치는 종류의 인사였다. 들뜬 어조 뒤로 착 가라앉은 눈빛이 보였다. 마치 품평하는 것 같다.

“몸 되게 좋아졌다. 못 알아볼 뻔 했어.”
“껴입어서 그래.”
“에이, 아닌 것 같은데.”

미소의 손이 코드 안으로 파고들었다. 두터운 터틀넥 스웨터 위를 훑는 것이었음에도 다섯 손가락의 느낌이 생생했다. 화들짝 놀라 반응했으나 그녀는 되레 이상하다는 눈치였다.

“뭘 그리 놀라. 우리 사이에.”

미소는 내 반응을 웃음으로 넘겼다. 나 또한 마주 웃어보았지만 어색한 웃음만 지어질 뿐이다.

그녀처럼 나 또한 그녀를 못 알아볼 뻔 했다. 사실 알아보는 게 더 신기하다. 미소는 너무나 변해 있었다. 고양이상으로 눈꼬리 올라갔던 인상은 이제 흐릿해져 있었다. 왕방울만한 눈 끝자락이 살짝 올라간 것이 전부였으며 가죽 재질의 스커트 또한 짧게 올라와 있었다. 겨울철 두터운 옷감에도 몸매의 굴곡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며 상대적으로 조막만 해진 얼굴까지. 내 기억 속의 미소와는 천지차이였다.

“처음엔 나도 긴가민가했다? 근데 혹시나 해서 불러봤는데 웬걸, 너인 거야.”
“아, 응.”

차라리 모른 척 지나가지 그랬냐.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미소의 말을 그럭저럭 넘겨보지만 영 대화 같지 않은 대화다. 쌍방의 의사소통이라 하기에는 내가 너무 되는대로 주워 삼키는 탓이겠지. 어색한 대화가 계속 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8년 만에 갑자기 툭 튀어나온 만큼 마음의 준비 따윈 하지도 않았다. 어버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뭐라 해봤자 우리는 어색한 사이로 귀결된다. 반말 쓰는 것이 이상하며, 그렇다고 존칭이 어울리는 것도 아니다. 친구 대하듯 반말하기엔 둘 사이의 거리감이 너무 깊다. 그렇다고 존댓말 쓰기에는 명목상 친구란 사실이 꼬리를 잡는다. 군대 선임과 재회하거나 옛 애인 다시 보는 것과 비슷했으니 남보다 못한 사이, 그 정도가 딱 적당했다.

“지금 시간 있어?”
“아니.”

대답은 나도 놀랄 정도로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왔다.

“뭐?”

칼 같은 거절에 미소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실수치곤 너무나도 바보 같은 실수였다. 뒷구멍 아닌 곳으로 나이 먹으면서 배운 응대술은 다 어디가고 이게 뭔가. 그러나 이는 그리 바보 같은 소리나 할 만큼 내 평정심이 무너지고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너무하네, 홍연규.”

미소는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졸업 후에 행적 끊고, 동창한테 연락 끊고. 그리고 방금 내 말도 끊었지?”
“아, 그게.”
“소꿉친구의 정도 끊고, 이렇게까지 하는데 사과도 안하지? 내 인내심도 끊으려나. 뭐 더 끊을 거 없어? 생각 해 봐, 연규씨.”

미소는 따지듯이 거리를 좁혀왔다. 높은 힐을 신은 것도 아닌데도 나보다 3, 4cm는 더 컸다.

“저기요, 홍연규씨?”
“어?”
“추운 날, 반가운 재회라서 이야기하고 싶은 여자가 있어. 근데 이미 한 번 까였어.”

미소는 까였다는 부분을 강조했다.

“뭐 할 말 없어?”

물론 있다. 다음에 연락할게, 하며 헤어지고 싶다. 그러나 미소는 눈빛만으로 그 선택을 잘라 냈다. 힘 들어간 눈동자는 완고한 원리주의자의 것 마냥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달음박질해서 도망쳐버리는 것일까. 2초가량 고민하였으나 한숨과 함께 튀어나온 대답은 항복 선언이었다.

“어디 좀 들어가자.”
“좋아.”

사지란 것을 알면서 끌려가는 기분이 이렇겠지. 벌써부터 발에 힘이 빠진다.

시계를 보니 일곱 시였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며 한 시간쯤이면 될까. 난 반쯤 포기한 맘으로 가장 가까운 카페로 향했다.

불편해도 감내해야 할 자리라 생각하자. 사회생활 하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그런 것들.

“어디가?”

그런데 미소가 끼어들었다. 난 횡단보도 건너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스타벅스.”
“저기 별론데.”
“그럼 아는 곳 있어? 난 여기 잘 모르는데.”

그것이 실수였다. 미소는 슬쩍 웃음 흘리며 대답했다.

“한 군데 있지.”

미소를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번화가를 벗어나고 있었다. 포차니 해장국이니 하는 번화가가 등 뒤 멀리서 반짝였다. 이토록 깊숙이까지 들어오는 것은 처음이다. 카페와 바 등이 뿜어내는 차분한 분위기는 초행길이란 상황과 맞물려 무척이나 낯설었다.

“연규야.”

미소가 문득 입을 열었다. 왜, 하며 고개를 드니 서로 다섯 걸음 가량의 거리가 벌어져 있었다. 난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따라 붙었다. 얼핏 쇼윈도에 비치는 내 모습은 거북이 같았다. 질질 끄는 걸음걸이에 누구에게 맞기라도 한 듯 움츠린 어깨까지. 골목의 세련된 분위기가 날 깔아뭉개기라도 하는 걸까. 힐끗 본 내 옷은 오늘 아침 다려 입고 나온 것임에도 후줄근해 보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 때문이 아니리라. 미소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그녀는 주변 사람을 찌질이로 만드는 마법을 부리곤 했으니까. 홍연규 한정 마법이었을지는 몰라도 나로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녀의 옆에 있을 때면 늘 이렇게 위축되곤 했다. 8년 간 변한 것은 없었다.

“왜 그래?”
“그냥, 아무 것도.”

대충 둘러댔다. 미소는 아무 말 없이 날 쏘아보았다. 괜히 부담스러워 쇼윈도로 고개를 돌렸다. 유리에 비치는 여자는 어떤 변화의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난 한숨을 쉬며 털어놓았다.

“이런 곳은 처음이라서 좀 그래.”

순전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거짓말도 아니니까.

“여기라고 별 것 없어. 다 거기서 거기야.”
“거기서 거기면 아무데나 가도 됐잖아.”

말해놓고 보니 어린애 투정밖에 안 됐다. 또 괜한 말했다 싶어서 입을 닫는데 미소가 훌쩍 거리를 좁혀왔다. 어버버하며 반응하기도 전에 미소는 내 손을 낚아챘다.

“그럼 아무데나 가지, 뭐.”

그러면서 안내한 곳이 가장 가관이었다. 삼 층을 통째로 쓰는 바Bar. 외장이 색 바란 나무 이었음에도 어느 가게보다도 고풍스러웠다. 가게 입구의 작은 화단은 소담하면서도 기품이 있기까지 했다.

실내는 실외보다 더 했다. ㅁ자 형으로 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 구조였는데 그 뚫림 위에 작은 초록이 솟아나 있었다. 조경이지만 인공의 냄새가 흐릿한 정원과 가게를 휘도는 작은 샘.

이정도면 가게가 아니라 차라리 요정이지. 게다가 다섯이나 되는 바텐더에 비해 자리 수가 퍽 적었다. 홀을 듬성듬성 채우며 거리감을 확보한 테이블만 봐도 어중이떠중이는 안 받겠다는 주인장의 의지가 엿보였다.

“아, 뭐야.”
“왜? 아무데나 가자며.”
“넌 골라도 이런 데를 고르냐.”

미소는 피식 웃었다.

“농담이야. 원래 여기 오려고 한 거야.”
“여기 바잖아. 카페 가는 길 아니었어?”

미소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나 커피 먹겠다고 한 적 없는데.”

그 모습을 가히 얄미울 정도였다. 그러나 애초에 가게 선택권은 미소에게 있었으니 더 할 말이 없었다. 미소는 반박 못하는 날 잡아끌어 테라스 쪽에 자리를 잡았다.

엉거주춤 앉으며 조심스레 가게를 살폈다. 전체적으로 낡았음에도 고풍스러운 빈티지 쪽에 가깝다. 앤티크가 이런 걸 말하는 걸까 싶었다.

푸근한 조명은 가게의 음영을 강조하며 심도를 더한다. 덕분에 신비로움의 단초를 제공한다. 그 일말의 신비감을 증폭시켜나가는 것은 스테레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리듬이었다. 실제로는 그저 은은하게 울려 퍼질 뿐이다. 그러나 바텐더가 재즈 리듬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아이스픽을 놀리자 음에 강약이 실렸다.

얼음 쪼개지는 소리와 재즈 리듬, 거기에 조명이니 뭐니. 그 모두가 한 폭의 풍경화처럼 자연스러웠다.

“하아.”

들리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 몇 번이나 한숨을 쉰 걸까.

의자에 편히 앉지도 못하고 엉덩이만 끝에 걸친 난 참 엉성해 보일 거다. 그와 반대로 코트를 벗을 뿐인 미소는 참 자연스러워 보일 테지. 갈수록 강해지는 마법에 고개를 들기도 힘들었다. 어색해 보이겠지. 당연하다.

어색한 상대와 어색한 만남을 어색한 장소에서 맞았는데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다면 그것이 더 어색한 법이니까.

“오셨네요.”

바텐더가 다가와 운을 뗐다. 내 생에 맹세코, 저런 대사는 영화 속에서나 있는 줄 알았다.

“네, 오랜만이에요.”

바텐더는 옅은 웃음으로 대답했다. 우리와 비슷한 또래일가. 클래식한 옷차림이 어울리는 호남이었다. 그가 메뉴판을 내밀자 미소가 받아들었다.

“이쪽 분은 처음 뵙네요.”

그렇게 말하며 살짝 눈인사를 건넨다. 웃는 얼굴임에도 이상하게 품평하는 것 같다. 덕분에 내 몸은 이등병처럼 뻣뻣하게 각을 잡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편히 있으라는 듯 미소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왜 평소 앉는데 안 앉으시고. 오늘은 치프도 나오셨는데요.”
“비밀을 요하는 동창회거든요.”
“그렇습니까. 근데 어쩌죠. 저희 가게에 비밀 회담에 어울리는 술은 없는데요.”
“치프 언니가 몰래 애인하고 다 마셔 버렸나 봐요?”

바텐더는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말 전해드리고 싶어지네요.”
“술이 없으면 옆 가게 가서라도 얻어 오셨으면 하네요.”
“기꺼이 그러죠. 뭘로 드릴까요?”
“좀 보고요. 오늘 주빈이 결정해야죠.”

미소는 내 쪽으로 메뉴판을 밀어주었다. 그러자 바텐더는 날 의식해서인지 물 가져온다며 자리를 비웠다. 이런 배려가 더 불편하다.

“여기, 자주 와?”
“종종 와.”

별 것 아니라는 투였다. 오히려 시큰둥하기까지 했다. 별반 자랑 할 것 없다는 뉘앙스에 또 고개가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이 가게를 풍경화로 그린다면 미소는 두 말 할 것 없는 주연이었다. 가게의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 녹아들만큼 신비감과 기품 일색이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중요한 것은 미소가 그만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 일 거다. 외적인 미를 넘어서 품격이란 분위기까지 오르기는 어려운 일이니까.

그렇기에 미소에게 주빈 대우를 받는 것은 더없이 껄끄러웠다. 그녀의 대우가 자상해질수록 내 주제에 감히,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봐봐.”
“아, 어.”

미소의 재촉에 메뉴판을 열었다. 그 순간 절로 헉 소리가 나왔다. 몇 년 전이었던가. 조니 워커를 20만에 마신 것을 놓고 바가지 썼다고 가슴 퍽퍽 친 일이 있었다. 내 머리 속의 가격표는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 메뉴판에 쓰인 가격은 그보다 몇 배는 더 했다.

“왜?”

첫 장을 넘기지도 못하고 있으니 미소가 물었다. 난 주변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너무 비싸잖아. 다른 데 가자.”
“됐어, 무슨. 그냥 골라.”

분명 아주 못 낼 가격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두 달 가량은 생쌀 씹어 먹으며 살아야겠지. 나 또한 이유가 있다면 그리 했을 거다. 그러나 이 만남은 강제적 생식을 감수하기에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억지로 몇 시간만 참고 버티자는 마음인데 돈 몇 백을 쓸 사람이 누가 있을까.

솔직하게 돈 없다고 고백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말하고 싶지 않았다. 오기에 불과한 것을 안다. 나만의 열등감인 것도 안다. 그러나 참기 어려운 것은 우리의 우열 관계에 대한 재확인이었다. 난 여전히 못나고 미소는 여전히 잘났다는, 알고는 있지만 듣고 싶지 않은 사실. 때문에 내 입은 한 마디도 못한 채 달라붙었다.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부담 갖지 마.”
“네가 왜?”

반발의식 때문인지 내 대답은 꽤 퉁명스러웠다. 내 매몰찬 거절에 미소의 눈이 점차 세모꼴로 변해갔다. 그제야 아차 싶었다. 난 지체 않고 사과했다.

“미안.”

미소가 날 순수하게 친구로 대한다면 결례고 실수였겠지.

친구니까. 그 한 마디로 이유 없는 호의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난 그것을 단 번에 부정해버렸다. 미소가 저리 불편한 기색을 띄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할 말이 없어 시선을 내리깔았다.

“나 돈이라면 넘쳐날 만큼 있거든?”

난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만일 친구라면 사과하고 웃음으로 얼버무리면 된다. 농담처럼 그래, 돈 많구나. 대단하다, 야. 성공했네. 부럽다. 내가 친구 덕에 호강한다. 그런 식으로. 그러나 그리 할 수 없는 이유가 두 가지 있었다.

첫째로 돈이라면 넘쳐난다. 그 한 마디가 참 서글피 들렸다는 것이다. 오만하기까지 한 발언이었으나 거기에 자랑의 느낌이라곤 전무했으니. 나에게 시선 맞추지도 않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미소에게선 자조의 느낌이 강하게 풍겼다.

물론 내가 병신 머저리에 속 좁고 생각 없는 놈이라면 화낼 수도 있겠지. 자랑하냐? 난 있는데 넌 없다 이거냐, 하면서. 그러나 난 고양이 앞의 쥐처럼 입술만 꾹 깨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두 번째 이유다.

친구가 아니라는 것. 우리는 친구라고 딱 단정 지을 관계가 못 된다. 남보다 못한 사이고, 그 사실은 8 년만의 재회임에도 여전한 이 무게감이 증거 한다. 아니다. 무게감은 차라리 더 심해졌다 해야 할 거다.

미소의 쓸쓸함과 나의 자괴감. 이 두 가지는 서로 맞물려 우리를 침묵하게 했다. 빈 테이블 위에 어색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그 때문인지 미소는 좀 전보다 멀어진 것 같았고, 계속해서 더욱 멀어졌다. 그러자 미소는 영원토록 늘어나려는 거리감을 붙잡기라도 하듯 입을 뗐다.

“이젠 쇠 팽이 따위 백만 개도 사줄 수 있어.”

이해 못할 한 마디에 머리가 멈춰 섰다. 뭔 소리야. 너무나 뜬금없는 대꾸에 내가 잘못 들은 것인지 의심했다.

“쇠 팽이. 기억 안나? 88 올림픽 팽이 말고.”

순간 기억의 책장이 넘어갔다. 색 바랜 추억의 단어는 기억의 책장 깊숙한 곳에 있었다. 기억더미 맨 밑, 가장 옛 기억에 기록된 추억담들. 그것은 주석이 되어서 미소의 말이 함의 했던 바를 이해시켰다. 일순 미소가 옛 모습과 겹쳐 보였단 착각이 들었다. 애틋한 그리움이 심장을 작게 울렸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거리감은 잠깐 멈칫했을 뿐 좁혀지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