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0일 월요일

여교사 - 5부

5. 


토요일 오후가 되어 지혜는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잠시 미쳐 있었다고는 하지만 어제 전철에서의 일이라든지 집에서 했던 일은 지혜에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집에 있자니 자꾸만 그 기억이 떠 올라 자기 혐오에 빠져들고 말았던 탓에 바람이라도 쐬고 들어올 생각에서였다. 쇼핑이라도 다녀오면 좀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현관을 열자 생각지도 못한 아이가 서 있었다. 지혜가 담임을 맡고 있는 1학년 7반의 학생이었던 것이다. 

“응? 민준이 아냐? 어떻게 된 거야?”

“아뇨.. 저기..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그래? 혼자 온 거니?”

민준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반 아이들은 서른 살의 미망인인 영어 선생님을 예쁜 누나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경향이 있었다. 고등학생이라고는 해도 아직은 소년의 티를 채 벗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따라서 여럿이 몰려 다니며 가끔은 지혜 집으로 찾아오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처럼 혼자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었기에 지혜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더구나 아이라고는 해도 육체적으로는 충분히 어른에 가까운 남자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음.. 할 얘기가 있다고?”

“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몰라서요…”

고개를 숙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민준의 말투를 들으며 지혜는 조금 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아직 진학문제로 고민을 할 학년도 아니고… 어쩌면 이성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쨌든 좀 들어오렴”

지혜는 민준을 거실에 앉혀둔 후 부엌으로 향했다. 

“마실 것 좀 줄까?”

“아? 네..”

두 사람 분의 음료수를 들고 거실로 돌아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민준이와 마주 앉았다. 가져온 음료수 잔을 민준에게 내밀었다. 민준은 지혜로부터 잔을 받아 잠깐 입을 대고는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민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지혜가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일인지 얘기해 볼래? 선생님 상담이 필요한 거야?”

하지만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흐음… 혹시 이성문제인 거니? 여자친구 라던가… 아냐?”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뭘까..? 고민하다가 결국 나한테까지 온 거잖아.. 얘기가 듣고 싶어서.. “

“그.. 그렇기는 하지만.. 그게…”

민준은 말까지 더듬으며 얼버무리는 듯한 태도였다. 

“어떻게 된 거야? 평소답지 않게.. 뭐 무리해서 이야기 할 필요까진 없지만 고민이 있으면.. 얘기를 해보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민준이 어렵게 입을 떼었다. 

“저… 어제.. 봤어요.. 전철 안에서…”

“보다니? 뭘 말야?”

지혜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설마 라고는 생각했지만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는 것 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입을 다물고 있는 민준을 향해 지혜가 대답을 재촉했다. 

“도대체 무엇을 보았다는 거지?”

“선생님을 말이에요.. 그 남자한테…”

민준의 대답을 들은 지혜의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낭패였다. 눈 앞이 캄캄해지는 것과 동시에 숨이 막혀 오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처음엔 왜 가만히 있는지 이해가 안되었어요… 그런데.. 볼수록 선생님이 이상해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가까이 가서 살펴 봤었는데…”

“그만!”

지혜는 단칼에 민준의 말을 자르고 나섰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고 있었다. 침묵을 깬 것은 지혜였다. 

“민준아 있잖아… 그 얘기..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니?”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나한테 먼저 말을 하는 거지?”

“그건.. 선생님이 그런 짓을 할 줄은 몰랐거든요… 그래서… 왜 그랬나를 물어보고 싶어서요..”

“들어보고는 어쩔 생각인데..?”

“그건.. 아직.. 잘…”

“거짓말 하지 마!”

갑자기 목소리를 높인 지혜의 얘기에 민준은 튕기듯이 고개를 들었다. 지혜는 교실에서조차도 그렇게 큰 소리를 낸 적이 없었던 탓에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사실은.. 너 그걸로 선생님을 협박할 생각이었던 거 잖아. 안그래?”

“아..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민준이는 억울한 듯이 더듬거리며 대답을 했다.

“나.. 난.. 그저.. 선생님이.. 그 걸.. 그런 짓을 하는 게 싫어서… 그래서… 그래서…”

“미.. 미안해..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질러서..”

민준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의 대답을 듣고 이번에는 지혜가 당황스러웠다. 엉겁결에 사과를 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와 동시에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 들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와 즐겼던 그 치한 플레이를 학생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아직까지는 민준이 이외의 사람들은 모른다고는 해도 알려져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교사로써 그런 짓을 하고 말았다는 자괴감이 밀려 들었다.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전혀 생각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 거실 한쪽에 세워져 있던 거울을 통해 비쳐 보였다. 굳은 표정으로 말 없이 거울을 보다가 어제의 행위들이 떠올랐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 올라 버리고 말았다. 

민준이 전철 안에서 보았던 것들을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이야기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아무것도 없었다. 민준의 입을 막아 비밀을 지키려면 민준이와 비밀을 공유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지만 망설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교사와 학생을 차마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 이외에는 딱히 또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쩌면 그것만이 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의식과 부끄러움이 뒤섞인 감정이 밀려 들었다. 갈등을 하면서도 앞으로의 진행상황을 상상하고 있으려니 가슴의 두근거려오기 시작했다. 

무거운 침묵이 이어지고 있었다. 민준은 잔을 비우고 테이블 위로 내려 놓았다. 지혜는 그런 민준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민준이.. 너.. 이 선생님이 경멸스러워졌니?”

“아.. 아뇨..”

“괜찮아.. 억지로 대답하지 않아도 돼.. 민준이 네 나이 또래라면 여자를 잘 모르는 게 정상이겠지… 경멸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나도 생각해.. 민준아.. 혹시 너.. 여자 경험은 있니?”

“네?”

갑작스러운 지혜의 질문에 민준은 놀란 듯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바로 부끄러워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저 선생님을 경멸하거나 하진 않아요.. 정말이에요”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를 필사적으로 설득하려는 듯한 그런 목소리였다. 지혜는 가슴이 뛰었다. 모성본능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밝고 솔직한 성격에 우등생인 아이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해 주고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귀엽게 생긴 얼굴이라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을 것 같아 보이는 외모도 한층 더 귀엽게만 느껴졌다. 

“자, 그럼 민준아.. 선생님하고 약속 하나 해줄래? 민준이가 본 것.. 절대로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겠다고.. 비밀을 지키겠다고 말야..”

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민준아.. 선생님의 비밀을 지켜주어서… 나도.. 민준이의 비밀을 지켜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지혜의 몸이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비밀이라는 말에 이처럼 가슴이 뛸 줄은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민준은 지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애매한 표정으로 지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지혜는 고개를 숙이고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민준이의 첫 경험의 비밀… 선생님이 지켜주고 싶은데…”

“네? 그.. 그럼…?”

동정의 소년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더듬고 있었다. 지혜는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가슴이 더욱 더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왜? 이 선생님이랑 하기는 싫은 거니?”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민준이가 놀라고 있는 모습이 마치 보이는 것만 같았다. 

“아.. 아니에요.. 선생님을 제가.. 얼마나…”

지혜는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쐐기를 박았다. 

“그럼 괜찮겠어?”

지혜가 고개를 들고 물어보자 민준의 고개가 끄덕이고 있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럼 조금만 기다려 줄래?”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마친 지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민준을 남겨놓고 침실로 들어갔다. 지우기 힘든 죄책감과 그 이상의 흥분이 뒤섞이고 있었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사이드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던 남편과 찍은 사진 액자를 집어 들자 가슴을 찌르는 듯한 아픔이 스치고 지나갔다. 

‘용서해 주세요.. 하지만 혼자 남겨진 나도.. 그만큼 힘이 들었어요’

그렇게 남편에게 용서라도 구하려는 듯이 마음 속으로 속삭인 지혜가 서랍 속으로 액자를 집어 넣은 후 민준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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