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2일 목요일

주제파악 - 1부

아앙...으응..하..아아!
콧소리 가득한 여자의 넘어가는 신음소리가 스피커에서 빵빵히 흘러나온다.
집구석에 쳐 박혀서 이렇게 지낸지가 한달이 되어간다.
그동안 하루종일 야설도 읽어보고, 야동을 틀어봤지만 흥분이 되지가 않는다.
그에게 수도꼭지냐며 핀잔을 듣던 내 보지는 아무리 더듬고 문질러도 바짝 말라있다.
어떻게 좀 만져보면 이 갈증이 해소되기라도 할까 열심히 더듬고 꼬집어 보지만
퉁퉁 부어오르기만 할뿐 어떤 흥분도 얻을수가 없다.
벌겋게 부어오른 보지를 욕과 함께 거칠게 문질러 보지만 따끔거리기만 하다.
결국 포기하고 야동이 틀어져 있는 모니터에 멍하니 시선을 고정한다.
한참을 보다보니 야동속의 여자가 무어라고 입을 벙긋거린다.
-주제파악!
뭐야 짜증나게, 야동 속 숨넘어가는 신음소리가 왜 '주제파악' 이란 말로 들리는거야.
미쳐가나보네 정말로.
신경질적으로 모니터를 꺼버리며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그에게 만나주지도 않으면서 제약은 왜 이렇게 많이 거냐며 불만이 한가득이였는데
웃기게도 이젠 마음대로 하고싶은대로 하는데도 어떤 짜릿함도 없다.

한 달이 되어가는 일이지만 귓가에
내가 던진 가시가득한 말들이, 그가 내게 던진 독이 가득한 말들이 맴돈다.

나는 지금 말라비틀어져 가고 있다



도대체 얼마만에 이렇게 차려입고, 화장을 하고 밖에 나온 건지 모르겠다.
그의 회사로 무작정 찾아온 내 자신에게 스스로 박수를 보내며 용기내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회사이름만 알았지 그의 직책을 몰라 망설이다가 답했다.
김대진씨와 약속이 되있습니다. 확인해주시겠어요? 아, 이혜린입니다
여직원의 갸웃거리는 모습에 차려입고 오길 잘했지
그렇지 않았으면 만나지도 못하고 문앞에서 되돌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안도의 한숨을 내뱉음과 동시에 온갖 걱정거리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만나면 인사는 어떻게 하지, 뭐라고 불러야하지, 약속이 되어 있지 않다고 만나보지도 못하면 어떻게 하지,
왜 왔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하지 채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생각하기도 전에 여직원이 돌아왔다.
따라오라는 여직원을 따라 그의 사무실 문앞에 도착했고
채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여직원이 문을 열어 그에게 날 안내했다.
알수 없는 웃음을 머금은 그가 책상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반갑습니다.
얼결에 그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여직원에게 마실것은 필요없으니 가보라며 여직원을 내보냈다.
그는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가 앉았고, 난 맞은편 소파에 앉아 침묵을 지켰다.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그가 입을 열었다.

그래요, 이혜린씨라구요?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무슨말이라도 내뱉으란 말이야 멍청아
무어라고 입을 뻥긋거리기라도 해보려는데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 응접 테이블로 걸어왔다.
걸음걸음에서 느껴지는 그의 모습에 압도되어 난 꼼짝도 못한채 숨 죽였다.
굵은 목소리가 느리게 흘러나왔다.

발톱을 세우러 왔으면 마음껏 할퀴어도 좋아

반발심이 가득 피어올랐다
오늘도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반발심에 한 번 터진 입은 항상 빌어먹을 만큼 마음대로 움직인다.

한달만에 뵙네요. 만나주지도않을까봐 걱정했는데 사무실까지 들여보내주셔서 감사해요.
작은 회사라더니 그렇게 작은 회사는 아니네요.

좋아, 오늘의 평가항목은 사회적 능력인가? 계속해봐

꾀 높은 직책이나 보네요. 사무실도 따로 있고

다행이지, 없었으면 널 어디서 만나겠어

비서도 있어요?, 정확히 하는 일은 뭐예요?

있는데 지금은 없어, 하는 일 설명하기엔 하는 일이 너무 많다

돈은 많이 벌겠네요?

평가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그만하고 이제 말해. 왜 왔어

후아- 크게 숨을 들이켰다.
한꺼번에 제약을 풀어버리면 저는 어떡해요?

그의 눈이 어둡게 빛났다.

주인-
자연스레 그를 주인님이라 칭하려던 나는 멈칫했다. 주인님인가? 뭐라고 불러야하지?
그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흥, 내가 못할줄 알고?
당신이 몇 년간 내게 하나 하나 걸어놓았던 제약을
그렇게 한번에 풀어버리는 건 반칙 아닌가? 어떻게 그-

그가 말을 끊고 들어왔다.
당신? 하하. 단어선택이 참 괜찮네
꿀꺽, 당신은 너무 심했나? 입이 바짝바짝 말라간다.
계속해봐

어렵게 드러낸 속마음을 무시하는 그의 말에 화가 났다.
어떤 기분으로 여기에 왔는지 잘 알고 있을 그다.

나이트에 가서 밤새도록 놀았어요

그래?

좋더라구요. 부킹도 받았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들이랑 술도 마시고, 춤도 추고

고개를 끄덕일뿐 대답은 없다.

클럽도 갔어요

여전히 대답없는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부비적 거리는 춤이 유행이더라구요.

대답 없는 그에게 서운함과 분노가 동시에 몰아쳤다.

엉덩이도 만졌어요
가슴도 만졌다구요

대답을 재촉하듯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속상했다. 몇 년간 그가 공들여 만들어준 나와 당신의 규칙을 몽땅 어겨버렸다고 말하는 내게
어떤 분노도 아니, 심지어 관심조차 보이질 않는다.

아무...아무렇지도 않아요?

할 말은 더 없고?

.......밥도 안 먹었어요. 잠도 잘 못잤구요.
서운함이 터져나왔다. 투정을 부리고 말았다.
한달간 나를 봐주지 않은 그를 원망하고 탓하며 그리웠다고 말하는 것 이였다.
거기까지 속마음을 들어내고 나니 퍼뜩 정신이 들었다.
당혹감에 급히 말을 이었다.
오늘 속옷도 입었어요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듣고만 있던 그가 자세를 고쳐 앉아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입가를 매만지는 그를 보니 두 다리가 풀릴것만 같다.
서운함과 분노는 어디가고 흥분감에 머리가 멍해졌다.

침묵속, 긴장감에 숨이 넘어갈것만 같다.
그 무서운 눈빛을 받고 있자니 숨고싶다.
미쳤던게 틀림없다. 긴장감에 그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
그의 말 처럼 난 주제파악을 못하고 다시한번 미쳐 날뛰었던 거다.
흥분감과 두려움속에서 나는 구두끝에 시선을 고정한채 어떻게든 할 말을 찾으려고 했다.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지금 나는 그에게 완벽히 압도되어 눈빛조차 다 받아내지 못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난 이미 그에게 지독하게 길들여졌단 사실을.
그가 입가를 매만지는 행동만으로도
한달간 말라있던 보지에서 꿀물이 터져나와 팬티가 축축해졌단 사실을 알아챈 순간,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잘못했어요
꼬리를 내렸다.
물기어린 눈가를 닦았다.

욕심 안부릴게요. 주제파악도 잘 할 거고, 내가 주인님께 어떤 존재인지 잊지않을테니까 다시 받아주세요.

자켓벗어

흠칫- 여기서? 사무실인데? 괜찮은건가? 떨리는 손으로 자켓을 벗고 블라우스의 단추에 손을 댔다.

뭐해. 자켓만 벗으랬잖아.

그는 내가 벗은 자켓을 집어들어 사무실 유리쪽에 있는 옷걸이로 걸어갔다.
옷걸이에 옷을 걸며 사무실을 살펴본 후 블라인드를 내렸다.
다가와 어깨에 두손을 올렸다.
크고 단단한 손이 몸에 닿자 온몸이 찌르르 떨려왔다.
주먹을 꽉 쥐었다.

자켓만 벗으랬더니 어디서 못벗어서 안달이야. 그나저나 저번 날과 오늘. 상당히 공격적이네?
놀랍다. 근데 여기 내 직장이다. 내 처자식 먹여살려야 할 곳. 그러니까 그만하고 가라
허락이든 거절이든 답을 기다린 내게 그가 준 건 둘 중 어느것도 아니였다.
날 내 쫓는 그가 서운해 눈물이 터져나올것만 같았다.
게다가 잔인하게 내 주제를 다시 한번 되짚어 주기까지 했다.

...갈게요

힘겹게 일어섰다. 걸어둔 자켓을 집어들고 문을 나서려는 순간 그가 날 불러세웠다.



속옷은 벗어두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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