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6일 금요일

며느리의 효도

‘아버님, 다녀 오겠습니다. 에미 말 잘 듣고, 계세요, 네?’

‘빨리 나가요, 당신 늦겠어요. 아버님, 오늘은 정신이 더 없으신가 봐요.’

정신이 더 없기는, 내가 이래 뵈도 새벽이면 좇 대가리가 뻑뻑 서는데, 정신이 없기는…하긴, 가끔 정신이 오락가락 하긴 하지, 제정신 일 때가 좀 드물어서 그렇지…에미는 오늘도 내 가슴팍에 턱받개를 해 놓고 줄창 밥숟가락을 쳐 넣고만 있다. 어째서 내 마음과 달리 다른 말과 행동이 나오는지는 몰라도 식구들은 나를 벌레 보듯이 하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쌍년아! 니가 나 죽일려고 이렇게 밥 멕이고 있지? 육시럴 년!’

나는 밥을 먹고 있으면서 가득찬 포만감에 또다시 마음에도 없는 욕을 에미 에게 해대고 있다. 오래 전, 할망구가 세상을 뜨고, 한동안 멀쩡하던 내 머릿속은 이제 뒤죽박죽 아무렇게나 이리 쏠리고 저리 쏠려서 행동과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을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안다. 그러나, 어쩌랴? 눈깔 뒤로 조져 앉아서 나의 틀어지는 어투와 행동을 볼 짝 시면, 도저히 내가 나 같지 않음으로 세상 살기 싫어지는 것이 하루에도 수 백번 인데…나도 내 자신을 믿지 못할 지경이다. 분명히 배가 가득 찼음에도 나는 허겁지겁 밥 않차려 준다고 실성한 놈처럼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화장실이 저만치 인데, 그예 자리에 앉아서 볼일을 보고 그것도 모자라 흙벽에 진흙 쳐 바르듯이 똥 죽을 바닥에 만장한 채로 천천히 쳐 바르면서 무슨 예술작품 처럼 감상하고 앉아있는 나 자신을 생각할 때면 스스로 오금이 재려 세상 하직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이다.

언제 부턴가는 오래 전에 죽은 할망구가 가끔씩 나타나곤 해서 등골이 서늘한 적이 많다. 대번에 그 욕지기는 할망구의 얼굴로 퍼부어지고 머리 끄댕이를 붙들고 한판 거시게 쌈박질을 하고 나면 내 손아귀에 남은 머리털은 허연 할망구의 것이 아니고 에미의 시커먼 머리털이 대부분 이었다. 가끔, 아주 가끔 제정신으로 돌아와 에미 에게 잘못했다고 싹싹 빌 적이 있어도 그때 뿐, 또다시 나는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에미와 식구들을 못 알아보고 욕지거리에 망발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내 눈으로 비추어지는 모습들에서 내 정신이 완전히 맛이 간 것은 아닌 것을 때때로 느끼곤 하지만…. 아들놈이 집을 빠져 나가고 나만 남겨지고 나면 나는 멍하니 아파트의 베란다에 나와 앉아서 밖을 내다 보면서 시도 때도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서 욕을 퍼붓는다.

베란다 창살 사이로 머리를 집어 넣었다가 조질나게 빠지지 않던 내 대갈통으로 인해서 이제는 감옥보다 더한 촘촘한 창살로 치고, 바깥에서 조차 안을 들여다 보기 힘들 정도로 막아버려 언젠가는 그 쇠창살을 맨 손가락으로 걷어 내려다가 손톱 밑이 훌렁 까진 적도 있었으니까. 내가 점심때 까지 넋을 놓고 베란다를 향해 앉아 있으면 의례 집에는 손님들이 들어온다. 언뜻 보면 돌아가신 삼촌 모습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오래 전에 냇가에서 멱을 감다가 죽은 불알 친구 덕팔이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에미는 상관하질 않고, 베란다를 보며, 하릴 없이 기대고 앉아 있는 내 앞에 과자 봉지를 한아름 안기고는 손님과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 손님들은 나에게 아는 체를 한다.

‘누님, 저 영감탱이 괜찮수? 매번 오지만 서도 이거 원, 떨떠름 해서리…’

‘괜찮아, 내가 씹질 하는지 뭐 하는지 당췌 정신도 없어. 과자나 쳐먹고 있으라지 뭐.’

에미는 내가 항상 정신이 오락가락 할 때를 그리도 잘 아는지, 과자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면 여지없이 손님을 불러 들였다. 나는 그들의 하는 행동을 보면서도 무얼 하는지 잘 알아 채지를 못했다. 입가에 질질 흘러내리는 과자의 단물과 침이 온 턱받개를 적시고 있어도 에미는 무슨 일이 바쁜지 갈아 줄 줄을 몰랐다.

‘억,어, 억..으으…좀 쎄게 박아 봐. 힘이 그것 밖에 안 되서야. 저것 좀 봐라.’

‘윽윽… 누님, 저 영감, 나이가 도대체 며신데, 저렇게 바지가 뚫어지게 좇 대가리를 세우고 있대요? 혹시 우리가 하는 거 알아차리고 있는 거 아니우?’

나는 그럴 때면 언제나 바지 속에 기어 들어 온 쥐잡기 놀음에 정신이 없다. 고놈의 쥐새끼가 버르장머리 없이 고개를 치켜들고 바지춤에서 노니는 꼬락서니라니! 나는 바지를 열고, 그 옛날, 어릴 적 벼루지 새끼를 쥐어 틀듯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있는 쥐새끼의 멍청한 귀퉁백이를 흠씬 꼬집으면서 쥐어 흔들면, 고만 내 사타구니를 물어 재끼는 것도 모지라서 먹은 것을 죄다 토해 놓고 널부러지기 십상이었다.

‘알긴 뭘 알아, 보 지 좀 쎄게 빨아 봐. 노는 보 지 좀 쑤셔 달라고 불렀더니만 덜렁거리기만 했지, 영 힘을 못 쓰네.’

‘아니 보 지가 째져서 피까지 내면서 도대체 어디까지 쑤셔요? 똥꾸멍도 한번 쑤셔 주리까?’

‘오냐, 너 말 한 번 잘했다. 내 똥꾸녕 한번 쑤셔봐. 내 진한 된장 맛 한번 보자꾸나.’

‘하이고 누님은 이래서 좋다니깐. 자 이제, 가요!’

‘억,억, 그래 이 맛이야, 니 불퉁 거리는 좇은 똥꾸녕 으로 받아먹어도 맛이 기가 막혀. 어서, 그래, 윽윽, 쑤셔, 손가락은 두었다 뭐해? 보 지 구녕이 비었 잖아? 거기도, 그렇지, 그렇게….으윽, 억억억.’

나는 또다시 쥐잡기 놀음에 지쳐 베란다 밖을 내다 보고 있다. 햇살에 눈이 부실 것도 같지만 창 밖에서 내게 오라며 손짓을 하고 있는 할망구는 촘촘한 창살 덕에 들어 오지도 못하고 저렇게 허공에서 손짓만이 여적이다. 방안에서 솟구치는 비명에 나는 고개를 돌아보니, 동네 서낭당에서 배꼽 맞추기에 여념이 없는 방앗간 집 추자댁과 이장님이 눈에 들어 온다. 모두 저 세상에 갔을 법한 사람들인데 또 무슨 할 일이 남았는지, 또 서낭당 구섞 에서 저 짓거리에 날 새는 줄 모르고 있다. 나는 슬며시 기어가 그들 앞에 쪼그려 앉아 구경을 하고….

‘이장님, 그렇게 응댕이 붙들고 소리 질르면 좋아유?’

‘에이, 재수 없게 시리, 영감탱이 저리 가라니깐!’

이장님이 내가 서낭당에서 훔쳐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는가 보다. 그에 더하여 벌거벗고 그 허연 응댕이를 이장님의 아랫도리에 퍽퍽 밀어 대고 있는 추자댁도 한마디 거든다.

‘썅 놈의 영감탱이, 내가 못 산다니깐…억억, 똥꾸녕에 불나 죽겠는데.. 왜 옆에 앉아서 지랄이야, 지랄은? 억억억….’

나는 두 사람의 서슬에 눌려 베란다로 다시 가 앉는다.

‘할멈, 거기 있지 말고, 여 들어와 앉지?’

아직까지 손을 흔들고 있는 할멈에게 소리를 쳐 봐도 할멈은 창 밖에서 손짓만 할 뿐, 들어올 기미가 없다. 다시 또 밀려드는 허기진 느낌, 눈 앞의 과자에 온통 벌레가 득시글 하다.

‘누님, 나 밥, 밥 좀 줘, 과자에 벌레가 가득 하당게.’

나는 돌아서서 누님에게 밥을 달라고 칭얼댔다.

‘그래, 조금만 참아라.. 윽윽, 윽윽, 내 보 지 불 좀 끄고 얼릉 밥 차려 줄팅게.’

언제나 그랬지만 어렸을 적,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둘만 살던 누님을 찾는 사람들은 부엌에서 누님에게 보리쌀 서너줌을 갖고 와서는 무슨 짓인지 정지깐을 온통 덜그럭 거리면서도 뭔 짓을 하고는 돌아갔으니깐. 그러고 나면 누님은 보기 좋게 먹음직 스런 보리 밥과 풋고추, 된장을 한상 차려 가지고 나와 밥을 먹곤 했다. 나는 그 밥상을 기둘리 기로 했다. 누님은 눈깔을 휘번덕 하니 까 재끼면서 온 몸을 부르르 흔들기까지 한다. 아마도 동네에 지천으로 번졌다던 마마님에게 휘 잡혔던가 보다. 그래도 누님은 밥상을 차려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윽윽, 그래 씨발, 쑤셔라 쑤셔, 아윽, 똥꾸녕 찢어지겠네. 억억, 보 지도 박아 봐. 보 지가 심심하니 가슴팩이 다 허하다. 어서 냉큼 쑤셔. 억억억…윽..윽…’

‘하이구, 보 지나 똥꾸녕 이나 하나같이 끝내주는 구만, 아무래도 한 좇만 갖고 되겠수?, 좇대가리도 여럿은 있어야 누님 직성에 차지, 억억,억,, 아이구 보 지 놀려 놨드니 더 죄네 그랴, 어이구, 이 씨발년의 좇보 지…. 어구구,어구구….’

기어이 엄니는 바닥에 널부러 져서 숨을 헐떡이신다. 저러다 세상을 뜨셨는데, 워쩐 일로 이렇게 오셨디야? 누님이 밥 차려주는 꼬락서니가 못내 미덥지 못하셨던가 보다. 아니나 다를까 엄니는 이내 숨이 잦아 들더니 말이 없다. 밥 먹기는 글렀네. 나는 또다시 베란다로 슬그머니 기어갔다. 창 밖의 할멈도 어디 가고 없다. 아마도 내가 이리 배가 고프니 손 흔드는 것에 지쳐 끼니라도 떼우러 갔는 갑다. 나의 하루는 언제 나 이렇게 온갖 사람들이 들락 이면서 바쁘게 흘러만 간다. 가끔 에미가 내 앞에 와서 헝클어진 머리를 빗겨 줄 때면 나는 언제나 제정신으로 돌아 온다.

‘에미야, 아범은 회사 나간 겨?’

‘네.’

에미가 손을 놓고 한참을 그대로 있는다.

‘…….성진이 등록금이 내일 모레라고 혔는디, 이 놈의 할망구는 소 판돈을 워디다 둔겨?’

나는 멀쩡하다가 밥상을 차려와 턱받개를 해주는 할멈에게 다시 버럭 소리를 쳐 댄다. 그러면 할망구는 웃기만 할 뿐, 밥만 먹으라고 숟가락을 디밀고….밤이 되면 언제나 그렇지만, 베란다에서 보이는 경치가 사뭇 삼삼하다. 멀리 동네 언덕에서는 장마가 가까웠는데도 불구하고 한식날 처럼 쥐불 놀이가 한창이었고, 들리는 소리를 보아하니 김초시댁 막내가 저수지에 빠져죽은 모냥 으로 천도굿거리가 가득하게 귓전을 울렸다. 물에 가라 앉아 내가 그렇게도 이름을 불러도 나오질 않던 그 눔은 며칠이 지나서야 심통 맞게 퉁퉁 불은 얼굴로 물가에서 낮잠을 퍼질리고 자고 있었는데…저녁이 되면 가끔 아버님께서 매맞은 얼굴로 들어오시는 것에 주눅이 들 곤 했다. 얼굴이 벌겋게 되어서 입에서는 술냄새가 푹푹 풍기는 폼새가 아마도 그 쌈박질 끝에, 농약에 술을 타 드셨는갑다. 그 농약은 한번 이면 되弧? 워치코롬 때만 되면 드신당가?

‘아버님,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제가 못 살겠어요. 에미도 이제 지칠 대로 지쳤다구요.’

아버님은 술에 취해서 고래고래 고함을 치시더니만 그예 자리에 누워 해롱대신다. 엄니도 많이 지쳤다고 하는 말에 나는 화가 버럭 났다. 언제나 치마춤을 풀러 대며 뭔 일이 바쁜지 온 동네를 싸질르고 다니던 엄니와 같이 술을 거나하게 먹고, 이눔 저눔 붙어먹어 보지가 거덜이 났네 뭐네 하며, 쌈박질에 정신을 놓던 아버님 이셨는데… 엄니는 바쁜 게 아녔는디…엄니도 그 옆에 누워 얼굴이 벌겋게 되어 숨을 놓은 걸 보니 농약이 나쁘긴 되게 나쁜가 보다. 그러나, 요즈음도 아침이 되면 아버님은 세상 몰랐다는 듯이 다시 논에 나가시고, 엄니는 또다시 손님 맞느라 치마춤이 바빴다. 그게 내 생활 이었다. 잠을 잘 때면 언제나 방안에는 할멈이 옆에 와서 자리끼를 봐 주고, 날이 새도록 말 벗을 해 준다.

‘오늘은 뭐하고 노셨슈?’

‘뭐 어제랑 같지 뭐.’

‘오늘도 쥐 잡고 노셨슈?’

‘고놈의 쥐새끼 덜은 사람 손을 타는 가벼, 그리 싸돌아 댕기는지….’

‘냅둬유!. 지풀에 지칠 거구만유. 어찌 마실 가자고 그리 손짓을 해 댕기는 데도 꿈쩍도 않으신데요? 꽃구경, 좋은 시절 이잖여유?’

‘논에 물도 대야 허구, 피도 뽑아야제, 그럴 틈이 워딨어?’

할멈은 밤이면 외로운 나에게 스며들어 그리도 많은 얘기들을 해 준다. 벌컥벌컥 문이 열리며, 시끄럽다는 소리를 쳐대는 에미가 가끔 성가시기는 해도 젊은 사람들이라 늙은이 말벗 해주기 성가셔서 그런 가 부다 하고 신경을 끄고 산지 오래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나면 날이 밝기가 무섭게 집안은 에미만 남고 조용해 진다. 게으른 나의 버릇을 아는지, 대야에 물까지 떠 와서는 내 얼굴을 쑤세미 문질르듯이 벅벅 문대기면서 세수를 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옷까정 홀랑 벗겨서는 샅까지 들추어 내면서 물질에, 수건 질에 정신이 없다.

‘아후, 똥냄새. 이렇게 지지래를 해 놓으시고도 어떻게 주무시는지 원.’

냄새는 무슨 냄새, 좋기만 하구만. 나는 시골에 살지 않아서 그렇지 퇴비냄새를 그렇게 역겨워 하는 에미를 이해하려고 무진장 애를 쓰기는 한다. 에미는 또다시 영락없이 애비가 나가기 무섭게 손님 맞이할 채비를 한다. 내 앞에는 또다시 과자 봉지가 한 가득 놓이고, 나는 베란다 곁에서 또다시 나를 향해 꽃구경을 가자며 손을 흔드는 할멈을 진저리 나게 쳐다보면서…오늘은 손님이 꽤나 많았다. 남정네가 셋씩이나 들어와 과자 먹는 데에 정신이 없는 나를 내려다 보며, 한마디씩 하는데도 나는 별 관심이 없다.

‘누님, 정말 괜찮은 거유? 겉으로 봐서는 멀쩡한데?’

‘똥싸 놓고, 등어리가 벌겋게 부어 올랐는데도 모르고 자는 늙은이야, 어서 이리 와서 놀자니깐 두루?’

‘내 오늘, 누님 뻑 가게 친구들 데리고 왔수. 한 번 볼라우?’

오늘 온 놈들도 죄다 쥐잡기 놀음을 할 모냥인 갑다. 바지춤을 까 내리는데 어느 놈 할 것 없이 왠 쥐새끼 덜은 그렇게 큼지막한 놈들을 달고 왔는지…보기에도 끔찍스럽다.

‘야, 정말 끝내주네. 이런 좇대가리는 처음 본다.’

‘특별히 누님 생각해서 해바라기도 그냥 죽이는 크기로 해댄 놈들만 골라왔지 뭐. 오늘 누님 임자 만난 줄 아쇼! 얘들아, 누님 보 지랑 젖퉁이 좀 허벌창 나게 빨아 드려라, 얼릉?’

그 놈들은 달고 온 쥐새끼 잡을 생각은 하질 않고, 에미 몸에 들러 붙어 이빨로 벼루지 새끼를 잡느라 정신이 없는 것 처럼 보였다. 나는 그 놈들에게 보여 주려는 심산으로 내 바지춤에서 놀고 있는 쥐새끼 목을 붙들고 흠씬 두들겨 패면서 소리쳤다.

‘요놈의 쥐새끼, 어디라고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며, 지랄이여 지랄은?’

‘누님, 저것 좀 봐. 저 영감탱이 지 좇대가리 쥐고서 지랄 발광을 하는데? 와 정말 죽인다!’

‘딴 짓거리 하지들 말고, 좇이나, 웁웁…’

한 놈이 쥐새끼 한 마리를 에미 입에 쳐 넣었다. 아니 그 더러운 쥐새끼를 아가리에 쳐넣고 뭘 어쩌자는 건지? 나는 하도 기가 막혀 붙들고 있는 내 바지춤의 쥐새끼를 내려 놓고는 창밖을 살폈다. 그런데, 창 밖에서 설렁 설렁 손을 흔들고 있어야 할 할멈이 보이질 않았다. 이 놈의 할망구가 어디를 갔어?

‘웁웁, 영감, 나 여수!’

나는 흠칫 놀라서 돌아다 보았다. 할멈이 그 놈팽이 들에 둘러싸여 지분거리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아니, 저 할망구가? 또 끌려간 겨?…’

할멈이 입을 한 가득 벌리고 그 놈의 쥐새끼를 쪽쪽 빨면서 머리 끄댕이를 연신 휘돌리고 있었다. 나는 숨이 턱에 까지 차오르고, 눈이 뒤집혀 져서 어쩔 줄을 몰랐고, 내 바지춤의 쥐새끼도 덩달아 지랄에 난장을 쳐대는데, 발도 꼼짝 할 수가 없었다.

‘웁웁, 씨발 놈들아, 손장난 그만하고, 그 잘난 좇으로 좀 쑤셔 봐, 얼릉, 이 누님 보 지 좀 오늘 찢어져 보자꾸나, 웁웁’

할멈은 쥐새끼를 물고서도 연신 욕지거리를 해댄다. 무슨 말이 그렇게도 많은지? 놈팽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할멈의 아랫도리 에서 막걸리를 들이키는지 껄쩍대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지가 잡아 들여야 할 고놈의 쥐새끼 마저도 할멈의 아랫도리에 감추기에 급급하다. 할멈은 손아귀에서 쥐새끼를 놓질 못하고 호박엿 핥듯이 왠 혀가 그리도 긴지, 마을 뒷산 개롱지 바위 옆의 백송나무에 목을 맨 엄가네 며느리 보다도 더 길게 혀를 내놓고 그 놈의 쥐새끼를 핥고 앉았다. 할멈은 엎드려서 개새끼 마냥 한 놈팽이의 몸 위에 올라가 팔이 붙들린 채로 있고, 한 놈은 할멈의 입안에 쥐새끼를 빨리고 있었으며, 또 한 놈은 할멈의 똥꾸녕에 다른 쥐새끼를 감추느라 허릿짓이 정신이 없었다.

‘웁웁, 그래, 니 말대로 보 지며, 똥꾸녕이며, 아가리며, 웁웁, 이러게 흠씬 쑤셔 주니, 웁웁, 이제야 살 맛 난다. 그래, 진작에, 웁웁 이렇게 떼사리로 와서 박지 뭣하러 한 놈씩, 한 놈씩 감질 나게 와서 보 지 속에 깨작대고 갔는지 원, 웁웁…. 어이 시원하다. 보 지 벌창나게 더 쑤셔, 쑤셔…..’

‘와, 누님, 죽인다. 이렇게 박고 있는데 지칠 줄을 모르네, 하여간 누님 보 지는 정말 씹짱이라니깐 두루.’

나는 옆에 앉아서 끓어 오르는 분을 참을 길이 없어서 냅다 발길질을 하면서 놈팽이 들에게 달겨 들었다.

‘야, 이 호로 새끼 들아, 니들은 에미, 애비도 없냐? 한번 끌어가서 흠신 벌창을 내 놓았으면 됐지, 사람 길들이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여, 시방, 엉? 느그들 죽어볼텨?

‘누님 이 영감탱이 미쳤나봐, 아이구, 내가 그래서 오는 게 아니었는데, 미친 놈 옆에 앉혀놓고 씹질은…. 내가 정신이 나갔지. 어이그, 야, 다들 가자.’

‘느그들 어딜 가? 우리 핏덩어리 성진이 나두고 마누라 벌창 내 놨으면 죄값을 받아야 되잖여, 이 육시럴 놈들아, 게 서지 못혀?’

나는 서슬이 퍼렇게 소리를 쳐대자, 그 놈들은 혼쭐이 났는지 벌써 줄행랑을 치고…자리에 남겨져 벌거벗은 채로 울고 있는 할멈은 정신을 놓았는지 일어날 줄을 몰랐다. 나는 옷가지를 덮어주면서 할멈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할멈, 내가 잘 못 혔어. 그래도 같이 꽃구경 가는 거인디 말여.’

‘아녀요, 아버님, 제가 발 못 했어요.’

‘자네가 잘 못한 게 뭐 있다고, 다 내 잘 못이여, 우리 핏덩이 성진이가 불쌍허지, 나야 뭐…’

‘어머님이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대체? 오늘 처럼 이런 일 없으셨잖아요?’

‘할멈, 죽었으면 죽은 대로 그냥 갈 것이지, 왜 또 돌아와서 이런 험한 꼴을 당하나 글씨.’

나는 울고 있는 할멈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한숨을 놓았다. 다시 치미는 허기…

‘누나, 나, 밥, 밥 좀 줘.’

나는 또 그예 밥타령 이다. 누나는 밥을 주고 나서는 머리가 헝클어 졌다면서 머리를 다시 매만져 주는데, 에미가 나에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평소보다 머리를 오래도록 만져 준다.

‘아버님, 이제 속이 든든 하세요?’

‘응.’

‘그런데요, 어머님은 어떻게 돌아 가셨어요? 성진씨가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 하던데…’

‘그건 알아서 뭐 혀게?’

‘그냥 궁금 해서요.’

‘할멈이 성진이를 낳고 다음 해 인가? 읍내에서 큰 장이 열리고, 동구 밖 마름터 에서는 풍악 놀이가 한 참이었지. 나는 논 일에 바빠 갈 수가 없었지만, 할멈은 꽃구경에다, 곡마단까지 온다는 소문에, 떨치고 혼자서 읍내에 나간 거여. 밤이 늦도록 돌아 오질 않아서 성진이를 들쳐 업고 그 밤에 읍내에 갔었는데도 할망구를 찾을 수가 없었어. 다음 날, 동네 사람들이 가기 무섭다고 하는 뒷 산 개롱지 바위 옆의 백송 나무에 목을 맨 할멈을 찾았지 뭐냐, 엄가네 며느리며, 수많은 사람들이 목을 멘 그곳을 사람들은 설설 기어서 다녔거든. 사람들 말로는 곡마단 패거리들 중에서 여남은 놈들이 할멈을 돌려 대고, 할멈은 그 후에 목을 맨 것 같다고 했지만, 끝내 그 놈들을 잡을 수 없었지. 쳐 죽일 놈들. 참말로 꽃다운 할멈 이었는디…’

에미의 손길이 멈추고, 나는 한동안 부른 뱃살이 찢어질 듯 하여 한 숨을 내 쉬었다. 돌아다 보니 할멈이 울고 있었다.

‘할멈, 또 왔어?’

‘지가 잘 못 했시유. 꽃구경이 좋아도 가는 게 아니었는디…

‘괜찮여, 무심한 내 잘못이 더 킁게….’

그날 로부터 어쩐 일인지, 손님들은 발길을 뚝 끊었고, 베란다에서 해가 질 때까지 눈이 빠져라 쳐다 봐도 꽃구경을 가자고 손을 흔드는 할멈을 볼 수는 없었다. 그 대신, 밤이고 낮이고 눈만 뜨면 내 머리결을 쓰다듬으며, 할멈보다 더 나를 아껴주고, 보듬어 주고, 살갑게 빗질을 해주며 옛날 얘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에미의 야리 야리한 얼굴과 웃음 섞인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끝-

P.S.:치매는 가족의 사랑만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원초적 본능

오 양(吳孃)의 비디오 사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대 최고의 미인탈렌트였던 미스코리아 출신의 오 모 양이 자신의 매니져였던 남자와 정사를 벌이는 장면의 비디오가 인터넷에 떴던 사건이다. 당시 전 국민을 이른바 관음증 환자로 만들었던 대사건이었다,
관음증이란 타인의 성애장면이나 성교장면을 몰래 훔쳐보며 흥분을 하는 이상증세라고 사전에 풀이되어 있다. 이상증세라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호기심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설이 길었다. 나는 스스로 관음주의자(Voyeurer)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씹을 무지 좋아하지만 솔직히 내가 씹을 하는 것보다 남이 씹하는 것을 몰래 훔쳐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씹이 아니더라도 키스를 하거나 애무 특히 서로의 자지와 보 지를 애무하거나 빠는 장면을 볼 수 있으면 대박이라고 생각한다. 둘이 지랄하는 장면이 아니고 그냥 여자의 보 지만 봐도 일당은 건진 것이 된다.

국민학교 4학년 무렵 나는 이미 여자의 보 지에 대해 무한한 경이와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새벽 좆이 서면 엎드린 채 요에 자지를 비며 정액 없는 드라이 사정으로 오르가즘을 맛보던 깜찍한 아이였다.
당시 한 방에서 남녀 구별 없이 한 가족 4, 5명이 함께 자는 것은 통상의 풍경이었는데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지어야했던 큰누나는 일어나자마자 윗목에 있는 요강에 앉아 오줌을 누었다. 그 작은 공간에서 내가 살짝 눈을 뜨면 오줌을 토해내는 누나의 열린 보 지가 코앞에 전개되어 있었다. 그 신비하고 징그럽고 귀엽고 깜찍한 내 사랑 보 지를 보기 위해 나는 그 어린 시절 새벽잠을 설치고 자는 체 하며 보 지가 열리기를 기다렸었다. 나이를 먹은 지금에도 오줌줄기를 쏟아내는 여자의 보 지를 보고 그리도 흥분하는 연유가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남자가 여자의 보 지를 보고 싶어하는 게 남자들의 일방적이고 변태적인 욕구만은 아닌 듯 싶다. 자기의 보 지를 남자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여자도 있다는 걸 알게되었던 것이다.

남녀 형제가 한 방을 쓰는 게 불편한 건 누이들 쪽이었다. 그래서 내가 중학생이 되자 나는 같은 동네에 사는 이모 님 댁으로 쫓겨가게 되었다. 추방이지만 나에겐 천국으로 입성한 것이었다.
이모님 댁은 옛날 일본식 가옥으로 방이 여덟 개가 넘었고 정원도 꽤 넓어 내 눈에는 대궐이었다. 그 넓은 집에 홀로되신 이모와 마흔 전후의 이종형님 내외 그리고 두 조카딸 등 다섯이 살고 있었으나 형님이 지방에서 교편을 잡고 있어 한 달에 한 두 번만 오시는지라 남자라야 내가 유일했다.
겨울방학을 끝내고 2학년으로 올라간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나에게 섹스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되었다. 당시 나에게는 실물로 보긴 보았지만 가랑이 저쪽의 그림자 속에 묻혀 보이던 누나 보 지를 그리며 딸을 치는 게 전부였었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형수와 그녀 또래의 동네 아줌마들이 우리 집에 모여 라디오에서 나오는 연속극을 들으며 수다를 떠는 속에 내가 끼어 있었다. 그런데 내 맞은 편에 앉아 있던 형수님이 다리를 바꾸는 순간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고쟁이가 안 보이는 것은 물론 다리 사이의 사타구니 안쪽이 거무티티하게 보였던 것이다. 나는 눈을 비비면서 딴청을 부렸다. 그런데 또 잠시 후 입으로는 계속 수다를 떨면서 형수는 아까보다 더 느리게 다리를 바꾸며 가랑이를 내 쪽으로 벌려준 것이다. 시커먼 보 지털이 보였고 계곡 끝에 찢어진 살점들이 분명하게 보였다. 나는 수다에 동참해 정신이 없는 다른 여편네들을 훔칫 보며 숨을 들이켰다. 숨이 탁 막혔기 때문이다. 맨 오른쪽 구석에 앉아있는 나만 볼 수 있도록 각도를 잡으면서 형수님이 자기 보 지를 열어주는 것 같았다. 자지가 발작적으로 용트림을 하며 발기되었다. 형수가 힐끗 보았다는 느낌을 받으며 두 손으로 꺼떡대는 좆을 꽉 눌렀다.

그전까지는 단 한번도 형수님을 여자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워낙 나이 차가 많기도 했으려니와 하는 행동도 꼭 큰 엄마가 하듯이 나를 어린애 취급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꼬맹이 도련님에게 자기 보 지를 열어 보였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무튼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꿈에도 그리던 보 지를 보았으니 그 날 밤 정말로 맛있게 플레이(당시엔 수음을 핸드플레이라고 했음)를 쳤다. 치고 치고 또 치고 자지가 아플 때까지 치다가 떨어졌다.

형수님의 노출쇼는 그 후에도 간간히 이어졌다. 희한한 것은 단둘이 있을 때는 그러지를 않다가 몇 명이 함께 있을 때에만 나의 맞은 편에 자릴 해 보 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녀의 보 지를 보며 흥분에 떨면서도 나는 그녀도 내게 자기 보 지를 열어보이며 흥분해하고 있음을 감지하였다. 형님이 늘 집을 비우니 생과부로 지내며 그나마 그 집에 있는 유일한 남자인 나를 상대로 섹스플레이를 하는 모양이었다. 사유야 어떻든 나를 남자 대접해준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말이다.

그일 있은 후 내게 형수님이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큰 가슴도 그렇고 쫙 벌어진 엉덩이에도 눈이 갔으며 그것들이 보 지만큼 내 좆을 세우는데 일조를 하였다. 내 앞에서 엎드려 걸레질을 할 때면 펑퍼짐한 엉덩이가 실룩이며 흔들리는데 그 가운데에 보 지가 입을 벌리고 있으려니 생각하면 좆이 꼴려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어느 주말이었다고 생각된다. 형님이 오셔야 하는데 무슨 감사를 받는다고 못 오신다며 당신의 내복 등을 가져다 달랜 모양이다. 형수님이 가느냐 어머님이 가느냐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다가 큰 딸애와 함께 할머니가 떠났다.

그 날 저녁을 먹고 내방에서 벌렁누어 자지를 주무르고 있는데 막내가 와서 자기 엄마가 벽장정리를 하는데 나를 부른단다. 일식인 그집은 안방에 넓은 다락이 있었는데 벽문을 열고 서너 계단을 올라야 했다. 그런데 벽문을 열고 오르려 위를 보는데 아 글쎄 형수가 가랑이를 벌린 채 쪼그리고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빤스를 입지 않고 말이다. 넓고 두툼한 보 지가 쫙 벌어진 채 내 얼굴을 내려다 보는 것이다. 자나깨나 보 지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중학교 2학년 악동 앞에 탱탱히 영근 마흔살 보 지가 아가리를 쫙 벌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보 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시뻘건 살점과 검은 털 그리고 물기가 있는 보 지구멍을 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집어 달라는 물건 몇 개를 집어주고 나는 내 방으로 뛰어들어와 바지를 훌러덩 벗고 자지를 흔들었다. 보통 때보다 크기가 두 배 이상 발기가 된 듯 싶었다. 너무 꼴려 눈을 감고 아 형수 보 지 먹고 싶다. 아 씨팔년의 보 지에 박고 싶다. 아 아 씹 씹 등을 마구 외치며 좆을 까며 흔들었다. 엉덩이를 위로 치켜올리며 흔드는데 누군가의 손이 내 손을 치우고 내 자지를 쥐는 것 같았다. 눈을 살며시 떠보니 형수가 내 자지를 쥐고 흔들고 있었다. 쪼그려 앉은 채 다리를 벌려 아까 그 자세 그대로였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보 지에 손을 댔다. 뜨겁고 미끈하고 꺼칠하고 그랬다. 그녀는 자기 보 지를 만지고 있는 내 손을 자기 손으로 눌러 비비며 내 좆을 마구 흔들었다. 너무 흥분했던 나는 채 1분도 되기 전에 좆물을 토해냈고 그녀도 내 손등을 자기 보 지에 마구 눌러 비비며 몸을 부르르 떨며 자빠졌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날 이후 그녀는 자주 내 자지를 만져주었고 나에게 자기 보 지와 몸을 만지게 해주었다. 그러나 내 좆을 자기 보 지에 박지는 못하게 했다. 콘돔이 없었던 그 시절 어린 중학생의 좆에 의해 애를 밸까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내가 너무 박고 싶어하니까 주기법으로 완전히 안전한 날이 되면 박게 해 주겠다고 했고 얼마 후 나를 눕혀놓고 정말로 자기 보 지에 내 좆을 박으며 깔고 앉아 주었다.
그 첫 씹의 감동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좆에 느껴지던 뜨겁고 미끄덩거리고 간지럽고 땡겨지던 그 기분. 내 좆을 박고 흔들 때 그 육중한 여인의 젖과 배가 출렁대던 영상 그리고 첫 번째 좆물을 구멍 깊숙이 쏟으며 몸서리를 치던 그 감동. 내가 싸고 난 후 내 몸을 부등켜 안고 자기의 보 지를 내 둔덕에 비비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몸을 경직시키던 일. 등등

형수는 사실 요새 기준으로 볼 때 섹시함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작은 키에 시골티가 물씬 나는 인상에 아줌마 상표의 퉁퉁한 몸매. 그 어느 구석을 봐도 십대의 미성년자 시동생에게 자기 보 지를 보여줄 여자처럼 보이질 않는다. 생각해 보면 당시 내가 나이에 비해 175센치나 되는 큰 키에 곱상하게 생긴 외모 때문에 나에게 영계로서의 구미를 느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가 내게 보 지를 보여준 거나 내가 여자의 보 지를 보기 위해 그 어린 시절에도 잠을 설치며 새벽에 누이가 오줌 누기를 기다린 게 다 원초적 본능(원초적 노출증과 원초적 관음증)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재미있는 기억 하나. 당시 여자들은 집에서 일할 때 치마 속에 고쟁이를 입었다. 팬티 위에 그냥 치마를 입는다는 건 대단히 불경한 일이었다. 그녀는 처음에 내게 보 지를 보여주려고 고쟁이를 벗곤 하였으나 내가 그러지 말고 고쟁이의 가랑이 부분을 가위로 잘라내라고 했더니 팬티는 아예 안 입고 고쟁이를 잘라내어 다리만 벌리면 보 지가 내게 보이도록 했고 단둘이 있을 때 몇 번인가는 나를 눕혀놓고 고쟁이를 입은 채 내 좆에 자기 보 지를 끼워 박기도 했다. 그럴 땐 평소보다 훨씬 흥분으로 몸을 떨곤 하였다.
그녀는 내가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까지 1 년여 동안 참으로 많이 나에게 자기 보지를 보여주고 내 좆을 박게 해 주었다. 정말로 행복한 사춘기였다.

훔쳐보기 애호가 즉 VOYEURER 로서의 나에게 사상최대의 대박을 건지는 행운이 십오륙년 전에 도래했었다.
강남에 있는 구청사거리 일각에 당시 이름께나 날리던 30대 여가수가 하는 술집이 있었다. 룸이 세 개에 홀이 꽤 넓은 편이었다. 토요일 밤이었나 싶다. 당시에는 음주운전 단속이 심하지 않은 터라 강북에서 1차 2차 끝나고 강남에 건너와 집에 들어가기 전에 3차를 하던 시기라 알딸딸한 취중에 들렀는데 홀에 손님이 없었다. 약간 안면이 있는 여종업원이 자꾸 방으로 들어가자 하여 둘이 앉아 있기는 택 없이 넓은 룸으로 들어가 입으로 구라를 풀고 손으론 빨래를 해가며 술을 마시다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엘 갔다. 취기가 느껴졌다. 그 탓인가 일을 보고 방으로 오다가 번지를 잘 못 찾아 옆방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백만불짜리 생쑈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남자가 바지를 발목까지 내리고 문 쪽을 향해 있고 여자가 아랫도리를 다 벗고 역시 문 쪽을 향한 채 놈의 좆을 보 지에 박고 방아를 찧고 있었다. 놈은 년의 브라우스를 위로 올려 두 젖통을 주무르고 있었다. 여자에 가려 놈의 얼굴을 보이지 않았으나 좆방망이를 타고 앉은 년은 순간 나와 눈이 마주 쳤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좆과 씹의 도킹부분을 눈이 시뻘건 채 째려보았다. 좆이 보 지에 박혀 있는 모습은 언제 봐도 죽이는 장면이 아닌가. 그것도 술집의자에 앉아 내가 보는 앞에서 좆방망이를 보 지구멍에 한가득 박아넣고 방아를 찧고 있는 년의 모습은 가히 타이타닉을 능가하는 스펙타클이었다. 나는 순간 잽싸게 바지에서 내 좆을 꺼내 그녀를 향해 흔들다 문을 닫고 내 방으로 왔다.
그 에로틱하고 그로테스크한 씹의 장면은 나의 뇌리에서 근 6 개월 이상 떠나지를 않았다.

나는 지금도 그녀를 관음광(Voyereuer)인 나와 같은 과인 노출광(Exhibitionist)이라고 생각한다.
이쁜 년, 고마운 년. 그 보 지에 행운 있으라.

처녀 진숙이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고 했던가? 그러나 그 말에서 처녀란 결혼을 안 했다는 이야기지 성행위를 한 번도 안 했다는 얘기는 아니리라.
그런데 나는 정말로 단 한 번도 섹스를 못해본 상태에서 임신 진단을 받았으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이 딱 맞을 일이다.
나를 진찰한 여의사는 내게 임신 6 주라고 했다. 내가 남자와 한 번도 관계가 없었다니까 고갤 갸웃하며 다시 자궁 속을 진단하더니 처녀막이 그대로네 하며 난감해 했다.

“삽입은 안 되었어도 남자의 정액이 자궁근처에 쏟아진 적은 있죠?” 그 말에 다시 내가 고개를 젓자 어깨를 으쓱하며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나이 스무 살의 재수생이다. 충청도 어느 작은 시에서 재수학원을 다니기 위해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하며 대학 4학년에 다니는 언니 집으로 온지 6개월이 된다.
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종일 학원에서 강의를 듣고 주말에는 또 하루 종일 사설도서관에서 입시공부를 하는 전형적인 재수생이다. 남들처럼 술 담배는 물론 입에도 안 대고 그 흔한 남자친구 하나 없는 범생이의 전형이다. 그랬다. 적어도 지난달까지는.

지난 달 중순의 어느 화요일이라고 기억된다. 맞다. 수학특강이 1, 2교시에 있는 날이니까 화요일이 맞다. 칼 같이 시간을 지키시던 선생님이 무슨 갑작스런 집안의 일 때문이라며 결강을 했고 아이들은 근처 커피숍 등으로 몰려갔지만 나는 감기기운도 있고 또 전날 잠을 부실하게 자 후딱 집에 가서 눈을 붙였다 나올 양으로 집으로 갔다. 학원에서 집까지는 전철로 네 정거장이라 반시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였다.

우리 집은 주인집과 문도 따로 쓰는 별채라 두 처녀가 살기엔 안성맞춤이었다,
키로 문을 따고 부엌으로 들어서 방 쪽으로 향하는 순간 방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나는 너무 놀라 주저앉을 뻔 했다. 도둑이 든 지 알았다. 그런데 들리는 소리가 놀랍게도 언니의 소리였고 그것은 인기척이 아니라 가파른 신음소리였던 것이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나는 놀란 가슴을 달래며 손잡이 근처의 유리부분을 통해 안을 들여다봤다. 순간 나는 숨이 칵 막혀 죽는 줄 알았다.

언니가 완전히 홀랑 벗은 채 어떤 남자 위에 걸터앉아 방아를 찧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저런 해괴망측한 일이? 언니는 젖을 출렁이며 눈을 지긋이 감은 채 몸부림을 치고 있었고 그녀의 엉덩이가 들썩일 적마다 남자의 말뚝만한 자지의 기둥이 번들거리며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아니 저 년이 미쳤지, 맨날 나더러 서울남자들 조심하라고 침이 마르게 주의를 주더니 아니 저는 남자를 집으로 데려다 저 짓을 해? 아니 그런데 저 남자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누구지? 맞아, 맞아. 누운 채 손을 위로 올려 언니 젖을 주무르며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그 남자는 바로 조 사장이었다.

“진숙이 넌 진짜 색골이야, 너만큼 좆 밝히는 애도 보기 어려울 거야. 내가 열흘이나 빈 동안 딴 좆 박진 않았지?

“날 이렇게 만든 게 누군데. 자기야 말로 색골이지 그 나이에 말야, 자기 이상한 말 하는 게 출장 가서 딴 짓 한거 감출라 그러는 거 아냐?

“시간도 없었다. 맨날 요 보 지 생각에 일도 손에 안 잡혔어”

원 세상에. 조 사장이라면 바로 아버지의 둘도 없는 고향친구다. 나까지 서울로 올려 보내놓고 마음이 안 놓여 서울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절친한 친구인 조 사장에게 우리 집에 가끔씩 들려 두 아이 좀 돌봐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는 한 달에 한 두 번씩 들려 용돈도 주고 언니에게도 책값도 주곤 하던 사람이었다. 나한테는 특히 공부하느냐고 힘이 든다며 먹고 싶은 거 사 먹으라고 용돈을 두둑히 주어 은인처럼 모시는 분이었다.

그런 어른하고 언니가 반말지거리로 상소리를 해가며 씹을 하다니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었다. 저것들이 하는 투로 봐서는 저 지랄을 시작한 게 어제 오늘이 아니 게 분명했다.
이러나저러나 여자의 보지도 제대로 못 본 촌 년이 졸지에 남자의 말뚝만한 자지를 보지에 박은 채 요분질을 하는 생 쇼를 보고 있자니 두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고 두 다리가 후들거리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슬리퍼를 깔고 앉으며 눈은 한 순간도 유리구멍에서 뗄 수가 없었다. 뭔가 물기가 사타구니에서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진숙아 니가 엎드려 봐, 오랜만에 뒤로 한 번 박자”

“알았어, 자기 쌀 때 됐구나”

이것들 잠시 몸을 풀더니 언니 년이 개처럼 엎드리고 조 사장은 그 뒤에서 박는다. 순간 물기에 젖은 채 뻥 뚫린 언니의 보 지와 번들거리며 하늘로 향해 꺼떡거리는 조 사장의 좆 방망이를 코 앞에서 볼 수 있었다. 조 사장이 언니의 엉덩이를 잡고 박아대자 언니의 두 젖이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게 몹시 음탕해 보였다. 젖이 작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자지가 들락날락 할 적마다 보 지속살이 같이 따라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했다. 검으틱틱한 자지와 불그스레한 보 지의 속살이 요상하게 대비가 되었다.
언니의 입에서 아구구구 하는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진숙아 내 좆 맛 좋아?”

“응 좋아, 근데 오늘 왜 그렇게 힘이 세, 비아그라 먹었어, 자기?”

“아냐 준비는 했느느데 안 먹었어. 한참 굶었쟎아, 요 맛있는 보 지를 말야”

“조금 더 깊이 박아봐. 그래 그래 자기 좆이 배를 뚫는 거 같애, 아 느껴져”

“아 나도 자기 보 지가 꼼질 대는 게 느껴져. 죽인다 쌀 거 같애”

“나도 거의 다 왔어. 조금만 참아봐. 내 젖 좀 만져줘”

“아 진숙아 나 싸

“그래 그래 자기야 싸 싸, 괜챦아, 아구구구그그”

둘이 몸부림을 치며 몸을 경직 시키더니 잠시 후 바닥으로 엎어진다. 나는 자리를 빨리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어서려 했으나 다리가 후들거려 바로 일어서질 못했다. 그때 조 사장이 언니 몸에서 일어서며 무언가를 자기 자지에서 벗겨내 휴지에 종이에 싸서 휴지통에 버리는 게 눈에 띄었다.

나는 기듯이 몸을 일으켜 고양이 걸음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눈이 몽롱하고 다리가 후들거려 걸을 수가 없었으나 혹시 그들의 눈에 띌까 겁이 나 동네 골목 끝의 엘지25로 얼른 들어갔다. 우유를 집어 가게 앞 의자에 앉는데 뜨거운 액이 보 지에서 쏟아져 나왔다. 얼른 다리를 모으니 보 지 속이 아렸다. 처음 느끼는 이상한 기분이다. 눈앞에 아지랑이처럼 흐리게 조 사장의 방망이가 어른거렸다. 몸서리를 치며 머리를 흔들었다.

반시간쯤 지났나, 그냥 학원으로 갈까 하다가 이대로는 도저히 수업을 들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둘이 약간 놀라는 기색이었다. 조 사장은 방에 앉아있고 언니는 선 채로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너 웬 일이냐? 아파서 조퇴한 건 아니지?”

“아니 우리 막내 따님 오랜만이네. 나 언니한테 회사일 좀 시킬게 있어서 데려가려고 들렸다”

그들은 호들갑을 떨면서 전혀 아무 일도 없었던 아빠친구와 친구 딸 행세를 하며 같이 나갔다. 언니는 그 와중에도 내게 “학원 빠지지 마라. 한 눈 팔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 하며 주의의 말을 던졌고 조 사장은 “아니다 쉬엄쉬엄 해라” 하며 다른 때보다 조금 많이 용돈을 줬다.

그들이 나가자 나는 문을 잠그고 바닥에 벌렁 누었다. 조금 전 두 남녀가 씹하던 장면을 떠올리며 손을 팬티 속에 넣었다. 손이 보 지에 닿자 찌르르 전기가 몸에 흘렀다. 조 사장의 좆말뚝이 언니 보 지를 쑤셔대던 장면을 연상하며 손으로 보 지를 마구 문질렀다. 손가락 하나를 보 지 속에 넣었다. 손가락 두 개를 넣었다. 세 개를 넣었다.

그러다 아까 조 사장이 자기 자지에서 뭔가 벗겨내 쓰레기통에 넣었던 생각이 났다. 얼른 일어나 쓰레기통을 뒤져 휴지에 쌓인 콘돔(그 이름은 아주 후에 알게 되었다)을 찾아냈다. 물컹한 고무관을 보니 아까 언니를 쑤시던 조 사장의 큰 좆방망이가 떠올려지며 정신 없이 흥분이 되었다.

옷을 홀라당 벗었다. 그리고 거울 앞에 앉아 거울에 비친 내 보 지를 활짝 까고 거길 콘돔으로 마구 비볐다. 조 사장의 좆이 내 보 지를 쑤신다는 생각을 하며 미친 듯이 비볐다. 너무 흥분이 되어 앉아 버틸 수가 없자 벌렁 누어 가랑이를 쫙 벌리고 엉덩이를 위로 치켜들며 보 지를 문질렀다. 무언가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쾌감이 내 몸을 내리쳤다. 전기에 감전된 듯 전신이 짜르르했다. 나도 모르게 악을 쓰며 몸을 떨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오르가즘이었다.

그 날부터 내 일상은 엉망이 되었다. 일주일 내내 조 사장이 언제 집으로 오나 밖에서 서성였다. 집으로는 매주 화요일 아침에 들르는 걸 알아냈고 토요일 날은 오후에 언니가 조 사장 회사근처로 만나러 가는 걸 알아냈다.

화요일 날은 수업이 없어 조 사장이 집으로 오는 것 같았다
화요일 아침이면 일찍 학원 가는 척하고 나왔다가 조 사장이 차를 골목에 세우고 집으로 들어가면 집 앞 혹은 집 뒤로 숨어 들어가 둘이 씹하는 것을 훔쳐보았다.
그들은 마치 수십 년 같이 산 부부인양 능숙하고 음탕하게 씹을 했다. 어떤 땐 69자세(포르노 사이트에서 배운 용어임)로 서로의 자지와 보 지를 빨기도 하고 서서 벽치기를 하기도 하고 식탁에 앉은 채 박기도 하고 박고 나서도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마치 나에게 버라이어티 쇼를 실연하듯 씹을 했다.

그들이 씹하는 걸 코 앞에서 보며 나는 매번 숨이 멎을 만큼 흥분에 떨곤 하였다. 그리곤 그들이 질탕하게 낮 씹을 하고 나가면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홀랑 벗고 조 사장이 던진 콘돔을 찾아 그걸 내 발정한 보 지에 비비며 그와 씹을 하는 상상을 하며 엄청 큰 오르가즘을 맛보곤 했다.

화요일뿐 아니라 보통 날에도 나는 딴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남자를 남자로 보지 않던 내가 남자를 보면 먼저 그의 사타구니에 숨겨진 좆을 떠올리곤 하였다. 남학생도 남자선생도 얼굴보다 그의 자지가 먼저 그려졌다. 아침 만원전철에서 남자가 발기된 자지를 내 엉덩이에 비비면 피하지 않고 자지의 꿈틀거림과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보 지 물을 흘렸다. 몇 번은 전철에서 남자가 내 손을 끌어 자기 자지에 대준 적이 있는데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감격하며 그의 좆을 움켜쥐기도 했다.

학원에서도 강의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시시때때로 머리 속에 성난 남자의 자지가 아른거려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손으로 보 지를 만지며 자위를 하곤 했다. 학원에 같이 다니는 삼수생 오빠의 손에 끌려 비디오방에 가 그의 자지를 빨아보기도 했다. 남자 자지를 처음 빨아 봤지만 언니가 조 사장 좆 빠는 걸 여러 번 봐서 그런지 전혀 낯설지 않았고 느낌도 기가 막히게 좋았다. 그가 하자면 모른 척 씹을 하려 했는데 그가 너무 서두르다 박기 전에 싸버리는 바람에 문전만 더럽히고 씹을 못하고 말았다.

전철에서도 건들여주는 놈이 없고 남자의 좆이 너무 느끼고 싶을 땐 두 가지 영화를 동시 상영하는 변두리 극장을 찾곤하였다. 거기에 가서 뒤에 서 있으면 5분도 되기 전에 남자들이 접근해 온다. 남자가 맘에 안 들면 자릴 옮기고 괜찮다 싶으면 몸을 더듬게 놓아둔다. 거기서는 남자의 발기된 자지를 실컷 만질 수 있어 좋고 또 남자를 손으로 만져 싸게 해주면 슬그머니 꺼져주기 대문에 뒤끝도 좋은 편이다.

그런 생활을 한지 달 포. 멘스가 끊기고 속이 머슥거리는 이상증상이 느껴졌다. 혹시 임신? 아니 박지도 못 했는데…그럴리가. 그러기를 또 며칠. 나는 용기를 내어 산부인과를 찾아 갔던 것이다.

의사 말을 듣고 곰곰 생각해 보니 조 사장이 사용한 콘돔에 묻었던 그의 정액이 내 질 속으로 들어갔음이 분명했다. 정액이 질펀한 콘돔으로 보 지를 비벼댄 게 어디 한 두 번인가;

아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