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31일 월요일

난 여자이고 싶다 - 4부

버드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주위는 온통 하얗다. 버드 나무 가지만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산들산들

너무평화롭다. 그밑에 바위가 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평평한 바위가

있었다. 거기에 내가 있었다. 어깨가 보이는 흰색 롱치마를 입고있었다. 검

은 머리는 버드나무와 함께 휘날리고, 난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렸다. 너무

산뜻하고 시원한 기분이었다.

내 맨발을 내려다 봤다. 작고 아담했다. 귀여웠다. 내 아랫배 밑에선 언제나

느껴졌던것이 전혀 느껴지지않았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걸 느낀

순간 나에게서 멀어졌다. 내가 나에게서 멀어졌다.. 그곳에 나는 웃고 있었

다....

-짹짹-~

따스한 햇살이 내얼굴을 간지렀다.

웅....~일어나기 싫어....

잠시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쓴 나는 이내 이불을 내리며 몸을 일으켰다. 잠

시 그렇게 않아있었다. 전날밤 일이 생각났다. 꿈속에서 봤던것들이 잊혀지

지 않았다. 두가지가 서로 겹쳐 묘한기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다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음....

창밖에선 햇살이 계속 내려오고 있었다....

띠르르릉,띠르르릉

아침밥을 차리고있던 나는 상쾌한기분으로 총총거리며 다녔다. 기분이 왠지

좋았다.

여보세요?

.....누구시죠?

난 깜짝놀랐다. 엄마였다. 난 전혀 예상못하고 늘하던대로 여자목소리로 전

활받았는데...아니 이젠 남자 목소리가 더 어색했다.

음...나..나야..방금 뜨거운걸 먹어서...

그..그래? 그래...준희야 오늘 집으로좀 올래? 아빠가 하실말씀 있으신단다

.

응..

전화를 끈고 나는 어떻해 해야할지 몰랐다. 어쩔줄을 몰라하며 옷장을 뒤지

다가 오래전 입던 청바지와 흰색 면티를 찾았다.

엥?

이젠 완전히 여성체형화 되어버린 나의 몸에 그런것들이 자연스럽게 맞을리

가 없었다. 뭘 입으나 여자 같았다. 특히 얼굴이 그러했다..난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다.

이걸 어쩐다....

결국, 난 거칠어보이기위해 얼굴에 반창고 몇개를 붙이기로 했다. 옷은 여러

겹 껴입고, 크게 느껴지는 구두속엔 종이 넣고,머리는 모자를㎢?그래도 어

색해보였지만,그게 내가가지고 있는것들 중에선 최선 이었다. 난 떨리는 마

음으로 문을열고 나갔다...

어...그래 준희왔냐..

내...

난 눈을 마주칠수가 없었다. 난 내 눈빛을 알고 있었다... 아빠는 잠시 나를

둘러보시더니..

너 참 많이 야위었구나? 계집에 같아...그 좁은데서 공부하기도 얼마나 힘

들었을까...

.....

준희야 이번에 좋은대학도 붙었고...너도 다 컸고...아빠가 오피스텔 하나

내줄까?

!

놀랐다. 오피스텔이라..상상만해도 즐거운...

사내자식 다컸는데 언제까지나 집에 묶어놓을수도 없는거 아니냐~ 용돈도

두둑히 줄테니까! 후후 나가서 좋~은 세상도 겪어보고!하하하!!

내...

그렇게 난 하숙집에서 오피스텔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새로운 인생의 시

작을 알림과 동시에...

와.....C있다...

탁트인 거실겸 작업공간과 아름답고 푹신한 침대, 커다란 옷장, 무엇보다,

심플하면서 차갑지않은 전체 분위기. 테마가 화이트였나보다. 빛이들어오면

모든게 반짝거릴것 같은... 난 침대로 다가가 쓰러지듯 누웠다. 공기가 좋았

다. 침대가 좋았다.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딴따따라따~딴따따라따~ 정적을 깨고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준희야..나야...아까 보낸 준희메세지 지금 봤어..미안해 오피스텔로 이사

라...좋겠구나. 축하해!

준혁이였다. 나에게 처음 사랑을 느끼게해준, 어린그이...

응...자기야...

어?왜?

나.....자길.....사랑해...

핫...쑥쓰럽게..갑자기...

그는 매우 부끄러워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살며시 웃음이 나왔다.

자기야...나 지금 자기 보고 싶어...짐도 치워야되고... 지금 기분 너무좋

거든....보고싶어.

그래 알았어...지금 당장 달려갈께...한30분이면 될거야..이따봐

응...

착-

휴....으X!

난 기지게를 하고 일어섰다. 샤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그

를 기분좋게 해주고 싶었다. 띵동- 타올로 몸을 걸친 나는 , 그를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나왔어!? 왜 이렇게 어두워?

으?응 분위기 낼려고....분위기 좋지?

그는 두리번 거리며 날 더듬었다. 커텐까지쳐진 오피스텔안은 매우 어두웠다

. 난 그의 손을 잡고 안으로 데리고 왔다.

여기 앉아있어..

난 그를 침대에 않히고 멀찌감치있는 스텐드의 불을 켰다. 감미롭고 우아한

불빛이 방안에 그윽히 찼다. 불이약해 서로에대해 자세히 볼순 없었지만, 그

런 분위기가 그의 숨소리를 더욱 흐트렸다.

저 준혁아..샤워실은 저기야.

응..그래.

그때까지 어설프게 않아 나에게서 눈을때지못하던 준혁은 샤워실로 주춤거리

며 걸어갔다. 난 그가 샤워할동안 침대에 않아 내몸을 감상하고 있었다. 내

가봐도 내몸은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타올안의 가슴속으로 손을 스며들듯이

넣어보았다..

음....

몸이 떨려왔다...그렇게 몇분이 지나고.. 그가 나왔다. 그 역시 타올을 입고

내옆에 누웠다. 나는 그의 팔에 기대 그를 바라보며 누웠다.그의 손이 허벅

지까지 덮고있는 내 타올 속으로 슬며시 들어왔다. 그는 내 다리를 느끼고

있었다. 난 그가 좀더 깊히 까지 만질수 있도록 다리를 조금 구부렸다. 잠시

후 그의 입술이 나의 입술을 덮었다. 나의 아랫입술을 그의 입술로 빨아주었

다. 황홀해 살며시 벌어진 내 입속으로 그의 뜨거운 입김이 들어왔다. 그의

혀는 황올하고 부드럽게 나를 리드 하고 있었다.

내 풀어헤쳐진 타올속의 엉덩이를 주무르며 쓰다듬던 그의 손은 천천히 나의

등을 타고 올라와 나의 가슴을 문질렀다. 그 와중에 그가 내 젖꼭지를 물어

줄때마다 난 관능적으로 목을 뒤로 젖혔다.

아..정말..못참겠어...나 올라갈께..

난 전신 누드로 그의 몸에 올라가 않으려 했다. 조명이 그곳까지 닿지는 않

았다.

아냐...우선 내것좀 빨아줘...

그의것을 삽입하려했던나는 내려와 기는 자세로 그의 자지를 손으로 잡았다

..

욱....

그는 내가 잡아주는것만으로도 흥분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자지를 천천히

쓰다듬다가 귀두부분만 살며시 입에 머금었다.

음....대..대단해...

그리곤 천천히..천천히 그것을 목구멍끝까지 삽입했다. 끝까지 다들어간후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웁....춥.....춥...

가끔은 입에서 꺼내 귀두밑덩이를 혀로 ?기도 하고 불알을 통째로 입에다

넣고 빨기도 했다. 나의 사정없는 행위에 그는 놀라 내머리를 세웠다.

됐...됐어...휴...

난 다시 그에게로 올라갔다. 그리곤 나의 침으로 미끌거리는 그의 자지를 나

의 항문에다 삽입했다.

윽.....아파...준혁...

넌 언제나 끝내줘....대단해...아...

난 천천히 그의 자지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퍽..철퍽...푹..푹...

윽...아....

나는 고통에 소리를 질렀다. 쾌락에 몸을 꼬았다.. 점차 흥분이 고조되자 우

리는 더욱 강렬하게 움직였다.

푹..푹...푹..

억....

그는 4번이상을 쌌다... 뜨거운 정액이 내 허벅지에서 그의 아랫배에도 흘러

내렸다.

아....자긴..정말...

난 지쳐서 그의 옆에 뒤로 넘어져 누웠다. 잠시 조용한가 싶더니.. 그가 내

위로 올라와 다시 내항문에 삽입했다.

악...자기...나 힘들어..

미안...난 너 때문에 미칠것 같아..

그는 내등을 미친듯이 빨았다. 내 목에 강렬하게 키스했다. 한참을 그렇게

하던 나는 흥분에 미처 개와같은 자세로 일어나게 되었다.. 난 한동안 나의

자지를 잊고 있었다.. 엄청난 쾌락문에 정신이 없었다.

어? 이거 뭐야?

그는 나의 자지를 발견했다.

이...이런....

엄청놀란듯 했다...더 놀란건 나였다. 어떻게 이런일이.. 그는 삽입했던 그

의 성기를 빼고 나의 자지만 유심히 바라 보았다.

어...어떻게..니가...

그는 잠시 그러고 보고있다가 나의 볼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이...이런...!

그리곤 그게 끝이었다. 그는 마치 못볼것을 봤다는듯 옷가지를 챙기고 나갔

다..

어...어디가...!

난 다시 혼자가 榮?.고통은 너무 순식간에 찾아왔다.. 난 흐느껴 울었다.

침대위에 쓰러져 흐느껴 울었다. 가위를 들고 화장실로 갔다. 그리곤 내 있

어선 안될 것을 보았다...손을떨며 가위를 천천히 그것으로 가지고 갔다. 아

주 천천히..아주 천천히... 심하게 떨며... 챙! 난 가위를 집어던지고 그 자

리에 쓰러저 흐느껴 울었다. 내가 할수 있는 일이라곤 우는것 뿐이었다.. 현

실은 현실이었다...

난 여자이고 싶다 - 3부

난 고3때부터 여성호르몬을 구입하여 복용하기 시작했다. 내 몸매는 이미 남

자의것이 아니었지만.. 가슴은 아니었다. 목소리도 그런데로 여자같았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목소리는 어느정도 변하게 했으나 가슴에는

그리 영향을 주지 못했다.그래서 난 여자 가슴 확대용 기계를 구입해 여성호

르몬과 병행했다.

그 이후로 더이상 집에서 있을수가 없었다. 난 부모님을 피해 하숙을 하게

榮? 공부를 잘하던 나는 아무런 의심없이 나가 공부한단 핑계로 집에서 나

갈수 있었다. 그곳에서 난 더욱 자유로워 졌다. 남자옷을 입는 시간은 부모

님 오실때 뿐이었다. 언제나 여자옷을 입고 다녔다.

그 동네 사람들은 내가 여자인줄 알았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여자가 된 그

런 동네였다. 내가 살던곳이 아닌 다른곳에서 사는게 나같은 사람에겐 좋은

것 같다. 그렇게 몇개월이 지나고 여성호르몬으로 인하여 피부는 더욱고와지

고 털은 없어졌다. 키가 176인 나의 몸매도 더욱 완벽히 잡혀갔고, 가슴확대

용기계를 쉬지않고 함으로서 가슴도 어느정도 나왔다. 기대만큼 많이 나오진

않았지만 여자들도 절벽이 있다는걸 감안하면,꽤 큰편이다.

옷장속엔 이제 여자옷들로 가득했다. 화장품도 꽤 榮? 난 충분히 여자였다

.어떤 여자들 보다도 여자 다웠다. 그날도 공부하다가 잠깐 산책하기로 했다

.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밤거리를 산책하는것은 언제나 날 흥분시켰다. 그

날은흰색 정장을 입었다. 무릎 위 10cm정도되는 흰색 원피스였다. 그위에 허

리라인 있는 흰색 마의를입고 발등이 다보이는 낮은 검은 힐을 신었다.한

8시쯤 되서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모두들 나를 쳐다 보는것 같았다.

키176에 쫙빠지고 귀여운 여자를 보기란 그리 쉽지 않을것이다. 그들에겐 내

가 그러했다. 그런 시선을 느끼며 난 쾌락을 느낀다. 시원한 바람이 치마속

으로 들어와 마치 깃털로 애무하는것 같다.. 가슴이 떨린다. 난 이대로 역까

지 가기로 했다. 우리집에서 역은 꽤 되는거리라 버스나 택시를 타야했다.

난 힐 때문에 택시를 탔다.

xx역 이요.

네,알겠습니다.

운전기사 아저씨가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난 모르는척했다. 앉은 자세가 되

자 무릎위 15cm정도까지 올라간 치마를 보며 흥분하는것 같았다. 난 우스웠

다.

'그 나이에 밝히긴...쿠쿠..한번 골려볼까?'

난 아저씨가 눈치 못채게 손가락으로 천천히 치마를 올렸다.상의를 살짝 풀

고 얼굴을 창문에기대어 목이 다 드러나게 했다. 아저씨의 숨소리가 나에게

까지 들려왔다. 너무 우스웠다. 그러는 사이 역에 도착했다.

아저씨 저기 횡단보도에서 새워주세요.

아...내?..내!...

날 힐끔힐끔 쳐다보던 아저씨는 놀라 차를 세웠다.

여기요..

난 돈을 내고 허박지 거의 반이상 올라간 치마 그 상태로 내렸다. 그리곤 일

부러 동전을 떨어트리고 아저씨를 향해 쭈그리고 않아 주웠다. 아저씨는 갈

생각도없이 쳐다보았다.동전을 다 주은 나는 문을닫고 역쪽으로 걸어갔다.

한참을 멀리서있던 택시는 천천히 가버렸다.

쿠쿠..

난 역 앞에있는 커피乍?들어갔다. 그 곳엔 고등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그

들은 어려보였다. 내가 워낙 성숙하게 하고 다녀서 그런지 그들은 어려보였

다. 난 한쪽 구석 조금 어두운듯 칸막이가 쳐있는 곳에가서 상의를 벗고 앉

았다. 고등학생들이 날 쳐다보는것 같았다.

뭐 드시겠습니까?

체리주스 하나 주세요

쥬스가 나올때까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저기요..

어떤 고등학생처럼보이는 아이가 다가와서 이야기했다. 난 재미있다는듯 말

없이 빤히 쳐다보았다.

여기 앉아도 될까요?

얼굴도 잘생겼고 매너도 있어보여서 그러라고 했다. 난 벌서부터 긴장감에

도취되고있었다..우린 서로 이야기하면서 즐거웠다. 난 이야기 내내 흥분되

고 긴장되서 미치는줄 알았지만 그런 기분을 즐긴지 오래되서 이질감은 느껴

지지 안았다. 그날은 그냥 이야기만 하고 헤어져다. 그의 연락처를 받고...

그와 계속 같이 지냈다. 그는 고1이였다. 어린아이였지만, 얼굴도 잘생겼고

나름대로 귀여워 맘에 들었었다.그 가 자꾸 성관계를 요구했지만 겨유겨우

거절했다.그는 내가 남자인걸 알면 경멸할것 같았다... 그렇게 계속 거절하

다가 그가 자꾸 이러면 헤어진다고 했다. 난 그와 헤어지는걸 원치 않았다.

결국 난 수능끝나고 할수있다고 했다. 그 이후로 난 계속 잠을 못잤다...

'어떻하지...

어떤날은 눈물로 보내고,어떤날은 허무하게 앉아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난 남자야...'

당장이라도 나가 성전환 수술을 받고 싶었다. 난 여자이고 싶었다.... 그렇

게 하루하루가 가고 어느새 수능을보게 되었다. 난 그 와 헤어질수 없었다.

그렇다면 안걸리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했다. 의심 받지 않기 위해 미니

스커트를 입고 같다. 초코색 얇은 미니스커트와 살색 스타킹(신어도 티가 안

나고 그냥 다리가 부드러워 보임),흰색 브라우스, 초코색마이를 입고 갔다.

걸을 때마다 허벅지와 엉덩이에 달라붙어 다리와 엉덩이의 윤곽이 드러나는

얇은 미니스커트는 언제난 날 흥분시킨다.

자...오늘은..우리?

그는 내 엉덩이를 살며시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

내가 아무말없이 고개숙이고 있자. 그는 웃으며 내 어깨를 안았다. 그는 나

를 이끌고 여관으로 걸어갔다. 난 그를 세웠다.

저...나 오늘 술한잔 먹고 싶다...

알았어..이따 사줄께.

아니..지금..

그는 잠시 망설이는듯 했다. 그리곤, 그래..좋다 약간 취기가 오르면 더 흥

분될것 같다.

난 그에게 최대한 많이 먹였다.. 그가 안마시려 했기때문에 그리 많이 먹이

진 못했지만 그런대로 얼큰히 취했다.

자..가자!

난 그의 손에 끌려가다싶이 갔다. 여관방에 들어가자마자 불을 껐다.

뭐...뭐야.. 불은 벌써...아~후후.

난 불을그고 바로 그의 바지를 벗겼다. 그가 내 자지를 만지게 해선 안榮?

이미 단단히 화가나있는 그의 심벌을 입안에 넣었다.

헉...왜이렇게 빨리...헉..

그리곤 앞뒤로 움직였다.

웁...웁.....웁...

그는 금방 사정했다.

'휴,....이제 안걸리겠지...술취해서 잠들꺼야...'

그러나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나를 눕히더니 상의를 벗었다. 그리곤

나의 브라우스를 벗기고 가슴을 애무했다.

아....그러면......안...아...

그는 나의 그리 크지않은 가슴을 빨았다. 그리곤 스타킹위를 쓰다듬던 손을

밑에다 넣을려고 했다. 나의 허벅지를 애무해주는 그의 손길에 흥분되 몸을

꼬다가 놀라 소리쳤다.

아...안돼..

난 재빨리 그의 손을 잡고 나의 엉덩이에다 옮겨놨다. 그러나 그읜 한손은

계속 허벅지 안쪽을 주무르며 점점 팬티쪽으로 다가갔다.. 난 애써 그를 떨

치고 앉았다.

왜?

잠깐...난 내가 위에 올라가고 싶어...

그래..그러던지...그럼.

그는 누웠다.난 치마를 입은 채로 그의 위에 천천히 내려갔다.이미 그의 손

에의해 밑에만 튿어진 스타킹속으로 그의 자지가 들어가는게 보였다.

억...

그는 나의 항문의 조임에 놀랐다. 난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음.......아....나 죽을것 같아...자기..

억...대대단해...이런건 처음이야!

푹...푹....푹...

얼마안있어 사정없이 흔들던 그는 절정을 맞이했다. 그의 정액이 나의 항문

에서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잠시후 술기운에 누워서 잤다.난 얼른

옷을 챙겨 나왔다..

휴...다행이다...

난 그와 계속 사귈수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한참을 그렇게 걷다가 옷을 추

스릴 생각에 마침 옆 다방화장실에 가기로 했다. 난 흐르는 그의 정액을 닦

고 스타킹을 신었다. 팬티를 아슬아슬 하게 가리는 미니스커트를 추스리고

마의를 입었다. 화장도 고치고..그런데 누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그런곳

이 다그렇듯 남녀공용이라 언능 옷을 추스리다 실수로 갈아신은 스타킹을 떨

어트렸다. 난 허리를 굽혀 주으려 했다.

잠..잠깐..제가 주워 드릴께요.

그는 잽싸게 뛰어와 나의 스타킹을 주웠다. 나보다 한3cm정도 작아보이는 남

자였다. 깔끔하게 정장을 챠려입은걸로 보아 회사원처럼 보였다. 그는 나를

아래위로 쳐다보더니 스타킹을 쳐다보았다.

음...이건 뭐죠?후후..

깜빡하고 스타킹에 정액이 묻어있는것을 잊었다..

그...그건..

그는 스타킹을 코에대고 한번 쭉 빨더니...그걸 일부러 땅에 떨어트렸다...

뭐..뭐하세요...

너 창녀지.

네?아니애요?

그는 비웃었다.

그래? 그럼 저거 가지고가.

난 그의 눈치를 보고 그걸 주으려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그는 뒤에서 나를

눌렀다. 바지속의 그의 심벌이 내 엉덩이 굴곡 사이로 느껴졌다.

뭐...뭐예요?

가끔 이런 상상을 하기도 했지만 막상 당하니 엄청난 흥분이 榮? 나의 성

기도 흥분에 섰다. 그가 위에서 손으로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난 세면대를

보며 엉덩이를 쭉빼고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지 마세요.

후후...몸매가 죽이는군.. 다리도 길고...

그가 한손으로 지퍼를 내리는 소리가 났다..

너 일어서면 죽어!

난 무서 웠다.

....

그는 나의 치마를 엉덩이위로 올렸다.차가운 바람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날 위해주던 스타킹을 그는 거칠게 찢어버렸다. 그러자 팬티를 벗어버린 곳

에 나의 자지가 드러났다.

엇! 이 새끼 이거 호모아냐?에이 씨발...!

난 말없이 그냥 있었다..

.....제기..궁했는데 그냥하자...

그는 나의 똥구먹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항문이 움찔거렸다..그곳엔 아까

애인이 흘린 정액이 남아있었다.

아...거기는....

어쭈...벌써 한탕 뛰고 왔나보지..후후..차라리 잘映?.더부드럽겠어..

그는 손가락을 빼고 자지를 집어넣었다.

흑!

그의 것은 굉장히 컸다. 뜨거웠다. 그는 나의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니 다리....부드럽군....길고...후후..

그는 계속 내 다리를 쓰다듬었다.그 의 자지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오...대단한대....최고야....순진한척하지말고 항문으로 씹어봐!

아....내..

난 이내 흥분해서 항문으로 잘근잘근 그의 자지를 씹었다.

윽...대..단해...너 같은놈이 남자라니...제기..아깝군..

퍽......퍽......

아.......아....제발....살살...

으....죽이는군..

아랫배가 뜨거웠다. 그와 애무없이 40분이나했다. 엉덩이가 아릴정도였다.

그런남자는 처음이었다.

억....나..나온다....

나도 한손으로 자지를 주무르고 있었다.앞뒤로 느껴지는 쾌락이 하늘을 날아

갈것 같았다.

저..저도..

윽!

아...

그는 엄청난양의 정액을 쌌다.. 꿈틀대는 그의 자지를 느낄수가 있었다. 그

는 자지를 빼서 닦았다.

자.,,,

남자새끼가 꼬추만달렸지 이거 완전히 기집애 아냐? 목소리도 귀엽고 몸매

도 죽이고 피부도 곱고..씹질도 잘하고..후후..

그는 5만원을 던져놓고 떠났다. 나의 항문에서 찢어진 스타킹으로 정액이 흘

려 내렸다. 내 머리는 다시 풀어졌다. 난 다시 몸을 다지고 한참있다가 나왔

다. 아랫배와 항문이 조금 아파왔지만 걸을수 있었다. 집에가서 샤워하고 침

대에 누웠다. 오늘은 완벽한 여자가 된것 같았다. 기분이 묘했다... 그냥 이

상했다...조용했다.

내가...여자........................

난 여자이고 싶다 - 2부

아.....

내 상체가 약간 뒤로 꺽였다. 어느정도 비디오를 보며 해보고 싶었던것을 해

본다는 의식도 작용했지만... 흥분이 머리끝까지 와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
다. 내자센 더욱 관능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그는 다리와 인공

가슴을 브라밑에넣은 가슴만 쓰다듬고 있었다.

휴....편하게 생각해...편하게..

난 그의 얼굴을 당겨 살며시 입술을 빨았다. 그리고 혀를 집어넣었다. 그러

자 그가 나를 당겼다. 내 다리를 쓰다듬던 손은 치마안쪽 엉덩이를 주무르고

있었다. 나의 달콤한 숨을 그의 입속으로 넣었다.

음..하..우리 안으로 들어가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그는 내 다리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너 먼저가 니 뒷모습을 보며 걸어갈래.

이제 그는 적극적이었다. 나도 매우 흥분되어 그의 손을 내려놓고 천천히 걸

어갔다. 한발 한발 그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매우 흥분榮? 내 부라우스는

그의 거친손에의해 이미 치마 밖으로 나와 단추가 풀려 있었다.

음...대단해..니가 남자라는게 밑기지가 않아..

내가 방쪽으로 가자마자, 그는 날 침대로 넘어트렸다. 그가 이렇게 적극적으

로 나올줄 몰랐다. 그는 나에게 하던 키스를 멈추고 옷을 벗었다. 그의 심벌

은 그리 크진 않았지만 단단해 보였다.

자...빨어..

난 침대에서 기어서 그에게 갔다. 그리곤 그 자세로 이미 단단히 화가나있는

그의 심벌을 천천히 입속에 머금었다.

억.....

난 천천히 그의 자지를 끝까지 삼켰다. 그의 자지는 굉장히 부드러웠다. 사

랑스러웠다.

웁.......

머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가끔 혓바닥으로 그의 귀두 뒷부분을 ?아주기도

하고 불알을 빨기도 하며 그를 절정으로 내몰았다.

헉..헉...

그도 내머리를 잡으며 앞뒤로 흔들었다. 난 그가 곧 쌀것 같아서 입을 뺐다.

왜그래?

내 뒤에서 하고 싶지 않니?

이미 도발적인자세로 있는 나에게 미친 그 가 거부할리가 없었다.

그래...근데 지저분하잖아...구멍도 조그맣고...

난 화장실에가서 피부를 곱게할 목적으로산 베이비 오일을 그의 자지에 살살

발라주었다. 그에게 부탁해 내 항문에도 발라 달라고 했다.

어..그래..거기다..아..그리고 괜찬아.. 난 항문은 깊숙히까지 매일 닦아

..그리고 크기는 걱정하지마..훗..놀랄껄..

내 항문 주위는 언제나깨끗했다.

그래...알았어..

그는 내가 아파할까봐 내 항문에다 천천히 넣었다. 난 나의 새로얻은 보 지에

힘을 주었다. 그가 놀라는 듯했다.

헉...대단해...

끝까지 다 삽입한 그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아랫부분이 뜨거워짐

을 느꼈다. 많이늘려놨지만...그래도 조금 아팠다.

아...아...

그는 나의 목소리에 더욱 흥분한것 같았다.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푹...푹...척..푹..

아....대단해...아...나 널 사랑하게 될것 같아....준희야..

아...아..아..나도...

나도 엄청난 흥분이 몰려왔다. 난 그의 박자에 맞추어 앞뒤로 흔들었다. 우

린 서로를 향해 흔들었다. 그는 미칠려고 했다. 나도 미칠것 같았다. 그가

조금 강하게 흔드는가 싶더니 나의 뱃속으로 그의 뜨거운 정액이 느껴졌다

.한번...두번... 뱃속을 치는 느낌이 좋았다.

휴....준희야 고마워...

응...

그는 지쳐 누워있는 나의 얼굴에 키스를 했다. 우린 한동안 같이 누워있었다

. 남자가슴에 누워있는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는 계속 내 다리와 엉덩이를

애무하듯 쓰다듬었다. 난 계속 흥분된 상태였다. 내손은 그의 자지를 주므르

고 있었다.

니가 여자라면....

난 할말이 없었다. 잠시 내가 여자인줄 착각하고 있었다. 난 고개를 더욱 그

의 가슴에 파뭍었다. 그렇게 계속 가만히 있었다.

.....나 그만 가야겠다...

그가 내 이마에 키스를 했다. 난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옷을입고 가방을 싸

고 나갔다. 집엔 나혼자만 있었다. 내항문에서 그의 좃물이 흐르는게 느껴

다.. 집이 조용했다. 내 흰색 브라우스는 풀어져있었다. 머리는 흐틀어져 옆

으로 누워있는 나의 얼굴을 가렸고 베이지색 실크 치마는 엉덩이 바로 밑까

지 올라가있었다. 그리고..그리고...난 울고 있었다. 난 눈물을 닦고 일어났

다. 마루에있는 쇼파에가서 뒤로 누웠다. 내시선은 멍했다..

'난 뭐지...남자?.....여자?.......아냐...난 뭐지...왜 난 남자로 태어난거

야..'

남자로 태어난 내가 싫었다. 언제까지 이런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야할지 몰

랐다.그게 두려웠다. 다시 눈물이 흘렀다. 그 날 그런 경험이 있은후...나의

여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더욱 강렬해졌다. 난 여자가 되고 싶었다...

난 여자이고 싶다 - 1부

내이름은 김준희이다. 난 내가 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니 게이가 싫

다. 난 게이가 아니다. 단지 여자이고 싶을 뿐이다. 게이는 남자가 남자를

좋와하지만 난 아니다.난 내가 여자라고 믿고 싶다. 난 게이가 아니다.난...

남자가 아닌 여자이고 싶다.

어렸을적부터 몸을 방바닥에 붙이고 성기를 자극하면(땅에비비면) 기분이 좋

아진다는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을정도로 성적인 본능이 강했던 나는 곧 자위

행위에 대해 알았고 초등학교2년동안 자위행위를 하다가 중학교에 올라간 나

는, 언제부턴가 누나의 속옷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고2이던 큰 누나는 그런대로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성질은 조금 더러

웠지만(우리한테만 그랬을지도 모른다.)몸매와 얼굴은 정말 죽여줬다. 이쁜

년은 가만나두지 않는게 남자들 인지라...누나도 엄청 따먹혔을것이다.. 당

시 누나가 입고다니는 옷을 보면 알수있다. 고2의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언제

나 미니스커트에 속옷조차도 왜그리 야하게 입는지...그 어떤 남자도 가만두

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그 당신 누나랑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때가 많았지만 그정도로 타락

하진 않았었다. 처음엔 그저 세탁기에 있는 누나 팬티를 꺼내 냄새맡으며 자

위를 하는 정도였다. 그게 하루 이틀 쌓여가고, 어느날인가 그 날도 어김없

이 딸딸이꺼리를 찾던 나는 세탁기에 들어있는 누나의 스타킹을 신게 되었다

. 기분이 묘했다.

거울을 봤다. 어렸을적부터 큰키에 마른 다리가 싫었었다.옷을입어도 말라보

이고 그래서 자신있게 걸어다니지도 못하고...하지만 달랐다. 내가 섹시하게

보였다. 마른 다리가 오히려 매력으로 보였다. 이건 완전히 여자 다리였다.

누가 봐도 좆꼴릴 완벽한 여자다리였다. 그렇게 나의 보습을 보며 흥분했다.

내 남성은 여느때와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좆물의 양도

엄청났다.

나와 내 남성은 새로운 느낌에 놀랐다. 그런 새로운 느낌이 정말 색다르고

이제까지와는 비교할수 없을정도로 자극적이었다. 난 스타킹 자위행위에 대

해 알게된후 fetish에 관한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경험담등을 갈무리 해왔다.

그런것들을 익히고 자주 접하게 되니 나역시 나만의 취향이 생기게 되며 좀

더 적극적으로 榮? 스타킹도 종류별로 다사게 되었다. 고탄력 팬티스타킹

,밴드,커피색,흰색,검정색, 망사...등등 이런것들을 구하기는 전혀 어렵지

않았다.

동대문 길거리에가면 스타킹 파는 아주머니들이 남자에게도 아무 꺼리낌없이

준다. 그 아주머니들도 장사를 오래한지라 남자들이 가지고 가면 어디다 쓰

는지 다 아는 눈치였다. 치마도 구입하게 되었는데, 처음엔 무조건 색시한것

만 찾느라 원색적인것들만 사게 되었다. 그러나 차츰 횟수가 늠에 따라 옷

고르는 안목도 높아졌고 그에따라 인텔리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원피스, 정장

,체크줄무늬 미니 스커트, 흰색 실크 미니 스커트,갈색 붙는 스커트(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다...)등등 여러가지를 사게되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니 처음에 샀던 빨강류 치마를 입지 않게 되었다.브라자

나 팬티같은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머리카락이었는데, 이 역시 동

대문에가서 가발을 구입함으로서 해결했다. 가발스타일은 찰랑거리는 긴 생

머리였다.

화장법 익히는게 가장 힘들었다. 화장풍 자체도 비쌌고 뭘사야될지도 몰랐고

, 누나들꺼를 쓰자니 티가 나고.. 여성잡지가 많이 도움이榮? 정말 친절하

게 나온다.기술은 거기서 스타일은 일본의 여장가수들을 따라했다. 하지만

역시 낮선지라 약6개월간 화장하면서 겨우 감을 잡았다. 자위할땐 항문에 뭔

가를 넣어가며 하게 되었다. 처음엔 얇은 볼펜 정도였지만 차츰 그 크기가

늘어나 20색볼펜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자주하다보니 장도 깨긋해지고 좋았다. 이렇게 다 갖추기까지 얼마 안되보이

지만 8개월 정도는 걸렸다. 그전엔 누나옷으로 만족했지만, 이런짓을 하다보

면 자연히 내것이 갖고 싶어진다. 이렇게 모든것을 갖추고 거울을 보면 정말

흥분獰駭? 약간 마른 172키에(당시난 중3) 얼굴은 하얗고 조그마한, 눈은

컸다.눈꼬리가 약간 위로올라간, 거기다 눈 주위가 밝게보이는 화장을 하고

나니 영락없었다. 어깨도 적당히 좁고 허리라인도 잘들어가고 엉덩이는 튀어

나오고 ... 마른 몸에 엉덩이는 컸다. 제대로 말하자면 그리 큰건 아니었다.

하지만 여장을 하고나니 꽤 큰 엉덩이였다.

본래 남자들의 평균엉덩이 사이즈가 여자들보다 훨크다. 난 영락없는 여자였

다. 그렇게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이렇게 섹시하고 귀여운

내 모습을 다른 남자가 보면 흥분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여주고 싶었

다. 그러면서 나도 흥분을 느꼈다.

처음엔 베란다에서 바깥을 보며 서있었다. 내가 8층이었는데 앞아파트 5층쯤

에서 어떤 아저씨가 나와 담배를 피고 있었다. 그때난 체크무늬 미니스커트

를 입고있었는데 옆으로 퍼진 형이라 내가 고개를 숙이면 그 아저씨가 내팬

티를 보기 수월한 자세였다. 난 언능 뒤돌아 청소하느척하며 고개를 숙였다.

내 앞엔 거울을 가져다 놓았기 때문에 곁눈으로 아저씨의 모습을 볼수가 있

었다. 담배를 피던 그 아저씨는 아무생각없이 여기를 봤다가 처음엔 놀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언능 고개를 돌리고 힐끔힐끔보더니 내가 청소하는걸 보

고 이제는 노골적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난 가슴이 두근거려 터질것 같았

다. 색다른 기분이었다. 나의 모든걸 내놓은 듯한...야릇한..

내 성기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난 일부러 씨한 자세를 했다. 그아저씨는

이제 금방이라도 이리로 튀어올 자세였다. 난 바로 일어나 베란다 문을 닫고

안방에와 누웠다. 가슴이 터질것 같았다. 천장을 보며 한손은 가슴을..한손

은 천천히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난 진짜 여자가 되가고 있었다. 점점 남자

가 뒤에서 날 덥치는 상상을 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눈빛,손짓,걸음걸이가

여자처럼 변해갔다.

사람들 많은곳에선 안그럴려고 노력했지만, 조금씩 힘들어졌다.고1때였다.

그때까지 난 엄청난 노하우를 쌓아가며 보내고 있었다. 난 더이상 남자이길

거부했다. 공부와 그짓말고는 할일이 없었기때문에 공부실력은 톱급이었다.

그렇게 집에만 있으니 몸도 점점 여성화 되어갔다.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내

가 자꾸 원하니 거의 여자 각선미 가 되어갔다.

내 짝은 귀여운 애였다. 남자답지 않게 귀여웠다. 난 은근히 그 아이와 스킨

쉽을 했다. 그 아이도 은근히 나에게서 뭔가를 느끼는것 같았다. 우리학교는

두발자유이기때문에 6개월이상 기른 내머리는 단발이었다. 얼굴도 하얗고 이

쁘게 생긴 나를보며 그런걸 안느낀다는게 이상하다..생각이 변하니 눈빛조차

여자처럼榮?

처음엔 웃으며 손으로 어깨를 살짝치는게 고작이었지만, 나중엔 은근히 허벅

지를 주물렀다. 살살 쓰다듬기도 하고,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후 난 크게 웃

는척하며 그와 볼을 아주 살살 스쳤다. 그 아인 움찔했다. 계속 그런식으로

그 아이를 나한테 길들였다. 그 아인 이제 내가 허벅지만 만져도 좆이 꼴렸

다. 이제 榮?싶었을즈음에 그아이를 우리집에 공부하잡시고 불렀다. 처음

엔 같이 식탁에 앉자 공부를 했다.10분..20분이 지나고 내가 그 아이의 허벅

지를 지긋히 눌렀다.

아...

그 아인 약간 움찔하며 비음을 냈다. 하지만 이내 헛기침을 하며 추스렸다.

으음. 왜..왜?

그애가 귀여웠다. 이미 내표정은 더이상 남자가 아니었다.그아이를 보며 웃

었다.

아니야...

다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나 나나 공부하긴 물건너간게 틀림없었다. 난

살며시 의자를 그 옆에 붙혔다. 그에 의사를 묻고 싶었다. 자칫 잘못하면 이

건 친구들 사이에 놀림받기 충분한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가만히 공부하는

척했다. 난 살며시 한손을 그의 허벅지위에 올려 놓았다. 그가 움찔했다. 한

손은 공부하는척하며 가만히 있자 그도 그냥 공부하는척했다. 그의 표정에서

그가 많이 흥분했음을 알수있었다.

난 용기를 내서 그의 허벅지에 올려놓은 손에 약간 힘을 주었다. 다시 힘을

빼고선 첨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허벅지 안쪽부근을 쓰다듬었다.그는 가만히

있었다. 난 용기가 났다.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던 내손을 그의 심벌쪽으로

가지고 갔다. 그가 놀라 크게 숨을 쉬었다. 그리곤 의자를 조금 뒤로 뺐다.

나도 놀라 손을 땠다. 그의 뜻을 알고 싶었다.

왜..왜 그래...이런거 싫어?

난 살짝 부끄러워 하며 말했다. 그 아이는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아니..싫은건 아닌데...

어느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그의 말을 들으니 난 너무 기뻤다. 난 그의

옆에 바싹 붙었다. 나의 볼을 그의 볼에 부드럽게 비볐다. 이제 그도 가만히

있었다. 난 그 앞에서 여장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저...나 여장할까?

그아인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리곤 잠시 그렇게 있었다.

..그래..한번 해봐..어울릴것 같다..

잠시후 난 베이지색 실크 미니 스커트에 커피색 팬티스타킹과 세련된 한얀브

라우스를 하고 얼굴은 투명해보이는 옅고 하얀 화장을 해 나왔다.. 더이상

가발은 필요하지 않았다. 내머리를 조금손질해서 앞쪽옆머리가 볼쪽으로 조

금 날카롭게 내려온 스타일을 하고 나왔다.

와......너..너.. 대단해...

난 그의 옆에가서 살짝 앉잤다.

냄..냄새 좋은데..어떤 향수야?

그는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날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팬지...

그는 가만히 있었다. 답답했다. 내가먼저 그의 손을 나의 허벅지에 올려놓았

다. 그는 잠시 가만히 있더니 조금떨며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나도 굉장

히 흥분榮? 처음겪는 남자였다...남자..

새엄마와 여동생..

그 지겹던 말년휴가도 이제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이 내일 부대에 복귀를 하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군생활도 끝나는 것인가!

이번휴가를 며칠 앞두고 거꾸로 신어버린 여친의 원룸에 막무가내로 처들어가 썅년의
싸다구를 날리고 이틀간을 꼬박 집에 가둔체 그동안 부대에서 모아둔 엄청난 양의 정자들을
그년의 몸에 싸지르며 성욕을 풀었지만 아직도 뭔가 부족하다.

여친년도 지가 잘못한건 아는지 “이걸 마지막으로 끝내준다.는 내말을 듣고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었다.

그동안 어디서 스킬을 쌓았는지 그렇게 싫다던 오랄도 지가 먼저 불알까지 빨아대면서
흥분시키더니 결국 지 목구멍에 내 좃을 다 박아 넣어도 군말없이 참으며 내 좃물을
삼켜주었다.

휴가 첫날 여친년과 그렇게 온갖 지랄을 하며 마지막 섹스를 나누는데 그년의 남친놈
전화가 걸려왔고 난 여친년 보 지에 말뚝을 박고 이년이 남친이랑 대화할때마다 존나
힘차게 자지를 박아넣었다.

여친년은 가쁜숨과 떨리는 음성으로 지 남친놈의 만나자는 제의를 나 때문에 거절하다
“목소리가 왜그러냐?“는 남친의 의심에찬 물음에 ”요가중~“이라며 말도 않되는 드립을
했다.

급기야 여친년이 거의 녹초가 될 무렵 남친놈이 원룸에 찾아왔고 여친은 내 존재를
감추기 위해 그 놈에게 “이럴거면 헤어지자!”는 맘에도 없는 최후 통첩까지 하며
놈을 쫏아보냈고 덕분에 난 놈의 방해없이 다시 여친을 존나 따먹을수 있었다.

존나 빠구리를 하다 그래도 전 남친이라고 밥을 해준다며 알몸에 앞치마를 두르고
뭔가를 만드는 여친의 엉덩이가 왜그리 탐스러운지!
이놈의 자지는 싸도 싸도 벌떡 일어서며 여친의 구멍을 향했다.

내가 또다시 자신의 뒤로 다가가자 각오했다는 듯 별 반항없이 상체를 숙이며 내게
엉덩이를 내미는 여친이 너무나 가증스럽고 하찮게 느껴져 난 그동안 한번도
건드리지 않고 아껴두었던 여친의 뒤를 따기로 마음먹었다.

양엄지로 여친의 엉덩이살을 벌려 시커먼 털로 뒤덮힌 담치를 향해 침을 뱉었다.
내 침은 여친의 엉덩이 골이 시작되는 부분에 떨어졌고 그 침이 천천히 흘러 여친의
똥구멍을 지날무렵 좃대가리를 거기에 문지르며 여친의 항문주위에 침을 발랐고
때마침 다시 남친의 전화가 걸려와 뭐라 짜증나는 목소리로 “내일 다 말해줄테니까
전화끊자!“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친의 앙증맞은 주름 사이 구멍에 내 좃대가리를
밀어넣었다.

“어~멋~!”

여친은 순간 핸드폰을 싱크대에 떨어트리며 놀란 눈으로 입을 벌리며 뒤돌아 나를
노려 보았고 전화에서 “무슨일이야?”라며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남친의 목소리가
들리자 행여 놈이 다시 집으로 찾아올까봐 서둘러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여친이 뭐라 말하려는 그 사이 또 대가리까지 들어간 자지를 다시 밀어넣었다.
여친이 “우~욱~!”하며 짧게 호흡을 멈추더니 한숨을 내쉬며 나에게 온갖 지랄을
할줄 알았던 예상을 깨고 자신의 남친에게 침착하게 “반찬 만들다 너 때문에 손 비었어~”
라며 위기를 훌륭하게 넘겼다.

그런 여친이 너무나 고맙고 예뻐서 난 남았던 자지 밑부분을 마저 여친의 항문에 힘차게
밀어넣어며 여친의 가녀린 허리를 당겼고 여친은 그때서야 전화를 꺼 저 쪽 침대로
던지더니 고통에 두 주먹을 쥐고 싱크대를 쿵 하고 치며 나에게 “뭐하는 짓이야~
씹새끼야!”라며 욕질을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같잖고 어이없는지 난 냅다 항문에서 자지를 빼는 척 하다 다시
모두 밀어넣었고 여친은 총에 라도 맞은 사람처럼 다리에 힘이 빠지며 “아~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총은 총이지!! 킥킥~ 총알도 존나 큰.......그것도 따발총이다 씨발년아~

난 여친의 허리를 잡고 마치 인형처럼 흔들며 항문이 부서져라 자지를 박았고
여친은 고통에 몸부림치다 차라리 자세를 잡고 항문을 내미는 것이 고통을 줄인다는 걸
느꼈는지 싱크대를 붙잡고 허리를 낮춰 엉덩이를 내밀어 주었다.

나랑 사귈때만해도 아다였던 여친이 이렇게 똥구멍을 따이면서 엉덩이까지 내밀어주다니!

난 그렇게 여친의 보 지와 항문 그리고 목구멍까지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박아대며
이틀을 같이 있었고 마지막 나를 보내고 남친을 만나러 가겠다며 곱게 화장을 하고
옷을 꺼내입은 여친이 왜그리 예쁘던지 난 다시 그 년을 바닥에 눕혀 좃나게 따먹고
화장이 곱게 먹은 여친의 예쁜 얼굴에 좃물을 싸 범벅으로 만들어 놓은체 유유히
원룸을 도망쳐 나왔다.

아직도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다!

“야이 씨발놈아~군대에서 뒈져버려라~~”

킥킥....참 좃같은 말년 휴가다.......

그년의 원룸을 나와 도착한 곳은 얼마전 제대한 고참이 실장을 한다던 시내 키스방..
존나 에이스 들어왔다며 나 휴가 나오면 자기가 책임지고 따먹을수 있도록 해준다던
고참의 말에 여친과 이틀동안 섹스를 하고도 뭔가 아쉬웠던 마음을 달래보려 찾아갔다.

후미진 골목귀퉁이에서 고참이 말해준 간판을 찾아 들어간 나는 고참의 환대를 받으며
키스방 제일 구석에 있는 방으로 안내 받아 들어갔다.

고참과 잠시 얘기를 나누다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에 혼자 이것저것 둘러보며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데 누군가 노크를 하더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세리에요~”

존나 앙증맞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그녀는 솔까말 고참의 말 만큼 킹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은 키에 좀 마른 편인대도 가슴은 밥그릇 만한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 내 옆에 앉아서는 존나 하기도 싫은 대답을 강요하며 이것저것
호구조사를 해댄다.

일단 그녀의 질문을 차단하기 위해 그녀를 쇼파에 밀어눕히며 입에 키스를 하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따뜻한 혀를 내 입에 넣어 능숙한 스킬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난 놀고 있는 한 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만지며 뜨거운 콧김을
그녀의 얼굴에 쏟아부었다.

이윽고 존나 서로의 성욕이 불타오를 즈음 난 과감하게 가슴을 애무하던 한 손을 내려
그녀의 사타구니에 밀어넣고는 그녀의 중심을 찾아 손가락으로 깊이 쑤시자
“오빠~아시면서 왜이래요?”라며 비음섞인 목소리로 내게 말했고 나는
“나 군바리다..실장하고 다 얘기된거 아니냐?”라며 존나 뻔뻔하게 그녀의 팬티속으로
손을 넣어 거칠한 털을 헤치고 보 지를 찾아 손가락으로 크리토리스를 잡아 문지르자
“그래도 이건 너무~~아~흡~”이라며 내가 주는 자극을 온몸으로 느끼는 듯 자지러지며
내 손을 잡아 밀어낸다.

“알았어요~대신 내가 할거야!”라며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바지 지퍼를
내리고는 자지를 한입 물고 나를 빤히 처다본다.

“그런데 너 어디서 많이 본것같다!”

진짜 그래서 물어본건데 그녀도 내 좃을 문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에서 좃을 빼더니

“진짜 오빠~나돈데...전에 다른데서 봤나!”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으로 존나 많은 것을 해주더니 이윽고 팬티를 벗어 내
무릎위에 다가와 앉으며 자신의 보 지에 내 자지를 끼워넣었다.

쇼파에 앉은 내 다리위에 마치 내가 쇼파인듯 포개앉은 그녀는 뭔가 동작이 부자연 스럽자
내 무릎을 양옆으로 벌리고 자신의 두 다리를 모아 가운데 넣더니 엉덩이를 들었다 앉았다
하며 내 자지를 자극했다.

존나 감질나서 안돼겠기에 그녀에게 꼽은 채로 쇼파에서 일어나 서서 그녀의 보지에
자지를 박는데 실장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실장니~~임~~”

그녀가 존나 당황하며 실장을 나무라자 실장이 실실 웃으며

“볼장 다본사이에 뭘 그러냐?”라며 그녀앞에 다가와 지퍼를 열고 입에다 자지를 물렸다.

그녀는 하는 수 없는 지 고참의 자지를 물고 빨았고 나는 더 자극을 받아 힘차게
발기한 자지를 그녀의 구멍에 밀어넣으며 두 손을 아래로 뻗어 그녀의 가슴을 잡고
손가락 사이로 유두를 넣어 굴렸다.

그사이 그녀의 입에 자지를 넣은지 2분도 안돼 고참이 그녀에게

“야~존나 쌀것 같아~얼굴에 쌀거야~”라며 자지를 뽑아 그녀의 얼굴을 향해 문지르자
그녀가 기겁을 하며

“실장님 얼굴에 하면 화장 다시 해야 돼요~걍 입싸하세요~에휴”

그러자 실장이 나를 보며 싱긋 웃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의 입에 사정을 했고 나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지를 빼서는 그녀의 하얀 엉덩이 위에 좃물을 싸질렀다.

존나 박아대며 싸긴 滑嗤?차라리 안하니만 못한 느낌이 들어 존나 양치질을 하고
고참에게 술값을 몇 만원 받아 나왔다.

해가 어둑해질 무렵 군대를 일찍 제대하고 취업까지 한 친구놈이랑 저녁까지 술을 먹다
간곳이 근처 노래방

존나 후진 시설에 맥주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하는 그곳에 그 친구놈은

“존나 이쁜 미시하나 있으니까 오늘 존나 따먹어~”

라며 주인에게 뭐라 말을 하고 룸으로 들어왔다.

얼마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여자들은 이모뻘은 되는 아줌마였고 그래도 얼굴은 비교적
반반해서 묘한 느낌은 있어 그냥 같이 놀기로 했다.

내 파트너는 47살..친구놈은 44살..

난 존나 늙은 년을 옆에 앉히고 투덜거리는데 아줌마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실실
웃으며 내 자지를 슬쩍슬쩍 건드리며 놀려대고 있었다.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고 내가 노래하는 사이 친구놈이 아줌마를 테이블에 엎쳐놓고
뒤에서 존나 자지를 박았고 나도 급꼴려서 내 파트너도 그렇게 해놓고 자지를 박았다.

보 지가 존나 어 허우적거리는 느낌이었지만 뭔가 야동에서본 근친상간 느낌도 나고해서
존나 흥분해 박다가 앞에서 친구놈에게 존나 박히며 존나 야릇하게 나를 쳐다보는 친구놈
파터너를 보며 박고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마침 친구놈도 내 파트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는지 우리는 서로 자리를 바꿔 아줌마들을 사정없이 따먹었다.

근데 내 파터너가 친구놈에게 따먹히는 걸 보며 또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들어다.
하지만 그때 친구놈이 사정을 했는지 나가 떨어지고 난 그 아줌마를 불러 옆에 같이
엎드리게 해놓고 번갈아 가며 따먹었다.

두 아줌마년의 보 지는 마치 홍수가 난것처럼 번들겨렸고 난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자지가 미끌어져 내 파터너의 항문에 자지가 들어가 버렸다.

아줌마는 처음엔 뭐라 그러다가 다시 그렇게 자지가 들어가자 암말도 하지 않았고
난 아줌마의 헐렁한 보 지보다 항문이 쫄깃해 사정없이 자지를 박다 좃물을 싸질렸다.

그렇게 방탕한 휴가의 마지막 밤이 불타오르고 다음날...뽀개지는 머리와 쓰린 속을
달래며 부대로 복귀하려다 마지막으로 암에 걸려 시한부를 선고받은 아버지가 생각나
병원으로 향했다.

2년전 엄마를 두고 외간여자와 바람이 나 이혼을 하고 엄마를 내 쫏아버린 아버지..
주제에 대를 잊겠다며 나를 데려가겠다던 아버지.
난 그 아버지와 인연을 끊으려 일부러 군대에 입대했던 것이다.

난 다시 아버지를 보지 않으려 했지만 그사이 암에 걸려 사실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듣고 마지막으로 인사라도 할겸 병원을 향한 것이다.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찾아간 병원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근성으로 인사를 나눈뒤
서둘러 나오려는데 마침 들어오는 두사람...
아버지는 그 두사람을 보며 나에게 인사를 하라며 재촉했다.

“니 새 엄마랑 동생이다...내가 없더라도 잘해드려~”

난 꼴도 보기 싫은 그들을 피해 고개를 돌리고 있다 마지 못해 쳐다보고는 너무나 놀라
입이 벌어졌다.

“너는??? 아줌마???”

“어? 오빠?” “어떻게 니가 여기에...”

새엄마란 여자는 어제 그렇게 맛있게 따먹었던 노래방 미시였고 그녀의 딸은 어제
내가 키스방에서 고참이랑 따먹었던 그 여자였다.

두 사람은 나를 보며 어이가 없어 놀라 입만 벌리고 있었고 나는 그때서야 왜 내가
어제 그녀와 아줌마를 보며 낯이 익었는지 알수 있었다.

2년전 엄마의 자리를 꿰찬 그 모녀...난 그날 처음본 그녀들이 실어 집을 뛰쳐나왔다.
입대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2년이 넘게 흐르고 그때 보았던 그 모녀를 기억하진 못했지만 어렴풋이
낯이 익었던 것이다.

하루저녁에 딸과 엄마를...그것도 법적으로 내 친엄마와 친동생을 따먹은 것이다...
씨발 그것도 친구랑 고참이랑 함께.......

존나 어이없어 병원을 나오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존나 하늘은 맑고도 푸르렀다.

아~씨발 제대하면 머리깍고 절에나 들어가야지...................!!!

원 나잇 - 5부

다 쌌다.

그러나 미소의 입은 쉽게 날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쾌감까지 만끽하게끔 혀를 굴려주기까지 했다. 그 부드러움에 쭈그러들려던 것이 다시 커질 뻔 했다. 참 무지막지한 스킬이다. 사정 후엔 고통스럽기 쉬운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즐기게 해준다니. 이만큼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수를 사정시켰을지 쉽게 짐작도 가지 않는다. 저 혀뿌리 안으로 넘긴 액만 모아도 몇 리터는 되겠지.

미소가 입을 떼자 은색 실이 길게 늘어졌다. 침인지 액인지. 미소가 입을 벌려 그 실을 끊었다. 그리고 붉은 혀를 내밀어 번질거리는 입술까지 핥자 내 뿌리가 다시금 움찔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으려는 모습은 가히 광적일 정도의 관능이었다.

“야, 너.”

목이 잠긴 탓에 말소리가 흐릿했다. 미소는 내가 일어난 것을 보고는 살짝 웃었다.

“깼어?”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는 태도였다. 오히려 내 쪽의 소파로 걸터앚으며 반쯤 고개 숙인 아랫것을 쥐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애무하며 속삭였다.

“쪼았어? 헤헤.”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내 귀 안으로 파고들었다.

“많이 싸더라, 우리 연규. 안한지 좀 됐나봐.”
“왜, 왜….”
“덕분에 나도 흥분했다. 봐봐, 만져 봐.”

미소가 내 손을 움켜쥐었다. 그제야 미소의 옷차림이 얇은 슬릿 한 장으로 변해있음을 눈치 챘다. 미소는 내 손을 펄럭이는 아래로 넣더니 다리 사이까지 인도했다. 손가락 끝이 닿자마자 느껴졌다. 젖었다. 주체 하지도 못할 만큼.

“많이 젖었지, 나. 사실 너 쌀 때 한 번 갔어.”

혀를 귀엽게 삐죽 내밀며 말한다. 미소는 이미 내 손을 놓았지만 내 손가락은 그녀의 손가락에 척 달라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손가락 넣어도 돼. 만지고 싶은 대로 만져.”

미소의 달뜬 숨이 귓속에 파고들었다. 의식이 점차 몽롱해졌다. 몸에 닿는 살갗 한 올 한 올이 내 피부 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은 착각. 서로 하나로 합쳐지듯, 연체동물처럼 끈적이는 것에 그 어떤 거부도 무용했다. 크라켄이 블랙 펄을 집어 삼키듯이.

이런 섹스가 벌어질 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긴 했다. 친구 녀석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내게도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라 생각했다. 창녀 이상으로 음란의 태를 만끽하는 정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우리는 이런 원 나잇 따위의 정사를 벌일 사이가 아니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 그만. 잠깐만.”

잠긴 목을 뚫고 겨우 한마디를 뱉어냈다. 미소는 이미 팬티까지 벗어버리고 내 위로 올라타던 찰나였다. 좌우로 흔들리는 우유 빛 육신과 다리 사이에 옅은 터럭으로 숨겨진 동굴. 그 모습에 뒷골이 띵해지는 것을 참고 겨우 말을 이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에이, 약한 소리한다. 젊잔아요, 연규씨. 겨우 한 번 싼 거 가지고 왜 그래.”
“뭐라…”
“이렇게 키워놓고 말만 많아. 이걸 어떻게 그냥 냅두냐. 불쌍하게.”

미소가 자신의 동굴 아래로 까딱 거리는 것을 움켜쥐었다. 내 몸은 지조에서 벗어나 행동하고 있었다.

“나 이건 잘하니까 믿고 맡겨봐.”

대꾸할 겨를도 없이 내 것이 동굴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내 짧은 경악성은 곧 이은 미소에 입맞춤에 묻혔다. 두 연결부가 끈적거리며 서로 열기를 교환한다. 생생히 느껴졌다. 이미 술기운은 증발해 버린 걸까.

“쌀 거 같으면 싸.”

내가 멍청한 표정으로 미소는 해맑게 웃었다.

“괜찮으니까 안에 싸라고.”

그것으로 대화는 끝이었다. 대신 풍경의 흔들림이 시작되었다. 내 위에 탄 채 상하로 요분질하는 미소에 내 머리통도 힘없이 흔들렸다. 다시금 온 몸을 휘감는 쾌락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고작해야 몇 방울의 정액과, 그것에 동반되는 고작 몇 초의 쾌락을 향해. 허무의 극을 향해 달리는 시간 속에 의식이 혼탁해졌다.

이 여자는 미소가 아니다. 내 기억속의 미소를 떠올리게 하지만 미소가 아닌 무언가다. 그 역설이 빚어내는 위화감은 섬뜩할 정도로 강렬했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그랬다. 바에서부터 느낀 위화감만 해도 그랬지. 내가 가식의 탈을 써 연규가 아니었던 것처럼 그녀 또한 마찬가지이지 않았던가. 말투, 버릇, 습관, 제스처. 그 모두가 내 기억과 일치했지만 미소가 아니다.

그 말은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그녀는 거짓을 꾸며내야만 ‘내가 기억하는 미소’로 있을 수 있었다는 소리다. 가식 떨어 본 모습을 숨겨야 했던 나와 다르게, 그녀는 가식으로 ‘본래의 모습’을 꾸미려 한 것이다.

이는 미소가 변했다는 소릴까. 예전의 모습을 더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물론 사람은 변하고 미소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으로 변했냐는 것이 중요하겠지.

강간당하고 가족에게 배신당한 여자.
동창들과 스스럼없이 섹스를 즐긴 여자.
화류계에서 몸 팔고 술 팔다 스폰서 찾아 은퇴한 여자.
그러나 여전히 밤거리에서 남자를 찾는 여자.

그 모든 레테르의 공통점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섹스다. 누구와도 쉽게 섹스 하는 헤픈 여자.

좋다. 변했다고 치자. 그래도 의문이 남는다. 그럼 왜 이 사단이 났지? 이만큼이나 어색한 소꿉친구 사이에 섹스의 손길을 뻗쳐온 이유, 그것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원 나잇을 즐기려면 나 아닌 다른 남자를 붙잡는 게 더 나았다. 몇 백짜리 술을 사주지 않아도 그만한 돈을 받으면서 잠자릴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나란 말인가?

“여, 연규야.”

미소가 헐떡이며 내 생각을 끊었다.

“저, 젖도 만져줘.”

미소가 머리칼을 흩날리며 소리쳤다. 향수와 달콤한 땀내가 섞였다. 그 은은한 향기와 달리 미소가 보여주는 것은 거의 발광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미소의 엉덩이는 계속해서 요동치며 날 깔아뭉갰다.

“그, 그만.”
“왜? 쌀 것 같아? 그냥 싸도 된다니까.”

미소는 아예 작정한 듯 했다. 허리의 움직임이 더욱 거세어졌고 조임도 강해졌다. 난 신음을 삼키며 미소의 허리를 껴안았다. 이대로 가다간 또 얼마 못 버티고 사정할 테고, 그건 바라는 결말이 아니다. 억지로 움직임을 멈춘 상태로 호흡을 교환하고 있을 때였다.

“에그, 누나하고 오래 하고 싶어서 그래? 귀여운 것, 참기는.”

미소는 피식 웃으며 힘을 풀었다. 꽉 조였던 질감이 느슨해졌다. 미소는 내 가슴을 쓸어내리며 땀방울을 핥았다. 동상이몽이다. 하지만 시간이 주어진 것만도 다행이다. 난 황급히 입을 뗐다.

“왜, 왜 이래. 진짜.”

미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이런 사이 아니잖아.”
“한참 잘하다가 뭐야.”
“이상하잖아.”
“뭐가 이상한데?”
“그거야 당연히…”

거기서 막혀버렸다. 그러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 좆같은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미소가 다시 몰아붙여왔다.

“뭐가 이상한데? 자세? 일어나서 할래?”
“장난 해, 지금?”
“아, 그럼 뭐. 말을 하라고, 말을.”

내가 지금 미친년과 말을 하고 있나? 얘는 이게 이상하지 않다는 소린가? 그녀의 태도가 너무나 뻔뻔했기에 내가 미친놈이고 미소가 정상인가 싶을 정도였다. 미소는 얼마동안을 내려다보더니 땀에 젖은 머리칼을 모아 넘겼다.

“나, 나하고 이러는 거. 넌 아무렇지 않아?”

황급히 말을 던졌다. 아까보다 무거워진 미소의 무게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처음부터 뭐.”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부른 거 였어?”
“뭐, 겸사겸사.”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사이에….”

그러나 거기까지 말하고 다시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무슨 사이지?

꼬여버린 소꿉친구 사이? 위선을 가식으로 맞받아친 사이? 뭐가 되었건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섹스를 거절하려면 내가 그렇게나 피했던 친구 사이를 입에 담아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혹시 친구끼리 이러는 거 아니다. 뭐 그런 이야기 하는 거야?”

미소가 살짝 코웃음을 쳤다.

“남자랑 여자가 하는 게 뭐가 문제라고. 그냥 하면 되는 걸. 혹시 나 별로라서 그래?”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미소는 흐음, 하며 팔짱을 꼈다. 정사는 멈췄지만 삽입은 아직 여전하다. 정액을 애액으로 교환하는 남녀가 입으로는 그만두자는 이야기를 한다. 우스꽝스럽고 역설 자체였다. 그러나 미소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 듯 했다.

“이렇게 서 있으면서 말은 잘 해요.”

미소는 제 아랫배 안쪽에서 여전히 꼿꼿이 서있는 것을 문질렀다. 이어지는 코웃음에 아무 말도 못했다.

“누구랑 하건 그게 그거 아냐? 다 똑같은 것들끼리.”

아, 미소에게 난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동창이나, 소꿉친구나, 스폰서나, 길거리 노숙자나. 그 모두가 특별한 존재감 없는 다 똑같은 남자구나. 그 허무함에 무너지려는 찰나 그녀가 날 붙잡았다.

그 때 미소가 입을 맞춰왔다. 멍청한 표정으로 설육의 장난을 그대로 당했다. 미소는 입을 떼며 말했다.

“농담이야.”

미소가 제 입술을 살짝 핥았다.

“당연히 너는 다르지. 다른 사람도 아닌 홍연균데.”
“뭐?”

미소의 손이 내 턱을 살며시 쓸었다. 그리고는 대화를 끝냈다.

“내가 말이 너무 많았네.”

미소는 다시금 움직였다. 풍만함 속에 날 파묻으며 작게 속삭였다. 그러나 별로 의미는 없을 것 같다. 다시 시작된 조임은 무엇이 재개될지 더 잘 말하고 있었으니까.


* * *  


 삶은 무뎌짐이다. 마음의 헤짐이기도 하다. 어릴 적의 게임만 해도 그렇다. 팩을 후우, 불어 슈퍼패미콤에 끼워 넣은 후 로딩을 기다리던 초조함이나 소닉&테일즈에서 너클즈를 고르게 됐을 때의 기쁨. 그 감정은 모두 처음이기에 가능했던 것들이다. 처음이란 울림만큼 깊고 강한 것도 없다.

그렇기에 그 두 번째부터는 무뎌질 수밖에 없다. 시큰둥하게 로딩을 기다리고 너클즈도 당연한 듯 고른다. 익숙함이 처음의 울림을 앗아가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첫 경험의 짜릿함은 사라지고 반복의 지루함만을 느끼게 되겠지. 첫 연애는 달콤한 좌충우돌이지만 두 번째부턴 경험의 답습에 불과한 것처럼.

나체 사진이 박힌 성인광고지 주우며 가슴 졸였던 사춘기 소년. 그는 이제 없다. 그것을 숨겨두고 몰래 꺼내보는 일도 없고, 광고지 보고도 시큰둥하니 가슴 돌릴 만큼 무뎌진 성인 남성만이 있을 뿐이다. 설사 관심 가져봤자, 광고지의 여자를 보고 어? 나 인터넷에서 저 은꼴 봤는데, 하며 웃을 정도뿐이다. 옛날에 심장 쾅쾅 뛰게 한 벗은 사진 보면서도 요즘은 별로 야하지도 않구나 하면서.

결국 무뎌진 것이다. 하드코어 무삭제 포르노도 시큰둥하니 10초 뒤를 연타하게 되었다. 이 나이쯤의 섹스엔 끓는 욕정이란 이름이 어울리는 젊은 날의 초상은 없다. 아주 차분한 마음으로 애무와 삽입, 사정에까지의 수순을 밟는다. 아랫도리가 머리보다 먼저 나가는 일도 없다. 헤매지도 않는다. 이 모두가 가슴의 떨림이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질주하지 않는 심장에 위화감도 느끼지 못한다. 성에 무뎌지는 것은 그런 법이다.

이런 나를 보며 내가 이상한가도 했다. 섹스다운 섹스가 없었다. 섹스의 목적은 사랑이고, 또 성스러운 수태를 위함이지 않나. 2세의 탄생. 사랑의 결실. 기뻐할 축복. 이런 것들이어야 했다. 그런데 나만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랑의 풋풋함은 사라지고 2초의 오르가즘을 위한 갈구뿐이었다.

나의 섹스는 섹스가 아니다. 내 추한 모습에 자괴감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었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임신했다는 익명 글을 본 순간까지.

남치니랑 콘돔 없이 하다가 임신 했어요....아.......미친...ㅡㅡ........아존나씨발 썅개좃같네

그 순간 탄성이라도 질러야 했을까.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이 여자도 임신을 놓고 아존나씨발 썅개좃같은 일이라잖아? 기뻐해도 충분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건 내 쪽만이 아니었던 것 같으니까.

세상이 미친 거구나. ㅡㅡ같은 표정 지어도 전혀 이상할 것 없을 테고. 그런 말 하는 나도 미친놈일 테고. 결국 미친 세상 속의 미친놈이 한마디 해야 한다면 이것 밖에 없으리라.

“아존나씨발 썅개좃같네.”


어느새 침대까지 넘어왔나 기억나지 않는다. 침대 시트를 질펀하게 적시는 것이 우리의 땀인지, 분수처럼 터진 미소의 절정인지도 모르겠다. 하복부에서 퍼져나가는 아찔한 쾌감에 이성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섹스였다.

결국 미소의 목적은 처음부터 섹스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홍연규와의 섹스. 그 지명의 이유는 일단 제쳐놓는다 치고, 행동만 놓고 보면 참 교묘하고 간교했다. 조종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예전부터 생각해뒀는데 때마침 나란 놈은 열등감과 죄책감의 분위기를 퐁퐁 풍겨댔으니. 미소로선 이걸 이용하자 싶었을 테고 몇 시간의 술자리는 그것을 찔러보기에 충분했을 터. 그리고 난 예상대로 못 이기고 오피스텔까지 왔다.

아마 이렇게 생각했겠지. 얘, 내 말 거절 못하네?

그 이유가 열등감이란 것을 모르진 않을 거다. 초중고를 같이 보냈으니까. 만일 정말 모른다면 멘사에 희귀 표본으로 수집을 원할 만큼 IQ가 낮거나, 기억상실증의 드라마 주인공이 되었다거나 할 거다. 많은 남자를 손짓 하나로 흔들어놓던 여자는 거기서 한 발을 더 나아갔다. 지난 시간의 공백이 더 이상 비어있지 않음을. 죄책감이 공백을 메워버린 것을 눈치 챘다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에는 추측에 불과했다. 그러나 가정만으로 충분했다. 확답을 원하는 찌질이조차 이젠 심증을 굳힐 수 있었다. 물증? 있지. 그 노래. 올드 슬럿 엘레지. 그 노래를 틀은 것이 확고한 물증이다.

결국 그 끝은 이 모양 이 꼴이다. 이 이상의 가식과 거짓은 불가능하다. 난 거부의 무기 하나 없는 맨 몸이 되어서 미소가 원하는 대로 먹힐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약탈 아니면 강탈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 대상물이 섹스란 것이 참 어울리진 않지만.


두 번째 사정에 임박하는 것과 사정하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미소는 그 조짐을 캐치하자마자 잔인할 정도로 힘을 주었다. 중력에 역행하는 질주가 미소를 꿰뚫었다. 좁은 길을 꾸역꾸역 채우는 감촉이 무어라도 되는 것인지 미소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달콤한 신음성을 내질렀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수고했다며 내 머리 쓰다듬는 것에 황망히 천장만 볼 뿐. 미소는 아무렇지 않게 제 몸을 빼냈다. 그리고 다리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능숙히 막았다.

희뿌연 점액질로 뒤덮여있던 아랫도리가 침으로 범벅이기 시작했다. 아주 확실한 애프터서비스에 남녀의 역할이 바뀐 것은 아닌가도 했다. 그래 보이겠지. 남자는 흡사 강간이라도 당한 듯 멍청하니 동공을 풀어내고 있는 반면, 여자는 비스듬히 누워 담배 한 대를 꺼내 무니. 이건 뭐라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왜?”

담배를 반쯤 태우던 미소가 물었다. 그녀는 내 멍청한 표정을 요리저리 살피며 한 마디 했다.

“얘가 복상사라도 오나. 너 왜 혼 빠지는 얼굴 하고 그래.”
“왜….”

더듬거리면서도 말했다.

“왜, 그랬어.”

미소는 다음 한 모금을 빨며 날 마주했다.

“너 이런 사람 아니잖아.”
“뭐가.”
“꼭 말로 해야 돼?”

미소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담배 한 대를 다 태워버린 후에야 입을 열었다.

“나 원래 이런 여자야.”

대답의 연체는 주저함이나 서글픔 때문이 아니었다. 너무나 당연한 질문에 생긴 의아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 질문은 미소에게 있어 너 여자지? 하는 질문과 같았던 것만 같았다.

“나 원래 섹스 좋아해. 남자 없인 하루도 못 자.”
“그래서 누구랑 해도 상관없다는 거야?”
“어. 상관없어.”
“…그게 나라도 상관없는 거였고.”
“그건 아닌데.”

내 표정은 아마 뭐라 표현 못할 만큼 엉망이지 않을까. 미소는 나와 달리 아주 정상적인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린 친구잖아. 동창이고. 게다가 그냥 친구야? 부랄 친구, 어머. 나 좀 봐.”

미소는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러니까, 에. 맞아. 소꿉친구. 특별하지.”

점점 더 알 수가 없었다.

저 웃음이 이해가지 않는다. 말도, 표정도, 행동도 이해 가지 않는다. 미소는 가만히 누워 내 머리칼을 정리해 주었다. 광란일 만치의 정사였기에 땀투성이가 되어 엉망이었다. 미소는 머리칼을 정리한 후에 내 가슴에 안겼다.

“한 번 더 하자.”
“…뭘.”
“꼭 말로 해야겠어?”

키들거리면서 말을 잇는다.

“직접 듣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엉큼하게. 남자들, 여자가 야한 말 해주면 그렇게 좋아하더라니.”

갈수록 심해지는 표현에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이건 아무리 봐도 현실성이 없었다. 그러나 미소는 실제로 그리 존재하고 있었다. 자신을 철저히 비하하면서 존재했다. 거짓으로 꾸며낸 것이라 생각하고 싶었지만 실제로도 그리 보였다. 미소의 표정 또한, 자신이 정말 그렇다고 믿는 표정이었다.

“왜 그렇게 말해?”

다음 말을 입에 담았다.

“왜 그렇게까지 자길 욕해? 왜 그래, 너.”

그러자 정말 간단하게 대답이 돌아왔다.

“나 원래 그런 여자였다는데 무슨.”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으레 사람이란 동물은 자기 자신을 이야기 할 때 좋게 포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미소에게선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미소의 말에선 그녀 자신이 그렇게 형편없을 수 없었다. 그저 돈을 주면 액을 빨아주고, 몸이 땡기면 다리를 벌려준다. 그 모습에 사람의 냄새는 없었다.

미소는 제 몸을 내려 볼 때마다 무엇을 느낄까. 아마 정육점이 아닐까. 소나 돼지 같은, 생전에 무엇이었다는 증거가 보이지 않는 고기 덩어리. 미소의 몸은 그 돈만 낼 수 있는 살덩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자신다움’이 없는 것이다. 이젠 돈 얼마의 가격표만이 그 살덩이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겠지. 하룻밤에 얼마나 할까? 오백? 천? 더 이상 인간이 아닌 물건일 뿐이다. 그녀에겐 사람다움과 미소다움이 없고, 나로선 그런 삶을 사는 미소의 속마음이 어떨지 도저히 상상이 안 갔다. 그러나 미소는 그 광기의 세계 속에 살고 있었다. 자신의 평가를 한 없이 깎아 내리면서.

그제야 전부 이해가 갔다. 내 몸 위로 포개진 육질 덩어리는 나와 같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옛 모습과. 그 둘은 데칼코마니처럼 나란히 포개질 것이기에 이해 못할래야 못할 수가 없었다.

* * *

늙은 창녀는 추억했다. 처녀 적 브로드웨이를 꿈꾸었던 시절을. 박복했어도 꿈이 있기에 비루하지 않을 수 있었다. 숨어들어간 소극장에서 몰래 훔쳐본 프리마돈나는 여자 눈으로 보기에도 참 아름다웠다. 그래서 언젠가는 자신도 저 자리에 서고 말리라 다짐했다. 그 마음 변치 않으리라 마음 굳게 먹고 노래를 불렀다. 그 시절의 다짐은 아직도 생생했다.

그런데 길을 잃고 말았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른다. 그녀가 걸었던 길이 시작부터 잘못된 것일 수도 있었겠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는 이미 무언가 어긋나 있었다. 더 이상 노라 존스를 부르지 않고 쳇 베이커와 빌 에반스의 리듬이 기억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대신 부르는 것은 거리의 노래였다. 매일이고 빨간 조명의 무대에 서서 흥정의 인트로로 하루로 목을 열었다. 남자들의 욕정어린 숨결과 꾸며낸 신음성의 중첩은 관객과의 소통이라고 해야 했을까. 또,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는 가수와 관객이 하나 되는 순간이었을까. 그곳이 분명 브로드웨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무대인 것 같기는 했다. 사정 후 늘어지는 남자들의 작태는 노래의 여운을 즐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문득 다리 깊은 곳에서 질척임을 느낄 때마다 이것이야 말로 관객의 눈물이라고, 그리 믿기로 했다.

어느 블루스 싱어는 말했다. 무대야말로 물질을 벗어나 에너지를 공유하는 에덴이라고. 그녀는 어느새 그곳에 온 것만 같았다. 물질밖에 없기에 정신만을 생각하게 되는 곳에서 처녀는 중년에까지 늙었다. 그 누구도 더는 그녀를 찾지 않았다. 여인은 텅 빈 무대에서 홀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소린 마치 울음소리 같았다.


올드 슬럿 엘레지의 그런 비애가를 들으며 나 또한 울었어야 했으리라. 그러나 눈물 한 방울 흘릴 애잔함도 없이 그 노래를 묻었다. 내가 보고 들은 미소의 소식도 함께 묻었다. 그날 부른 미소의 노래는 에둘러 청한 도움이었다. 그러나 난 그것을 외면했다. 훗날 모든 것을 알게 되었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래, 비겁했다. 욕을 들어도 싸다. 해결할 시도도 않았으니까. 난 그저 도피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젠 그로부터 어언 몇 년이 흘렀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원래부터 더러운 여자였다. 창녀 같은 년이다. 그렇게 자신을 홀대하며 추락을 정당화했다. 추락을 추락이 아니라 자위한 것이다. 본래부터 헤픈 여자라면 강간에 마음 아파할 이유 없고, 배신에 슬퍼할 필요 없다. 이름 모를 남자들과 잠자리 갖는 것에 자괴감 느낄 필요는 더더욱 그렇겠지. 동창들과의 섹스도 그런 종류일지 모른다. 일부러 섹스를 하고, 누구라도 섹스 할 수 있다고 자신을 몰아붙인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담긴 섹스도 아니었을 테니 쉬이 상상이 간다. 오르가즘만을 위한 공허한 움직임. 미소는 그 어긋난 섹스에서조차 더더욱 어긋나야 했으리라. 남자들이 손가락질 할 만큼의 거리의 여자로 자신을 꾸며내면서 더더욱 추락했겠지.

그 바텐더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거다. 미소에게 헤프게 몸 굴리는 것은 마지막 도피처였다. 그것으로 겨우 생의 동아줄을 쥐고 있었다. 화류로, 원 나잇으로, 헤픈 섹스로 자신을 겨우 유지하는데 그것을 빼앗는다? 그건 동아줄을 쥔 손을 잘라 버리는 짓이다.

사람은 밥이 없으면 살 수 없다. 마찬가지로 미소는 섹스 없이 살 수 없었다. 그녀를 지탱하는 것이 불특정 다수와의 섹스인 만큼 그것은 필수불가결 했다.


문득 울고 싶어졌다. 지난 몇 년간 미뤄왔던 눈물을 이제야 터트리고 싶었다. 지금의 미소는 내 옛날의 모습과 같다. 그녀에게선 추락을 곱씹으며 난 쓰레기라 자책했던 그 시절의 냄새가 났다. 다름 아닌 포기의 길. 그러나 나는 차라리 나았다. 미소가 망가지는 것을 듣고 박수치며 난 그나마 낫다고 도피했으니까. 어쨌든 그렇게라도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미소에겐 그마저도 없었다. 그녀는 지난 시간 동안 제자리만 걸음 했을 뿐이다. 자신의 몸을 학대하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생을 겨우 부지해 온 것이다.

그 순간 다시금 직감했다. 아. 이 섹스를 거부할 수 없겠구나. 단순한 섹스가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를 거부한다면 또다시 그녀를 외면하는 것이며 몰락을 방조하는 것이기도 하겠지. 바텐더의 말처럼 내가 친구라면 섹스를 해야만 했다.

그 끝에 과거와의 결별이 있음도 알고 있다. 미소에게 있어 난 어린 날의 추억이다. 동창들과 섹스하면서 학창시절의 순수함을 부정한 것처럼, 나와의 섹스로 소꿉친구 시절을 지우려는 것은 아닐까. 그 시절의 심상은 지금과 같은 잿빛의 디스토피아가 아니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신기했던 시절. 색종이 몇 장만으로도 유토피아에 온 듯 하루 종일 웃고 떠들던 때. 미소는 그 다채로운 추억에 구역질나도록 똥칠을 할 생각인 거다. 그녀는 추억에 담긴 마지막 순수성마저 부정하면서 자신을 추락시키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서글픈 것일지도 모른다. 이 도피는 머지않아 끝난다. 종막의 커튼이 내려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커튼콜이 없는 인생이니 그것으로 끝일진대, 이런 섹스는 끝을 아주 조금 늦추는 것에 불과하다. 허기에 미쳐버린 사람이 제 살 뜯어먹는다고 얼마나 버틸까. 그것이 이 섹스의 전부다. 안다, 나도 전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섹스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 것은 아닐까?


“하나만 물을게.”

최대한 각오를 담아 말했다.

“뭔데?”
“우리가 섹스하면,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 거야?”

미소가 눈을 치켜 올려 떴다.

“뭘 또. 밥이라도 사주리?”
“그 말 하는 거 아닌 거 알지.”
“뭔 소리야.”
“알잖아.”
“몰라.”
“됐어, 그럼.”

미소는 투정 부리듯 혀를 찼다.

“나 계속 연락 할 거다.”
“어?”
“문자도 하고, 전화도 하고, 편지도 하고. 아무 것도 안 끊을 거야. 그럼 어쩔래?”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지금껏 만났던 남자들이 이런 말을 했을 리는 없겠지. 미소는 나름대로 뒤끝 없는 남자들만 골라 깔끔하게 하룻밤으로 모든 것을 끝냈겠지. 그게 원 나잇의 기본이니까.

“소꿉친구라면서.”

그녀가 대답하기 전에 먼저 치고 나갔다. 어디에 이런 용기가 있었나 모르겠다.

“남자가 죄 거기서 거기라도 난 다르다면서.”
“내가 그런 말 했나?”
“안 했나. 아, 그랬을지도.”

도망치려는 미소를 붙든다.

“거기서 거기가 아니라 그게 그거라 했는데. 착각했다.”
“자꾸 이상한 소리 할래?”
“소꿉친구랑 계속 쭉 만나는 게 이상하냐?”

미소로선 여기서 끝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짓밟는 건 단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 내가 미소 같은 상황이라도 이 한번으로 끝냈을 거다. 괜스레 더 만나다간 옛날 생각 떠올라 원하던 것도 못 얻을 수 있으니까. 아마 미소도 그렇게 생각할 거다.

봐, 저 표정 봐. 움찔하네. 그리고 안 그런 척 표정 짓는 거 봐라. 아무리 지난 몇 년간 지우고 살았다지만 20년 가까운 세월을 붙어 지냈는데 모를 리 있나.

한 때는 신을 원망했다. 졸업하고서야 겨우 해방시켜준 것에 분노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감사했다. 이런 작은 낌새도 알아차릴 만큼 오랫동안 만나게 한 것에 감사하고 싶었다.

“맘대로 해.”

미소가 쀼루퉁 하게 대답했다. 이 정도만 되어도 좋다. 내가 그 흔한 남자 중 하나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좋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되니까.

결심을 굳히고 미소를 살짝 밀쳤다. 콩 하면서 침대 위로 벌렁 넘어지는 그녀를 덮치다시피 쫓았다.

“사람 놀라게.”
“그럼 이제 뭘 하지?”

미소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괜스레 분위기 잡지 마. 안 어울려.”
“…사람 무안하게 만들지 좀 마라.”
“그러면 쌤쌤으로 쳐줄까?”

미소는 깔깔 웃었다. 그리고 은근슬쩍 움직였다. 한 손으론 내 후두부를 휘어 감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가슴팍을 쓸어내렸다.

“이것으로도 부족한가요?”

이제는 다리로 내 허리를 감싸 안기까지 한다. 말투까지 고혹적인 게 뒷목이 당겨온다. 얘 스킬은 정말 가차 없구나. 내 몸의 반응을 굼뜨게 만든 앞선 사정들에 감사하고 싶다.

“컴.”

피식 하니까 또 한 마디 한다.

“다 스킵하고 바로 가줘.”

도발이다. 그러나 넘어가지 않았다.

“왜 안 해? 안 서?”

정신 차리자. 도피의 시절은 여기서 끝내자. 반쯤 날아간 술기운의 자리를 마지막 각오가 채웠다. 늦었지만 이 자리에서 어떻게든 해보자.

이미 충분히 도망쳤다. 되돌아가는 길이 고될 지라도 해 보는 거다. 어떻게? 섹스라고 다 같은 섹스가 아니지 않은가. 지금 미소의 이마에 살짝 입술을 대는 것도 그런 종류의 것이라 생각한다. 퇴폐적인 키스가 아니라 살짝 입 맞출 뿐인 풋풋함. 입을 떼자 미소 또한 조금 놀란 표정으로 이마를 만지고 있었다.

“뭐…”

의구심을 표하기 전에 입을 막아버렸다. 아까와 마찬가지의 키스. 떨리는 심장 소리 안 들리게 감추려 애썼던 첫 키스. 그 아득한 옛날의 따뜻함을 기억 속에서 꺼냈다. 그 풋풋함이 미소의 입술 위에서 그대로 재현 됐다.

미소는 이제 의아함을 숨기지도 못했다. 눈 끔뻑이는 모습이 왠지 귀여웠다.

“야.”

오늘 처음으로 미소에게 쏘아붙인다.

“누구 맘대로 키스도 스킵하래.”

애초에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목 아래 부분에 팔을 넣어 부드러이 감싸 안으며 시작했다. 옛날에 잃어버린 섹스를 이제사 되찾아보고 싶다. 서툴러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던 시절. 기억을 더듬어 그 순수함을 표하고자 한다. 어차피 섹스 해야 한다면 그 쪽이 나으니까.

사람이 한 순간에 바뀔 수 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뭔가를 얻으려면 그만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때문에 이 한번으로 미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거야 말로 도둑놈 심보다. 때문에 이 순간에 충실하려는 것 뿐, 그게 전부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미소를 더 욕되게는 하지 말자. 어차피 가식의 탈도 다 벗겨진 마당에 숨길 것도 없는데.

섹스다운 섹스.

생각해보면 원 나잇 스탠드란 이름답게 고작 하룻밤일지 모른다. 하지만 시작의 하루는 다르다 믿고 싶다. 이미 기억의 장에 무수한 도피의 기억을 쌓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조금 다른 것을 남겨도 될 때겠지. 하루 분량의 기억에 불과할 지라도, 그 의미만큼은 하루분량이 아니었으면 한다.

내 넓은 오지랖으로도 여기까지가 한계야. 그러니까 잘 좀 해. 이 바보 같은 친구야.

문득 그 바텐더가 떠올랐다. 지금 뛰는 이 가슴에 그녀가 툭 쳤던 감촉이 남아있었다. 레프리가 힘내라고 기합 넣은 것 같은 촉감에 더 파이팅의 마모루와 관장이 된 것 같다. 그녀가 건넨 보드카는 오늘 인생의 한 라운드가 끝날 테니 입 헹구라 준 것은 아닐까. 새로운 라운드를 위한 축배일 지도 모르지.

웃긴다. 갖다 붙이기는 작작 하자.

“야, 빨리 넣기나 해. 되도 않는 뜸들이지 말고.”

미소가 보채며 내 허리를 잡아 끌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끌려갈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든 버티는 게 옳겠지.

“네가 이해 못한다고 이상하다는 게 어딨어.”
“웬 똥 싸는 소리야.”

…역시 아직까진 힘들구나. 난 있는 힘을 다해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포스트모던에선 다양성을 인정해줘야 한 대.”
“뭔 소리야.”
“나도 좀 이해해 달라는 거지.”

이 마당에 웃긴 이야기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다. 연인과 잠자리 가져 봤고, 원 나잇도 해봤다. 결국 사랑을 위해서 하고, 쾌락을 위해서 하고, 갖은 섹스를 겪어 봤다. 그렇지만 친구의 마음으로 하는 섹스는 처음이었다. 결국 동정 탈출의 순간인데 능숙함은 무슨 개뿔이 능숙함. 게다가 첫 경험은 대부분 실패로들 끝나지 않나. 그저 비기너즈 럭을 기대해야만 했다.

미소의 입이 살짝 벌어진 것을 포착하고 다시 입을 맞췄다. 반쯤 닫힌 틈을 혀로 조심스레 열었다. 내 혀끝에서 미소의 혀를 느끼며 문득, 친구의 마음으로 하는 섹스보다는 이 슬로건이 낫다 싶었다.

친구의, 친구에 의한, 친구를 위한.

섹스.

* * *


언제였던지. 옛날 살던 집에 가본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더 이상 나와 미소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 옛날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1990년대를 끝내고 새천년으로 넘어간 게 바로 어제 같았는데. 그 후로 또 십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참 많이도 흘렀다.

그곳엔 그리움이 있었다. 재개발 계획에서 빗나간 다세대 주택일지라도 내 고향임은 분명하니까. 3층 연립 주택이 고향이라니 좀 이상한 모양새긴 한데 뭐, 고향에 별 게 있나. 어릴 적 살던 곳이다 하면 다 고향이지. 숨바꼭질 하다가 부쉈던 계량기는 먼지를 머금었으나 그 때 그대로였다. 바닥에 그림그린다고 빨간 벽돌 빼내던 담은 여전히 뻥 뚫려 있었다. 난 우수를 느끼며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폈다.

오묘한 기분이었다. 어릴 적엔 폴짝 폴짝 뛰어놀아도 어디 안 부딪힐 만큼 크고 넓었다. 그런데도 이젠 몇 걸음 하는 것만으로 어깨를 좁힐 만치 쪼그라들어 있었다. 소인국에 온 걸리버가 이러할까. 눈에 쉬이 닿지 않는 곳에 파놓은 낙서들을 보니 오묘함은 더했다. 난 왜 그래트다간! 이라고 낙서를 했는지 생각해보며, 삐뚤빼뚤 연규바보멍청이라 쓰인 것들을 보았다. 그리웠다. 근처에 왔다 아무 생각 없이 한 걸음이었을 뿐인데 돌아가기 아쉬워졌다. 몇 번이고 주저하다 돌아섰다.

향수를 느끼는 이유가 뭘까 싶었던 적이 있었다. 대답은 간단하다. 추억은 아름다우니까. 그런데 왜 아름답냐 물으면 아, 저, 그게. 저,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돌아오는 길에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변한다. 삶에 무뎌진다. 그러나 추억은 그대로 남아 변하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을 무시한 채로 박물관에 박제되어 그냥 남는다. 결국 변하는 나와 불변의 추억은 역설이 되어 가슴의 애잔함을 만들어낸다.

생각해보면 추억이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랬다. 대여섯 살 꼬마가 아, 세상은 아름답구나, 했으면 미친놈이겠지. 시간이 흘러 시간이 흘러 그 때의 일상이 비 일상이 되고나서야 향수를 느끼는 것이다. 비교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추억은 그냥 오지 않고 때때로 눈물을 몰고 온다. 무뎌진 삶의 물결에 놓쳐버린 것들이 그 시절엔 있다. 그렇기에 사람은 상실이건, 후회건, 그리움이건, 어떤 의미에서건 눈물 한 방울 쯤은 흘리기 마련이다. 나 또한 그렇다. 돈에 물들지 않은 사랑, 순수한 대화, 애정 어린 입맞춤, 이젠 과거에만 있는 것들을 떠올리며 눈물 몇 방울씩을 삼켰다. 추억의 찬란함에 눈부셨을 뿐이라고 자위하면서.

지금은 잃어버린 것들이 그 시절엔 있다. 그래서 아름답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시절을 더듬으며 살아간다.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인간은 어제를 품고 사는 동물이란 말도 있으니까. 추억이 사람을 살게 한다. 잘 안다. 그래서 미소의 손을 잡았다.

어제를 품는 것이 추억이라면 내일을 품는 것은 꿈이다. 가수 되고 싶다며 꿈을 노래했던 더 이상 없다. 결국 미소는 내일을 품지도 않으면서 무의미한 생만을 늘리기만 할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서 어제마저 빼앗은 것은, 뭐랄까. 자신의 마지막까지 전부 놓아버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품었다. 따먹거나 덮친 것이 아니라,

안았다.

그래. 알량한 죄의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추락을 또 방조했다간 죄책감이 더 커질 테니까. 그런 이기심의 발로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에 와선 그 마저도 확실하지 않다. 나도 날 모를 만큼 너무 먼 곳까지 와버렸으니까.

내가 모르겠는 그 뿐이 아니다. 어젯밤도 마찬가지다. 사랑과 여자와, 섹스에 무뎌진 내가 그렇게 사랑을 나누는 것만큼 이상한 일이 또 있을까. 어젯밤은 쾌락이 지워진, 상대를 위한 봉사였다. 봉사라 하니 접대같이 들리기도 하겠지만 둘은 부리부터 다르다.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하면 정말 간단하지 않나.

미소를 여자로 사랑하진 않는다 해도-기저귀 차고 서로 꺆I 거리던 사이에 무슨- 친구 이상의 존재로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형편없이 정액받이로 휘둘렸던 것을 잊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중간부턴 아무 생각도 없었다. 생각 없는 텅 빈 머리로 미소를 안았고, 안을 수 있을 때까지 안았다. 그리고 끝에 가선 그대로 골아 떨어졌던 것 같다. 내 품에 안겨 소곤소곤 자는 미소를 보니 분명 그랬으리라 생각되었다.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군데군데 기억마저 끊겨있었다. 좀 한심하네. 됐다. 소중한 사람이기에 생각보다 마음이 앞섰다 생각하자.

힐끗 시계를 보니 여덟시였다. 어찌할까 고르기도 참 뭐하다. 평범한 원 나잇이라면 반은 민망, 반은 어색한 기분이 되어 곧장 택시타고 집으로 갔을 터. 그렇지만 이 여자는 미소다. 전날 밤을 떠올리며 뭐 이따구로 생겼냐 욕하는 일도 없다. 덕분에 도주극을 벌이는 것도, 좀 더 자두는 것도 선택하기 묘한, 기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몇 선택지를 고심한 끝에 내가 택한 것은 도피였다. 일단 있어보자. 뭔가 길이 있겠지, 하는 마인드로 얼렁뚱땅 넘어갔다.

밝은 빛 아래서 보니 미소는 확실히 아름다웠다. 8등신 글래머 미녀라는 표현은 미소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기처럼 한껏 웅크리고 있으니 성적인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맞기라도 한 듯 불쌍하게 누워 있으니 보호 본능이 발동되었으면 발동되었지. 퍽 안쓰러워 몸이라도 가려주려고 이불을 찾았다. 나 또한 나체였지만 일단 여자부터, 라는 맘으로 내 몸 아래 깔려있던 이불을 빼냈다. 그리고 조심스레 덮어주려는 찰나였다.

“음.”

미소가 낮게 신음했다. 한껏 웅크린 몸이 더욱 움츠러들었다. 맨 살에 닿은 이불 감촉에 움찔한 건가. 근데 잠깐, 잠든 사람이 보통 그러나. 게다가 내가 알기로 얘만큼 잠 깊이 자는 사람도 없었는데.

“야.”

대답이 없다. 돌아온 반응이라곤 속눈썹 움찔한 것뿐이다.

“너 깼지?”

여전히 대답이 없다.

“안자는 거 알거든.”

그러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설픈 숨소리를 낸다. 턱 괴고 누워 그것을 보고 있으니 분명 유쾌한 구경거리였지만, 못할 장난이기도 했다. 어색하지 않게 일으킬 방법이 뭐 있을까 고심하다 머리를 반대쪽으로 해서 돌아누웠다. 그리고 발을 간지럽혔다. 다른 곳으론 간지럼 안타도 발은 심하게 탄다.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다.

“아, 뭐야!”

몇 초 채 간질이지도 않은 것 같은데. 미소는 번쩍 일어나더니 제 몸을 가렸다. 그리고는 미동도 않은 채 누워있는 내가 못마땅했는지 엉덩이를 찰싹 울리게 때렸다.

“아파. 왜 때려.”
“그럼 넌 왜 간지럼 태우는데?”
“굿 모닝이라서.”
“나도 굿 모닝이라 때렸는데, 왜.”

그리고는 여전히 엉덩이 보이는 내가 못마땅한지 혀를 한번 찬다.

“야.”
“왜.”
“머리 이쪽으로 안 돌아눕냐.”

일부러 시큰둥하게 왜? 하니 눈매를 흘긴다.

“육 백만 불의 엉덩이야? 자랑하는 거야?”
“아니.”
“짱구 흉내라도 내는 중?”
“아니.”
“그럼 당장 돌아누워.”
“볼 거 다본 사이에 왜 그래.”

일부러 짓궂게 말했다. 그러자 미소가 엉덩이를 더 세게 때렸다. 무슨 곤장이냐. 미소가 스팽킹도 섭렵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런 반응이 돌아오니 마음이 편했다.

“내가 네 엉덩이 보면서 말해야겠냐.”
“나 복화술 할 때 엉덩이로 말해.”

결국 세 번까지 맞았다. 사과처럼 발개진 엉덩이를 문지르며 돌아누웠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무슨 영화에서 보던 자세였다. 덕분에 헛기침이나 하는 어색함이 감돌았다. 어떻게 해보고는 싶었지만 원 나잇 스탠드 후에 이렇게 다정히 이야기 하는 일은 없다. 게다가 그 상대가 알몸의 소꿉친구라면 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계속 이러고 있을 수만도 없는데. 그러나 뭘 어찌 해야 하는지. 결국 난 가만히 있기만 했다. 그런데 미소도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힐끗 보니 창밖으로 향하는 미소의 눈빛 또한 멍하니 풀어져 있었다.

“표정 봐라. 복상사 오냐.”

아무래도 이런 상황은 남자가 나서는 것이 낫겠지. 미소가 눈을 흘겼다.

“진짜 오게 해줄까?”
“아뇨, 죄송해요.”
“나 휴 헤프너한테 갈까도 했던 여자거든?”
“그 플레이보이 사장? 왜?”
“자기 복상사로 죽게 해주면 돈 준대. 나 자신 있거든.”

한다는 말이 또. 미소의 엉덩이를 소리 나게 때렸다. 미소는 움찔했지만 뭐라 말하지 않았다.

“너 몸 좋더라.”

미소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는 넌 뱃살 좀 빼야겠더라.
“…봤냐.”

미소는 흥, 하며 조소했다.

“그래도 36인치까지 간 거 겨우 뺀 거야.”
“그래서 30까지 라도 빼셨나?”
“…33.”
“숨 들이쉬고, 남은 3인치 집어넣고. 힘 빡줘서 버텨.”
“…예입.”

우린 잠시 동안 멈칫했다 서로 맞춘 듯 웃음을 터트렸다. 가슴 속 앙금까지 쏟아낼 만큼 강렬한 웃음이었다. 숨까지 콜록대면서 한참을 웃어대고 나자 방금 전 가득했던 어색함이 가신 것 같았다.

“헛소리 말고 씻기나 해.”
“그럼 밥 줄 거야?”
“오트밀이라고 먹어봤어?”
“…라면은 없나요.”

미소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네 번째 곤장이 작렬했다. 그러나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쓰다듬어주는 것에 가까웠다.

내가 편해진 맘으로 일어서는데 미소가 신경질 적인 투로 소리쳤다.

“아 쫌!”
“왜.”
“뭐 잘난 거라고 덜렁거리면서 일어 나냐. 안 가려?”
“…시, 신라면.”
“야!”
“계, 계란….”

내 쪽으로 날아오는 베개를 피해 급히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미친놈처럼 입 꼬리가 계속 올라갔다.

일부러 찬 물을 틀어 머리부터 적셨다. 그러자 안개처럼 뿌예졌던 머리가 개는 것 같았다. 어려웠다. 참 어려운 밤이었다. 그렇지만 미소를 보니 안하는 것보단 나았지 싶다. 고작 하룻밤에 불과한 일이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고, 미소에게 도움이 되었을지도 요원하다. 지금 모습이 또 다른 가식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젠 그것도 별 상관없다 느껴졌다.

“야, 야야.”

막 비누칠을 하고 있는데 미소가 문을 벌컥 열며 소리쳤다. 그녀는 가운을 입은 채로 헐떡이고 있었다.

“으헉!”

놀라서 어정쩡하게 국부를 가렸다.

“말 좀 하고 들어와!”

미소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이한테 연락 왔어. 지금 온대. 빨리 나와.”
“뭐?”
“스폰. 이 집 주인!”
“안 온다면서!”
“아, 몰라. 그 사람 집인데 어쩌라고.”
“진짜 미치겠네.”

대충 비누를 닦아내고 소리쳤다.

“수건, 수건.”
“없는데?”
“이만 한 집에 무슨 수건이 없어!”
“아, 맞다. 있다. 일로 와봐.”

미소가 부름대로 황급히 뛰어나갔다. 이거 자칫 잘못하다간 에어장을 뛰어야 할지도 모른다. 때문에 조급해 하다가 욕실 문턱에 걸려 자빠졌다.

“꾸물 대지 말고!”

아, 내 새끼발가락. 눈물까지 찔끔 났다. 그러나 좆 됐다, 가 이미 혀끝에서 대롱대롱 대고 있었으니 아파할 겨를도 없었다. 뒤뚱거리며 미소를 뒤쫓았다. 그런데 미소는 좀 전까지 누워 있던 침대 옆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빨리 줘.”

재촉하자 침대를 가리키며 태연히 대꾸한다.

“여기.”
“아, 뭐.”
“없어. 진짜로. 그러니까 여기서 뒹굴 대서 대충 물기라도 닦아.”

어처구니가 없다. 그러나 내 몸은 이미 침대를 향해 뛰어버린 후였다. 침대 시트위에서 발버둥 치며 물기를 닦아냈다. 급하다. 빨리 빨리. 한국인 뭘 해도 빨리 빨리.

“아하하!”

그러고 있는데 미소가 갑자기 박장대소 했다. 이불 틈으로 머리를 내밀고 소리쳤다.

“왜 웃어!”
“쥐며느리 같잖아.”
“지금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오냐.”
“당연하지. 구란데.”

…응?

“뭐, 뭐라고?”

미소는 이 상황을 딱 한 마디로 설명했다.

“바보.”

그녀의 얼굴이 환한 미소로 뒤덮여 있다. 그리고 이름에 걸 맞는 미소를 마주한 순간, 머리가 상황을 이해했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이해와 동시에 미소를 잡으려 뻗어나간 팔이야 말로 이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하니까.

“오홋.”

미소가 뒤로 훌쩍 뛰며 내 손을 피했다. 덕분에 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미소는 혀를 쑥 내밀며 웃었다.

“이거 멍청한 거야, 띨띨한 거야. 베에.”

이 년이.

번개처럼 일어나 미소를 쫓았다. 알몸으로 덜렁거리며 달린다. 우스꽝스러울 테지만 난 주저 없이 강행했다. 부끄러움마저 초월한 질주는 오피스텔을 길게 가로질렀다. 미소는 창 쪽까지 도망가서야 멈춰 섰다.

퇴로를 막아선 후에 자신만만하게 밀어붙였다. 이제 넌 죽었어, 하려는데 미소의 반응은 내가 기대한 것과 달랐다. 햄스터처럼 눈 끔뻑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크게 웃으며 날 손가락질 했다.

“너 진짜 죽어.”
“아 웃겨, 뭐야. 이건.”
“야.”
“것보다, 아 웃겨. 부시맨이야 무슨. 아, 잠깐만.”

호흡을 고르며 웃음을 참나 싶었다. 그러나 눈을 맞추자 웃음이 재차 터졌다. 아래를 힐끗하는 것이 민망해 슬쩍 가리니 더 크게 웃는다.

“진짜 웃겨.”

왠지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어쩐지 지금이 술래잡기 하던 옛날과 겹쳐보였다. 그리고 늦게나마 미소가 이런 애였단 사실을 재확인했다. 그녀는 이렇게 장난스러운 방법으로 사람마음에 성큼성큼 들어오곤 했다. 그리고 뻔뻔하게 척 앉아 여기가 내 자리요! 했다. 그것에 골머리 싸매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어떤 의미에서든 소중한 사람이 되는, 참 뻔뻔한 여자였다.

그래. 그런 여자였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심장 터지는 줄 알았는데. 내 발가락은 어쩔 건데. 계속 당하는 것에 울컥해 그녀를 쓰러트렸다. 가까이 있던 피아노 의자 위에 그녀를 반쯤 눕히고 그녀의 종아리부터 허벅다리를 쓸었다.

“넌 죽었어.”

그 말로 시작해 귓가에 숨결을 불어넣자 표정이 아주 가관이었다. 당황과 웃음이 뒤섞인 뭔지 모를 표정이 떠올랐다.

“뭐야. 갑자기. 왜, 히끅!”

말끝에 딸꾹질이 터지자 더 크게 당황한다. 좋아. 이런 반응.

“너 우리가 소꿉친구 인거 아냐?”
“뭔, 히끅. 소리야. 아 왜 이래, 나.”
“소꿉친구 플래그 세우면 넌 끝이야. 너 아차 하다가 아차 싶은 수가 있다.”

물론 그럴 마음은 없지만 반 협박으론 충분하겠지. 미소의 얼굴에서 황당함이 번졌다. 그녀는 딸꾹질을 삼키고는 낭랑하게 대답했다.

“알았어, 미안해. 그러니까 느끼한 소리 하지 말고 좀 떨어져.”

이 한마디를 노렷다. 난 미소가 지었던 장난스런 미소를 그대로 돌려주며 대답했다.

“왜. 부끄러워?”
“…뭔 소리래.”

어? 봤다. 나 봤다. 이 년 방금 눈 피했지?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비웃음을 지어보였다. 미소는 그제야 당했다는 표정이 되었다.

“장난 그만하고 밥이나 먹자.”
“내가 네 식모냐.”
“말했지? 아차 싶은 수가 있다고.”

아. 좀 전에 멈췄어야 했다. 날 너무 과신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래? 아차하면 어떻게 되는데?”

미소가 다리를 쭉 뻗어 종아리부터 허벅다리까지를 더듬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내 다리 사이의 것을 살짝 건드리기 까지 했다. 아. 나 맨 몸이었지. 그제야 정신 차리며 피하려 했다. 그러나 미소는 날 다리로 휘감으며 놔주지 않았다.

“아차하면 어, 떻, 게, 되, 나, 요?”

미소의 양 손이 내 턱을 꽉 움켜쥔다. 뭐 이런 관능적인. 미소는 그 동작 그대로 날 끌어와 내 귀속에 속삭였다.

“알려주세요. 하아.”
“으흐흐.”

간지러움에 움찔거리자 미소가 키득거렸다.

“우리 한 번 더 해요. 그러면 라면에 계란 넣어서 해줄게요.”
“어, 뭐?”

내 얼굴에서 손을 떼더니 아주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 어제 같이 한 번 더 하고 싶어.”

이 역설은 뭘까. 분명 말은 성숙한 여성의 것이다. 그렇지만 얼굴에 피어난 웃음에선 어린 시절의 향수가 강하게 풍겼다.

“콜?”
“야, 야. 이젠 서지도 않아.”
“내가 있잖아. 친구끼리 도와줘야지.”

미소의 다리가 날 더욱 세게 조여 왔다.

“이런 남자 어디서 또 구하겠어.”
“이거야 원. 여러 가지로 난리도 아니네.”

짐짓 긴장 안한 척 하고 있는데 미소의 가운이 흘려 내렸다. 덕분에 다리 안쪽이 훤히 보였다. 황급하게 시선을 올리는데 미소는 그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대담히 행동했다.

서로 때때거리며 바닥 기어 다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 그렇다면 형제만큼 잘 알게 되는 법이다. 그렇기에 이 행동이 장난이란 것을 안다. 내 장난에 대한 역습인 것도 안다. 장난은 치되, 성인 여성의 관능을 섞어서. 내가 그러나 내가 읽을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어제 그녀의 가식과 상처를 곧바로 못 읽어낸 것처럼 이 말의 진의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순전히 장난뿐인지. 장난 속에 진심을 섞은 것인지. 아니면 거짓을 섞었는지.

당연한 일이겠지. 고작 하룻밤이었는데 내 촉이 그 정도까지 성숙해졌을 리 없다.

미소가 내 가슴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천천히 끌어당겼다. 서로 숨결을 느낄 만큼 가까워지자 미소가 조용하지만 강하게 속삭였다.

“어게인.”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외친 것 같이 무척이나 강직했다. 당장이라도 네,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랬다가 또 메롱, 하면 그만큼 웃긴 일도 없다.

다시 한 번 미소의 표정을 살폈다. 여전히 모르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상황의 주도권은 분명 미소에게 있었다.

아무래도 남자는 여자에게 잡혀 사는 종자들 아닐까. 애초에 유전자가 그렇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게 틀림없다. 남자들 대부분이 나랑 다를 것 없는 것 같던데. 슬픈 남자로서의 운명에 대해 자조하며 눈을 감았다.

어휴, 졌다. 그래도 이 패배는 기억하리라. 대신 피아노 치며 노래 부르는 것쯤으로 보상받고 말리라. 그리 생각하자 웃음이 새어나왔다. 별 것도 아닌 승패나 우열 놓고 무슨 생각하는 건지. 그렇지만 생각 한 김에, 노래는 언제 꼭 듣고 말리라 다짐하며 눈을 감았다.



훗날, 미소에 대한 기억을 더듬다 추억하겠지.

원 나잇 - 4부

택시가 숲을 꿰뚫어 달린다. 노르웨이의 숲이나 몽환의 숲도, 피아노의 숲도 아닌 그저 빌딩숲인 것을. 숲 안쪽 깊이만치에서 내달리며 흘러가는 풍경은 외로움의 색채를 띤다. 나무숲이라면 피톤치드 가득해야 할 텐데. 하지만 빌딩의 숲이니 무채색의 잿빛으로 쌀쌀맞을 뿐이다. 불 꺼진 오피스 빌딩들의 연속은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바람에 서로 잎 문대며 부대끼지도 않는다. 꼿꼿이 선채로 절대 닿을 리 없는 건물들은 실제 간격보다 더욱 멀어보였다.

함께 하지만 함께 할 수 없는 미소처럼.

“여기야.”

미소는 그 빌딩 숲에서 나무 한 그루를 쑥 뽑아냈다. 네온사인이나 간판 없는 오피스 빌딩이었다. 유리창이 반사광에 반짝거렸다.

미소의 뒤를 좇아 엘리베이터에 탔다. 몸은 졸졸 쫓아가고 있지만 막상 머리를 열어보면 그건 또 아니다. 머릿속에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거절하라는 문장들이 윙윙댔다. 그 중 문장 하나가 길을 찾기라도 했는지 내 입을 박차고 튀어나왔다.

“미소야.”
“응?”

그래봤자 역류한 것뿐인가. 반쯤 뽑혀 나온 문장은 본래 의도한 바대로 끝을 맺지 못했다.

“너희 집. 몇 층이야.”
“18층 눌렀잖아, 지금.”

난 비죽 새어나온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만 끄덕였다.

“응, 어. 오피스텔이었어?”
“말하지 않았나?”
“아. 그랬다. 하하.”

오늘따라 왜 이리 머저리 같을까. 머리를 쥐어뜯고 싶다. 내 두 번의 뻘짓에 미소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색함의 향이란 게 있다면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겠지. 코를 찡하게 울리고는 점차 후각까지 마비시킨다. 어색함이 점차 증식했으나 향은 이 밀폐된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나 또한 도망갈 곳이 없다. 결국 고개 숙인 채 18층까지 그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띵.”

문이 열렸다. 밀실 밖으로 나온 보람도 없이 어색함은 여전하다. 그러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딱히 할 말도 없으니까. 비트겐슈타인도 말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해선 침묵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결과 복도는 무척 고요했다. 미소의 힐 소리와 내 구두 소리, 그리고 등이 켜졌다 꺼지는 소리 뿐. 그 침묵의 회랑을 몇 발자국 걷는데 뭔가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그 때다. 처음 모텔에 갔을 때다. 이젠 얼굴도 희미해진 옛 연인과 쭈뼛대며 빨간 등을 가로질렀지. 그 때와 같은 기시감에 입술을 꾹 깨물고 되뇌었다. 난 그런 생각으로 온 게 아니야. 하지도 않을 거다.

“들어가.”

미소의 안내를 받으며 오피스텔ㄹ 들어갔다. 현관부터 무척이나 깔끔했고, 40평정도 될 것 같았다. 오피스텔이 원래 이렇게 큰가?

“연규?”
“아, 어.”
“좀 앉아 있어. 나 옷 좀 갈아입을래.”

미소는 방으로 훌쩍 들어갔다. 난 엉거주춤 선 채로 미소가 있던 곳을 좇았다. 아무래도 평정을 잃은 것이 분명하다. 머리를 쿨다운 시키며 혹시 모를 아랫도리의 욕망도 억눌렀다. 여자 집 처음 온 사춘기 소년도 아닌데 뭘 이리 긴장하는지. 나잇살 쳐 먹고 안 쪽팔리냐는 타박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잠시 맘이나 돌릴 겸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 의미 없이 오피스텔 내부를 살폈다. 이만한 평수에 삼성역 코앞이면 가격이 꽤 될 텐데. 대체 얼마나 버는 거야. 그런 생각으로 둘러보는데 과연 부티의 냄새가 폴폴 났다. 소파와 오디오, 그리고 탁자까지. 가구 수는 적었지만 내 조악한 눈으로 볼 때도 기성품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수제 제작품이다. 티 안 나게 돈 칠한 오피스텔이었다.

그렇지만 황량하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까 싶었는데 큼지막한 것들만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조막만하고 자질구레한 것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깔끔하긴 하다. 그러나 너무 깔끔한 실내는 채도 낮은 방의 색과 엮여 온기가 없어 보였다.

창가 쪽은 그보다 더해 추워 보이기까지 했다. 착각일 터인 냉기에 옷자락을 여미는데 검은 덩어리의 무언가가 얼핏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피아노였다. 슈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의 거체에 막 가까이 가려는데, 발이 멈춰 섰다. 피아노나 노래 같은 것과 멀어다 생각한 탓에 그것은 이물의 출현처럼 보였다. 그러나 막상 가까이서보니 딱히 이질적이지도 않았다. 건반 덮개 위로 쌓인 먼지는 처음의 인상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고개를 저으며 뚜껑을 열었다.

“뭐 해?”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미소는 창가 쪽 기둥에 기대어 있었다. 난 피아노를 누르려던 손을 슬며시 뗐다.

“그냥.”
“쳐봤자야. 조율 안 한지도 꽤 됐고.”

미소가 건반을 눌렀다. 도미솔의 건반을 눌렀음에도 나오는 소리는 도미솔이 아니었다. 불협화음이었다.

“줄 끊어진 것도 몇 개 있거든.”

미소가 건반 뚜껑을 닫았다. 남의 물건 건드리다 걸린 난 손가락만 접었다. 미소가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던 병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와인인데 괜찮지?”

아직 코르크도 안 딴 새 거다. 위스키 한 병을 다 비웠는데 또 마셔야 하나. 대체 집에는 언제 가라고. 그러나 미소는 내 마음도 몰라준 채로 잡아끌었다. 소파에 앉혀지는 순간까지 일절 반항 못하는 내가 한심하기까지 했다.

“안주할 게 별로 없다.”

미소가 냉장고를 뒤지며 중얼거렸다. 꿔다놓은 보리자루는 잠시 생각하다 되는대로 대답했다.

“없어도 대.”
“아, 하나 있다. 치즈.”

미소가 냉장고 위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그녀의 손엔 톰과 제리에서나 보던 조각 치즈 하나가 들려 있었다. 2천원 진로포도주만을 마셔본 내가 저 치즈를 먹어봤을까. 대답은 바로 나온다.

“나 치즈는 앙팡 밖에 안 먹어봤는데.”
“피자 먹어봤잖아.”
“아.”
“그럼 됐어. 이거나 그거나. 그게 그거야.”

미소는 힘차게 냉장고문을 닫아다. 그 위풍당당한 기세에 몸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인정하자. 이미 늦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얼마만큼은 자리해줘야 한다. 애초에 하회탈처럼 싱글벙글하는 미소를 막을 방책이 없다. 생각해보면 이 내방부터가 내 의사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이 자리까지 끌려오는 것도 못 막은 놈이 저 술잔은 막을 수 없잖아.

“듀-퐁.”

미소가 장난스레 코르크를 열었다. 난 메마른 웃음만 지었다. 좀 더 자연스레 대꾸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다. 미소와 재회한 처음 때처럼 잔근육까지 수축한지 오래다.

그 대신 의문감이 팽창했다. 생각해보면 난 거짓말을 하고 있고, 미소도 나와 매한가지로 가식을 떨고 있다. 그렇다면 모름지기 이유란 게 있어야 하지 않나. 나야 불편한 자리를 견디기 위해서였다지만 미소는 아니지 않은가. 먼저 방문을 권유한 것은 미소이니 그녀에겐 말과 행동이 어긋난 이유가 있을 터. 나 또한 어느 정도 추측은 할 수 있었다.

섹스.

가식과 거짓된 관계의 정립은 원 나잇 스탠드의 기본이다. 결국 섹스를 위한 것이라면 이 거짓된 만남도 이해가 갔다. 바텐더의 언질도 그 쪽이었고. 아마 이게 정상적인 원 나잇-웃긴다. 원 나잇이란 만남에 정상이 어딨다고-이라면 앞으로의 일도 뻔하다. 취한 남녀는 농후한 숨을 뱉으며 입술을 맞추고 살을 맞대겠지.

그러나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미소가 왜 나랑 섹스하려 한단 말인가. 나는 끽해야 ‘소꿉친구 동창생치고는 어정쩡하게 안 친한 상대’에 불과하다. 설령 그녀가 섹스중독자라 해도 길거리 지나가는 아무나 붙들고 부탁하면 백이면 백 바지를 벗을 거다. 거의 연예인 급의 미소니까 내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왜 나지? 가식을 꾸미고 몇 백의 돈을 쓰고, 자신의 집까지 알려주며 하룻밤 섹스를 즐긴다 하기엔 어긋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차라리 그 버그베어나 데려와도 됐는데.

미소가 글라스 얼마가량을 채웠다. 그리고 수염만 쓰다듬고 있던 내게 잔 하나를 내밀었다.

“자.”
“아, 고마워.”

잔에서 흘러나오는 느낌은 바에서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비싼 위스키에 비싼 와인이다. 가격 괘 되는 것들만 연달아 나오니 이젠 놀랍지도 않다. 그러나 대하는 방법은 여전히 몰랐으니. 되는대로 첫잔을 꿀떡 삼켜버렸다.

“와, 괜찮네. 이거.”

미소는 감탄의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 그 감동은 나와 별세계 이야기다. 이게 좋은 건가? 와인이란 게 원래 이런 건가. 마셔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있나.

“와인 자주 마시나 봐.”
“종종. 그냥 같이 마시다보니.”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 와인셀러까지 있다는 건 이상하지. 아까 셀러를 힐끗 본 것만 해도 스무 병 가까이 있었다. 게다가 같이 마신다는 말은 대작 상대가 있다는 소리고, 방금 전의 대답은 ‘딱히 내 취향은 아니었는데 상대 따라 마시다보니 좀 마시게 됐다’는 뉘앙스가 강했다.

내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가 여기 있구나. 그런데 왼손 약지에 반지는 없었다. 반지의 자국조차 없었다. 말투에서도 남편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혹시 위자료 왕창 받은 돌싱인가. 일단 여기선 가볍게 찔러보는 게 맞겠지.

“와인 좋아하는 거 보면 남편이 우리랑은 좀 다르게 자랐나 봐.”
“어, 뭐?”
“아니. 뭐, 나만 봐도 그렇잖아. 내가 와인하고 인연 있어 보이냐. 아니지. 솔직히 졸업 때까지만 해도 우리 그런 건 잘 몰랐잖아.”

미소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잽 치고 너무 깊게 찔렀나.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가볍게 묻는 것 치곤 질문의 단계가 너무 깊었다. 여자 손 딱 잡았더니 어, 엄마한테 물어봐야 해요! 하는 뜬금없는 대꾸처럼 논리상의 명제를 몇 개나 건너 뛴 탓이다.

아무래도 여기선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멍청하게 행동해서 실수를 가장하면 되는 게 낫겠지.

“그런데 난 여전하고 넌 와인하고 이만큼이나 어울리고. 안 그래?”

미소는 거기까지 듣고야 이해 간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와인 마시는 고급스런 취향의 남자랑 결혼하면서 변했다? 같이 자주 마셨을 테니까? 지금 이런 소리야?”
“어.”
“차라리 용 됐다고 하지. 말을 뭐 이리 돌려서 하냐. 취했어?”

똥 씹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자 미소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난 표정을 유지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실수를 지적당한 척’ 한 것도 어색하지 않겠지. 미소는 산발적인 웃음을 참으며 잔을 더 채웠다.

“결혼 아직 안 했어.”

그건 이미 알고 있었거든. 근데 잠깐. 분명 결혼은, 이 아니고 결혼이라 했다. 이 상황에서 그 뉘앙스의 미묘한 차이는 크다.

“아, 미안.”
“됐어. 그럴 나인걸.”
“만나는 남자는 없어?”

미소는 잔만 홀짝였다.

“만나는 사람은 있지.”
“그러면 나 여기 있기 좀 그런 거 아니야?”
“왜?”
“보니까 혼자 사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마주치면 좀. 시간도 너무 늦었고.”

남자들 갈아가며 술 마시고, 침대로 끌어들인다. 그런 미소에게 동거 할 만큼의 깊은 관계의 연인이 있을까. 아니, 질문을 되돌려서. 그런 연인이 있다면 그렇게 밤거리를 쏘다닐까. 결국 알고서 묻는 질문이다. 추측으로 끝내지 않고 확정적인 대답을 얻길 원하는 내 좁아터진 소갈머리여. 순간 유도심문이나 해대는 내 자신이 추하게 느껴졌다.

“아냐, 안 와.”
“그래도 모르잖아.”
“평일엔 안 와. 그러니까 내 집이다 하고 편하게 있어. 나도 내 집처럼 사니까.”

왔다, 이거다.

“너희 집 아니야?”
“응. 난 얹혀사는 중. 덕분에 누가 보기에 와인이 어울리는 여자가 됐지.”

여자 살라고 집 한 채를 내줬다. 그것도 이만한 오피스텔을. 그로서 얻는 것은 주말 이틀의 만남이다. 미소를 라푼젤로 마들어 놓은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돈이 넘쳐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미소는 그런 남자를 놓고 거리에서 새로운 남자를 찾는다. 그 모습에서 뭘 느껴야 할까. 마음의 부재?

“사실 와인 맛을 아는 건 아냐. 술이라고 있는 게 다 이런 거라서 그래.”

미소는 와인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술이면 다 똑같지. 다 그게 그건데.”

저 소리가 입버릇인가. 딱히 할 말도 거기서 거기였기에 난 치즈 조각을 입에 털어 넣기만 했다. 미소 또한 비스듬히 고개 돌린 채 창밖만 쳐다봤다.

“네가 결혼 안한 것도 알고 있지.”
“했다면?”
“십 만원 빵 할래?”
“…아니.”

억울함에 한 번 더 묻는다.

“어떻게 알았어?”
“와이프가 있으면 그 덥수룩한 머리 꼴 보고 한 소리 했을 테니까.”
“어….”
“그리고 염소수염도.”

이거는 뭐, 이길 수가 없구만. 떨떠름하여 입을 다물었다. 미소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은 얼마간 더 이어졌다.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이 느껴진다. 빌딩숲의 차가움이 햇살마냥 창을 뚫고 들어왔다. 방이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그 가운데에서 술잔만 꾹 쥔 나는, 발은 꼰 채로 까딱하는 미소는, 고개를 내리깐 채로 치즈만 씹어대는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뿌리는 미소는, 서로 더없이 멀었다.

“너무 조용하네.”

한참 후에 미소가 중얼거렸다.

“그러게.”
“백그라운드 뮤직?”

미소가 질문하며 리모컨을 흔들었다. 침묵보단 차라리 산만한 게 낫겠지. 리모컨을 조작하자 방 저쪽에 있던 오디오가 소리를 냈다. 블루지한 느낌의 기타로 시작된 곡. 흘러간 포크 록쯤일까. 멜로디는 귀에 익은데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미소가 리모컨을 놓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진짜 모르겠다. 몰라. 뭐에 힘들어 하는지. 왜 날 데려왔는지. 밤거리에서 만나는 이유도. 미소를 라푼젤로 만든 남자도. 몰라. 엿이나 먹으라지. 아무 것도 모르겠는데 뭘 어쩌란 거야.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조금 문대자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하자. 됐다. 그냥 맞춰주기만 하자. 체념의 의식이 몸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어차피 미소를 내칠 수도 없지 않나. 게다가 택시 앞에서 마주했던 속내의 편린만으로 거부의 각오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다. 엘리베이터에서의 마지막 저항 아닌 저항도 마찬가지다. 그래봤자 속절없이 휩쓸릴 거다. 그 사실을 뼈에 사무치도록 알고 있다.

왜? 미소와 재회한 순간의 죄책감 때문일 지도 모르지. 죄악은 잔에 똬리를 뜬 채로 어서 삼키라고 날 재촉했다. 이 순간의 난 소크라테스다. 독배임을 알면서도 마실 수밖에 없다.

“돈 많이 버네.”

그 와중에 내가 입 밖으로 터트린 한 마디는 참 별 것 아니었다. 계속된 속내 읽기에 지친 탓일까. 차오르는 죄책감에 항복의 백색기를 내건 것인지. 이 고요를 깨려 되는대로 내뱉은 한 마디인지도.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오피스텔을 살펴보고 내놓은 순수한 감상에 불과했다. 의도야 어쨌건 아무 생각 없이 말한 것이었고 이 한마디가 몰고 올 사태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못 했다.

수읽기하며 차근차근 넓혀가던 집 바둑은 그 한마디로 뒤집혔다. 바둑판 뒤엎는 것과 같이. 난데없는 충격적 진실과 마주해야 했다. 유도 심문으로 알아내려했던 미소의 속마음은 그렇게, 예상지 못한 타이밍에 터졌다.

“미련하게 벌기나 하지.”

미소가 술병을 기울였다. 와인이나 위스키나 물처럼 들이킨다.

“그렇게 마셔도 돼? 내일 출근은?”
“나 요즘 오프야.”
“오프?”
“전직해서 반쯤은 휴직 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전직했는데 왜 출근을 안 해? 휴직은 또 뭐고.”
“자택 근무라고.”
“어?”
“프리랜서. 몰라?”
“뭐야, 그건.”

미소는 슬쩍 웃더니 가득 차있던 잔을 또 비워버렸다. 벌컥거리는 목울대를 타고 새빨간 와인이 흘러내렸다. 그 고혹적인 모습에 내가 빨려들어 갈 것만 같았다. 뛰는 가슴을 외면하며 시선을 돌렸다. 미소는 입가에 묻은 와인을 대충 닦으며 대답했다.

“왜 벌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번다니까.”
“그래도 수입은 좀 되는 것 같은데.”
“돈 안주면 한다는 사람도 업을 테니까.”

주고받는 대화가 계속 엇갈리고 있었다.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외쳤다.

“대체 뭐 하는데?”
“궁금해?”
“어.”

아무 생각 없이 튀어나온 질문. 그 대답은 반쯤은 예상했으면서 예상 못한 것이었다. 그 탓에 나 또한 양념 반 후라이드 반처럼, 표정을 얼빠짐과 놀람으로 반반 채워야 했다. 그러나 나는 곧장 그 표정을 짓지도 못했으니. 그 이유는 미소가 보여준 웃음 때문이었다. 조소도 아니고 비소도 아니다. 순수한 웃음 그 자체였기에 왜 웃는지도 이해가지 않는다. 게다가 이어진 말과의 위화감에 잠시 멍청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부.”

바로 이해하기엔 표정과 말의 갭이 너무 크다. 저 정부가 행정부를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단어의 의미를 몇 번이나 곱씹으며 미소와 눈을 맞췄다.

이건 진심이다. 미소는 그 정부를 말하고 있었단. 돈 깨나 있는 양반들이나 둔다는 숨겨둔 애인. 오피스텔에 들어오며 그 조짐을 못 느낀 것은 아니었다.

“노, 농담이지?”
“콜걸이야, 나.”

미소는 잔을 기울이며 또 말했다.

“소속이 없으니 프리랜서 콜걸이지만.”

미소는 그것으로 설명을 끝냈다. 아, 그래. 정부라면 보통 화류계 쪽 여자가 많지. 그래 안다. 그래, 나도 화류계가 뭔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도 아니고. 그래, 그래서 미소가 화류계에….

자택 근무라고.

본래는 가게 소속으로 술 따르는 아가씨. 그러나 누군가의 정부가 되면서 자택 근무로 전직. 술집 아가씨에서 성 안의 라푼젤이 되는 것도 전직인가. 그런데 그 성은 첨탑처럼 높지도 않고 창살조차 없네. 라푼젤은 밤마다 성을 빠져나가 남자를 만나고, 주말의 왕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옛 손님들 만나기엔 오히려 더 좋겠지. 그래서 프리랜서 콜걸이다?

“이 쯤 말했으면 이제 코난 흉내는 그만 두는 거지?”

해맑은 웃음이 다시 이어졌다. 뼈 있는 한 마디에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이제 짠.”

멍청하게 시키는 대로 잔을 들었다. 아, 미소의 것은 업무용 웃음이 아니었구나. 접대용 미소였구나. 수많은 남자들과 잔을 나누며 그들을 쥐락펴락 했던 여자가 발하는 기세는 참 거대했다.

“나 비싼 여잔데 너라서 특별히 DC 했다. 백 퍼센트 DC. 그러니까 다 마시고 가.”

잔이 깡, 소리를 내며 짧게 울었다. 난 프리랜서 콜걸이 이끄는 대로 술을 들이켰다. 지금 마시는 것이 술인지 본든지, 아니면 모래인지도 모른 채로.

멍한 머리를 필사적으로 붙들었다. 어느 자택 근무자의 집에서 오디오가 울었다. 절정에서의 폭발은 흡사 오열하는 것처럼 들렸다. 문명이여, 나대신 울어주어 고맙다. 귓가에서 윙윙대는 울음소리에 순간적으로 뭔가가 번뜩였다.

An old slut's elegy늙은 창녀의 비가.

기억난다. 그런 제목이었다. 저 소울풀한 코러스 부분을 듣자 뒤늦게 생각이 났다. 이 노래를 처음 접했던 것이 원곡이 아니었기에 못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내리깔리는 기타 소리가 내 마음을 더욱 낮게 깔았다. 그리고 음울함에까지 더 나아갔다.

이게 정말 우연일까. 그렇다면 신에게 뻐큐 한 대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건 아닐 거다. 저 가면 같은 웃음을 보면 일부러 틀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정말 얄궂다.


기타의 비브라토가 진도 8 만큼 강렬해서? 노래가 히스테릭하다 할 만큼 높아서? 내 영업용 미소가 접대용 미소의 숙련도를 이겨내지 못해서? 이유야 뭐든 상관없겠지. 뱀 굴인지 알면서도 쿡쿡 찌르다가 뱀이 무더기로 튀어나왔다. 그래서 결국엔 왕창 물렸다.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그렇다면 난 이제 메두사 같은 표정만 지으면 되나? 그것도 별 상관없어 보인다. 이미 비슷한 표정 짓고 있는 것 같으니.


* * *


졸업 여행 중 기억나는 건 많지 않다. 다만 그것에 교장의 실수가 있었다는 건 기억한다. 무슨 이유에선지 졸업 여행을 연도가 바뀌고 나서야 떠난 것이다. 수능 점수는 일단 제쳐두고 해방감에 신난 고3들을 모아놨으니 뭘 어쩌겠나. 이젠 합법적으로 술 담배 할 수 있고 곧 졸업인데 뭐? 좃까 씨발!을 외쳤던 놈이 반장이었던 판국이니 교장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하겠다. 결국 졸업여행은 숙취여행으로 변질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결말만 이야기하자면 나 또한 내 토악질의 흔적을 뒤지며 뭐가 위액이고 뭐가 소주일까? 싶을 만큼 마셨다. 그 비율은 7:3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소설의 결말을 알고 있다고 책을 읽었다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좀 더 시간을 돌려 그날의 밤을 더듬어봐야 할 것 같다.


기억하기론 장기자랑이 있었다. 그렇지만 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리하지 않았다. 노래 좀 부른다 싶은 애들이 나오 자리가 장기자랑인데 미소가 안 나올 리 없었으니까. 설사 미소가 원하지 않는다 해도 주변 것들이 팔밀이 할 것은 뻔했다. 어지간한 아마추어는 찜 쪄 먹을 노래 실력에 데뷔도 이미 초읽기에 들어갈 무렵이었다. 아이들 말로는 그랬다. 그래서 가고 싶은 마음이 더더욱 생기지 않았다. 이미 중학교 때 한 번 세이렌을 만나 수장 당했는데 또 뭘? 차라리 플라잉더치맨이 되어 망자의 함에나 타라고나 하지. 내가 방에 틀어박힌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밤이 되어 들떠있던 녀석들은 숨겨놓았던 술을 꺼냈다. 술 맛도 모르면서 호기심에, 또 허세에 한잔씩들 하며 슬슬 취해갈 무렵. 누군가 여자들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수험생활하며 볼 거 다 보아 여자보단 계집년에 가까운 애들이었지만 미소는 아니었던 것 같다. 거의 마돈나로 대우받는 대화를 한 귀로 흘리며 난 술잔만 거푸 비웠다.

그 무렵 미소와 나의 관계는 변해 있었다. 미소는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아무리 밀쳐내도 다시 또 다가오던 미소이니 뭔가 변해다 느끼긴 했다. 내가 막 대해서겠지. 그 무렵엔 그렇게 생각했다. 볼 때 마다 열등감이나 키워줬으니까 거북하기도 했다. 그래서 되바라지지 못한 짓도 많이 했다. 그 결과 내가 좀 심했나 하는 미안함도 없잖아 있었다. 껄끄럽긴 했지만 살짝 죄책감이 있었단 소리다.

그렇기에 남자 방에 이끌려 온 여자 무리 속에서 미소를 본 순간, 내 얼굴이 약간의 죄책감과 다수의 열등감으로 범벅되어 있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오늘의 가왕이 왔다는 환호 속에서도 결국 난 뻘쭘히 있을 수밖에. 난 주변으로 물러나 몇몇과 시답잖은 농담만 주워 담았다. 그러나 이내 그것마저도 질려가던 찰나 누군가 외쳤다. 앵콜! 한번만 더 불러줘. 공연 중간의 인터벌 같은 환호성에 묻혀서, 자리 피하려던 찰나 반장이 소리쳤다. 취해서 븅신이 되어있어도 끝까지 반장이었다.

“조요옹!”

그리고선 이제 미소의 라이브도 듣기 힘들 테니 경청하자며 외쳤다. 네가 무슨 로디냐. 반말 사이에 추임새처럼 딸꾹 소리를 넣으며 자리를 만들었다. 노래가 무슨 경청이냐. 수업이냐. 하면서 나가려던 찰나였다. 스무 명의 눈 마흔 개가 날 바라보고 있음을 그제야 눈치 챘다. 쟨 왜 나가? 하는 눈빛에 ‘미소 노래 안 듣고’가 생략되어있음은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눈치 보며 슬그머니 앉자 미소가 대신 일어났다.

미소는 짧게 기침하고는 노래를 시작했다. 모르는 노래였다. 그 때의 표정을 떠올려보면 모두들 모르는 곡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미소는 멈추지 않았다. 우리 또한 감동을 덜 받지도 않았다. 방을 쨍쨍하게 울릴 정도의 열창에 분명 무반준데 이 반주가 있는 느낌은 뭐지, 할 정도였다. 고작 일 분가량이었지만 감동은 일분 치를 능가했다. 모두들 얼빠진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난 메마른 웃음을 짓는 미소를 뒤로하고 방을 나왔다. 이미 옆방에서도 술자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술 모자랄 걱정 안 해도 되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마시면서 생각했다. 역시나 격차는 여전하구나. 구태여 지방 잡대라도 가야하나 고민하던 나로선 서울 소재 대학 가면서도 노래까지 잘하는 미소가 너무나 커보였다. 그렇지만 별반 새로울 것도 없었다. 그녀와의 이런 우열관계는 하루 이틀 일도 아닌 만큼 좌절에도 익숙해져 있었다.

한바탕 마시고 술 좀 깨려 콘도 밖을 나왔다. 슬슬 빈대떡 한 장 부칠 것 같아 나온 걸음이었다. 그러나 겨울바람을 쐬다보니 술이 깨긴 커녕, 만일 토하면 빈대떡 반죽이 얼어버릴 것만 같았다. 강원도의 한겨울 날씨는 매서웠다. 더 못 버티고 콘도로 들어왔다. 넓은 홀을 가로지르는데 저 쪽에 미소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고개 숙인 채로 홀 가장자리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많이 마셨냐. 여기서 뭐해. 들어가자. 내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을리 있나. 나는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린 채 바삐 걸었다.

“홍연규.”

부름에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미소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덧붙였다.

“어디가.”

방금 전에도 노래하는 목소릴 들었는데도 거의 반년 만에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 같았다. 실제로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른 지도 그만큼 됐었으니까. 미소는 표정 없는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소는 그 이름처럼 늘 우음을 달고 사는 사람이었다. 서로 대화 없이 보낸 반년, 그리고 그 이전까지의 모습만 봐도 늘 활기찬 웃음을 지었다.

“혼자 뭐 하고 온 거야?”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감정이 없어보였다. 사람이 아닌 인형 같았다. 그 덕분이 아니었다면 대답도 못했겠지.

“산책.”
“많이 마셨어?”
“그런가봐. 아직도 어지럽네.”

미소는 엉덩이를 당겨 공간을 만들며 말했다.

“여기 앉아서 쉬어. 그리고 나 올라갈 때 같이 들어가.”
“그냥 지금 가지 왜.”

그러자 미소는 옅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귀에 들릴락 말락 할 만큼 작게 중얼거렸다.

“안 될까.”

난 하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 웃음은 다소 힘 빠져보였지만 미소가 늘 짓던 미소였다. 잠깐 미소답지 않다 다시 미소로 돌아온 것 같았다.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았다. 분명 술기운 덕분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때까지 막대했던 것을 잊고 그토록 뻔뻔하게 행동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앉았어도 뭔 할 말이 있을까. 몇 년이나 외면한데다 요 근래는 말도 안 해봤는데. 그래서 입 다문채로 가만있었다. 미소는 그런 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왜 그래.”
“그냥. 에헤헤.”

보아하니 그녀도 술을 좀 마셨던 것 같다. 뭐야, 하며 눈살 찌푸리는데 대뜸 이렇게 묻는다.

“아까 나 어땠어?”
“뭐.”
“노래 있잖아, 노래. 어땠냐고.”
“아아.”

왠지 모를 기시감을 뒤로하고 대답했다.

“그거 노래 좋더라.”

대답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걸 물어본 것이 아니잖아. 그렇지만 미소는 따지지 않고 내 대답을 받았다.

“그치? 되게 시적이잖아. 요즘 마음에 와 닿더라고.”
“근데 그 노래 아무도 모르는 것 같던데.”
“어쩔 수 없지. 최신 가요도 아닌데.”

그리고선 혼자 킥킥거린다.

“어땠는데, 그래서?”
“뭐, 또.”
“감상 말이야. 내 노래에 대한 감상.”

역시 그 쪽으로 갈 줄 알았다. 순간적으로 고심했다. 예전 중학시절처럼 반쯤 조롱 담아 대답해야 할까. 아니면 솔직하게, 잘 부르더라, 멋있어, 그렇게 대답해야 할까. 솔직히 그 둘 모두 불가능했다. 조금은 머리가 컸는지 예전처럼 속 좁게 대답하는 것은 아니다 싶었고, 열등의식을 완전히 이겨내기엔 덜 컸던 것 같다.

“미안. 난 영언 꽝이라 의미 하나도 모르겠더라.”

그래서 결국 택한 것은 도피였다. 나도 안다. 한심했겠지.

“그래, 그렇구나.”

미소는 길게 코트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것으로 잠시 동안 대화가 끊겼다. 내 도피성 발언의 위력을 여실히 실감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 후 서툴고 조심스럽게 화제를 새로 꺼낸 것은 미소였다.

“그런데 대학 어떻게 할 거야?”
“글쎄. 모르겠다. 지잡대 여기저기 찔러보면서 재정 보태줘야 하나 싶고.”
“이제 정시밖에 안 남았잖아.”
“그것도 구태여 꼭 해야 하나 싶어.”
“대학에 별로 관심 없나봐.”
“그럴지도. 좀 천천히 생각해보려고. 어딜 가나 똑같을 텐데.”

팔짱을 끼는데 되도 않는 허세로 보일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얼핏 듣기로 미소는 명망 있는 음대에 합격했다고 했다. 그런 그녀 앞에서 지방대 타령 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울 뿐이겠지. 괜스레 무안해져 패딩 속에서 주먹만 쥐었다.

“근데 우리 되게 오랜만에 이야기 하는 것 같다.”
“그러게.”
“앞으론 이렇게 얘기하기도 힘들겠네.”
“그럴지도.”

내 쌀쌀맞은 반응에 미소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예전 같으면 헤드락 걸며 그게 뭐냐를 외쳤을 텐데. 지금까지 외면해서 그런 걸가.

쌀쌀맞게 대한 것에 큰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다. 변명하자면 난 그저 추웠고, 빨리 들어가고 싶었을 뿐이며, 왜 할 말도 없으면서 붙잡고 있는지도 이해 못했을 뿐이다.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미안함도 미소의 노래와, 대학 합격과, 데뷔 초읽기에 많이 희석 된지 오래였다. 다시금 되살아나는 열등감에 미소에게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난 어렸던 것이다. 욕하고 밀쳐내도 오뚝이 같던 미소가 왜 지난 얼마간 침묵했는지. 깊게 잘 웃는 모습이 잘 어울려 사람은 제 닮아나 보다, 했던 미소가 왜 저리도 옅고 메마른 웃음을 짓는지. 그에 대한 생각을 못했다. 졸업 여행이라는 마지막 자리에서 왜 나를 찾아 이야길 하려던 것인지. 그것들에 어떤 촉도 서지 않고, 또한 생각하지도 못했다. 눈은 옹이 구멍이오 더듬이는 피콜로 더듬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왜 그래, 오늘.”
“응?”

미소는 조심스레 눈을 치켜떴다. 그러나 술기운과 추위에 초점 흐려진 내 눈은 그녀 눈의 떨림을 못 알아차렸다.

“뭐 할 말 있어? 있음 빨리 해. 들어가게.”

훗날에야 아, 그 때 도움을 청하려 했던 것이구나, 하며 무릎을 탁 쳤지만 그 때의 난 병신 하며 머리통을 날려도 될 만한 것이었으니. 미소는 잠시 동안 고개를 떨어뜨렸다. 몇 초 후 그녀가 새로 지어보인 표정은 다름 아닌 미소였다. 너무나 해맑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

“아냐.”

미소는 웃음을 뚝뚝 흘리며 대답했다.

“역시 됐다. 아무 것도 아니야.”
“싱겁긴.”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타박하자 미소는 헤헤 웃었다. 우린 이야기를 끝내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7층까지 올라가는 내내 미소는 웃기만 했다. 그리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려는 찰나 미소가 말을 걸었다.

“연규야.”
“뭐.”
“아까 부른 노래 있잖아. 내가 그 제목 말 했었어?”
“아니.”

미소가 조심스레 말했다.

“언 올드 슬럿 엘레지.”

그리고는 부드럽게 덧붙였다.

“시간 나면 한 번 들어봐.”
“어놀드 슬, 뭐? 뭔 뜻이야?”

미소는 그 때까지도 웃는 낯이었고, 그 웃는 모습 그대로 화답했다. 그 날 대화의 종결을 고하는 한 마디였고, 미소란 표제의 기억더미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기록된 한 마디였다. 그 때 만일 미소의 고통을 눈치 챘거나, 내가 영어 좀 알았거나 했다면 대화를 그렇게 끝내지 않았을 거다.

“늙은 여인의 비가悲歌.”

여인은 무슨 여인. 구라치네 하면서 쏘아붙여줬을 테니까.


* * *


훗날 돌이켜보면 그 대화가 우리 인연의 마지막이었다. 졸업이란 종막을 맞은 후로 우린 각자의 세상으로 떠났다. 나는 군대에 갔고, 미소는 잘 모르겠지만 대학 갔겠지…하는 것이 전부였다. 관심도 끊고 연락도 끊었다. 그에 따라 미소의 기억더미 위엔 차츰 먼지만 쌓여갔다. 다신 돌아오지 않을 90년대의 추억처럼 뭔가가 더 추가되어 쓰일 일은 없어 보였다. 사실 나 또한 별로 알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그 후의 난 어땠나면, 할 이야기가 좀 있다.

자신의 추락을 목도하였을 때의 대처법엔 몇 가지가 있다. 못난 자신을 벗어나 발전하려 노력하거나, 난 원래 그런 놈이라며 체념하고 그냥 사는 것. 전자는 성장이고 후자는 포기다. 미소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 내가 나로서 살기 위해선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난 후자를 택했다. 이등병 시절 밑바닥 인생을 헤집어나가는 중이었으니 어찌 보면 자연스런 선택이었다. 나란 놈 잘 될 리 없다고 인생 펼 날 없으리라고 질책하며, 정말 되는 대로 살았다. 스무 해 남짓밖에 안 살아봤지만 아마 인생 말년엔 탑골공원 무료급식이나 받아쳐먹으면서 살겠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와중에 미소의 소식을 들었다. 말년휴가 때 동창 녀석들과의 술자리였다. 으레 그렇듯 여자로 시작되어 여자로 귀결되는 남정네들 술자리. 그 자리에 안주거리로 우연하게 터져 나온 것이었다.

“아 맞다. 나 걔 먹었다.”

한 녀석이 그렇게 운을 뗐다. 누구? 하고 되묻자 튀어나온 이름은 바로 그 이름이었다. 2년간의 군 생활 동안 차츰 잊어갔다고 생각했던 이름.

“씨발, 무슨 창년 줄 알았어. 빨아대는 게, 존나, 야. 나 정기 빨리는 줄 알았다.”

내가 굳어버린 틈에 다른 녀석도 말했다.

“어? 나도 걔랑 떡쳤는데?”

나를 제외한 몇 명이 순차적으로 나도 나도를 외쳤던 것이 우연이었을까. 친구들은 제 경험담을 늘어놓으며 동질감을 구현했다. 가만 들어보니 하이텔시절 야설이 따로 없었다. 팔공 중에서 목 아래 구멍 두 개-정확히 말해 하나는 구멍 뚫린 육봉이었지만-를 미친 듯이 빨아댔단 것부터 끈적거리는 단백질을 요플레 마냥 삼켜 마신 것까지. 혹은 요분질하며 미친 듯이 쌕을 써댄 것이나 뒤에서 꿰뚫리며 눈깔 돌아 갈만치 좋아했단 것까지. 난 한발 떨어져 관망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는 너무나도 먼 세계 이야기였다. 게다가 이 대화의 주인공이 정말 미소인지도 의심스러웠다. 말만 들어보면 퇴물 창녀에게 돈 백 던져줘도 과연 그렇게까지 해줄까 하는 수준이었으니까. 그 때까지 미소는 일류 음대 가서 데뷔 준비하는 모습으로만 기억되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씨팔년, 걸레네. 씹걸레.”

그 자리의 누가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뭐가 중요한가. 나를 뺀 네 명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 그 이후로 무슨 이야기를 했고 뭘 마셨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긴 그것도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 미소 이야기가 중요하겠지.


전역 후에 미소의 이야기를 귀 동냥질 해다. 나 자신도 내가 왜 이러나 이해가지 않았다. 그러나 기회가 되면 그녀의 소식을 물어물어 찾는 내가 있었다. 동창에게서, 같은 대학 동기생들에게서, 구글링으로. 그렇게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보니 알게 됐다. 그 술자리에서 동질자들이 했던 이야기는 딱히 거짓이 아니었다.

미소는 창녀가 아니었다. 창녀 이상이었을 지도 모른다. 차라리 미소에게 직접 들었으면 뭔가가 달라졌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난 어쩌면 진실을 피하고 원하는 사실만을 취사선택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때의 내가 충격을 받았냐 묻는다면 난 그렇다고 대답하겠다. 그러나 순전 미소의 추락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충격은 빅뱅이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축포였다. 이 열등감의 근원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미소다. 그런 미소가 나보다도 더 형편없게 된 것을 알게 된 순간, 혈류처럼 내 몸을 채우던 열등감이 사라졌다. 결국 그것은 성장과 포기에 이은 세 번째 길이었다. 척도를, 비교대상을, 기준점을 바꾸는 것.

즉, 도피다. 추한 내 모습을 숨기고 싶을 땐 더 추한 세계로 가면 된다. 이 고통 견디기 힘들면 더한 지옥 속에서 상대적 위안을 얻으면 된다. 인간은 그렇게들 삶에서 도망친다. 내가 그랬다. 미소가 쓰레기보다 더한 인간이 되자 뿌옇게 안개 서려있던 미래가 탁 트이는 것 같았다. 역설적이게도 미소의 추락이 내 성장의 탈을 쓴 도피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난 그제야 비로소 탑골공원으로 향하는 내 미래상을 끊어냈다.

제대로 살게 되었다. 사람답게 살게 됐다. 만족스러웠다. 돈도 벌고 여자도 만나고 정말 인간처럼, 인간답게 살았다. 한 편으로 미소를 외면했다. 미소는 창녀 이상의 존재로 내 안에서 남아있어야 했다. 그래야만 열등감을 잊을 수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희생양이 되었다.

혹시나 미소가 그 모습을 이겨냈을까. 그에 대해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열등감의 재발은 무서웠고, 난 미소를 묻을 수밖에 없었다. 알려고 하지 않고 기억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럴수록 난 성장하고 성은 높아만 갔다.

그런 시간이 1년, 2년 차곡차곡 쌓였다. 시간은 미소의 기억더미 위로 소담히 쌓였고 점차 미소를 잊어갔다. 그 망각의 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돈에 지치고 사람에 지치는 일상. 쳇바퀴처럼 도는 집과 직장의 반복 속에서 웃는 법을 잊어갔다. 영업용 미소와 상전 대하는 헛웃음에 익숙해졌다.

사랑의 열정도 이젠 아득해져 첫사랑의 얼굴도 희미해졌다. 버릇처럼 입에 담은 탓인지 사랑한다는 말이 밥 먹었냐는 말처럼 아무 의미 없게 들렸다. 연애라고 별 것 있나. 문자게임이나 하면서 밀당이나 하면 되지. 매뉴얼에 따라 이전의 연애 방식을 답습하기 일쑤였다. 뭐가 부족한지도 모른 채 마음이 비어간다. 그러나 텅텅 비어버린 자신의 모습이 일상이 된 탓에 부족함을 자각하지도 못했다. 일상은 메말랐고 비 일상화는 요원했다.

그것을 깨트린 것은 동창회 자리였다. 미소가 나올 리 없겠지. 그래도 모른다. 난 간사에게서 미소가 안 온다는 확답을 받고서야 자리에 나갔다. 미소의 얼굴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시점이었다.

그 술자리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변한 얼굴에서 고등학교 시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몇 마디의 대화로 그녀가 미소와 자주 붙어 다니던 단짝임이 기억났다. 그러나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애매하게 네가, 너는,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녀는 내 이름이 연규임을 기억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 여자의 이름 아냐고 물어볼까, 하며 타이밍을 쟀다. 그 때가 2차 무렵이었다. 그러나 딱히 이름을 알아낼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이미 얼큰하게 취해있었으니. 골골대는 꼴이 이름을 알아도 별반 달라질 것이 없어보였다.

“야.”

그녀는 비뚤어진 눈동자로 날 마주했다. 난 적당히 대꾸했다.

“너 좀 피곤해나 봐. 금방 취하네.”
“너 미소 이야기 묻고 다녔다며?”

약간 놀랐으나 쉬이 대처했다.

“옛날엔 그랬지. 이 물이나 좀 마셔봐.”
“왜 그랬는데?”
“그건 왜 물어?”
“왜애 그랬냐고오.”

귀찮아져서 대충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는 찰나였다.

“좀 도와주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훌쩍거렸다. 아 씨발 골뱅이. 씨발 주사. 가지가지 해라. 여기까지 와서 주정 받아줘야 하나.

그런 찰나, 그녀는 머리를 갸우뚱 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왜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꺼냈을까. 술에 취해서? 그 시절이 그리워서? 아닐 거다, 아마. 그녀 또한 죄책감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미소에게 애인이 있었다. 아는 선배였고 막 나가는 놈이었던 것 같다. 연인 사실을 숨기며 지내오다 우연한 기회에 잠자리를 같이 했다. 아니, 그런 질 좋은 것이 아니다. 술을 먹이고 강간했다. 사진을 찍었다. 동영상을 찍었다. 협박했다. 거절했다. 협박했다. 강간했다. 강간했다. 강간 했다.

쥐고 있던 생맥주잔이 얼어붙는 줄만 알았다. 그 때가 고3 때였다. 대략적인 이야기였음에도 혈관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혼자 삭히다 부모님에게 알렸다. 그들은 그 선배를 신고했고, 고소했다. 그 놈은 합의를 요구했다. 그들은 거액과 함께 찾아왔다. 미소는 당연히 거부했다. 그러나 미소의 부모님은 아니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 때문일까. 미소의 뜻과 달리 합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미소는 대학생이 되었다. 지난 고통을 잊고 새로운 삶을…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개새끼….”

그러나 그녀의 말은 그 한마디를 끝으로 멈춰있었다. 합의 이후의 이야기를 재촉했으나 그녀는 술 내나는 한숨만 내쉬었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없었다. 난 불타는 술기운에 생맥주잔을 놓았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염병, 졸라게…하. 씨발.

욕을 삼키는 순간 미소와 나의 마지막 기억이 떠올랐다. 신은 이 기회를 삼아 꼬여버린 것을 풀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린 이미 끝난 관계라 생각했는데 왜 또 말을 걸었나?

그녀와 멀어졌던 고 3 시절. 미소는 내 태도에 지친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분명 내가 병신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녀는 거머리마냥 끈질겼으니까. 우리가 멀어진 이유는, 그녀의 고통 때문이 아니었을까. 삶이 그녀를 깔아뭉갠 것이다.

졸업 여행 때 원래의 말을 붙여온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삶에 지쳐 울었다. 혼자 전전긍긍 앓는 것이 힘들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다. 소꿉친구였던 나라면 나쁘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 그러나 난 그 모두에 이렇게 반응했다.

‘뭐 할 말 있어? 있음 빨리 해. 들어가게.’

그것은 마지막 도움 요청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 내가 너무 늦었구나. 지금도 너무 늦었구나. 그러나 일은 이미 벌어진 후였다.

내 속 좁은 청춘은 미소를 밀쳐냈다. 그 때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 스스로의 발전이라 자위하며 쌓은 성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렇게나 견고했던 성은 실상 모래성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몇 년간의 성과가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짧은 시간의 소리 없던 붕괴가 참 허무했다. 차라리 종말을 고하듯 굉음 속에 무너졌으면 좀 나았을까. 바벨탑처럼.


그 날로서 난 미소를 정말로 지웠다. 미소를 기억 깊은 곳에 묻었다. 그 후로부턴 망각에의 소원이었다. 더는 열등 속에 살 수 없었다. 이제는 죄책감을 넘어서 죄악에 가까웠다. 결코 버틸 수 없었다.

때문에 잊었다. 미소의 마지막 손 내밂을 외면하고, 그저 몰랐을 뿐이라고 자위하며, 나 자신의 실수를 숨겼다. 그렇게 기억더미를 봉인했다. 기억을 지우고 싶었다. 오줌 쌌다고 요를 감추는 꼬마처럼, 난 그렇게 망각을 갈망하는 도망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 망각 속에 무얼 또 잊은 건지. 사랑을 잊고 삶에 지치며, 가치란 것을 잃어버렸다. 만물이 무가치한 잿빛 도시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요원해보였다. 그런 나날 속에서 미소를 만났다. 바로 오늘. 8년 만에 다시 본 미소는 흑백의 세계에서 홀로 색을 품고 있었다. 그 이유를 금세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무채색의 세계를 탄생시킨 창조주이자 원인이 그녀였으니까.


결국 난 거역할 수 없었다. 깔 맞춤이라도 한 듯 와인이 브랜디로 바뀌었을 대도, 만취하여 수마가 밀려온 순간에도, 거절의 힘은 미약했다. 내가 소파에 널브러져 얼마나 졸았는지는 모른다. 원래대로였다면 그대로 푹 잤을 테지. 그러나 나는 일어났다. 정신의 저 끝에서부터 피어오른 쾌락은 희미했지만 착실하게 내 정신을 일깨웠다.

그리고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린 순간 미소가 보였다. 불 꺼져 어두운 탓에 실루엣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무릎을 꿇고 있음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위치가 내 다리 사이란 것도. 벗겨진 내 다리 사이를 핥고 빠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척추를 타고 흐르는 쾌감에 내가 사정하리란 것 또한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거부할 수는 없었다. 내 희뿌연 쾌락의 잔재가 미소의 입 안으로 전부 빨려 들어가는 순간에도 난 무력했다. 취기 때문에 손 하나 못 가눠서야. 그리 변명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내 손은 멀쩡히 움직여 그녀의 머리를 움켜쥔 채로 사정의 순간을 맞았다. 마치 꼭지라도 열린 듯 콸콸 쏟아진 것들이 미소의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넘어갔다. 그녀의 빨아들이는 힘 때문인지 엉덩이가 들렸고 몸이 움찔거렸다. 더 싸라고 외치는 듯이 하초를 핥아대는 혀 놀림에 사정은 꽤나 길게 이어졌다.

너무 깊게 잘라 알맹이 다 쏟아낸 거북알과, 한 입에 삼킨 그 때처럼. 액 한방울까지 다 빨아먹는 미소 앞에서 멍청한 표정으로 쾌락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그 때처럼 울지 않은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껏 눈물 토해낸 아랫도리는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불가항력이었다.

원 나잇 - 3부

사춘기란 참 이기적이다. 나의 변화는 성장이지만 친구의 변화는 변절이다. 타인의 변화에 인색한 것은 어느 때나 다 그렇다지만 내 사춘기는 더욱 심했다. 결국 내 실수는 예정되어 있었고 내 청소년기 또한 비뚤어질 수밖에 없었다.

기억더미에 인덱스가 없는 탓에 정확히는 모르겠다. 언제부터 나와 미소의 격차가 벌어졌는지. 초등학생 때 이미 멀어졌던 것일 수도 있다. 미소는 그 때에 조차 친구 많은 인기인이었으니까. 어쩌면 중학생이 되어서 그 격차가 더욱 커진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나 이렇게 늘어놓다보니 시점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격차가 생겼고, 내가 마침내 인식해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어제까지 당연했던 일상이 오늘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일상의 비 일상화다. 그것은 인지만 하던 것을 새로이 인식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엔 그 인식이 좌절이었을 뿐이지.

인식의 날은 우연하게 다가왔다. 미소가 학교 축제에서 노래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당시의 나로선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 별 관심 갖지 않은 탓에 미소의 스테이지는 예정된 것이었음에도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때문에 미소의 변화-엄밀히 말해서 내가 보지 못한 일면이었지만-는 우연하게 다가와 충격으로 터졌다.


중교 축제의 허름한 가설 스테이지. 관객 대다수는 시큰둥한 태도로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러나 미소가 스테이지에 오른 순간 천지가 개벽했다. 싸구려 반주기와 맞춰 부르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목소리였기에 순간 마법인가 했을 정도다. 그 순간 미소는 세이렌이고 우리는 난파선의 선원이었다. 그 놀람에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킥이라도 당해봐야 알 것 같았다.

“쟤, 걔 맞지? 너희 아랫집 산다는.”
“아, 어어.”

친구의 질문에 황망히 대답했다. 그 뒤에도 몇 마디를 더 나눈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그 순간의 충격뿐이다. 이쪽보다 반 미터밖에 높지 않던 스테이지는 일순 K2보다 높아 보였다. 스테이지가 쭉쭉 올라가는 착각은 곧 내가 백척간두로 추락하는 느낌을 주었다. 그 때 내 귀에서 윙윙댄 것이 갑작스런 이명耳鳴인지, 아니면 음향기기의 하울링Howling 이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관객들의 환호였을 지도 모르지.

난 곧바로 자리를 떴다. 미소의 맑은 노래가 디스토션에 걸린 듯 갈라졌기에 귀를 막았다. 거의 뛰다시피 걸었다. 스테이지에서 멀어져도 실제 멀어졌단 느낌은 받지 못했다. 억만 리에 한 걸음 더해봤자 별 차이 없는 것처럼 이미 미소는 먼 우주의, 별 세계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난 무언가에 쫓기듯 집으로 도망쳤다. 그러다 우연히 거리의 쇼윈도에 비친 한 소년을 보았다. 잘난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웬 평범한 놈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날 미소는 “나 노래 부르는 거 봤어?” 하며 인사를 건넸다. 봤다고 하자 미소는 어땠냐고 물었다.

너만 잘났지?

그 한마디가 나도 모르는 사이 입에서 터져 나올 뻔 했다.

화가 났다. 배신감이 들었다. 항상 옆에 있고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이미 나 따윈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물론 친구의 성장을 기뻐해줘야 했겠지. 그러나 난 너무 어렸다. 친구의 비상보다는 같이 나락에서 뒹굴길 바랐으며 나보다 앞서나가지 않길 바랐다. 훗날 생각해보면 이는 나의 평범함에 상처 받고 싶지 않던 발버둥이었다.

“응?”

감상평을 재촉하는 미소의 행동엔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비뚤어져 있었기에 그녀 또한 비뚤어져 보였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자알- 하네.”

반쯤 비틀린 조소였다. 그러나 미소는 그 사실을 모른 채 활짝 웃었다. 그 미소를 마주한 순간 난 부서졌다.

그 웃음은 날 추락시킨 것에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음이었다. 내 좌절을 모름이요, 관심 갖지도 않음이며, 우리의 격차는 원래부터 당연했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미소에게 있어 우리의 우열관계는 미소에게 일상이었다 느껴졌다.

분명 그때 우리의 키는 비슷했다. 그러나 그 때 만큼은 날 내려 보는 것 같았다. 가증스러운 배신자. 마음 비틀려 있던 난 그렇게 분노했다.


그 후로 미소의 존재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또래 여자애들보다 큰 키에 외모도 성숙하다. 친구관계도 좋았으며 노래 실력까지 뛰어나다. 예전부터 그랬겠지만 새삼 다시 느끼니 이토록 완벽한 여자도 있을까 싶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는 옆에 있는 것조차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와 아이스크림 물고 떠드는 일상도 그 무렵부턴 불가능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녀 옆에만 서면 날 찌질이로 만드는 열등의 마법이 펼쳐졌으니까.

사실 미소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분명 평소처럼 날 대했다. 그 모습은 어제의 일상과 그대로 일치했다. 그러나 내가 변한 탓에 미소와의 일상은 더 이상 일상일 수 없었다. 나는 미소에게서 점차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여전히 각각 1층, 2층에 살았지만 시간대만 잘 맞추면 하루 종일 얼굴 안 마주칠 수 있었다. 미소를 피해 다니며, 그녀가 한 발자국 다가오면 열 발자국 물러났다. 어렵진 않았다. 때때로 미소가 무슨 일 있냐 물어도 없다고 대답하면 그만이기도 했고.

열등감은 화선지에 떨군 먹처럼 내 몸을 스멀스멀 번져가는 중이었다. 내가 미소보다 못하고 평범한 놈이라 한탄한 만큼, 농담이 번져나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중학 3년을 거치고 교복을 바꿔 입었다. 미소의 집은 이사를 갔다. 미소와 인연은 여기서 끝인가 했다. 그러나 신은 미소와의 인연을 끊지 않았다. 난 고교 3년도 미소와 같은 교복을 입어야 했다.

처음엔 아예 남남처럼 지내려 했다. 그러나 미소의 붙임성은 그것을 뚫고 들어왔다. 겨우 밀쳐냈나 싶으면 또 은근슬쩍 다가온 후였다. 가공할만한 끈질김이었다. 몇 번이나 다투고, 푸닥거리 하고, 내친김에 욕까지 해 봐도 그 때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미소는 유들거리는 미소로 다가왔다.

에스메랄다와 노트르담의 꼽추.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사람에게는 나름의 역사가 있다는 격언을 개소리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관계. 그 예가 우리였다. 꼽추가 아무리 종을 잘 친다 해도 꿈같았던 하룻밤을 반주삼아 자위질 할 놈에 불과하며, 온달이 숙련된 나무꾼이라 해도 내세울 거라곤 신부 잘 들였을 뿐인 병신 머저리에 불과했다. 미소와 함께 있으면 나는 늘 열등아였다. 사람들 또한 달리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남들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믿고 싶었던 거겠지.

그렇기에 난, 그 시절의 나를 이해하며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한다. 미소의 호의를 무시한 것을, 쉼 없는 짜증과 주저 없는 욕설을, 정신적 한계점에서의 쌍소리를, 미소를 기만하던 뒷담화를,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꿈에까지 찾아오는 열등감을, 미소가 이해 못한 좌절감과 턱 끝까지 차올랐던 한계점을 변명한다.


그 결과 고 3 무렵엔 이미 갈 때까지 간 후였다. 한 반 같은 공간에서 말, 눈길 교환 하는 법이 없었다. 늘 웃으며 다가오던 그 친근감이 사라진 것이다. 그 무렵엔 미소가 마침내 포기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기뻐해도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자그마한 의문이 생겼다. 내가 정 떨어지게 행동하긴 했지만 순전 그 이유 때문으로 멀어진 걸까. 미소가 마침내 더 못 버티겠다 싶어서 그랬던 걸까.

순전히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졸업 여행에서 말을 나눌 리 없었으니까. 관계를 다잡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체념할 만한 상황이었으니 구태여 또 부딪힐 이유가 없었다.

왜냐고? 이는 이미 끝난 마당에 뭘 또?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마치 헤어진 연인 가는 걸음 붙잡아 놓고 ‘미안, 이건 못 다한 따귀.’ 하면서 뺨 올려붙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해야 할까.

결국 그 날의 만남은 우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 아니었을까.


* * *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수도처럼 시원하게 쏟아낼 수 있다면 조금은 편해질까. 이 억하심정을 터트린다면 좀 나아질까. 수돗물을 끊고 대신 상상을 이어보았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가서 자연스레 다가간다. 그리고 미소에게 다가가 툭,

왜 거짓말 하냐?

그러자 상상 속의 미소가 대답했다. 무슨 거짓말?

이게 당연한 흐름이겠지. 다짜고짜 속내를 찔렸다고 당황하며 털어놓는 것은 소설 속 이야기다.

“…후우.”

많은 것이 어긋났다. 우연한 만남을 술자리로까지 끌어온 사람은 미소다. 순전히 동창과의 해후를 위한 자리였다면 이상할 것은 없겠지. 한껏 마시고 웃고 떠들면 되니까. 그런데 재회에 기뻐해야 할 미소는 가식 떨고 있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 또한 마찬가지다.

미소는 왜 날 잡았을까. 거짓을 꾸며내는 것을 보면 친목을 위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나야 원치 않는 자리에 붙잡혀 왔다 치자. 맨 정신으로 있기 거북하여 가식이나 떨고 있는 것이 그 결과다. 그러나 미소는 나와 다르다. 그녀가 원해서 만든 자리다.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 테고. 그런데 그 ‘무엇’이 뭔지를 도통 모르겠다는 것이다. 의문은 커지고, 술기운은 그냥 따져 물으라며 나를 팔밀이 했다.

당장이라도 문고리를 벌컥 열려는 충동을 집어삼킨다. 정신 좀 차리자. 묻는다고 답해줄 리도 없는데. 대답을 얻기 위해선 다른 방향으로 행동해야 했다. 내 본심을 풀고 기브앤테이크로 받아오든가, 심문하다시피 꼬치꼬치 캐묻든가. 그것도 아니면 만취할 정도로 먹여 절로 실토하게 만들든지.


그렇게 얼마동안을 고심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이렇게 고심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궁금해야 할 이유가 있나? 미소가 거짓말을 하면, 그래. 거짓말을 한다 치자. 그런데 뭐? 어쩌라고. 그걸로 끝인 거다. 뱀굴 인지 모르는 것도 아닌데 더 손 집어넣어 물려야 할 이유가 있을까. 없다. 생각해보면 미소에 대해선 모르는 게 약이었다. 지금이야 마음 닫고 거짓말 하며 겨우 버틴다지만 계속 얘기하다보면 어찌될지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미소 또한 가식 떠는 중이란 것을 알게 되니 ‘그래도 소꿉친구니까’하는 미련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결국 이런 관계였다. 업무관계자끼리의 공적 관계와 다를 바가 없다. 인간적이 정이 개입될 리 없는 계산적인 관계. 만일 미소가 술친구를 원했던 것이라면 한 병을 비운 것으로 끝났다. 내가 말상대 역할을 다 못했으면 술값을 얼마간 보태면 되는 거다.

번뇌처럼 차올랐던 의문은 해탈처럼 단 순간에 사라졌다. 이토록 간단했다니. 그래, 할 만큼 했으니 여기서 파장하자. 즐거웠다. 다음에 또 보자. 다시 연락 않을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연락을 약속하며 끝내자. 그런 인사치레는 퍽 익숙하니까 어렵지도 않다. 그제야 수도꼭지가 터지 듯 모든 것이 후련해졌다.

수돗물을 잠그고 화장실을 나왔다. 이제 미소 흉내나 내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흉내 중일뿐인 나의 술자리를 끝낼 시간이었다.


홀에 나오니 미소는 한 바텐더와 이야기 하는 중이었다. 손을 털며 다가가자 미소는 제 가망을 맡기며 말했다.

“나도 잠깐.”

미소는 쌩하니 화장실로 들어갔다. 바텐더는 피식 웃었다.

보아하니 이 사람이 그 치프란 사람 같다. 남자 바텐더들 틈의 홍일점인 것도 그렇거니와 적게 잡아도 다른 바텐더들보다 대 여섯은 많아 보였다. 미소가 언니라고 부른 것을 보면 아마 맞을 거다.

“얼마 나왔죠?”
“계산 다 했다네.”

그녀는 사무적으로 대답하며 잔을 닦았다.

“그래서 얼만데요?”

그녀는 잔에서 시선을 뗐다. 화장과 어두운 조명 사이로 흐리게나마 잔주름이 보였다. 시큰둥한 눈빛 속에서 왜 필요도 없는 질문을 하냐는 의아함이 엿보였다.

내가 더 의아하다. 가격 묻는 게 이상합니까.

“왜 궁금해?”
“궁금하면 안 되나요?”

그녀는 재밌다 는 얼굴로 대답했다.

“풀 보틀 350. DC 해서 315. 거기에 안주로 플러스 19.”

잠시 텀을 두고 말을 이어나간다.

“팁은 빼고. 흠, 더 없나. 아. TAX는 별도야.”

…이거 바가지 맞지?

“바가지라 생각되면 주류상 가서 물어 봐. 민텔바 더 캐스크 오피셜 83년 산 얼마냐고.”

그녀는 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덧붙였다.

“미, 뭐요?”
“민텔바.”

죠스바 자매품이냐. 그녀는 굳어진 나에게 더 흥미가 없는지 다시 잔으로 시선을 돌렸다.

돈 앞에 무너지는 것은 정말 한 순간이었다. 앳된 자존심일지는 몰라도 돈을 보태려면 보태려 했다. 이대로 얻어먹고 가고 싶지 않았다. 미소에게, 여전히 너보다 못할지 모르지만 옛날만큼은 아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건 무슨.

“반응이 다들 똑같으니 재미가 없잖아.”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예?”
“부담 갖지 마. 걔 평소 마시는 만큼 나온 거니까. 게다가 자기가 다 냈는걸.”

그리고는 반 쯤 찰랑이는 잔을 밀어준다. 물이었다.

별 이유도 없는데 문득, 잊고 있던 씁쓸함이 되살아났다. 막말로 미소가 잘 나가는 것은 비단 오늘만이 아니다. 딱 봐도 내 박봉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벌겠지. 씁쓸함 속에 예상한 바였지만 현실로 마주한 순간 그 사실은 더욱 썼다.

그러면 이 물은 그 쓴 맛 달래라 밀어준 것이라도 될까. 과연. 몇 백짜리 술집답네. 기가 막힌 서비스야. 허탈함에 잔을 쥐는데 그녀가 또 툭하고 한마디 한다.

“돈에 쓸 신경이 있으면 오늘 밤 에스코트에나 더 신경 써.”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그녀는 아무 설명도 없었다. 핀잔주듯 한번 흘겨본 것이 전부였다. 뭣 모르는 20대 초반이라면 못 알아챘을 미비한 동장.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제는 그 의미를 알 만큼 늙어버렸다.

눈치 좀 있으라는, 장소 좀 가려서 떠들라는 무언의 기색이다. 지금껏 만나온 여자들이나 상사들이 짓던 제스처였다. 그 순간 내 경험들이 그 의미를 외쳐댔다. 난 어처구니가 없어 한 마디로 부정했다.

“그냥 친굽니다.”

그런데 별로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녀는 조개처럼 입을 다문채로 잔만을 닦아댔다. 억울해서 한 번 더 말하려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미소와 내가 친구였던가. 소꿉친구이긴 했었다. 같은 학교 다닌 동창이기도 하고. 누군가 우리 사이를 묻는다면 친구라 대답하겠지. 그러나 정말 ‘친구’였냐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니다. 오늘의 나를 부단히 괴롭혔던 것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접대 하는 것처럼 마냥 가식 떨어놓고 이제 와서 친구라니. 가식의 대답이 죄책감이 되어 날 쿡쿡 찔러왔다.

“친구?”

그녀는 어느새 닦던 잔을 놓은 후였다. 그녀의 꾹 닫혀 있던 입은 살짝 벌려져 있었다. 눈동자에도 흥미가 샘솟아 있었다.

조개는 익을수록 입을 벌린다. 내 대답과 반응이 뜨거운 물을 끼얹은 것처럼 그녀를 자극한 것 같았다. 다들 반응이 똑같다는데 나만 다르다면 충분히… 잠깐만.

생각을 돌려보자. 이런 휘황찬란한 가게에서 DC까지 해줄 정도면 미소는 단골이 틀림없다. 그 말은 즉슨, 이 바텐더는 미소의 평소 모습을 알고 있다는 의미다. 그 순간 내 촉이 번뜩였다. 순수한 풋사랑과 멀어져 남녀의 거짓 사랑 놀음에 익숙해진 촉이.

반응이 다들 똑같으니 재미가 없잖아.

미소와 함께 왔던 사람이 한 명이 아니라는 소리. 이 무지막지한 술값에 내보인 반응도 놀람으로 똑같았겠지. 그러나 나만 놀람 이후의 반응이 달랐던 것이다. 정리해보면, 미소는 여러 남자들과 오늘 같은 자리를 보냈다는 뜻이 아닐까. 나와 했던 거처럼 술잔을 맞대고, 넘쳐날 만큼 있다는 돈으로 술값을 계산하고, 그 이후엔?

돈에 쓸 신경이 있으면 오늘 밤 에스코트에나 더 신경 써.

그 순간 허공에서 우리의 눈빛이 교차했다. 그와 동시에 짧은 문장도.

아차와, 아하.

상황이 이해되며 소름이 돋았다. 이젠 추측이 아니라 아예 확신이다.

가식의 이유가 이것 때문인가. 이런 경우에도 헌팅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동창끼리의 눈 맞음? 표현이 어찌되었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아직 돈이나 제의도 안 받았는데 남창이 된 기분이었다. 이미 비싼 술 얻어마셨으니 화대는 지불한 셈인가. 아니. 차라리 돈을 내야 할 만큼 미인이니 오히려 땡큐인 상황일 지도 모른다. 그래도

더럽다. 진짜.

“지희 친구라고?”

바텐더는 다소 심각해진 표정으로 운을 뗐다. 그러나 그 질문에 나온 내 반응은 실소였다.

그래, 본명 쓰기는 뭐했지? 지희 따위의 가명이나 남자 홀리는 장소도 한 둘이 아닐 테지. 지희의 밤이 지나면 태희의 밤이 올 테고, 또 어느 날은 지영일 지도 모른다. 미소의 아름다움을 생각해 보면 딱히 상상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여기까지 추락했구나. 영원히 열등의 대상이라 생각한 존재가 추락하는 모습은 참 통쾌했다. 또 열등의 페이지로 기억을 채워야 하나 했는데 이 예상치도 못한 선물은 뭐지? 지금껏 접대하듯 비위 맞춰준 것의 보상은 강한 단맛으로 다가왔다.

“정말 친구야?”
“친구, 맞겠죠.”
“에휴. 내가 이 오지랖 때문에 한 번쯤 실수하겠지, 하겠지 했는데…”

그녀는 또렷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 것 치곤 상대가 나쁘지 않네.”
“예?”
“그럭저럭 재밌기도 하고.”
“뭐라고요?”
“저기. 한 번만 더 반문하면 세 번째야. 그만 좀 하지?”

미소의 남성 편력을 실토한 것은 실수라면 실수다. 치부에 가까운 것이니 제 3자가 말하기엔 너무나도 뭣하다. 그런데 이 바텐더는 그런 실수를 저질러 놓고도 뭐, 재밌어? 난 황당해서 확인 차 물었다.

“그 상대가 혹시 날 말하는 겁니까?”
“그럼 누구겠어. 저기서 양복 입고 허세 부리는 버그베어인 줄 알았어?”

그녀의 말에 조금 떨어져 있던 남자가 한 마디 했다. 그녀의 표현처럼 꽤나 덩치가 있었다.

“이거 다 근육이라고.”
“어머, 변명 안 해도 괜찮아. 난 푸짐한 인상이 좋거든.”
“말은 잘해.”

둘의 대화가 희극처럼 이어졌다. 더 못 보겠다 싶어 끼어들었다.

“친구 아닐 수도 있는데요.”

그것이 본심이었다. 난 진심을 블러핑으로 포장해 보았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친구 아니면 더 취하게 만든 다음에 일어났겠지.”

확실히 그녀 말이 맞았다. 섹스를 기대했다면 미소가 만취할 때까지 자리를 지켰을 거다. 그러나 지금은 고작해야 9시다. 두세 시까지 질펀하게 마시고 텔에서 질펀하게 놀아제낄 생각이라면 너무 이르다. 충분히 친구로 보일 법 했다.

“이봐, 친구. 구라 치다 걸리면 손가락 날아가.”
“농담 할 기분 아닙니다.”
“그러면 진담을 해야지.”

그녀는 잠시 텀을 두고 말했다.

“안아줘.”

엑? 이 여자 정말 미친 거 아닐까? 소스라치게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나 말고 지희. 이 멍청한 어리석은 영혼아. 난 너 같이 마른 놈 관심 없어. 남자는 모름지기 두둑해야지. 저기 저 오빠처럼.”

그녀가 윙크하자 버그베어가 한 마디 했다.

“난 빼줘. 와이프도 감당 안 돼.”
“튕기기는. 하여간 너 같은 꼬마는 수비권 밖이야. 알았으면 지희나 데리고 가.”

배알이 꼬여서 한 마디 쏘아붙였다.

“치프란 직함을 번역하면 포주인가 보네. 원, 영어가 짧아서.”

그녀는 피식 웃었다.

“맞춤형 서비스라고 하면 되겠어?”
“됐네요.”
“알았으면 하기나 하세요. 뭔지 모르겠으면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 해줄까?”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친구라면서.”
“아니, 그러니까 무슨 상관인데요.”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친구 아니라면 말 안 해도 했을 테니까.”

친구 아니면 섹스 했을 거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친구니까 안아줘라.

이해가 가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친구는 섹스 상대로 피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친구란 사실을 이유로 삼으며 일반 명제의 역을 강요하는 여자라니. 농담인가 싶어 살펴보았지만 또 그것도 아니었다. 한 치의 되 물림도 없는 모습을 보면 정말 진심을 담아 말하는 중이었다.

“왜죠?”
“난 못하니까.”

우문현답이네. 이젠 웃음도 안 나온다.

“여자는 다들 거짓말 몇 개씩은 하고 살아.”
“아, 그래요? 몰랐네요.”
“거짓말 하고 있어서 몰랐나보네.”

그 한마디에 더 쏘아붙이려던 내 혓바닥이 굳어버렸다. 견제 차 내민 잽에 클린 히트가 된 것인지. 정말 알고서 찌른 것인지 의중을 살펴보니 웬걸. 작정하고 스트레이트를 꽂아 넣은 게 틀림없다. 이 여자는 내 가식의 모습을 읽어낸 것이다.

“지희가 거짓말 하는 것도 알고 있어.”

결국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었다.

“별로 신경 안 써. 나도 여자고, 지희도 나름 이유가 있겠지. 걔가 그렇게 행동해서 편해질 수 있으면 더 신경 쓰지 말아야지. 여긴 결국 술집이잖아. 잊고 편해지려고 오는데.”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문제는 거짓말 하다보면 정말 그렇게 믿게 되기도 한단 거지. 그게 걱정이야.”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진실의 종이라도 칠까요.”

그녀는 발작적으로 웃었다.

“진실의 종. 그거 좋네.”
“농담 하는 거 아니거든요. 대체 나한테 왜 이래요.”
“친구잖아. 친구로서 뭐 이상하단 느낌 못 받았어?”
“애석하게도 못 받았네요.”

더 대꾸하기 싫어 잔이나 들이켰다. 처음 그녀가 밀어주었던 그 물이었다.

그런데 잔을 꺾자마자 목구멍이 타들어가며 신음이 새어나왔다. 술이다. 보드카다. 염병. 당장 뱉어내고 싶었지만 타는 갈증은 이미 다 삼켜버린 후였다. 끓는 물을 삼킨 것 같은 고통에 컥컥거리고 있으니 바텐더는 되레 이상하다는 반응이었다.

“물이라 한 적 없는데.”

욕이라도 한바가지 쏟아 붓고 싶은데 말도 안 나온다. 식도를 열고 왕창 쏟아 부었으니까. 난 찌그러지는 인상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그러나 그녀는 태연하게 다시 잔을 밀어줄 뿐이었다.

“이번엔 진짜 물이야.”

반신반의 하면서 혓바닥을 대보니 정말 물이었다. 목을 겨우 달래고 입을 여니, 내 반응은 짐승처럼 거칠어져 있었다.

“사람 갖고 노니까 재밌냐.”
“처음에 재미있다고 했었잖아.”
“아, 진짜.”

그 때 버그베어가 끼어들었다.

“다들 한번 씩 당하는 거니까 너무 열 내지 마. 원래 저래.”

스모꾼은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바텐더는 한 번 더 윙크했다.

“물이나 보드카는 겉보기론 똑같아도 실제론 다르잖아.”
“그래서?”
“지희도 그렇단 거다. 친구여.”

바텐더의 태도가 갑작스레 바뀌었다. 말투까지 다정해지는 것이 마치 엄마 같았다. 몇 마디 더 따지려 했지만 내 모양새만 우스워질 것 같았다. 정말 엿 같다.

“그러니까 제대로 좀 해. 방금 거 완전 한 대 팰 거 같더만. 딱 그렇게 하라고. 숨기지 말고 거짓말 하지 말고.”
“그렇게 걱정되면 그 쪽이 하시죠.”
“난 못한대도.”

결국 아까와 같은 대답이었다. 그녀는 약간 쓸쓸한 표정으로 바를 쓸어내렸다.

“결국 지희는 손님이고, 난 기껏해야 바텐 밖에 안 되니까.”
“그게 무슨 관곈데요.”
“결국엔 돈 주고 돈 받는 관계지. 도피자와 도피처의 관계고.”

아무 대답도 안하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 넓은 오지랖으로도 여기까지가 한계야.”

미소를 도와주고 싶은데 도와줄 수 없다. 그녀는 그 부분이 맘 아프다 토로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미소와 함께 왔던 남자들에게 부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아니었다. 그녀의 눈으로 보기에 난 친구였고, 속내 터놓고 맘껏 싸울 수 있는 상대였다. 친구란 결국 그런 존재니까.

“그러니까 잘 좀 해. 이 바보 같은 친구야.”

바텐더의 주먹이 내 가슴을 콩 쳤다. 이해 불가의 상황 속에서도 그 소리가 참 공허했다.


* * *


“흐아, 좀 춥네.”

가게를 나선 미소는 코트자락을 여몄다. 겨울바람이 꽤나 날카로웠다. 나 또한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미소와 발을 맞췄다. 그러면서 머플러를 칭칭 감는 미소를 힐끗했다. 머플러가 붕대라도 되는지 목을 꽉 조이는 것이 꽤 추워보였다.

티 내지 않으면 최대한 살펴보았다. 그러나 보드카와 물의 차이 같은, 그런 이상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아냐만 이건 먹어봐야 알겠다 싶었다.

그 치프 아줌마는 뭘 본 걸까. 미소에게서 어떤 상처를 읽은 걸까. 잘 모르겠다. 내 두 달 봉급을 하루 술값으로 써댈 정도면 돈 꽤나 벌고 있겠지. 나 또한 악착같이 돈돈하며 살아가는 소시민인 탓에 부럽기만 할 뿐인데.

좀 문란하다 싶을 정도로 남자 만나는 것에 우열감도 느꼈지만 실상은 열등감에 불과하다.
나보다 못난 것 하나 찾아보자는 비뚤어진 생각이고, 그렇다고 내가 미소를 욕할 만큼 순수하게 여자 만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 결과 우열감은 먼지처럼 사라진지 오래였다.

됐다. 관두자.

미소가 가식 떨며 숨기고 있다는 소리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내가 구태여 파고들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어설프게 끼어들었다간 흙발로 짓는 것이 되리라. 애초에 미소에게 마음 써줄 방법이 섹스란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상처를 보듬어 아는 것이 섹스라고? 미소가 쾌락 중독에 섹스 중독이면 그렇겠지.

“추워?”

땅만 보고 걷고 있으니 미소가 말했다.

“입 얼었니.”

가벼운 책망에 웃으며 대답했다.

“어, 추워서 땡땡 얼었다.
“어? 그러면서 이젠 말 하네. 이젠 입 녹았어?”
“복화술.”
“웃겨.”

메마른 웃음을 흘리며 걸었다. 바텐더의 언질이 떠올랐지만 다시 지워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헤어지는 게 낫다. 처음부터 원했던 만남도 아닌데다 나는 별로 오지랖 넓은 놈도 아니다. 내가 먼저 가식의 탈을 벗을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심리학자나 탐정도 아닌데 본심을 파고들 이유까지 없었으니, 이 파장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로 헤어지면 된다.

“나 버스 타고 갈건데 넌?
“어…뭐?”
“집까지 뭐 타고 가냐고.”
“택시 타고.”

걸음을 택시 정류장 쪽으로 바꿨다. 집까진 아니어도 차타는 것까진 마중 해 주자. 오늘의 접대는 그것으로 끝이다. 우리는 택시를 앞에 두고 멈춰 섰다.

“오늘 즐거웠어.”

이보다 더 유쾌하고 유익한 자리는 없었다 꾸며낸다. 잘 좀 부탁드린다며 고개 숙여 배웅하던 접대의 마지막처럼, 혓바닥은 잘도 돌아간다. 난 그렇게 만남의 종결을 고했다. 이젠 미소가 화답할 차례다. 술내 나는 미소 속에 차에 타고 집에 가라. 그럼 난 고생했다며 나를 토닥거리마.

차 문을 열어주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잘 가, 들어가서 연락하고.”

그런데 미소는 문을 붙잡은 채로 오도카니 서 있기만 했다. 자신의 핸드폰 시계를 힐끗하고는 입술을 우물거렸다. 뜸 들일 것도 없잖아. 빨리 좀 가라.

“아홉시 십오 분.”

미소는 덤덤하게 시간을 말하고 고개를 들었다.

“역시 좀 이르네. 연규야, 술 한 잔 만 더 하자.”

야, 이건 규정 위반이잖아. 접대 다 끝난 마당에 어딜 또 데려가 달라고.

미소의 조심스런 한 마디는 그저 꽐라 된 자의 주정으로 밖에 안 들렸다. 한 마디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거절의 표현을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미안. 집이 멀어서. 내일 일이 있어서 일찍 들어가야 해. 나 사실 결혼해서 와이프 있어. 늦게 들어갔단 얻어맞아. 울 아버지가 담배 심부름 시켰어. 변명 거리는 무수하다. 그 중 하나를 아무거나 입에 담으려고 한 찰나였다.

“안 될까?”

처음 입을 떼는 것에 주저함이 엿보인다. 말도 제대로 끝맺음 못해 어조가 늘어진다. 주저함을 담고 있는 입 위로 미소의 눈동자가 떨렸다. 내 망막이 떨려서 떨려 보이는 건 아닐 텐데.

“어, 어디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입은 제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 근처에 내 오피스텔 있거든. 거기서.”

경계경보가 시끄럽게 울린다. 그만 둬. 어딜 가. 그냥 여기서 헤어져.

“설마 통금 있는 건 아니지?”

미소의 장난기 어린 표정을 마주한 순간 몸이 굳어졌다. 어느새 이십대 후반. 분가 하여 외박 따위에 제약 없는 나이다. 여자에게 얼어붙는 일도 없고 섹스에 대한 환상도 없다. 사랑의 풋풋함과 순수함 또한 오래 전에 잃어버렸다. 덧붙여서 지금까지 섹스를 주저했던 적도 없다. 그것이 설령 원 나잇 스탠드일지언정.

그렇게 살아왔기에 거절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술집도 아니고 집이다. 바텐더의 말처럼 정말 잠자리를 같이 해버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섹스를 주저할 이유는 없지만 미소와는 아니다. ‘미소이기 때문에’ 할 수가 없었다.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 그게.”
“…응?”

미소의 몸이 일순 떨렸다. 목소리도 떨렸다. 미소가 쓴 가식의 탈이 부서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금간 틈새 사이로 잠깐 비친 속 얼굴. 예상지도 못한 공격이었다. 막판에 본심 드러낼지 누가 알았던가.

“아, 아니다.”

미소는 황급히 표정을 추스르며 다시 탈을 썼다. 아무래도 내 표정 또한 일순 무너져버린 것 같다. 미소는 그것을 보았겠지. 순식간에 추스른 미소의 얼굴에서 흔들림 따윈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잠깐 엿보인 그 연약함은 내 뇌리에 박힌 후였다. 마치 화살이 과녁을 뚫고 난 후 화살 꼬리가 파르르 떨리듯, 내 속마음도 부르르 떨렸다. 알고 있다. 좀 전의 모습이 함의하는 바를. 그 근거로 소꿉친구로서 지낸 시간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내가 기억하는 미소의 마지막 모습. 졸업 여행 때의 대화, 내가 미소를 묻어버린 그 일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구나 싶어 눈을 감았다. 겨울의 찬바람이 참 날카롭지 싶다.

원 나잇 - 2부

꼬마들 심부름 오면 꼭 잔돈대신 초콜릿을 줘 꼬마에겐 찬사를, 부모에겐 분노를 자아내던 태평마켙. 그 엇나간 표기는 주인의 엇나간 심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푼돈 챙겨먹던 태평마켙 골목으로 들어가면 수은 가로등이 듬성듬성 서 있었다. 전봇대 사이로 전선들이 무기력하게 늘어지고, 그 가운데 붉은 벽돌의 연립주택이 있었다. 우리 집이다. 3층이었었는데 2층은 우리 집이었고, 1층은 미소네 집이었다. 이는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결국 내 자아의 발원지에서조차 우리는 함께였던 것이다.

사실 이만한 과거의 극점까지 오면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얼마 없다. 다 헤진 기억 조각이 몇 장 있을 뿐. 내 동생 분유를 놓고 너 한 입, 나 한입 했던 것이나 튜브 풀에서 물장구 쳤던 것, 혹은 엄마 사라져 울고 있으니 미소가 달래주러 왔다가 저도 같이 울어버린, 그런 것들. 이 정도의 단편이 전부다.

그 후의 기억 또한 생생하진 않다. 노란 뼝아리 모자 쓰고 유치원 갔던 것. 미소와 함께 삼천 얼마짜리 그랑죠 산다며 이웃 동네 갔다가 길 잃어버린 일. 그 때문에 둘 다 엉덩이 맞고 내복 차림으로 쫓겨난 일까지. 유아기 내내 함께했음에도 특별한 추억은 거의 없다.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일상이었기 때문 같다. 결국 일상이란 인지 속 인식 못함이니까. 존재가 당연해지는 것이다. 산이 그곳에 자리하는 것은 누구도 토 달지 않는다. 하늘이 푸르다고 감동하는 사람은 없다. 존재함은 알고 있으나 특별한 의미부여는 않는다. 미소의 존재는 그러했다. 일상 그 자체였고, 특별할 것도 없었다. 다만 가족만큼 특별하기도 했지만.

그 시절을 두고 우리 어머니는 남매와 다름없었다 말씀하시곤 한다. 나 또한 부정하지 않는다. 나만큼 식탐 많던 꼬마가 쌍쌍바 반 뚝 잘라 주고 알껌바 껌 나눠 씹었으면 말 다했다. 누군가 가장 친한 친구 누구냐고 물으면 미소요! 하고 누구랑 결혼 할래? 하면 미소랑 할 거야, 했었으니 전형적인 소꿉친구 레퍼토리의 답습이었다.

아주 가관인 시절이다. 여자가 뭔지도 모를 어린놈이 까져가지고.


초등학생이 되어도 딱히 변화랄 것은 없었다. 노란 모자 쓰고 유치원 갔던 우리가 한 손엔 신발주머니, 다른 손으론 서로의 손을 잡았단 것 정도의 차이는 있었다. 그러나 이는 풍경의 변화이지 존재의 변화는 아니다. 산이 단풍 입었다고 산 아닐 수 없고, 시내가 어제의 물을 흘려보냈어도 오늘도 여전히 시내인 것처럼. 미소가 일상이었기에 변화하는 풍경 또한 일상이었고, 우린 그렇게 더 가까워졌다.

팽이치기하면 미소가 줄 감은 88 올림픽 팽이를 건네 줬고, 인형놀이하면 내가 바비인형 머리를 빗겨줬다. 취향도 관심사도 달랐지만 생각보다 잘 놀았다. 내가 학종이 따먹기로 한 움큼을 따오면 미소는 조막만한 손으로 학을 접었다. 그 모습은 장 봐온 남편과 요리하는 아내, 혹은 선사시대에 사냥감 들고 온 남편과 무두질 하는 아내 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뭔가 엇나가는데 요점은 궁합이 잘 맞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가꺼아!”에서
“겨론하꺼야.”를 거쳐
“결혼할래.” 까지 갔다.

대체 뭐라는 건지 모르겠는 가꺼아는 뺀다 쳐도, 겨론하꺼야에서 결혼할래까지의 시간을 계산해보면 어언 몇 년이다. 즉 장기간의 약혼이었다. 그 시간 속에 결혼상도 더 거창해졌으니. 내가 공주님 드레스를 약속하면 미소는 집채만 한 쇠팽이를 약속했고, 나중에 가선 변신 로봇과 마법소녀 정도까지 발전했다.

결혼 예물이 뭐 그리 많은지. 차 한 대도 굴리기 힘든 세상에 변신 로봇 삼종 세트-슈퍼카, 기차, 전투기 정도-는 무엇이며 개인정보 유출되는 사이버 시대에 누구도 정체를 모르는 마법 소녀 신분 제공은 또 뭔지. 그러나 그 나이에는 그 모두가 허황된 꿈이 아니었다. 끽해야 초등학생. 생각하는 것은 모두 이룰 수 있다 믿는 나이였으니. 돈 많이 벌어 결혼하자 찍은 손가락 도장에 거짓은 없었다. 엄마들은 귀엽다고 웃으셨지만 우리는 진실 되게 약속했다. 참 순수하고 가식 없던 시절이었다.

그 후에 파혼이 없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긴 어린 시절 약속을 놓고 ‘우리 약혼 없던 걸로 하자, 좋은 추억으로만 남겼으면 좋겠어. 좋은 사람 만나. 안녕, 행복해야 돼.’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나름 머리 컸다 자부하는 초등학생 끝물이 되어선 그 땐 그랬지. 하며 희미하게 기억만 할 뿐이었다. 약혼은 추억이 되고, 우린 약혼자에서 다시 소꿉친구로 돌아갔다.

변한 것은 또 있었다. 시대가 변하고 있었다. 그 정도는 Y2K니 밀레니엄이니 했던 것만으로 충분히 설명되리라 본다. 삐삐와 걸면 걸리는 걸리버의 자리를 64화음 벨소리 폰이 채우고, 천리안 하이텔의 자리를 메가패스가 이순신 장군을 앞세워 빼앗았다. 아이들은 더 이상 샤니의 포켓몬스터 빵을 먹지 않고 디지몬을 보았으며 옆집 누나는 HOT 해체 소식에 피켓과 눈물을 떨어뜨렸다.

나 또한 변화의 급류의 휩쓸렸다. 게임과 게임, 그리고 온갖 게임과 게임까지. 학교만 끝나면 바람 부는 나라의 디아블로에게 빨콩 더블을 쏘려고 광도 들고 PC방으로 향했다. 그런 판국이니 미소와의 시간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반도 달랐으니 가끔씩 마주치는 것이 만남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딱히 위화감은 없었다. 일상의 변화는 그 자체로 일상인 법.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이만큼이나 변해 있었다, 하는 변화였다. 그러나 그 때는 그 어느 순간이 찾아오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게임에 빠져있었던 탓이다. 게다가 딱히 미소와 싸우지도 않았던 데다 그녀는 여전히 친구라 생각했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어선 조금 달랐다. 내가 미소의 변화를 감지한 것은 그 즈음 부터였다. 그 때는 그녀의 변화를 놓고 ‘요즘 따라 뭔가 달라졌어.’하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훗날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미소는 성장이란 변화를 늘 계속해 왔다. 그러나 그 변화가 일상이었고, 난 변하는 모습을 눈으로만 인지했을 뿐 머리로 실지 인식하진 못했던 것이다. 인식을 위해서는 변화를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는 ‘어느 순간’이 도래했어야 했다.

중학생 때가 바로 그 ‘어느 순간’ 이었다. 사춘기란 이름으로 찾아온 나의 변화는 미소를 다시 보게끔 만들었다.

결국 일상의 비 일상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원하는 술 있으면 골라봐.”

잠깐 동안의 침묵을 깬 것은 미소였다. 말실수한 것은 분명 나인데 먼저 나서는 것이 미안했다. 남자답지 못했겠지. 이젠 좀 제대로 하잔 마음으로 메뉴판을 쫙 훑어다. 그런데 있는 것이라곤 필기체로 흘러가는 꼬부랑글씨뿐이다.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럼이니 위스키 정도 뿐이었고, 그 외의 것은 읽는 다기 보다 해독에 가까웠다.

“소주는 없어?”

혹시나 해서 묻자 미소는 곧바로 대답했다.

“데킬라는 있어.”

미소의 손가락이 메뉴판 한 구석을 쿡 누른다.

TEQUILA

됐다. 좀 전까지만 해도 데킬라가 D로 시작하는 줄 알았는데 내가 무슨.

“맥주는?”

미소의 손가락이 그 밑으로 주욱 미끄러졌다.

HOMEMADE DRAFT BEER (350 CC) ……… \ 15.000

뭐냐 이건. 홈메이드 드래프트란 건 수입 맥주 상푠가. 대체 무슨 술이기에 350 CC 주제에 호프집 3000 CC 가격을 받는 것인지.

“맥주 마실래?”
“아, 음. 아니야. 됐어.”
“그럼?”

역시 무책임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가 보다.

“아무거나.”

선택권이 다양해질수록 포기권의 유혹이 강해진다. 그런 말을 들은 적 있는데 역시 거짓말이 아닌가 보다.

“그럼 내가 자주 마시는 걸로 할게. 괜찮아?”

난 그냥 힘없이 끄덕였다. 미소는 메뉴판을 덮고 바텐더를 불렀다.

이렇게 될 거였으면 왜 메뉴판을 보여줬는지 모르겠다. 위축된 내 몸은 술을 들이키기도 전에 어색함에 한껏 취했다. 미소는 바텐더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능숙하게 주문했다. 난 벌 받는 꼬마처럼 잠자코 눈치만 보았다.

바텐더는 금세 술 한 병과 얼음을 날라 왔다. 저 태그에 적인 것을 뭐라 발음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위스키겠지. 하긴, 애초에 위스키 말고 다른 양주를 알지도 못한다. 미소가 뚜껑을 열자 투명한 병 안 쪽에서 호박색이 일렁였다. 그 청명한 빛깔은 여태껏 먹어 본 스카치블루나 시바스리갈 따위랑 비교도 못할 만큼 청명했다. 이에 비하면 캪틴큐는 똥물이지 싶다.

그러는 사이 미소가 내 글라스를 채웠다. 황급히 술잔을 받자 미소가 피식 웃으며 타박했다.

“어우야. 뭐야, 그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른에게 술 받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아, 그게.”
“좀 편하게 있어라. 내가 다 긴장 된다.”

나라고 안 그러고 싶겠냐. 그러나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있어야지.

내 앞의 여자가 정말 그 미솔까. 그녀는 그런 의심이 들 만큼 아름다웠다. 귀동냥으로 이태원이나 청담동쯤의 여자들이 그렇게 예쁘다 듣긴 했다. 실제로 보기에도 그랬고. 그러나 미소는 그보다 더 했다. 이 정도면 거의 연예인 급이다. 그렇다고 딱히 차려입은 것 같지도 않다. 코트 속엔 얇은 재질의 블라우스와 가죽 스커트가 전부고, 시계나 반지 같은 장신구도 하나 없다. 그런데도 슬쩍 다리 꼬아 앉은 것만으로 갖은 기품의 태가 묻어 나왔다. 아마 이만한 수준의 여자를 만나는 것은 평생 요원하겠지. 로또 비슷한 확률일 거다. 소꿉친구란 사실이 아니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일 거다.

이것만 해도 버거운데 지난 기억들까지 날 괴롭힌다. 미소를 마주하는 순간부터 되살아나는 옛 기억들. 삐뚤어진 열등감과 바닥까지 추락했던 추한 내 꼬락서니. 그리고 미소의 마법이 빚어내는 우열관계까지. 그 모두가 한데 엮이며 쓴 맛을 자아냈다.

위액이 역류하나. 아니면 백태가 썩는 걸까. 혹 무엇이 되었다 해도 이보다 더 쓰진 않겠지. 혀를 차며 침을 삼켜보지만 그 소태 같은 쓴 맛은 여전했다.

“짠?”

미소가 잔을 들어 올렸다. 그래. 차라리 술이나 마시자. 술이 아무리 써봤자 이보다 더 쓰겠냐. 쓴 맛 때문에 지어지는 쓴 웃음 속에 잔을 마주 댔다.

“짠.”

서로 잔을 맞대고 각자 입을 맞댄다. 난 그 순간 굳어졌다. 이게 정말 술인가? 아니, 이만큼 부드러운 술도 있었나? 식도로 넘기지도 못하고 입 안에서 머금고 있으니 강렬한 향이 한 번 더 휘몰아쳤다. 보통 술이 아니다. 소주나 마시는 나지만 알 수 있었다. 조심스레 삼켜보니 목 넘김의 질감 또한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조심스레 음미하고 있는 사이 미소는 이미 두 번째 잔을 넘기는 중이었다. 마치 물마시듯 꿀떡. 마시는 기세를 보니 술자리가 금방 끝날 것 같진 않았다. 아마 이 병을 반 이상 비우지 않고선 못 일어나지 않을까.

“연규야.”
“어, 응?”
“술잔 쥐고 고사 지내?”

억지웃음과 함께 답했다.

“아냐.”
“우리 사이에 왜 그래. 자꾸.”

우리 사이? 내 자신에게 되물었다. 나와 미소가 무슨 관계였나. 명목상 친구 관계쯤은 되겠지. 누가 묻는다면 친구라 답할 테고. 그러나 딱 그 정도 관계 하면 그것도 아니다. 피하고 싶은 상대, 남보다 못한 관계, 친구이지만 친구 아닌 사이. 이거 아주 주르륵 나오네. 결국 우리 사이는 안 좋은 쪽으로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 복잡함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생각하는 중이었다. 순간 뭔가가 번뜩였다. 깨달음. 그것은 번뇌를 끊는 해탈처럼 일순 분출했다.

엄밀히 말해 미소와 난 친구가 아니다. 그런데 왜 친구 대하는 것처럼 속내 다 터놓은 걸까. 맑아진 머리로 미소를 마주했다. 열등감이 끓어오른다 해도 아닌 척 의뭉 떨 수 있지 않나? 거래처 접대 한 두 번 해본 것도 아닌데 그 비슷하게 하면 된다. 못할 바도 없다. 어른답게 어른의 술자리처럼. 그러면 되는 건데. 이게 만화였다면 물음표 안에 !!를 그려 넣을 상황이었다.

“미안, 좀 피곤해서 그랬나 봐.”

미소가 나의 이런 행동을 불편해 하고 나 또한 미소가 불편하다면? 가식 떨면 된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를 뻔 했다. 아무래도 난 병신과 머저린가 보다. 이토록 간단한 것을.

“일 이년 친구 사이도 아닌데, 그러게.”

능글맞게 대꾸하자 미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녀는 갑작스런 변화를 재는 듯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관두었는지 제 술잔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자작하려는 것을 보고 난 재빨리 끼어들었다.

“왜 자작하냐.”

병을 빼앗아 잔을 채워주었다. 아예 접대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자작하면 3년 간 재수 없다는데.”
“그 3년 이미 다 지나갔거든?”

미소는 웃으며 잔을 삼켜버렸다. 그 스탠드 플레이에 옛날 룸살롱에게 수십만 원을 뿌려대던 졸부가 떠올랐다. 접대만 아니었다면 만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 미소에게서 그 모습을 떠올린 것은 술이 아무리 비싸봤자 얼마나 하겠냐는 듯 한 행동에 기인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미소는 이 비싼 술을 싸구려 맥주 들이키듯 마셔대고 있었으니까. 마치 돈 넘쳐난다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 술 좀 받나 봐. 잘 마시네.”

말을 하며 은근슬쩍 미소의 샷 글라스를 빼앗았다. 그리고 얼음 채운 잔에 술을 타 그녀의 빈손을 메워줬다.

“그래?”

아이고, 사장님. 왜 그렇게 급히 마시십니까. 그런 뉘앙스를 말 뒤에 감추고 잔을 밀어준다. 골뱅이나 취객 뒤치다꺼리는 사절이다. 이 자리를 일찍 끝내고 빨리 집에나 가자. 그런 생각으로 이루어진 컨트롤이었다.

미소는 그 속내를 알기라도 하듯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좀 전처럼 잔을 대뜸 삼켜버렸다. 페이스를 늦출 생각 따윈 없어 보였다. 오히려 능청스레 빈 잔을 내밀며 다음 잔을 요청했다.

“뭐 이리 잘 마시냐.”

영업용 미소가 무너지진 않았겠지. 안면 근육을 만지고 싶은 마음을 눌러 담으며 잔을 채웠다.

“나 예전부터 잘 마셨잖아.”

변명하고 있네. 그런데 내가 미소와 술을 마셔본 적이 있었나? 아니, 없었다.

“옛날에 거북알 사건 기억 안나?”
“웬 거북알?”
“있잖아. 네거 다 뺐어먹었다고 너 찔찔 짰던 날.”
“아.”

기억난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다. 용돈 받아서 거북알 하나 사들고 온 것 까지는 좋았는데 집에 가위가 안 보였다. 난 거북알을 들고 미소 집으로 내려갔다. 미소는 헤헤 웃으며 교환 조건으로 맨 처음 한 입을 요구했다. 꼭지 잘라도 쫄쫄 새어나올 뿐이니 뭐, 얼마나 먹겠어. 난 그렇게 생각하고 거래를 수락했다.

그런데 미소의 가위질은 너무 깊숙이까지 파고들었고-어쩌면 일부러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아이스크림 알맹이는 뽕, 하며 고무를 비집고 흘러나왔다. 미소는 아차 싶었는지 그 큰 덩어리를 그대로 삼켜버렸다.

“미아우.”

미소는 조막만한 입을 가득 메우고 중얼거렸다. 난 그 모습을 보고 울음을 터트렸다. 내 건데. 내가 사온 건데. 오라질년.

“기억 나?”
“덕분에 아주 잘 떠올랐다. 이 도둑놈아.”

미소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근데 이거랑은 다르지 않냐?”
“이거나 그거나. 넘어가면 똑같지.”
“똥꼬집이네.”

일부러 강하게 발음하자 미소는 더욱 크게 웃었다. 왠지 민망해져서 슬쩍 변명했다.

“근데 찔찔 짜다니. 그 정도까진 아니거든?”
“너, 너희 아줌마한테 닌텐도 사달라고 땅바닥 굴러다닐 때보다 더 울었거든?”
“그런 적 없어.”
“내가 다 봤네요. 그 정도면 말 다한 거 아니야?”

뱀 굴도 아니고 파고들수록 더 튀어나온다. 무안해져 술잔만 비웠다. 그러나 미소와의 거리가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이런 장난스러움은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유들유들한 성격이기도 했고, 장난 쳐도 도를 안 넘는 절제심에 친구도 많았지. 아마 지금도 그럴 거다.

“하여간 기억력도 좋아.”
“너니까 기억하는 거야.”

미소는 혀를 살짝 내밀며 웃었다. 일순 심장이 두근거릴 뻔 했다. 만약 멍청히 있었다면 이것만으로 혹 했겠지. 그러나 가식의 탈을 쓰고 있는 덕분에 천연덕스러운 대꾸가 절로 튀어나왔다.

“나니까 앞으론 잊어줬으면 하는 바람.”

말을 마치며 가식의 탈을 한층 더 단단히 했다. 미소에게서 옛날 모습이 엿보일수록 버티기가 힘들다. 슬금슬금 심리적 경계를 넘어서는 동시에 내가 묻어둔 열등감 또한 스멀스멀 기어 나왔기 때문이다.

“절대 안 잊어.”
“아이구야.”

우리 둘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웃어 제쳤다. 그러나 내 허파는 공갈 웃음으로 가득차기만 했다.

웃음이 가라앉자 타이밍 좋게 바텐더가 다가왔다. 그는 카나페와 마른안주를 내려놓고 자연스레 물러났다. 미소는 테이블 위의 접시를 내 쪽으로 밀어주며 말했다.

“먹어, 부족하면 더 시키고.”
“왜. 그 때 거북알에 대한 사죄냐?”

미소는 대답 대신 잔을 내밀었다. 뻔뻔스럽다.

이건 무슨 주량 내기 하는 것도 아니고. 병을 보니 벌서 삼분지 이 가량으로 줄어 있었다. 아직 30분도 안 지난 것을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하이 페이스였다.

“또 달라고?”
“응.”
“뭐가 그렇게 급해. 누구 쫓아오냐. 아니면 통금 전까지 달리자 이거야?”

미소는 바보 같을 정도로 활짝 웃었다.

“그냥. 오랜만에 보니까 좋아서.”

정상적인 웃음인데도 이상하게 부자연스럽다. 위화감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딱히 해후의 기쁨을 나눈 사이는 아니다. 그렇다고 싸우고 절교한 것은 아니다. 어릴 적 약혹이 파혼을 맞은 것도, 혹은 파경을 맞은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뒤틀렸던 관계 그대로 헤어진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나 혼자만의 뒤틀림이기에 나만 의식하고 불편해 할 수는 있겠지. 그러나 내 찌질한 행동으로 미소가 상처 안 받았을 리가 없다. 그녀 또한 조금 불편해 해야 정상인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리 살가울까.

“그러게. 좋다.”

난 본심을 숨기고 짧게 대꾸했다. 미소는 옅은 웃음을 흘렸다.

미소는 말의 여운을 즐기며 잔을 흔들었다. 그리고 흘러가듯 물었다.

“근데 요즘 뭐하고 지내?”
“나야 뭐, 일하지.”
“무슨 일 하는데?”

올 게 왔다. 무방비 상태에서 질문 받았다면 어버버하며 무너졌겠지.

척 봐도 지금의 미소는 나보다 잘 벌고 잘 먹고 잘 산다. 그것은 곧 미소 밑에 깔려버린 내 과거와 연결되는 것이다. 과거의 열등감과 지금의 열등감이 연결되어 자격지심으로 발전하기 전에, 난 먼저 선수를 쳤다.

“그냥 평범한 회사 다녀.”
“할 만 해?”
“그냥. 다들 그렇잖아. 똑같지.”

두루뭉술하게 넘어갔음에도 미소는 수긍했다.

“하긴.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난 술을 한 모금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물었다.

“그런 넌 뭐하는데?”

사실 묻고 싶지 않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미쳤다고 내 열등감 키울 만한 짓을 할까. 미소의 근황은 그런 의미에서 지뢰와도 같았다. 그러나 대화의 흐름상 피해갈 수 없었다. 난 이를 악 물며 지뢰 위로 발을 내딛었다.

“나도 그냥 일하면서 살아.”

불발 지뢴가? 처음의 돈 이야기처럼 반 쯤 자랑하며 이야기 할 거라 생각했는데.

“하긴 백수 같아 보이진 않더라.”

미소는 깔깔대며 웃었다. 모습을 보니 더 이야기 할 마음도 없어 보였다. 지뢰인줄 알고 밟아야 해서 마음 단단히 먹었는데 어 깡통이네? 이런 니미. 그 쯤 될까.

“아, 배 땡겨.”
“땡길 뱃살도 없으면서.”
“못 본 사이에 입만 늘었어.”

미소는 어느새 옅어진 웃음기 속에 백을 뒤졌다. 그러다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혹시 담배 펴?”
“아니. 안 피는데.”
“나 펴도 돼?”
“응, 펴. 난 상관없어.”

미소는 슬림한 담배를 꺼냈다. 그 때 알아차렸다. 미소의 다섯 손톱이 붉게 칠해져있음을. 눈에 확 띄는 색첸데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미소는 자연스레 두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워 넣었다. 손가락이 담배를 좌우에서 애무하는 것 같았다. 라이터를 켜는 손놀림은 아예 관능적이기까지 했다. 미소가 요염한 동작으로 불을 붙이자 담배 연기가 테이블 위 정지된 공기 위로 피어올랐다.

내 침 넘어가는 소리가 몸속에서 크게 울렸다. 그러나 관능에 혹한 정욕과 별개로, 내 버리는 붉은 매니큐어에 대해 계속 생각하는 중이었다.

일상은 자연스러움을 그 특징으로 삼는다. 내가 저 매니큐어를 눈치 못 챈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요염함이 그녀의 몸 곳곳에서 피어나니 매니큐어 또한 그냥 지나쳤겠지. 저것이 미소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지뿐이던 것을 인식한 지금, 그 이유를 생각해 봐야 했다. 중학생 때처럼 나를 변화시킨 것이 있을 터였다.

위화감 때문 일까? 옛날의 모습을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세련되고 관능적인 미소. 그 변모한 정도 때문인지. 아니면 이 술자리의 시작부터 느끼고 있었던 이유 모를 위화감 때문인지. 그렇게 자문자답 할 때였다.

“네가 회사 가는 거 상상이 안 간다.”

미소가 연기를 훅 뱉어내며 중얼거렸다. 농담조로 던진 말이겠지만 농담처럼 들리진 않았다. 미소의 존재 자체가 껄끄러웠으니까. 정신을 차리자 나도 모르게 가시 뱉은 말이 튀어나오는 중이었다.

“나도 너 가수 될 줄 알았거든?”

병신. 한 번도 아니고 몇 번 실수하는 거냐. 난 아차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미소가 만일 가수가 되었다면 음악과 관련된 뭔가가 있어 보이겠지. 그러나 그런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렇게 폭음하며 담배까지 한다면 끝난 이야기다. 결국 이 한 마디는 뼈 있는 조롱일 뿐이었다.

“아, 그거.”

그러나 미소의 어투는 담담했다.

“뭐 비슷하게 살아. 노래나 이거나.”

미소는 그 말만 마치고 입을 다물었다. 담배 연기가 좀 더 뿌예졌다.

뭐 하냐고 물어야 할까. 말해도 될까. 미소는 날 힐끔 보고는 덧붙였다.

“전부 그게 그거다 싶더라고.”

그게 그거다. 거기서 거기다. 그 비슷한 말이 몇 번째인지. 방금 전 것까지 다섯 번은 듣지 않았을까. 자포자기 같은 표현에 위로를 건넬까도 했다. 그러나 미소는 덤덤해 보이기만 했다. 체념인지 인정인지 알지는 못해도, 별반 관심도 없어보여 위로해야 할지 맞장구 쳐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안 그래?”

난 잠시 고민하다 고개만 끄덕였다. 미소는 마른 웃음을 지어보이며 건배를 청했다.

“친구란 거 역시 좋다.”

난 떨떠름한 심정으로 잔을 들었다. 역시 뭔가가 어긋났다. 그녀의 말이 계속될수록 확신이 들었다. 미소를 힐끗했으나 그녀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잔을 삼키기만 할 뿐이었다. 아무래도 나와 같은 위화감을 느끼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이 이상할 만큼의 살가운 태도는 뭘까. 나의 심리적 우리의 물리적 거리의 수십 수백 배 였다. 8년간의 침묵과, 학창 시절의 열등감과, 접대용 태도가 빚어내는 거리감이다. 나만큼은 아니겠지만 미소도 이런 거리감을 느껴야 했다. 미소도 사람이라면 응당 그래야 했다. 우리가 가족도 아닌데. 그렇게나 뒤틀린 채로 헤어졌는데 이만큼이나 친근하다? 대화가 이토록 매끄럽다?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그 순간, 다 비워진 잔에서 풍기는 잔향을 뚫고 익숙한 내음이 내 코를 찔러왔다. 거짓의 향취. 허무함으로 코를 마비시키는 가식의 냄새. 내 쪽의 것이 아니다. 미소의 향수 냄새 속에 미약하게 섞여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미소도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나처럼 친구인 척, 친한 척 가식 떨고 있구나. 멍청하긴. 미소의 겉모습이며 말이며 모두 다 믿은 거다. 둘 다 가식을 떨고 거짓말을 하니 대화가 안 매끄러울 수가 있나.

옛날이야기를 꺼낸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그 대화는 우린 이만큼이나 친하다는 것을 ‘의식’ 이었으니까. 우리가 만일 정말로 그만큼 친했다면 말할 필요도 없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우리에겐 필요한 과정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납득할 만한 관계를 재정립해야 했던 것이다.

이것은 담배 파이프가 아니라던 르네 마그리트처럼, 그 순간의 미소는 미소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