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2일 토요일

수학선생님 정보경 - 상편

고향에 내려오면서 큰 기대는 없었다. 하루 종일 편의점에 붙어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떡을 만들고, 배달하는 삶도 괜찮겠다 싶어서 기술을 익히는 데에 주력했던 시절이 있어서, 떡을 찌는 게 즐거워 그 기대는 좀 있었지만, 고향이라고 해도 사실 아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그저 설은 가족을 만나는 날 정도의 의미 뿐이었다.

내가 나이가 든 것이, 예전에는 할머니 댁에서 가족끼리 모여서 사촌 형제들도 꽤 만났었는데, 이제는 우리 부모님의 집에서 조카들이나 봐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사촌 형제들이랑 꽤나 가까웠었는데, 지금은 연락은 해도 자주 만나는 사람이 없다. 유일하게 윤희가 있지만, 그것도 3년 전까지의 일이 마지막이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아니었지만, 이젠 좀 불편해졌다. 

그렇게 된 것은 모종의 사건이 있어서였다. 3년 전 할머니 댁에 갔다가 할머니 댁 화장실에서 일이 있었다. 따지고보면 별 일도 아니었다. 윤희가 안에 있던 화장실의 문을 내가 열어버린 것이다. 윤희는 똑닥이 단추를 누르고 화장실 문을 닫았지만 그게 완전히 닫히지 않아서 내가 무심코 문을 밀어버리면서 열려 버린 것이었다. 윤희는 소변을 보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는데, 여하튼 앉아 있었고, 소리를 질렀다. 난 거의 1초도 걸리지 않아서 문을 닫았고, 실상 아무 것도 본 것이 없다. 허벅지 정도를 보았지만, 않아있는 자세에서 허리를 숙이고 있어서 내려있는 청바지를 제외하면 정말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사촌 지간이었고, 윤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부끄러워할 수 있는 아이여서, 그 뒤로 소원해졌던 것이다.

더구나 이번 연휴에는 동생 남편 녀석이 바빠서 오지 못하는 바람에 내 영혼의 파트너이자, 내 카드 번호와 비밀번호를 모두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첫조카 소윤이와도 만나지 못한다. 소윤이는 당당히 지마켓에서 내 아이디로 자기가 원했던 원피스 하나를 사서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전화를 걸어 결제를 요구했다. 설빔을 삼촌이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기겠느냐는 말이었지만, 난 1초도 생각하지 않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아마 삼사일 후엔 동생의 핸드폰으로 소윤이의 새옷을 입은 동영상이 도착할 것이다. 난 그 동영상들을 모두 모아놓고 있어서 핸드폰의 마이크로 에스디 카드를 하나 새로 사고도 좀 더 큰 용량의 마이크로 sd카드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기차를 타고 갈까 하다가 아무래도 오랜만에 집에 다녀오는 것이니 만큼 엄마가 뭔가를 싸주지 않을까해서 차를 가져갔다. 그리고, 엄마의 부탁으로 들른 김천의 하나로마트에서 난 정보경 선생을 거의 15년만에 만났던 것이다. 정보경 선생님은 내 중학교 수학선생님이자 내 고등학교의 동문이셨다. 난 당시 공부를 정말로 꽤 하는 편이어서, 학교에선 내가 당연히 김천고를 갈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김천고를 몇 명 보내는 가로 선생님들의 평가가 내려지는데다, 난 당시 성적으로 김천고의 갑을병 장학생 중, 거의 갑 장학생이 유력해서 학교에선 내가 알지도 못하는 지역의 미션스쿨에 진학하는 것을 엄청나게 반대했었다. 

난 그 때나 지금이나 하고 싶은 건 하고 마는 성격이었고, 정보경 선생님의 학교 모르게 비밀리에 한 지원에 힘을 입어 선생님과의 동문이 되었다. 결혼을 할 때에는 꽃을 사들고 가기도 했었다. 10년을 훌쩍 넘었는데도 내가 선생님을 단번에 알아본 것은 선생님의 약간 심한 주걱턱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부정교합 때문에 그 때에도 불편해 했었고, 중년이 된 지금에서도 역시 그대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난 선생님께 다가가서 꾸벅 인사를 했고, 선생님도 곧 나를 알아봐서 우리는 근처의 김밥집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어, 나야. 뭐, 오늘이 어제같고, 어제가 내일같고 그렇지. 뭐. 너는? 결혼은 했어?
아뇨. 결혼할 여자는 있는데, 아직이요.
네가, 서른 서넛쯤이 되었지?
네. 선생님은 예전 그대로시네요.
나야 이제 뭐 아줌마 다 됐지 뭐. 설이라고 내려 온거야? 부모님은 잘 지내셔?
네. 떡집 하세요.
할머니네 떡집 이어받은 거야?
아뇨. 새로 시작하셨어요. 어떻게 기억하시네요.
넌 좀 특별한 학생이었으니까. 제일 기억이 많이 남지. 처음으로 진짜 제자를 만난 기분도 들었었고. 넌 내 후배이기도 하니까.
선생님 결혼식 때 마지막으로 뵙고 그 이후로 처음이니까 벌써 한 10년도 넘었네요. 진짜. 제가 대학교 2학년 때니까요.
아. 나 그 사람이랑 이혼했어. 제 작년에.
왜요?
아니야.
그럼, 아직 학교는 다니시는 거에요?
아니. 그것도 아니고 대성 학원에 수학파트 선생님으로 나가고 있어.
그러세요? 대성 학원 원장님 저랑 잘 아는 사이인데요. 선생님 부탁 좀 드려야겠네요.
원장님이랑? 네가 어떻게.
대성학원 원장 선생님 아들이 윤후라고 제가 대학교 때 과외했던 애거든요.
그래? 김 실장이랑 아는 사이였어?
아. 그 자식 아버지 학원에서 실장 노릇을 하는 모양이네요.
응. 그나저나 반갑다. 마트엔 왜 온거야?
엄마가 과일 드시고 싶다고 해서요. 엄마가 천혜향을 좋아하시거든요. 대전서 사왔어야 하는데, 잊어버려서 하나로 마트에서 사려고 갔었죠.
그래, 그럼 다음에 보자. 나도 집에서 애가 혼자 기다리고 있어서.
장보러 오신 거예요?
응. 그래도 명절인데 전이라도 좀 부쳐주려고.
같이 가요.

과일 박스를 사고, 전기구이 닭이 맛있어보여서 그것도 두 마리를 사고서는 선생님 쪽을 봤더니 선생님도 뭐를 잔뜩 사서 계산대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당연히 차가 있을 줄 알고, 인사를 하고서는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집으로 가려는데, 횡단보도 앞에 선생님이 그 짐을 그대로 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차되어 있는 택시가 바로 있는데도 버스 정류장 앞에 서 있는 선생님을 차마 그냥 두고 가지는 못하겠어서 그 앞에 차를 세우고, 선생님의 집으로 향했다. 

오늘 널 만나서 내가 호강을 하네.
아뇨. 뭘 이까짓 것 가지고요. 선생님 사시는 동네가 무슨 동이세요?
성의여고 근처야. 알아?
네. 

괜찮다는 선생님의 짐을 들고 선생님의 집까지 따라갔었는데, 한 눈에 보기에도 살림이 빈한했다. 가난한 살림이 부끄러우셨는지, 선생님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곳저곳을 치우기 바쁘셨는데, 난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려다가 안방 문을 열고 나오는 열살 남짓의 여자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엄마, 왔어. 어 누구야? 저 아저씨는?
엄마 선생님 때 제자야. 마트에서 만나서 짐을 들어주러 왔어. 경민아 와서 앉아.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
네.

그 상황에서 그냥 나가기가 좀 그랬다. 난 눈을 비비는 아이를 옆에다 앉히고는 눈인사를 나눴는데, 통통하게 볼에 살이 오른 어린 꼬마아가씨가 귀여웠다. 우리 소윤이를 보는 것 같아서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녀석은 나를 위아래로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다시 한 번 꾸벅 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아저씨. 우리 엄마 태워줘서요.
아니. 이름이 어떻게 돼? 아저씨는 선생님 제자 이경민이라고 하는데.
김지희요. 김해 김씨 지혜 지에 기쁠 희 김지희요.
반갑네. 난 연안 이씨 중정공파 26대손인데.

선생님이 커피를 담아온 커피 잔마저도 낡아서 기분이 좀 그랬다. 이혼을 하고 혼자서 살림을 감당하는 것처럼 보였다. 선생님과 난 그저 스쳐 지나가다 서로 몰라도 괜찮을 정도의 가벼운 인연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 자선병은 아니지만, 불쌍한 사람을 그대로 두지 못하는 병이 도진 기분이었다. 지희와 내 조카 소윤이가 자꾸 겹쳐 보였다. 만약 동생의 남편 녀석이 무슨 이유에서건 이혼을 하고, 생활과 양육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내 동생과 소윤이도 이꼴로 살 거라는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이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감정 이입이 되었다. 

믹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나오면서, 지희에게 용돈을 줄까말까를 거의 5분이 넘게 계속 생각했다. 내가 딸아이에게 용돈을 주는 것이 선생님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행동이 아닐까가 계속해서 고민이었다. 10년 만에 만난 제자 아이에게 자기 살림을 들키고 동정이 분명한 돈을 받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았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공통 화제도 없어서 난 그냥 머쓱하게 있다가 커피를 단숨에 마시고는 내려와서 집으로 향했다. 괜히 마음이 짠했다.

엄마에게 집에와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도 정보경 선생님에 대해 기억을 해내셨다. 엄마가 기억하는 선생님은 내 기억과는 좀 달랐다. 난 그저 초임부임을 했던 처녀 선생님이었다는 것만 기억을 해냈는데, 엄마는 그 당시에 선생님에게 촌지로 찔러줬던 5만원을 돌려받은 기억을 했고, 그리고 그 다음 해에 엄마가 찔러준 촌지 10만원을 받아 챙긴 선생님의 변모를 기억하고 계셨었다. 

아, 그 선생. 내가 지금도 기억이 나. 한 번은 내가 육성회의에 갔었거든. 그런데, 그 처녀 선생이 나한테 그러더라. 경민이가 이번 중간고사에서 전교 일등을 했는데, 어떻게 선생님들 모시고 식사자리가 한 번 없냐고. 첫 해엔 사람이 순진하고 그랬었는데, 한 이년도 못지나서 아주 싹수가 노래져가지고 말이야. 선정이 때는 더 심했다니까. 선정이 3학년 담임이었잖아. 그 때는 아주 노골적으로 이야기를 하던데 뭐. 내가 육성회장으로 마지막 해니까, 노골적으로 우려먹으려고 하더라고. 그런데, 그 선생이 이혼을 했대?
그런 것 같던데요. 딸이랑 둘만 살더라고요. 집안 꼴이 누구한테 보이기가 좀 우세스러울 것 같더라. 얼굴이 화끈거리더라니까.
마음에 걸려?
응?
니 얼굴이 그런데 뭘. 그렇게 마음에 걸리면 떡이나 가져다 주고 오던가. 어차피 떡국 떡이야 지천이고, 또 그런 건 오래 두고 먹으니까. 좀 가져다 주던가. 
그럴까?
오랜만에 본 아들 얼굴이 죽상이라서. 그 꼴도 보기 싫다 야. 저기 10킬로 박스에 담긴 거 가져다 주고 와. 딸이랑 둘이면 한달은 넘게 먹을 걸.
고마워요.
됐어. 갔다 주고 오면서, 돼지고기나 좀 끊어오던가. 그래도 명절인데, 니 아버지 술안주나 하시게. 좋은 놈으로.
그럴게요.

헤어지면서 선생님 전화번호를 묻지 않아서 그냥 선생님의 집으로 향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곧 문이 열렸는데, 선생님은 어디에 가고, 아이 혼자 tv를 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엄마는 일 갔어요. 왜 오셨어요?
떡국 떡 좀 가져다 드리려고. 여기. 선생님 오시면, 내가 놓고 갔다고 말씀드려.
아저씨, 혹시 바빠요?
왜?
떡볶이 좀 만들어주면 안되요? 나 혼자 있을 때는 가스 불 켜면 안되거든요. 먹고 싶은데.
그래. 그러자. 그런데 선생님 언제 돌아오시니?
오늘은 한 일곱시 쯤이요. 오늘은 도우미만 가는 날이라서요.
도우미?
가사도우미요. 저녁에 파트타임으로 학원에서 일하는데, 낮에는 가사도우미 나가요. 우리 엄마.
알았다. 그런데, 아저씨가 만드는 것보다는 그냥 아저씨 단골 가게 가자.

난 꼬마 지희를 데리고 내 단골이었던 석촌 초등학교 앞의 분식집을 찾았지만, 설연휴라서 그런지 모두 닫혀 있었다. 난 잠시의 고민도 없이 근처의 롯데리아로 향했고, 햄버거세트를 하나씩 먹은 다음에 지희와 지희의 초등학교 앞의 문방구에 가서 하나에 100원하는 뽑기를 하기도 하고, 김천에 갈때마다 들리는 오렌지만화방에서 짜장면 하나를 시켜서 둘이서 나눠 먹기도 했다. 약간 어둑어둑해져서 난 지희를 데려다 줬고, 지희와의 짧은 데이트는 적이 만족스러웠다. 엄마가 올 때까지 같이 기다려 달라는 지희와 tv를 보면서 소파에 기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지희는 아직 어렸지만,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비교적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들을 수 없었다. 나도 애써 모른척 했다. 선생님이 돌아오신 것은 저녁 여덟시가 다 되어서였다. 지희는 이미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선생님은 나를 보고서 깜짝 놀랐는데, 난 떡 보따리를 가리키며, 저걸 가져다 주러 왔다가 지희가 혼자 있는 것 같아 잠시 같이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했고, 언제왔느냐는 물음에 한 30분쯤 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차피 지희를 통해 알려질 이야기지만, 괜한 부담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은 몹시 피곤해보이셨다. 난 선생님이 들고온 보따리에서 어느 집의 명절음식을 대신하고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은 지친 얼굴로 내게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민아. 선생님이랑 술 한잔 할래? 여기 안주도 있고, 술도 있거든.

거절할 수가 없었다. 마치 늪에 빠져서 안된다 더는 걸음을 걸으면 죽을 수도 있어라는 위기 의식이 들면서도 몸이 늪속에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무거운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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