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31일 월요일

원 나잇 - 4부

택시가 숲을 꿰뚫어 달린다. 노르웨이의 숲이나 몽환의 숲도, 피아노의 숲도 아닌 그저 빌딩숲인 것을. 숲 안쪽 깊이만치에서 내달리며 흘러가는 풍경은 외로움의 색채를 띤다. 나무숲이라면 피톤치드 가득해야 할 텐데. 하지만 빌딩의 숲이니 무채색의 잿빛으로 쌀쌀맞을 뿐이다. 불 꺼진 오피스 빌딩들의 연속은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바람에 서로 잎 문대며 부대끼지도 않는다. 꼿꼿이 선채로 절대 닿을 리 없는 건물들은 실제 간격보다 더욱 멀어보였다.

함께 하지만 함께 할 수 없는 미소처럼.

“여기야.”

미소는 그 빌딩 숲에서 나무 한 그루를 쑥 뽑아냈다. 네온사인이나 간판 없는 오피스 빌딩이었다. 유리창이 반사광에 반짝거렸다.

미소의 뒤를 좇아 엘리베이터에 탔다. 몸은 졸졸 쫓아가고 있지만 막상 머리를 열어보면 그건 또 아니다. 머릿속에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거절하라는 문장들이 윙윙댔다. 그 중 문장 하나가 길을 찾기라도 했는지 내 입을 박차고 튀어나왔다.

“미소야.”
“응?”

그래봤자 역류한 것뿐인가. 반쯤 뽑혀 나온 문장은 본래 의도한 바대로 끝을 맺지 못했다.

“너희 집. 몇 층이야.”
“18층 눌렀잖아, 지금.”

난 비죽 새어나온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만 끄덕였다.

“응, 어. 오피스텔이었어?”
“말하지 않았나?”
“아. 그랬다. 하하.”

오늘따라 왜 이리 머저리 같을까. 머리를 쥐어뜯고 싶다. 내 두 번의 뻘짓에 미소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색함의 향이란 게 있다면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겠지. 코를 찡하게 울리고는 점차 후각까지 마비시킨다. 어색함이 점차 증식했으나 향은 이 밀폐된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나 또한 도망갈 곳이 없다. 결국 고개 숙인 채 18층까지 그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띵.”

문이 열렸다. 밀실 밖으로 나온 보람도 없이 어색함은 여전하다. 그러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딱히 할 말도 없으니까. 비트겐슈타인도 말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해선 침묵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결과 복도는 무척 고요했다. 미소의 힐 소리와 내 구두 소리, 그리고 등이 켜졌다 꺼지는 소리 뿐. 그 침묵의 회랑을 몇 발자국 걷는데 뭔가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그 때다. 처음 모텔에 갔을 때다. 이젠 얼굴도 희미해진 옛 연인과 쭈뼛대며 빨간 등을 가로질렀지. 그 때와 같은 기시감에 입술을 꾹 깨물고 되뇌었다. 난 그런 생각으로 온 게 아니야. 하지도 않을 거다.

“들어가.”

미소의 안내를 받으며 오피스텔ㄹ 들어갔다. 현관부터 무척이나 깔끔했고, 40평정도 될 것 같았다. 오피스텔이 원래 이렇게 큰가?

“연규?”
“아, 어.”
“좀 앉아 있어. 나 옷 좀 갈아입을래.”

미소는 방으로 훌쩍 들어갔다. 난 엉거주춤 선 채로 미소가 있던 곳을 좇았다. 아무래도 평정을 잃은 것이 분명하다. 머리를 쿨다운 시키며 혹시 모를 아랫도리의 욕망도 억눌렀다. 여자 집 처음 온 사춘기 소년도 아닌데 뭘 이리 긴장하는지. 나잇살 쳐 먹고 안 쪽팔리냐는 타박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잠시 맘이나 돌릴 겸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 의미 없이 오피스텔 내부를 살폈다. 이만한 평수에 삼성역 코앞이면 가격이 꽤 될 텐데. 대체 얼마나 버는 거야. 그런 생각으로 둘러보는데 과연 부티의 냄새가 폴폴 났다. 소파와 오디오, 그리고 탁자까지. 가구 수는 적었지만 내 조악한 눈으로 볼 때도 기성품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수제 제작품이다. 티 안 나게 돈 칠한 오피스텔이었다.

그렇지만 황량하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까 싶었는데 큼지막한 것들만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조막만하고 자질구레한 것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깔끔하긴 하다. 그러나 너무 깔끔한 실내는 채도 낮은 방의 색과 엮여 온기가 없어 보였다.

창가 쪽은 그보다 더해 추워 보이기까지 했다. 착각일 터인 냉기에 옷자락을 여미는데 검은 덩어리의 무언가가 얼핏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피아노였다. 슈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의 거체에 막 가까이 가려는데, 발이 멈춰 섰다. 피아노나 노래 같은 것과 멀어다 생각한 탓에 그것은 이물의 출현처럼 보였다. 그러나 막상 가까이서보니 딱히 이질적이지도 않았다. 건반 덮개 위로 쌓인 먼지는 처음의 인상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고개를 저으며 뚜껑을 열었다.

“뭐 해?”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미소는 창가 쪽 기둥에 기대어 있었다. 난 피아노를 누르려던 손을 슬며시 뗐다.

“그냥.”
“쳐봤자야. 조율 안 한지도 꽤 됐고.”

미소가 건반을 눌렀다. 도미솔의 건반을 눌렀음에도 나오는 소리는 도미솔이 아니었다. 불협화음이었다.

“줄 끊어진 것도 몇 개 있거든.”

미소가 건반 뚜껑을 닫았다. 남의 물건 건드리다 걸린 난 손가락만 접었다. 미소가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던 병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와인인데 괜찮지?”

아직 코르크도 안 딴 새 거다. 위스키 한 병을 다 비웠는데 또 마셔야 하나. 대체 집에는 언제 가라고. 그러나 미소는 내 마음도 몰라준 채로 잡아끌었다. 소파에 앉혀지는 순간까지 일절 반항 못하는 내가 한심하기까지 했다.

“안주할 게 별로 없다.”

미소가 냉장고를 뒤지며 중얼거렸다. 꿔다놓은 보리자루는 잠시 생각하다 되는대로 대답했다.

“없어도 대.”
“아, 하나 있다. 치즈.”

미소가 냉장고 위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그녀의 손엔 톰과 제리에서나 보던 조각 치즈 하나가 들려 있었다. 2천원 진로포도주만을 마셔본 내가 저 치즈를 먹어봤을까. 대답은 바로 나온다.

“나 치즈는 앙팡 밖에 안 먹어봤는데.”
“피자 먹어봤잖아.”
“아.”
“그럼 됐어. 이거나 그거나. 그게 그거야.”

미소는 힘차게 냉장고문을 닫아다. 그 위풍당당한 기세에 몸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인정하자. 이미 늦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얼마만큼은 자리해줘야 한다. 애초에 하회탈처럼 싱글벙글하는 미소를 막을 방책이 없다. 생각해보면 이 내방부터가 내 의사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이 자리까지 끌려오는 것도 못 막은 놈이 저 술잔은 막을 수 없잖아.

“듀-퐁.”

미소가 장난스레 코르크를 열었다. 난 메마른 웃음만 지었다. 좀 더 자연스레 대꾸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다. 미소와 재회한 처음 때처럼 잔근육까지 수축한지 오래다.

그 대신 의문감이 팽창했다. 생각해보면 난 거짓말을 하고 있고, 미소도 나와 매한가지로 가식을 떨고 있다. 그렇다면 모름지기 이유란 게 있어야 하지 않나. 나야 불편한 자리를 견디기 위해서였다지만 미소는 아니지 않은가. 먼저 방문을 권유한 것은 미소이니 그녀에겐 말과 행동이 어긋난 이유가 있을 터. 나 또한 어느 정도 추측은 할 수 있었다.

섹스.

가식과 거짓된 관계의 정립은 원 나잇 스탠드의 기본이다. 결국 섹스를 위한 것이라면 이 거짓된 만남도 이해가 갔다. 바텐더의 언질도 그 쪽이었고. 아마 이게 정상적인 원 나잇-웃긴다. 원 나잇이란 만남에 정상이 어딨다고-이라면 앞으로의 일도 뻔하다. 취한 남녀는 농후한 숨을 뱉으며 입술을 맞추고 살을 맞대겠지.

그러나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미소가 왜 나랑 섹스하려 한단 말인가. 나는 끽해야 ‘소꿉친구 동창생치고는 어정쩡하게 안 친한 상대’에 불과하다. 설령 그녀가 섹스중독자라 해도 길거리 지나가는 아무나 붙들고 부탁하면 백이면 백 바지를 벗을 거다. 거의 연예인 급의 미소니까 내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왜 나지? 가식을 꾸미고 몇 백의 돈을 쓰고, 자신의 집까지 알려주며 하룻밤 섹스를 즐긴다 하기엔 어긋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차라리 그 버그베어나 데려와도 됐는데.

미소가 글라스 얼마가량을 채웠다. 그리고 수염만 쓰다듬고 있던 내게 잔 하나를 내밀었다.

“자.”
“아, 고마워.”

잔에서 흘러나오는 느낌은 바에서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비싼 위스키에 비싼 와인이다. 가격 괘 되는 것들만 연달아 나오니 이젠 놀랍지도 않다. 그러나 대하는 방법은 여전히 몰랐으니. 되는대로 첫잔을 꿀떡 삼켜버렸다.

“와, 괜찮네. 이거.”

미소는 감탄의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 그 감동은 나와 별세계 이야기다. 이게 좋은 건가? 와인이란 게 원래 이런 건가. 마셔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있나.

“와인 자주 마시나 봐.”
“종종. 그냥 같이 마시다보니.”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 와인셀러까지 있다는 건 이상하지. 아까 셀러를 힐끗 본 것만 해도 스무 병 가까이 있었다. 게다가 같이 마신다는 말은 대작 상대가 있다는 소리고, 방금 전의 대답은 ‘딱히 내 취향은 아니었는데 상대 따라 마시다보니 좀 마시게 됐다’는 뉘앙스가 강했다.

내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가 여기 있구나. 그런데 왼손 약지에 반지는 없었다. 반지의 자국조차 없었다. 말투에서도 남편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혹시 위자료 왕창 받은 돌싱인가. 일단 여기선 가볍게 찔러보는 게 맞겠지.

“와인 좋아하는 거 보면 남편이 우리랑은 좀 다르게 자랐나 봐.”
“어, 뭐?”
“아니. 뭐, 나만 봐도 그렇잖아. 내가 와인하고 인연 있어 보이냐. 아니지. 솔직히 졸업 때까지만 해도 우리 그런 건 잘 몰랐잖아.”

미소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잽 치고 너무 깊게 찔렀나.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가볍게 묻는 것 치곤 질문의 단계가 너무 깊었다. 여자 손 딱 잡았더니 어, 엄마한테 물어봐야 해요! 하는 뜬금없는 대꾸처럼 논리상의 명제를 몇 개나 건너 뛴 탓이다.

아무래도 여기선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멍청하게 행동해서 실수를 가장하면 되는 게 낫겠지.

“그런데 난 여전하고 넌 와인하고 이만큼이나 어울리고. 안 그래?”

미소는 거기까지 듣고야 이해 간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와인 마시는 고급스런 취향의 남자랑 결혼하면서 변했다? 같이 자주 마셨을 테니까? 지금 이런 소리야?”
“어.”
“차라리 용 됐다고 하지. 말을 뭐 이리 돌려서 하냐. 취했어?”

똥 씹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자 미소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난 표정을 유지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실수를 지적당한 척’ 한 것도 어색하지 않겠지. 미소는 산발적인 웃음을 참으며 잔을 더 채웠다.

“결혼 아직 안 했어.”

그건 이미 알고 있었거든. 근데 잠깐. 분명 결혼은, 이 아니고 결혼이라 했다. 이 상황에서 그 뉘앙스의 미묘한 차이는 크다.

“아, 미안.”
“됐어. 그럴 나인걸.”
“만나는 남자는 없어?”

미소는 잔만 홀짝였다.

“만나는 사람은 있지.”
“그러면 나 여기 있기 좀 그런 거 아니야?”
“왜?”
“보니까 혼자 사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마주치면 좀. 시간도 너무 늦었고.”

남자들 갈아가며 술 마시고, 침대로 끌어들인다. 그런 미소에게 동거 할 만큼의 깊은 관계의 연인이 있을까. 아니, 질문을 되돌려서. 그런 연인이 있다면 그렇게 밤거리를 쏘다닐까. 결국 알고서 묻는 질문이다. 추측으로 끝내지 않고 확정적인 대답을 얻길 원하는 내 좁아터진 소갈머리여. 순간 유도심문이나 해대는 내 자신이 추하게 느껴졌다.

“아냐, 안 와.”
“그래도 모르잖아.”
“평일엔 안 와. 그러니까 내 집이다 하고 편하게 있어. 나도 내 집처럼 사니까.”

왔다, 이거다.

“너희 집 아니야?”
“응. 난 얹혀사는 중. 덕분에 누가 보기에 와인이 어울리는 여자가 됐지.”

여자 살라고 집 한 채를 내줬다. 그것도 이만한 오피스텔을. 그로서 얻는 것은 주말 이틀의 만남이다. 미소를 라푼젤로 마들어 놓은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돈이 넘쳐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미소는 그런 남자를 놓고 거리에서 새로운 남자를 찾는다. 그 모습에서 뭘 느껴야 할까. 마음의 부재?

“사실 와인 맛을 아는 건 아냐. 술이라고 있는 게 다 이런 거라서 그래.”

미소는 와인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술이면 다 똑같지. 다 그게 그건데.”

저 소리가 입버릇인가. 딱히 할 말도 거기서 거기였기에 난 치즈 조각을 입에 털어 넣기만 했다. 미소 또한 비스듬히 고개 돌린 채 창밖만 쳐다봤다.

“네가 결혼 안한 것도 알고 있지.”
“했다면?”
“십 만원 빵 할래?”
“…아니.”

억울함에 한 번 더 묻는다.

“어떻게 알았어?”
“와이프가 있으면 그 덥수룩한 머리 꼴 보고 한 소리 했을 테니까.”
“어….”
“그리고 염소수염도.”

이거는 뭐, 이길 수가 없구만. 떨떠름하여 입을 다물었다. 미소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은 얼마간 더 이어졌다.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이 느껴진다. 빌딩숲의 차가움이 햇살마냥 창을 뚫고 들어왔다. 방이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그 가운데에서 술잔만 꾹 쥔 나는, 발은 꼰 채로 까딱하는 미소는, 고개를 내리깐 채로 치즈만 씹어대는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뿌리는 미소는, 서로 더없이 멀었다.

“너무 조용하네.”

한참 후에 미소가 중얼거렸다.

“그러게.”
“백그라운드 뮤직?”

미소가 질문하며 리모컨을 흔들었다. 침묵보단 차라리 산만한 게 낫겠지. 리모컨을 조작하자 방 저쪽에 있던 오디오가 소리를 냈다. 블루지한 느낌의 기타로 시작된 곡. 흘러간 포크 록쯤일까. 멜로디는 귀에 익은데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미소가 리모컨을 놓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진짜 모르겠다. 몰라. 뭐에 힘들어 하는지. 왜 날 데려왔는지. 밤거리에서 만나는 이유도. 미소를 라푼젤로 만든 남자도. 몰라. 엿이나 먹으라지. 아무 것도 모르겠는데 뭘 어쩌란 거야.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조금 문대자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하자. 됐다. 그냥 맞춰주기만 하자. 체념의 의식이 몸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어차피 미소를 내칠 수도 없지 않나. 게다가 택시 앞에서 마주했던 속내의 편린만으로 거부의 각오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다. 엘리베이터에서의 마지막 저항 아닌 저항도 마찬가지다. 그래봤자 속절없이 휩쓸릴 거다. 그 사실을 뼈에 사무치도록 알고 있다.

왜? 미소와 재회한 순간의 죄책감 때문일 지도 모르지. 죄악은 잔에 똬리를 뜬 채로 어서 삼키라고 날 재촉했다. 이 순간의 난 소크라테스다. 독배임을 알면서도 마실 수밖에 없다.

“돈 많이 버네.”

그 와중에 내가 입 밖으로 터트린 한 마디는 참 별 것 아니었다. 계속된 속내 읽기에 지친 탓일까. 차오르는 죄책감에 항복의 백색기를 내건 것인지. 이 고요를 깨려 되는대로 내뱉은 한 마디인지도.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오피스텔을 살펴보고 내놓은 순수한 감상에 불과했다. 의도야 어쨌건 아무 생각 없이 말한 것이었고 이 한마디가 몰고 올 사태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못 했다.

수읽기하며 차근차근 넓혀가던 집 바둑은 그 한마디로 뒤집혔다. 바둑판 뒤엎는 것과 같이. 난데없는 충격적 진실과 마주해야 했다. 유도 심문으로 알아내려했던 미소의 속마음은 그렇게, 예상지 못한 타이밍에 터졌다.

“미련하게 벌기나 하지.”

미소가 술병을 기울였다. 와인이나 위스키나 물처럼 들이킨다.

“그렇게 마셔도 돼? 내일 출근은?”
“나 요즘 오프야.”
“오프?”
“전직해서 반쯤은 휴직 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전직했는데 왜 출근을 안 해? 휴직은 또 뭐고.”
“자택 근무라고.”
“어?”
“프리랜서. 몰라?”
“뭐야, 그건.”

미소는 슬쩍 웃더니 가득 차있던 잔을 또 비워버렸다. 벌컥거리는 목울대를 타고 새빨간 와인이 흘러내렸다. 그 고혹적인 모습에 내가 빨려들어 갈 것만 같았다. 뛰는 가슴을 외면하며 시선을 돌렸다. 미소는 입가에 묻은 와인을 대충 닦으며 대답했다.

“왜 벌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번다니까.”
“그래도 수입은 좀 되는 것 같은데.”
“돈 안주면 한다는 사람도 업을 테니까.”

주고받는 대화가 계속 엇갈리고 있었다.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외쳤다.

“대체 뭐 하는데?”
“궁금해?”
“어.”

아무 생각 없이 튀어나온 질문. 그 대답은 반쯤은 예상했으면서 예상 못한 것이었다. 그 탓에 나 또한 양념 반 후라이드 반처럼, 표정을 얼빠짐과 놀람으로 반반 채워야 했다. 그러나 나는 곧장 그 표정을 짓지도 못했으니. 그 이유는 미소가 보여준 웃음 때문이었다. 조소도 아니고 비소도 아니다. 순수한 웃음 그 자체였기에 왜 웃는지도 이해가지 않는다. 게다가 이어진 말과의 위화감에 잠시 멍청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부.”

바로 이해하기엔 표정과 말의 갭이 너무 크다. 저 정부가 행정부를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단어의 의미를 몇 번이나 곱씹으며 미소와 눈을 맞췄다.

이건 진심이다. 미소는 그 정부를 말하고 있었단. 돈 깨나 있는 양반들이나 둔다는 숨겨둔 애인. 오피스텔에 들어오며 그 조짐을 못 느낀 것은 아니었다.

“노, 농담이지?”
“콜걸이야, 나.”

미소는 잔을 기울이며 또 말했다.

“소속이 없으니 프리랜서 콜걸이지만.”

미소는 그것으로 설명을 끝냈다. 아, 그래. 정부라면 보통 화류계 쪽 여자가 많지. 그래 안다. 그래, 나도 화류계가 뭔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도 아니고. 그래, 그래서 미소가 화류계에….

자택 근무라고.

본래는 가게 소속으로 술 따르는 아가씨. 그러나 누군가의 정부가 되면서 자택 근무로 전직. 술집 아가씨에서 성 안의 라푼젤이 되는 것도 전직인가. 그런데 그 성은 첨탑처럼 높지도 않고 창살조차 없네. 라푼젤은 밤마다 성을 빠져나가 남자를 만나고, 주말의 왕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옛 손님들 만나기엔 오히려 더 좋겠지. 그래서 프리랜서 콜걸이다?

“이 쯤 말했으면 이제 코난 흉내는 그만 두는 거지?”

해맑은 웃음이 다시 이어졌다. 뼈 있는 한 마디에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이제 짠.”

멍청하게 시키는 대로 잔을 들었다. 아, 미소의 것은 업무용 웃음이 아니었구나. 접대용 미소였구나. 수많은 남자들과 잔을 나누며 그들을 쥐락펴락 했던 여자가 발하는 기세는 참 거대했다.

“나 비싼 여잔데 너라서 특별히 DC 했다. 백 퍼센트 DC. 그러니까 다 마시고 가.”

잔이 깡, 소리를 내며 짧게 울었다. 난 프리랜서 콜걸이 이끄는 대로 술을 들이켰다. 지금 마시는 것이 술인지 본든지, 아니면 모래인지도 모른 채로.

멍한 머리를 필사적으로 붙들었다. 어느 자택 근무자의 집에서 오디오가 울었다. 절정에서의 폭발은 흡사 오열하는 것처럼 들렸다. 문명이여, 나대신 울어주어 고맙다. 귓가에서 윙윙대는 울음소리에 순간적으로 뭔가가 번뜩였다.

An old slut's elegy늙은 창녀의 비가.

기억난다. 그런 제목이었다. 저 소울풀한 코러스 부분을 듣자 뒤늦게 생각이 났다. 이 노래를 처음 접했던 것이 원곡이 아니었기에 못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내리깔리는 기타 소리가 내 마음을 더욱 낮게 깔았다. 그리고 음울함에까지 더 나아갔다.

이게 정말 우연일까. 그렇다면 신에게 뻐큐 한 대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건 아닐 거다. 저 가면 같은 웃음을 보면 일부러 틀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정말 얄궂다.


기타의 비브라토가 진도 8 만큼 강렬해서? 노래가 히스테릭하다 할 만큼 높아서? 내 영업용 미소가 접대용 미소의 숙련도를 이겨내지 못해서? 이유야 뭐든 상관없겠지. 뱀 굴인지 알면서도 쿡쿡 찌르다가 뱀이 무더기로 튀어나왔다. 그래서 결국엔 왕창 물렸다.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그렇다면 난 이제 메두사 같은 표정만 지으면 되나? 그것도 별 상관없어 보인다. 이미 비슷한 표정 짓고 있는 것 같으니.


* * *


졸업 여행 중 기억나는 건 많지 않다. 다만 그것에 교장의 실수가 있었다는 건 기억한다. 무슨 이유에선지 졸업 여행을 연도가 바뀌고 나서야 떠난 것이다. 수능 점수는 일단 제쳐두고 해방감에 신난 고3들을 모아놨으니 뭘 어쩌겠나. 이젠 합법적으로 술 담배 할 수 있고 곧 졸업인데 뭐? 좃까 씨발!을 외쳤던 놈이 반장이었던 판국이니 교장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하겠다. 결국 졸업여행은 숙취여행으로 변질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결말만 이야기하자면 나 또한 내 토악질의 흔적을 뒤지며 뭐가 위액이고 뭐가 소주일까? 싶을 만큼 마셨다. 그 비율은 7:3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소설의 결말을 알고 있다고 책을 읽었다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좀 더 시간을 돌려 그날의 밤을 더듬어봐야 할 것 같다.


기억하기론 장기자랑이 있었다. 그렇지만 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리하지 않았다. 노래 좀 부른다 싶은 애들이 나오 자리가 장기자랑인데 미소가 안 나올 리 없었으니까. 설사 미소가 원하지 않는다 해도 주변 것들이 팔밀이 할 것은 뻔했다. 어지간한 아마추어는 찜 쪄 먹을 노래 실력에 데뷔도 이미 초읽기에 들어갈 무렵이었다. 아이들 말로는 그랬다. 그래서 가고 싶은 마음이 더더욱 생기지 않았다. 이미 중학교 때 한 번 세이렌을 만나 수장 당했는데 또 뭘? 차라리 플라잉더치맨이 되어 망자의 함에나 타라고나 하지. 내가 방에 틀어박힌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밤이 되어 들떠있던 녀석들은 숨겨놓았던 술을 꺼냈다. 술 맛도 모르면서 호기심에, 또 허세에 한잔씩들 하며 슬슬 취해갈 무렵. 누군가 여자들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수험생활하며 볼 거 다 보아 여자보단 계집년에 가까운 애들이었지만 미소는 아니었던 것 같다. 거의 마돈나로 대우받는 대화를 한 귀로 흘리며 난 술잔만 거푸 비웠다.

그 무렵 미소와 나의 관계는 변해 있었다. 미소는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아무리 밀쳐내도 다시 또 다가오던 미소이니 뭔가 변해다 느끼긴 했다. 내가 막 대해서겠지. 그 무렵엔 그렇게 생각했다. 볼 때 마다 열등감이나 키워줬으니까 거북하기도 했다. 그래서 되바라지지 못한 짓도 많이 했다. 그 결과 내가 좀 심했나 하는 미안함도 없잖아 있었다. 껄끄럽긴 했지만 살짝 죄책감이 있었단 소리다.

그렇기에 남자 방에 이끌려 온 여자 무리 속에서 미소를 본 순간, 내 얼굴이 약간의 죄책감과 다수의 열등감으로 범벅되어 있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오늘의 가왕이 왔다는 환호 속에서도 결국 난 뻘쭘히 있을 수밖에. 난 주변으로 물러나 몇몇과 시답잖은 농담만 주워 담았다. 그러나 이내 그것마저도 질려가던 찰나 누군가 외쳤다. 앵콜! 한번만 더 불러줘. 공연 중간의 인터벌 같은 환호성에 묻혀서, 자리 피하려던 찰나 반장이 소리쳤다. 취해서 븅신이 되어있어도 끝까지 반장이었다.

“조요옹!”

그리고선 이제 미소의 라이브도 듣기 힘들 테니 경청하자며 외쳤다. 네가 무슨 로디냐. 반말 사이에 추임새처럼 딸꾹 소리를 넣으며 자리를 만들었다. 노래가 무슨 경청이냐. 수업이냐. 하면서 나가려던 찰나였다. 스무 명의 눈 마흔 개가 날 바라보고 있음을 그제야 눈치 챘다. 쟨 왜 나가? 하는 눈빛에 ‘미소 노래 안 듣고’가 생략되어있음은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눈치 보며 슬그머니 앉자 미소가 대신 일어났다.

미소는 짧게 기침하고는 노래를 시작했다. 모르는 노래였다. 그 때의 표정을 떠올려보면 모두들 모르는 곡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미소는 멈추지 않았다. 우리 또한 감동을 덜 받지도 않았다. 방을 쨍쨍하게 울릴 정도의 열창에 분명 무반준데 이 반주가 있는 느낌은 뭐지, 할 정도였다. 고작 일 분가량이었지만 감동은 일분 치를 능가했다. 모두들 얼빠진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난 메마른 웃음을 짓는 미소를 뒤로하고 방을 나왔다. 이미 옆방에서도 술자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술 모자랄 걱정 안 해도 되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마시면서 생각했다. 역시나 격차는 여전하구나. 구태여 지방 잡대라도 가야하나 고민하던 나로선 서울 소재 대학 가면서도 노래까지 잘하는 미소가 너무나 커보였다. 그렇지만 별반 새로울 것도 없었다. 그녀와의 이런 우열관계는 하루 이틀 일도 아닌 만큼 좌절에도 익숙해져 있었다.

한바탕 마시고 술 좀 깨려 콘도 밖을 나왔다. 슬슬 빈대떡 한 장 부칠 것 같아 나온 걸음이었다. 그러나 겨울바람을 쐬다보니 술이 깨긴 커녕, 만일 토하면 빈대떡 반죽이 얼어버릴 것만 같았다. 강원도의 한겨울 날씨는 매서웠다. 더 못 버티고 콘도로 들어왔다. 넓은 홀을 가로지르는데 저 쪽에 미소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고개 숙인 채로 홀 가장자리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많이 마셨냐. 여기서 뭐해. 들어가자. 내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을리 있나. 나는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린 채 바삐 걸었다.

“홍연규.”

부름에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미소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덧붙였다.

“어디가.”

방금 전에도 노래하는 목소릴 들었는데도 거의 반년 만에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 같았다. 실제로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른 지도 그만큼 됐었으니까. 미소는 표정 없는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소는 그 이름처럼 늘 우음을 달고 사는 사람이었다. 서로 대화 없이 보낸 반년, 그리고 그 이전까지의 모습만 봐도 늘 활기찬 웃음을 지었다.

“혼자 뭐 하고 온 거야?”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감정이 없어보였다. 사람이 아닌 인형 같았다. 그 덕분이 아니었다면 대답도 못했겠지.

“산책.”
“많이 마셨어?”
“그런가봐. 아직도 어지럽네.”

미소는 엉덩이를 당겨 공간을 만들며 말했다.

“여기 앉아서 쉬어. 그리고 나 올라갈 때 같이 들어가.”
“그냥 지금 가지 왜.”

그러자 미소는 옅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귀에 들릴락 말락 할 만큼 작게 중얼거렸다.

“안 될까.”

난 하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 웃음은 다소 힘 빠져보였지만 미소가 늘 짓던 미소였다. 잠깐 미소답지 않다 다시 미소로 돌아온 것 같았다.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았다. 분명 술기운 덕분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때까지 막대했던 것을 잊고 그토록 뻔뻔하게 행동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앉았어도 뭔 할 말이 있을까. 몇 년이나 외면한데다 요 근래는 말도 안 해봤는데. 그래서 입 다문채로 가만있었다. 미소는 그런 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왜 그래.”
“그냥. 에헤헤.”

보아하니 그녀도 술을 좀 마셨던 것 같다. 뭐야, 하며 눈살 찌푸리는데 대뜸 이렇게 묻는다.

“아까 나 어땠어?”
“뭐.”
“노래 있잖아, 노래. 어땠냐고.”
“아아.”

왠지 모를 기시감을 뒤로하고 대답했다.

“그거 노래 좋더라.”

대답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걸 물어본 것이 아니잖아. 그렇지만 미소는 따지지 않고 내 대답을 받았다.

“그치? 되게 시적이잖아. 요즘 마음에 와 닿더라고.”
“근데 그 노래 아무도 모르는 것 같던데.”
“어쩔 수 없지. 최신 가요도 아닌데.”

그리고선 혼자 킥킥거린다.

“어땠는데, 그래서?”
“뭐, 또.”
“감상 말이야. 내 노래에 대한 감상.”

역시 그 쪽으로 갈 줄 알았다. 순간적으로 고심했다. 예전 중학시절처럼 반쯤 조롱 담아 대답해야 할까. 아니면 솔직하게, 잘 부르더라, 멋있어, 그렇게 대답해야 할까. 솔직히 그 둘 모두 불가능했다. 조금은 머리가 컸는지 예전처럼 속 좁게 대답하는 것은 아니다 싶었고, 열등의식을 완전히 이겨내기엔 덜 컸던 것 같다.

“미안. 난 영언 꽝이라 의미 하나도 모르겠더라.”

그래서 결국 택한 것은 도피였다. 나도 안다. 한심했겠지.

“그래, 그렇구나.”

미소는 길게 코트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것으로 잠시 동안 대화가 끊겼다. 내 도피성 발언의 위력을 여실히 실감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 후 서툴고 조심스럽게 화제를 새로 꺼낸 것은 미소였다.

“그런데 대학 어떻게 할 거야?”
“글쎄. 모르겠다. 지잡대 여기저기 찔러보면서 재정 보태줘야 하나 싶고.”
“이제 정시밖에 안 남았잖아.”
“그것도 구태여 꼭 해야 하나 싶어.”
“대학에 별로 관심 없나봐.”
“그럴지도. 좀 천천히 생각해보려고. 어딜 가나 똑같을 텐데.”

팔짱을 끼는데 되도 않는 허세로 보일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얼핏 듣기로 미소는 명망 있는 음대에 합격했다고 했다. 그런 그녀 앞에서 지방대 타령 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울 뿐이겠지. 괜스레 무안해져 패딩 속에서 주먹만 쥐었다.

“근데 우리 되게 오랜만에 이야기 하는 것 같다.”
“그러게.”
“앞으론 이렇게 얘기하기도 힘들겠네.”
“그럴지도.”

내 쌀쌀맞은 반응에 미소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예전 같으면 헤드락 걸며 그게 뭐냐를 외쳤을 텐데. 지금까지 외면해서 그런 걸가.

쌀쌀맞게 대한 것에 큰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다. 변명하자면 난 그저 추웠고, 빨리 들어가고 싶었을 뿐이며, 왜 할 말도 없으면서 붙잡고 있는지도 이해 못했을 뿐이다.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미안함도 미소의 노래와, 대학 합격과, 데뷔 초읽기에 많이 희석 된지 오래였다. 다시금 되살아나는 열등감에 미소에게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난 어렸던 것이다. 욕하고 밀쳐내도 오뚝이 같던 미소가 왜 지난 얼마간 침묵했는지. 깊게 잘 웃는 모습이 잘 어울려 사람은 제 닮아나 보다, 했던 미소가 왜 저리도 옅고 메마른 웃음을 짓는지. 그에 대한 생각을 못했다. 졸업 여행이라는 마지막 자리에서 왜 나를 찾아 이야길 하려던 것인지. 그것들에 어떤 촉도 서지 않고, 또한 생각하지도 못했다. 눈은 옹이 구멍이오 더듬이는 피콜로 더듬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왜 그래, 오늘.”
“응?”

미소는 조심스레 눈을 치켜떴다. 그러나 술기운과 추위에 초점 흐려진 내 눈은 그녀 눈의 떨림을 못 알아차렸다.

“뭐 할 말 있어? 있음 빨리 해. 들어가게.”

훗날에야 아, 그 때 도움을 청하려 했던 것이구나, 하며 무릎을 탁 쳤지만 그 때의 난 병신 하며 머리통을 날려도 될 만한 것이었으니. 미소는 잠시 동안 고개를 떨어뜨렸다. 몇 초 후 그녀가 새로 지어보인 표정은 다름 아닌 미소였다. 너무나 해맑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

“아냐.”

미소는 웃음을 뚝뚝 흘리며 대답했다.

“역시 됐다. 아무 것도 아니야.”
“싱겁긴.”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타박하자 미소는 헤헤 웃었다. 우린 이야기를 끝내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7층까지 올라가는 내내 미소는 웃기만 했다. 그리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려는 찰나 미소가 말을 걸었다.

“연규야.”
“뭐.”
“아까 부른 노래 있잖아. 내가 그 제목 말 했었어?”
“아니.”

미소가 조심스레 말했다.

“언 올드 슬럿 엘레지.”

그리고는 부드럽게 덧붙였다.

“시간 나면 한 번 들어봐.”
“어놀드 슬, 뭐? 뭔 뜻이야?”

미소는 그 때까지도 웃는 낯이었고, 그 웃는 모습 그대로 화답했다. 그 날 대화의 종결을 고하는 한 마디였고, 미소란 표제의 기억더미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기록된 한 마디였다. 그 때 만일 미소의 고통을 눈치 챘거나, 내가 영어 좀 알았거나 했다면 대화를 그렇게 끝내지 않았을 거다.

“늙은 여인의 비가悲歌.”

여인은 무슨 여인. 구라치네 하면서 쏘아붙여줬을 테니까.


* * *


훗날 돌이켜보면 그 대화가 우리 인연의 마지막이었다. 졸업이란 종막을 맞은 후로 우린 각자의 세상으로 떠났다. 나는 군대에 갔고, 미소는 잘 모르겠지만 대학 갔겠지…하는 것이 전부였다. 관심도 끊고 연락도 끊었다. 그에 따라 미소의 기억더미 위엔 차츰 먼지만 쌓여갔다. 다신 돌아오지 않을 90년대의 추억처럼 뭔가가 더 추가되어 쓰일 일은 없어 보였다. 사실 나 또한 별로 알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그 후의 난 어땠나면, 할 이야기가 좀 있다.

자신의 추락을 목도하였을 때의 대처법엔 몇 가지가 있다. 못난 자신을 벗어나 발전하려 노력하거나, 난 원래 그런 놈이라며 체념하고 그냥 사는 것. 전자는 성장이고 후자는 포기다. 미소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 내가 나로서 살기 위해선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난 후자를 택했다. 이등병 시절 밑바닥 인생을 헤집어나가는 중이었으니 어찌 보면 자연스런 선택이었다. 나란 놈 잘 될 리 없다고 인생 펼 날 없으리라고 질책하며, 정말 되는 대로 살았다. 스무 해 남짓밖에 안 살아봤지만 아마 인생 말년엔 탑골공원 무료급식이나 받아쳐먹으면서 살겠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와중에 미소의 소식을 들었다. 말년휴가 때 동창 녀석들과의 술자리였다. 으레 그렇듯 여자로 시작되어 여자로 귀결되는 남정네들 술자리. 그 자리에 안주거리로 우연하게 터져 나온 것이었다.

“아 맞다. 나 걔 먹었다.”

한 녀석이 그렇게 운을 뗐다. 누구? 하고 되묻자 튀어나온 이름은 바로 그 이름이었다. 2년간의 군 생활 동안 차츰 잊어갔다고 생각했던 이름.

“씨발, 무슨 창년 줄 알았어. 빨아대는 게, 존나, 야. 나 정기 빨리는 줄 알았다.”

내가 굳어버린 틈에 다른 녀석도 말했다.

“어? 나도 걔랑 떡쳤는데?”

나를 제외한 몇 명이 순차적으로 나도 나도를 외쳤던 것이 우연이었을까. 친구들은 제 경험담을 늘어놓으며 동질감을 구현했다. 가만 들어보니 하이텔시절 야설이 따로 없었다. 팔공 중에서 목 아래 구멍 두 개-정확히 말해 하나는 구멍 뚫린 육봉이었지만-를 미친 듯이 빨아댔단 것부터 끈적거리는 단백질을 요플레 마냥 삼켜 마신 것까지. 혹은 요분질하며 미친 듯이 쌕을 써댄 것이나 뒤에서 꿰뚫리며 눈깔 돌아 갈만치 좋아했단 것까지. 난 한발 떨어져 관망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는 너무나도 먼 세계 이야기였다. 게다가 이 대화의 주인공이 정말 미소인지도 의심스러웠다. 말만 들어보면 퇴물 창녀에게 돈 백 던져줘도 과연 그렇게까지 해줄까 하는 수준이었으니까. 그 때까지 미소는 일류 음대 가서 데뷔 준비하는 모습으로만 기억되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씨팔년, 걸레네. 씹걸레.”

그 자리의 누가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뭐가 중요한가. 나를 뺀 네 명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 그 이후로 무슨 이야기를 했고 뭘 마셨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긴 그것도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 미소 이야기가 중요하겠지.


전역 후에 미소의 이야기를 귀 동냥질 해다. 나 자신도 내가 왜 이러나 이해가지 않았다. 그러나 기회가 되면 그녀의 소식을 물어물어 찾는 내가 있었다. 동창에게서, 같은 대학 동기생들에게서, 구글링으로. 그렇게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보니 알게 됐다. 그 술자리에서 동질자들이 했던 이야기는 딱히 거짓이 아니었다.

미소는 창녀가 아니었다. 창녀 이상이었을 지도 모른다. 차라리 미소에게 직접 들었으면 뭔가가 달라졌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난 어쩌면 진실을 피하고 원하는 사실만을 취사선택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때의 내가 충격을 받았냐 묻는다면 난 그렇다고 대답하겠다. 그러나 순전 미소의 추락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충격은 빅뱅이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축포였다. 이 열등감의 근원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미소다. 그런 미소가 나보다도 더 형편없게 된 것을 알게 된 순간, 혈류처럼 내 몸을 채우던 열등감이 사라졌다. 결국 그것은 성장과 포기에 이은 세 번째 길이었다. 척도를, 비교대상을, 기준점을 바꾸는 것.

즉, 도피다. 추한 내 모습을 숨기고 싶을 땐 더 추한 세계로 가면 된다. 이 고통 견디기 힘들면 더한 지옥 속에서 상대적 위안을 얻으면 된다. 인간은 그렇게들 삶에서 도망친다. 내가 그랬다. 미소가 쓰레기보다 더한 인간이 되자 뿌옇게 안개 서려있던 미래가 탁 트이는 것 같았다. 역설적이게도 미소의 추락이 내 성장의 탈을 쓴 도피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난 그제야 비로소 탑골공원으로 향하는 내 미래상을 끊어냈다.

제대로 살게 되었다. 사람답게 살게 됐다. 만족스러웠다. 돈도 벌고 여자도 만나고 정말 인간처럼, 인간답게 살았다. 한 편으로 미소를 외면했다. 미소는 창녀 이상의 존재로 내 안에서 남아있어야 했다. 그래야만 열등감을 잊을 수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희생양이 되었다.

혹시나 미소가 그 모습을 이겨냈을까. 그에 대해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열등감의 재발은 무서웠고, 난 미소를 묻을 수밖에 없었다. 알려고 하지 않고 기억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럴수록 난 성장하고 성은 높아만 갔다.

그런 시간이 1년, 2년 차곡차곡 쌓였다. 시간은 미소의 기억더미 위로 소담히 쌓였고 점차 미소를 잊어갔다. 그 망각의 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돈에 지치고 사람에 지치는 일상. 쳇바퀴처럼 도는 집과 직장의 반복 속에서 웃는 법을 잊어갔다. 영업용 미소와 상전 대하는 헛웃음에 익숙해졌다.

사랑의 열정도 이젠 아득해져 첫사랑의 얼굴도 희미해졌다. 버릇처럼 입에 담은 탓인지 사랑한다는 말이 밥 먹었냐는 말처럼 아무 의미 없게 들렸다. 연애라고 별 것 있나. 문자게임이나 하면서 밀당이나 하면 되지. 매뉴얼에 따라 이전의 연애 방식을 답습하기 일쑤였다. 뭐가 부족한지도 모른 채 마음이 비어간다. 그러나 텅텅 비어버린 자신의 모습이 일상이 된 탓에 부족함을 자각하지도 못했다. 일상은 메말랐고 비 일상화는 요원했다.

그것을 깨트린 것은 동창회 자리였다. 미소가 나올 리 없겠지. 그래도 모른다. 난 간사에게서 미소가 안 온다는 확답을 받고서야 자리에 나갔다. 미소의 얼굴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시점이었다.

그 술자리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변한 얼굴에서 고등학교 시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몇 마디의 대화로 그녀가 미소와 자주 붙어 다니던 단짝임이 기억났다. 그러나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애매하게 네가, 너는,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녀는 내 이름이 연규임을 기억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 여자의 이름 아냐고 물어볼까, 하며 타이밍을 쟀다. 그 때가 2차 무렵이었다. 그러나 딱히 이름을 알아낼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이미 얼큰하게 취해있었으니. 골골대는 꼴이 이름을 알아도 별반 달라질 것이 없어보였다.

“야.”

그녀는 비뚤어진 눈동자로 날 마주했다. 난 적당히 대꾸했다.

“너 좀 피곤해나 봐. 금방 취하네.”
“너 미소 이야기 묻고 다녔다며?”

약간 놀랐으나 쉬이 대처했다.

“옛날엔 그랬지. 이 물이나 좀 마셔봐.”
“왜 그랬는데?”
“그건 왜 물어?”
“왜애 그랬냐고오.”

귀찮아져서 대충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는 찰나였다.

“좀 도와주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훌쩍거렸다. 아 씨발 골뱅이. 씨발 주사. 가지가지 해라. 여기까지 와서 주정 받아줘야 하나.

그런 찰나, 그녀는 머리를 갸우뚱 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왜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꺼냈을까. 술에 취해서? 그 시절이 그리워서? 아닐 거다, 아마. 그녀 또한 죄책감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미소에게 애인이 있었다. 아는 선배였고 막 나가는 놈이었던 것 같다. 연인 사실을 숨기며 지내오다 우연한 기회에 잠자리를 같이 했다. 아니, 그런 질 좋은 것이 아니다. 술을 먹이고 강간했다. 사진을 찍었다. 동영상을 찍었다. 협박했다. 거절했다. 협박했다. 강간했다. 강간했다. 강간 했다.

쥐고 있던 생맥주잔이 얼어붙는 줄만 알았다. 그 때가 고3 때였다. 대략적인 이야기였음에도 혈관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혼자 삭히다 부모님에게 알렸다. 그들은 그 선배를 신고했고, 고소했다. 그 놈은 합의를 요구했다. 그들은 거액과 함께 찾아왔다. 미소는 당연히 거부했다. 그러나 미소의 부모님은 아니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 때문일까. 미소의 뜻과 달리 합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미소는 대학생이 되었다. 지난 고통을 잊고 새로운 삶을…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개새끼….”

그러나 그녀의 말은 그 한마디를 끝으로 멈춰있었다. 합의 이후의 이야기를 재촉했으나 그녀는 술 내나는 한숨만 내쉬었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없었다. 난 불타는 술기운에 생맥주잔을 놓았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염병, 졸라게…하. 씨발.

욕을 삼키는 순간 미소와 나의 마지막 기억이 떠올랐다. 신은 이 기회를 삼아 꼬여버린 것을 풀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린 이미 끝난 관계라 생각했는데 왜 또 말을 걸었나?

그녀와 멀어졌던 고 3 시절. 미소는 내 태도에 지친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분명 내가 병신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녀는 거머리마냥 끈질겼으니까. 우리가 멀어진 이유는, 그녀의 고통 때문이 아니었을까. 삶이 그녀를 깔아뭉갠 것이다.

졸업 여행 때 원래의 말을 붙여온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삶에 지쳐 울었다. 혼자 전전긍긍 앓는 것이 힘들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다. 소꿉친구였던 나라면 나쁘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 그러나 난 그 모두에 이렇게 반응했다.

‘뭐 할 말 있어? 있음 빨리 해. 들어가게.’

그것은 마지막 도움 요청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 내가 너무 늦었구나. 지금도 너무 늦었구나. 그러나 일은 이미 벌어진 후였다.

내 속 좁은 청춘은 미소를 밀쳐냈다. 그 때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 스스로의 발전이라 자위하며 쌓은 성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렇게나 견고했던 성은 실상 모래성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몇 년간의 성과가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짧은 시간의 소리 없던 붕괴가 참 허무했다. 차라리 종말을 고하듯 굉음 속에 무너졌으면 좀 나았을까. 바벨탑처럼.


그 날로서 난 미소를 정말로 지웠다. 미소를 기억 깊은 곳에 묻었다. 그 후로부턴 망각에의 소원이었다. 더는 열등 속에 살 수 없었다. 이제는 죄책감을 넘어서 죄악에 가까웠다. 결코 버틸 수 없었다.

때문에 잊었다. 미소의 마지막 손 내밂을 외면하고, 그저 몰랐을 뿐이라고 자위하며, 나 자신의 실수를 숨겼다. 그렇게 기억더미를 봉인했다. 기억을 지우고 싶었다. 오줌 쌌다고 요를 감추는 꼬마처럼, 난 그렇게 망각을 갈망하는 도망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 망각 속에 무얼 또 잊은 건지. 사랑을 잊고 삶에 지치며, 가치란 것을 잃어버렸다. 만물이 무가치한 잿빛 도시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요원해보였다. 그런 나날 속에서 미소를 만났다. 바로 오늘. 8년 만에 다시 본 미소는 흑백의 세계에서 홀로 색을 품고 있었다. 그 이유를 금세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무채색의 세계를 탄생시킨 창조주이자 원인이 그녀였으니까.


결국 난 거역할 수 없었다. 깔 맞춤이라도 한 듯 와인이 브랜디로 바뀌었을 대도, 만취하여 수마가 밀려온 순간에도, 거절의 힘은 미약했다. 내가 소파에 널브러져 얼마나 졸았는지는 모른다. 원래대로였다면 그대로 푹 잤을 테지. 그러나 나는 일어났다. 정신의 저 끝에서부터 피어오른 쾌락은 희미했지만 착실하게 내 정신을 일깨웠다.

그리고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린 순간 미소가 보였다. 불 꺼져 어두운 탓에 실루엣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무릎을 꿇고 있음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위치가 내 다리 사이란 것도. 벗겨진 내 다리 사이를 핥고 빠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척추를 타고 흐르는 쾌감에 내가 사정하리란 것 또한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거부할 수는 없었다. 내 희뿌연 쾌락의 잔재가 미소의 입 안으로 전부 빨려 들어가는 순간에도 난 무력했다. 취기 때문에 손 하나 못 가눠서야. 그리 변명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내 손은 멀쩡히 움직여 그녀의 머리를 움켜쥔 채로 사정의 순간을 맞았다. 마치 꼭지라도 열린 듯 콸콸 쏟아진 것들이 미소의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넘어갔다. 그녀의 빨아들이는 힘 때문인지 엉덩이가 들렸고 몸이 움찔거렸다. 더 싸라고 외치는 듯이 하초를 핥아대는 혀 놀림에 사정은 꽤나 길게 이어졌다.

너무 깊게 잘라 알맹이 다 쏟아낸 거북알과, 한 입에 삼킨 그 때처럼. 액 한방울까지 다 빨아먹는 미소 앞에서 멍청한 표정으로 쾌락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그 때처럼 울지 않은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껏 눈물 토해낸 아랫도리는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불가항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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