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0일 목요일

금지된 사랑 - 1부

솨아아아.

샤워기에서 나오는 차가운 물줄기가 수만의 몸을 적시고 있었다. 수만은 아직도 어색한 듯, 자신의 까까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리고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봤다. 거울 속에 비치는 수만의 모습은 아직은 성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남자로서는 작은 약 165cm의 키에 체중은 50kg을 갓 넘었다. 흔한 여자들처럼 가냘 퍼 보이는 체격을 가진 수만이었지만, 그는 몇 시간이 지나면 군인의 신분을 갖게 되었다.

이제 갓, 약관의 나이가 된 이수만, 오늘은 그의 입대 날이었다.

부르르르.

아직은 4월 초의 봄이라 그런지 찬 물로 하는 샤워는 수만의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의 수만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이른 나이의 입대 결정은 수만 스스로의 결정이었지만, 아직도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잊고 싶었던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자신에게 아주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수만은 다시 한 번 이른 입대가 자신에게 큰 기회가 될 것임을 중얼거렸다.

털털.

수건으로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 낸 수만은 옷을 입고 욕실을 나섰다. 수만이 욕실에 나오자, 그 앞을 지키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수만아, 엄마가 따라갈까?.”

“아니야, 괜찮아, 뭐 내가 어린애인가?.”

“그래도....”

“대한민국 사나이라면, 다 한 번씩 가는 거야. 너무 걱정 마.”

수만의 엄마인 은경은 울 듯 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애써 당당해 하는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은경은 수만이 입대를 하겠다고 말을 했을 때는 너무 이른 결정이라며 말렸었다. 20년간 단 한 번도 엄마의 말을 거역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은경은 수만이 입대 결정을 철회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수만은 자신의 입대 결정에 완고했다. 은경은 수만의 완고한 모습에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들이 정말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정말 안 따라가도 돼?.”

“응!. 엄마는 걱정 마시고 출근이나 하세요.”

며칠 전부터 은경은 수만이 입소를 하는 의정부 306 보충대에 함께 가겠다고 했지만, 수만은 그것마저도 계속 거절을 해왔다.

“정말 괜찮아?.”

“아이구. 우리 엄마 고집이 황소고집이네, 난 엄마 울고불고 하는 것 보기 싫으니까, 아무 걱정 말고 출근이나 하세요. 아들은 몸 건강히 다녀 올 테니깐.”

수만은 엄마 은경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수만이 보기에는 아까부터 은경의 눈에 벌써 눈물이 한 가득했기 때문에 자신도 눈물을 왈칵 쏟을 것 같았지만, 꿋꿋하게 참아내고 있었다. 더 이상 엄마인 은경 앞에서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수만이었다.

의정부에는 오후 1시까지만 도착하면 되었다. 그러나 수만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인천에서는 조금 이른 시간인 오전 8시 30분 정도가 되었을 때 현관문 앞에 나섰다. 아무래도 자신이 집에 오래 머물수록 엄마인 은경이 출근마저 미룰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수만으로서는 마음이 불편할 수 밖 에 없었다.

“수만아 왜 이렇게 일찍 가는 거야?.”

은경은 일찍 집을 나서려는 수만이 걱정스러웠다. 아무리 봐도 아직은 자신에게 어린애였다. 여자처럼 작은 체구를 가진 아들이 험한 훈련을 견뎌야 하고, 처음으로 자신과 떨어져 낯선 곳에서 2년을 생활해야 한다니 당연히 걱정될 수 밖 에 없었다.

“친구가 따라간다고 했어.”

“친구 누구?.”

“일룡이...”

은경은 수만에게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생소했다. 수만은 물론, 은경에게도 잊고 싶은 일이었지만, 수만은 학창 시절 내내 왕따를 당해야 했다. 몸이 약하고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그런지 수만을 괴롭히는 아이들이 많았고, 한 번은 학교까지 옮겨야 할 정도로 심각한 학교폭력을 당한 적도 있었다.

“일룡이?.”

“응. 엄마에게 말은 안 했지만, 일룡이라는 내 유일한 친구가 있어. 아무튼 충성!. 아들 건강히 잘 다녀오겠습니다. 엄마도 아들 없다고 외로워하지 말고, 혼자 사니까 문단속 잘하고... 알았지?.”

“으... 응.”

은경은 힘차게 말을 하며 자신을 걱정해주는 수만을 보며 억지로 웃으려고 애를 썼다. 어차피 집을 떠나는 아들이라면, 가는 길에라도 마음 편히 보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갈게.”

“수만아. 몸 조심 해야 해. 편지 꼭 쓰고..”

“넷!.”

수만은 힘찬 대답을 한 후, 이윽고 현관문을 나섰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버튼을 눌렀다.

띠리릿.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마 떠나는 아들의 뒷모습을 볼 자신이 없었던 은경은 엘리베이터 앞까지도 마중을 나가지 못했다. 오히려 현관문이 닫히자,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동안 참고 있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흑흑흑... 흑... 흑.”

은경은 그렇게 아들 수만을 걱정하며 한참동안 그 자리에 앉아 울어야 했다.

***

용일은 수만의 입대를 배웅하기 위해 의정부 306 보충대에 와 있었다. 수많은 인파가 연병장에 있었고, 그들의 대부분은 아들 혹은 친구 그리고 연인을 떠나보내는 가족들이었다. 용일의 주위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용일도 점점 복이 받치는 듯 했다. 하지만, 입대를 하는 친구 앞에서 울 수는 없었기 때문에 애써 태연한 척 하려고 노력했다.

“건강해라. 만수야.”

“그래. 일룡이 너야 말로 몸 조심하고...”

시간은 어느덧 1시를 가리켰고, 신병입소식이 거행되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로 입소식이 시작되었는데, 꽤 높아 보이는 장교 하나가 마이크에 입을 대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기오신 부모님들은 아무 걱정 마시고 군에 자랑스러운 아들을 맡겨 주십시오.”

용일과 수만은 씁쓸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이제는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입소식에 대한 장교의 말이 끝나자 일반 병사 몇이 입소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오늘 입소를 하시는 분들은 지극 즉시 좌측에 보이는 건물로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용일과 수만은 서로 말없이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그리고 용일은 수만의 등을 몇 차례 다독거려줬다.

“다치지 마.”

“짜샤. 걱정 마. 100일 휴가 때 보자.”

말을 마친 수만은 당당하게 뒤를 돌아 다수의 입소자들과 함께 연병장을 가로 질러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수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용일의 눈은 점점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눈물이 한 방울 뚝 바닥에 떨어졌다. 눈물이 가득한 용일의 눈이었지만 수만의 뒷모습을 놓치지는 않았다. 입대를 하는 친구의 마지막 모습은 끝까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만수야. 잘 다녀와!.”

수만의 모습이 더 이상 용일의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뒤늦게 용일은 수만이 사라진 쪽을 향해서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수만이 건강하길 빌었다. 수만은 용일의 단 하나 뿐인 친구였다.

***

용일과 수만은 서로에게 있어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친구였다.

용일과 수만이 서로 친구가 된 지는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밖에 되지 않았고, 실제로 얼굴을 보며 만남을 가진지는 채 2달이 되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는 진정한 친구였다.

용일과 수만은 공통점이 많았다.

먼저 신체적인 모습을 보자면 둘 다 남자로서는 작은 키에 저체중으로 체격이 흔한 여성들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왜소했다. 그리고 성격 역시 둘 다 내성적이었다. 아니, 내성적이다 못해 자신의 의견조차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 더구나 우유부단한 성격까지 있었기 때문에 용일과 수만은 학창시절 내내 왕따를 당했다.

용일과 수만은 학창시절 내내 왕따를 당했고, 때로는 학교를 옮겨야 할 정도로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용일과 수만은 각자 나름대로 마음의 상처를 받으며 살아왔지만, 부모님께는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사실을 하면 부모님이 매우 슬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물론, 중간에 큰 사건이 터져서 부모님도 알게 되었고 학교도 옮기긴 했지만, 학교를 옮겨도 왕따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더 미안한 마음에 부모님에게 알리지 않고 각자의 왕따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던 용일과 수만이었다 - 용일과 수만은 스스로 나 하나만 참으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리고 그 시간이 하루 이틀이 되면서 학창시절 내내 왕따 생활을 해야만 했다.

매일같이 힘겹고 상처를 받는 삶을 살고 있던 용일과 수만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둘은 서로의 삶을 바꿔보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물론, 이 둘을 신경 써 주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지만, 1년 전부터 인터넷을 통해서 왕따 생활에 대한 고민을 타인들에게 털어놓기 시작한 것이었다.

용일과 수만은 ‘아름다운 우리들의 푸르미’라는 청소년 상담을 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비슷한 시기에 서로의 왕따 생활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위로의 댓글을 달아주면서 각자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상처를 치유하는 행위가 반복이 되면서 서로의 존재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되었고, 사는 곳은 다르지만 동갑인 것을 확인한 후에는 비록 온라인상이었지만 친구를 하자며 약속을 했다.

그 후로는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매일같이 먼저 하는 일은 메일을 확인하거나, 메신저를 켜는 일이었다. 서로 친구가 되면서 언제부터인가 메일과 메신저로 대화를 시작했고, - 용일과 수만은 둘 다 휴대폰을 갖고 있지 않았다. -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용일과 수만에게는 소중한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약 10개월간 직접 만난 적도 없는 상황에서 온라인상으로 친구가 된 후,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만큼 서로에 대해 잘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면 서로의 성격이 비슷했고, 무엇보다 학창시절 내내 왕따를 당했다는 공통점이 더욱 더 이 둘을 가깝게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처음으로 마음을 털어놓는 친구가 생긴 것이었으니 말이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면서 10개월간 온라인상으로만 만남을 하던 용일과 수만이었지만, 고교 졸업을 앞두고 용일이 인천의 K 대학에 합격하면서 2달 전에 인천으로 거주지를 옮겼고, 그때부터 용일과 수만은 서로 직접 만나게 되었다. 비록 얼굴을 맞대고 처음 만난 그들이었지만, 마치 10년을 함께 우정을 쌓은 것처럼, 아무 부담이나 어색함도 없이 서로를 친구로 인정하고 즐거운 시절을 보냈다.

수만이 입대를 하기 전까지, 2달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용일과 수만은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기에는 그리 짧은 시간도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에 대해 더욱 더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그동안 서로가 신체적으로, 성격적으로 또 환경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다른 면도 많음을 알게 된 것이 그것이었다.

먼저 용일의 경우에는 독서와 영화를 좋아했다. 틈만 생기면 책을 보고 영화를 즐겼다. 그리고 유일한 친구 수만에게 책을 추천하기도 했고, 영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에 반하여 수만의 경우에는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다. 심지어는 프리미어리그나 메이저리그 등을 직접 챙겨 보기도 했고, 무엇보다 격투기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용일과 마찬가지로 수만도 용일에게 자신이 관심 있는 스포츠에 대해 용일에게 설명을 해줬고, 때론 직접 액션을 취하기도 했다.

서로 비슷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달랐던 용일과 수만은 그렇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왕따에 대한 기억과 상처를 지우고 있었다. 왕따 생활을 하던 수 년 간의 시간보다 최근 2달 동안 용일과 수만은 웃는 날이 많아졌고, 그것은 서로의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특이한 점 하나는, 서로의 이름을 거꾸로 부른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날, 수만이 무심결에 용일의 이름을 ‘일룡’이라고 거꾸로 불렀는데, 그것이 전원일기에서 나오는 이름과 같다면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에 질세라 용일이도 수만을 이름을 뒤집었는데, 우연찮게도 수만을 거꾸로 부르면 ‘만수’라는 이름이었고, 그것은 한 지붕 세 가족에 나오는 이름과 같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용일과 수만은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용일과 수만이라는 이름 대신, 각자 일룡과 만수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용일과 수만은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며 우정을 쌓기 시작했고, 고등학교를 졸업 후 용일은 K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그가 선택한 학과는 책을 좋아했던 것처럼 당연히 국문학과였다. 그러나 용일에 비해 성적이 좋지 않았던 수만은 4년제 대학에는 합격을 하지 못했는데, 뜻밖에도 대학을 포기하고 바로 군 입대를 선택했다. 용일은 유일한 친구인 수만의 군 입대 결정에 상당히 놀라웠지만, ‘어차피 갈 군대, 자신을 돌아보고 싶다, 그리고 나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다’라고 말하는 수만의 의견을 존중 해 줄 수 밖 에 없었다. 용일은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수만이 입대 결정을 하자, 바로 휴학을 하고 함께 동반입대를 하려고 생각을 했지만, 수만의 반대로 무산이 되었다.

그리고 수만이 입대 신청을 하고 얼마 후, 의정부의 306 보충대에서 용일과 수만은 짧은 이별을 하게 되었다.

***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 온 은경은 텅 비어 있는 집을 보며 한 숨을 쉬었다. 이제 2년간은 텅 비어 있는 이 집에서 혼자 지내야 했다. 수만과 단둘이 살았던 은경은 수만의 부재가 매우 크게 다가왔다. 그만큼 은경은 자신의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했다. 그리고 외로웠다. 수만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걱정 되었다.

“잘 하고 있을까... 몸은 건강할까... 밥은 잘 먹을까.... 흑.... 흑...”

수만이 입대한 지 며칠이 지났지만, 퇴근하고 돌아올 때마다 은경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 은경은 자신이 일하는 K 대학 도서관에서 수만의 생각에 멍하니 앉아 있기 일쑤였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만에게 편지가 오지 않았나 우편물 함을 들여다보았고, 밤에는 밥은 제때 잘 먹는지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텅 빈 집에서 수만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이 과정이 은경의 일과였다.

“아참......”

한참을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수만을 떠올리며 울던 은경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얼마 전부터 대학생들의 도서관 이용 현황에 대한 통계를 냈는데, 그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서 도서관장에게 결제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1년에 한 번씩 하는 연례행사였지만, 그렇게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다.

“휴우. 그래. 힘을 내야지. 우리 아들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건강하게 훈련을 받고 있을 거야. 암, 누구 아들인데...”

은경은 스스로를 독려하며 기운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은경은 수만이 걱정되었지만, 자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충분히 군 생활도 잘해내리라 생각을 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는지도 몰랐다.

윙.

일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은경은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부팅이 되고 있는 컴퓨터의 모니터를 바라보며 은경은 수만이 돌아올 때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자신이 건강한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야, 군대에 있는 수만도 걱정이 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은경은 모니터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살짝 미소를 띠우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보고서 작성에 들어갔다.

***

용일은 수만을 군대에 보내고 허전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대학의 새내기였기 때문에 학교에 다니는 본연의 일이 있긴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수만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그리고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친구 하나 없던 용일이었지만, 짧은 기간이었지만 자신의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수만이 곁에 없자 심적으로 상당히 힘들었다.

“그래도 만수가 더 힘들겠지.”

왕따 생활을 한 수만이었고 용일을 제외하면 마땅한 친구가 없는 사람이 또 수만이었다. 용일은 자신처럼 내성적이고 대인관계가 익숙지 않은 수만이 걱정될 수 밖 에 없었다. 그나마 자신은 사회에 남았지만 수만은 군대에 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수만을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용일 자신과는 달리 스스로의 변화를 위해 군 입대를 자원한 그가 군 생활을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 레포트는 어떻게 작성하지?.”

대학에 입학을 했지만, 용일은 여전히 혼자였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사람을 사귈 수가 없었다. 물론, 군 입대를 선언한 수만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입학 전의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지 않은 이유도 한몫했다.

“도서관에 가봐야 하나.”

용일은 ‘서양문학 고전읽기’라는 강의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담당 교수가 서양 고전문학의 작가 하나를 선택해서 그 작가의 작품들의 전반적인 내용과 그 당시의 시대상에 대해 요약을 하라는 레포트를 내줬다. 그 레포트를 어떻게 작성을 해야 할지, 용일은 고민이 되었다. 물론, 원체 책을 좋아했던 용일은 괴테, 톨스토이, 세익스피어, 니체, 헤밍웨이 등의 작가들의 대부분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일단 도서관에 가봐야겠네.”

용일은 K 대학 중앙 도선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이 어느 작가를 선택해서 레포트를 작성할 지 고민을 했다. 일단 작가를 하나 선택해야 했는데, 용일에게는 그것마저 쉽지 않았다. 용일은 괴테도 좋고, 톨스토이도 좋았다.

K 대학 중앙 도서관에 도착 한 용일은 서양 문학책이 분류된 곳으로 갔다. 그리고 자신의 레포트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책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땅히 용일이 원하는 책은 찾을 수가 없었다. 용일은 각 작가들의 작품 내용은 스스로 요약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작가들이 살았던 당시의 시대상과 그 시대에 영향을 미쳤던 작가들의 삶에 대해서는 알기 어려웠다.

“아... 어떡하지.”

용일은 마땅한 책을 고를 수 없게 되자, 다시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도서관 담당 사서에게 물어봐야 할 듯 했다. 아무래도 사서라면 책을 많이 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책을 읽지 않더라도 어떤 책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조언 정도는 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한 용일이었다. 그러나 섣불리 용일은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내성적인 그의 성격 때문이었는데, 한참을 고민을 하던 용일은 용기를 내어서 도서관 담당 사서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물어봐야 하는데... 이 멍청한 놈!.”

도서관 담당사서는 꽤 지적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자였지만, 용일은 말을 걸기가 쉽지 않았다. 용일은 내성적인 자신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질문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의 성격을 고치고 싶었다. 하지만 용일은 그것이 쉽지 않음을 느꼈다. 지금도 좀처럼 도서관 담당 사서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용일은 그게 서툴렀다. 어떻게 보면 학창 시절의 왕따 경험이 용일을 그렇게 만든 것 같기도 했다.

“으음.”

용일이 한 자리에서 한동안 머뭇거리자 도서관 담당 사서와 눈을 순간적으로 마주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용일은 도서관 담당 사서의 눈을 피했다.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것은 용일에게는 상당히 낯설게 느껴졌다.

또각또각.

아주 작은 구두소리가 용일에게 들렸다. 그 소리가 자신에게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용일은 반사적으로 구두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적으로 보이는 중년의 도서관 담당 사서가 용일에게 다가왔다. 이윽고 용일의 귀에는 그 중년의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생. 제가 도와줄 것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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