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0일 목요일

금지된 사랑 - 2부



“학생. 제가 도와줄 것이 있나요?.”

은경이 그 남학생에게 말을 걸자, 그 남학생은 몸을 움찔하며 약간 놀라는 듯 했다. 그리고 은경을 한 번 쳐다보고 고개를 숙인 후 입을 열었다.

“아... 저... 그... 아....”

“제가 도와줄 것이 있다면 정확히 말해봐요.”

은경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학생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정말 심각할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얼굴을 마주 보고도 이야기를 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저 그러니까.... 제가.... 대학.... 레포트가 있는데... 그게.....”

그 남학생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는데, 조금 목소리가 작긴 했지만 거리가 가까워서 은경은 다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남학생의 말을 전부 들은 은경은 남학생이 서양 고전에 대한 레포트를 쓸 책이 필요함을 알았고 순간 머릿속에서는 그와 관련 된 책 하나가 떠올렸다.

“아. 괜찮은 책이 있어요. 331.56쪽에 가면 그와 관련 된 책이 있는데...”

“고... 고맙습니다.”

여전히 그 남학생은 고개를 숙인 채 고맙다는 말을 했고, 은경은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할 정도로 내성적인 남학생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그만큼 순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은경은 뒤를 돌아 책을 찾으러 가는 남학생에게 말을 했다.

“혹시, 작가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괴테로 해보는 것이 어때요?.”

은경의 말에 그 남학생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다시 자신이 필요한 책을 찾기 위해 걸어갔다.

남학생의 마지막 미소를 본 은경은 그 남학생이 참 선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수만이와 비슷한 나이 같은데...”

은경은 다시 아들 수만의 생각이 떠오르자, 우울해졌다. 우울할 때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 은경은 자신의 자리에 돌아와서 보고서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

자신이 원하는 책을 발견한 용일은 집에 돌아와서 레포트 작성에 열중했다. 용일이 선택한 작가는 괴테였다. 용일은 괴테라는 작가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 정확히 말하자면 용일이 특별하게 좋아하는 작가는 없었다. - 그렇지만 용일은 괴테의 작품 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만큼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였다. 용일은 자신이 왕따를 겪었던 학창시절, 집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 아직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이였지만, 친구의 여인을 사랑한 한 베르테르의 심적 고통이 자신에게 전달되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조금 허술한데... 검색을 해봐야 하나.”

한동안 레포트 작성에 열중을 하던 용일은 레포트의 부족한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서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빌려 온 책을 가지고는 내용을 충실하게 쓸 수는 없을 듯 했다..

“소설세상?.”

용일은 N 포털 싸이트에서 ‘고전, 서양, 문학’의 키워드로 검색을 했는데, ‘소설세상’이라는 카페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와... 여기 괜찮네.”

단순히 레포트 작성을 위해서 검색을 하다 발견한 카페였는데, 카페에 접속한 용일은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그 카페는 동서양을 막론한 모든 소설과 작가들에 대한 자료가 있었다. 더구나 회원들의 활동도 매우 활발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도 충분히 엿볼 수가 있었다.

“하하.”

카페를 둘러보던 용일은 계속 웃음이 나왔다. 단순히 레포트 작성을 떠나서 용일은 자신의 취미와 어울리는 곳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흡사 심심한 어린애가 놀이터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우와. 여기 자주 접속해야겠네.”

정말 많은 자료가 있었다. 친구 수만이 입대하면서 시간이 넉넉해진 용일은 꽤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소설세상이라는 카페에서 자신이 원하는 소설에 대한 자료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기뻤다.

“일단... 카페에 가입을 하고...”

용일은 소설세상 카페에 가입을 했다. 카페에서 쓸 닉네임이 필요했는데, 잠시 고민하던 용일은 ‘베르테르’라는 닉네임을 썼다. 다행히 그 ‘베르테르’라는 이름은 누구도 쓰고 있지 않았다.

“괴테 때문에 발견을 했으니... 닉네임은 베르테르로 하고...”

카페에 가입을 한 용일은 일단 레포트 작성에 열중했다. K 대학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과 ‘소설세상’ 카페에 있는 관련 자료를 종합해서 빠른 손놀림으로 타자를 쳤다. 그리고 약 두 시간 후 레포트가 완성이 되자 소설세상 카페를 다시 한 번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도 의견을 남겨볼까?.”

용일은 어찌됐든, 그 카페를 통해서 레포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카페의 회원들이 누군지 알 수 없지만, 그 회원들의 활동 때문에 자신이 덕을 봤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소설세상 카페에서 좀 더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용일은 자신도 누군지 알 수 없는 회원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용일은 자신이 쓴 레포트의 내용 중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에 대한 내용을 다시 정리해서 소설세상 게시판에 자료로써 남겼다.

***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 온 은경은 여전히 텅 빈 집에서 혼자 있었다. 저녁을 먹을 생각도 없었다. 집에만 돌아오면 아들 수만의 생각 때문에 다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은경은 언제까지 울고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책이라도 볼까?.”

은경은 20년 전, A 대학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도서관 사서가 되어서 자신이 원하는 책만 보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만큼 독서광이었다. 그러나 가난한 집안 때문에 졸업과 동시에 맞선을 봤고 곧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한동안 남편을 따라서 경기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살았다가, 남편이 죽고 아들 수만과 함께 서울로 왔다. 그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 수만과의 생계를 위해서도 취직을 해야 했다 - K 대학 도서관 사서가 된 것이었다.

“그 남학생은 레포트를 잘 썼을까?.”

문득 오후에 도서관에서 심각할 정도로 내성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순수해 보였던 남학생이 떠올랐다.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몇 시간이 지난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도 않지만, 그 남학생이 레포트 주제로 괴테라는 작가를 선택했지 궁금했다. 혹시나 나중에 도서관에서 마주치게 되면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은경은 괴테라는 작가를 좋아했다. 특히, 그의 작품 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정말 좋아했다. 학창시절에만 수 십 번을 봤을 정도로 좋아했다. 친구의 여인을 사랑할 수 밖 에 없었던 베르테르, 그리고 그 베르테르의 사랑이었던 로테. 은경은 학창시절 그 소설을 보며 자신이 로테라면 베르테르 같은 남자를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며 울고 또 울었다.

“아참!.”

은경은 잠시 옛 생각을 하다가, 동료사서가 알려 준 ‘소설세상’ 카페를 떠올렸다. 아들 수만을 군대에 보내고 집에 오면 할 것이 없다라는 말을 했었는데, 은경이 책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는 동료사서가 N 포털 싸이트의 한 카페인 소설세상을 소개해 준 것이었다. 그 카페에는 동서양을 막론한 많은 소설 자료가 있다고 했다. 은경은 그 말을 듣고 상당히 흥미를 가졌다.

“소설세상이라고 했지...”

컴퓨터를 켜고 N 포털에 접속한 은경은 ‘소설세상’이라는 카페 검색을 했다. 동료사서의 말대로 소설세상 카페가 검색이 되었다.

“가입을 해야 되는데...”

방금 전까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떠올렸던, 은경은 주저 없이 카페에서 쓸 닉네임으로 ‘로테’를 적었다. 다행히, 로테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는 회원이 없었다.

“와... 여기 정말 자료가 많네... 호호..”

은경은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들뜬 기분으로 카페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는 베르테르이고 싶다?.”

방금 전에 올라온 게시물의 제목이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좋아하는 은경으로서는 게시물 제목만 보더라도 상당히 흥미가 생겼다. 그래서 지체할 것 없이 그 게시물을 클릭했다. 그리고 꽤 많은 분량의 글에 적지 않아 놀랐다. 은경은 천천히 스크롤바를 내리며 글을 읽어 내려갔다.

“정말 대단해....”

베르테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은 글이었는데, 은경은 읽는 내내 감탄이 나왔다. 이 게시물을 적은 사람의 의견을 보고나니, 은경은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작품이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은경은 자신이 알지 못했던 부분을 깨닫게 해준 게시물 작성자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호... 게시물 작성자가... 베르테르였어?.”

공교롭게도 게시물 작성자의 닉네임이 베르테르였다. 은경은 좋은 글을 읽었기 때문에, 게시물 작성자 베르테르에게 짧은 댓글을 남겼다.

- 아아, 사랑도 즐거움도 인정도 환희도 이쪽에서 주지 않는 한, 저쪽에서도 주려고 하지 않지. 그리고 자기의 가슴은 행복에 가득 차 있어도 눈앞의 상대방이 냉담한 얼굴을 하고 감동을 느끼지 않는다면 행복을 나눌 수가 없다네.

은경이 남긴 댓글은 베르테르가 로테를 향한 짝사랑에 괴로워하며 말한 것으로 은경이 좋아하는 베르테르의 대사 중 하나였다. 은경은 학창시절 이웃집 오빠를 짝사랑했는데, 자신은 여자였지만 베르테르의 이 대사를 읽고 베르테르의 고통이 자신에게 느껴지는 듯 했다.

댓글을 달고 베르테르의 대사를 보며 잠시 옛 생각을 한 은경은 살짝 미소를 띠웠다. 그리고 이내 다른 게시물을 클릭했다.

***

피이이잉.
탕.

조교가 던지는 연막탄의 소리와 함께 희뿌연 연기가 이윽고 시야를 가렸다. 당장 10 여 미터 앞에 있던 소나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실전과 같은 상황, 긴장한 수만은 몸을 움츠린 채 분대장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수만이 입고 있는 CS복은 온통 진흙으로 범벅이었다.

“1분대!. 약진 앞으로!.”

분대장의 소리가 전투장에 울려 퍼졌다. 수만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숙인 채, 10여 미터를 전진했다. 그리고 다른 분대원이 전진하는 동안 지원 사격 자세를 취했다.

“탕!. 탕!. 탕!.”

비록 입으로 내는 사격 소리이지만 실전과 같은 훈련을 하는 각개 전투장이었다. 이미 세 번이나 적진지 탈환 훈련을 하느라 수만의 몸은 지쳐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먼지를 먹었는지, 입안이 털털하기도 했다. 목이 말랐다. 그러나 훈련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약진 앞으로!.”

다시 한 번 분대장의 목소리가 수만의 귀에 들려온다. 수만은 다시 한 번 힘을 내며 산 중턱을 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숨이 찼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번에도 실패를 하면 분대원 전체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이미 두 차례나 수만 때문에 적진지 탈환 훈련에 실패했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성공을 해야 했다.

“헉.... 헉.... 아...”

철조망 장애물을 통과하기 위해 포복을 하는 수만의 숨소리가 거칠어져 갔다. 약 10미터 길이의 철조망이 수만에게 너무나 길어 보였다. 엎드려 기고 있는 수만의 위로 조교들이 철조망을 밟기 시작했다. 철 가시들이 수만의 몸을 찔러 왔다.

“15번 훈련병.”

“네!. 15번 훈련병 이수만!.”

“너 그것 밖에 못해!.”

갑작스런 조교의 말에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이미 다른 분대원들은 장애물을 통과하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수만에 대한 한심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들의 눈빛을 외면하고 수만은 이를 악물고 기어가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하나, 둘’을 외치며.

“아...”

다시 한 번 철 가시들이 수만의 몸을 찔러왔다. 동시에 흙먼지들이 수만의 입 안으로 들어왔다. 수만은 몸이 아프고 괴로웠다. 그러자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눈물은 보여줄 수 없었다.

‘엄마, 일룡아...............’

수만은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유일한 친구 용일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당장 수만의 옆에는 없었다. 그게 수만이 처한 현실이었고, 이런 현실을 극복할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이런 훈련조차 극복하지 못하면 자원입대한 보람이 없다고 생각한 수만이었기에 다시 한 번 이를 꽉 물고 앞으로 나아가야했다.

“훈련은 전투다. 각개 전투!.”

적진지를 탈환한 다른 분대원들이 산중턱에서 달려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 수만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위장 크림과 땀, 흙먼지들로 범벅이 된 수만의 얼굴에는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같은 분대원과 조교는 자신의 눈물을 못 본 듯 했다. 수만은 재빨리 자신의 볼 아래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앞으로 기어갔다.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3주 만 더.... 3주 만 더... 참으면 엄마랑 일룡이랑 통화할 수 있어.....’

수만은 이곳은 군대이자, 신병교육대 훈련장임을 인식하며 다시 한 번 힘을 냈다. 이 정도의 고난은 자신이 반드시 이겨내야 함을 다짐하며....

***

밤 새 ‘소설 세상’ 카페에서 문학 관련 자료를 훑어 본 은경은 잠을 제대로 못 잤지만 오랜만에 반가운 아침을 맞았다. 그동안 수만의 빈자리 때문에 우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지만 소설세상에서의 활동이 조금이나마 마음의 안정을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은경은 취미생활을 통해서 그동안 우울했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지울 수 있게 되어서 앞으로는 취미생활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화이팅.”

은경은 스스로 기운을 불어 넣으며 상쾌한 아침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아침 식사를 차려 먹었고, 잘 하지 않던 화장도 하며 출근 준비를 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분이 상쾌했기 때문에 옷도 나름 신경을 썼다. 그리고 잘 입지 않던 스커트를 입었고, 또 잘 신지 않았던 힐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한껏 멋을 부린 후 거울 앞에 선 은경은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자신을 감상했다.

“아직... 괜찮지?.”

오늘따라 자신의 단발머리와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은경의 올해 나이는 43세였다. 기분 좋은 아침이었기 때문일까. 은경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3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것 같아서 다시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꺼내 든 힐을 신고 출근을 위해서 밖으로 나갔다. 출근을 향한 발걸음도 매우 상쾌했다.

T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한 은경은 자신의 빨간 마티즈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을 열고 차에 탄 후 시동을 걸었다. 은경이 살고 있는 T 아파트에서 K 대학까지는 도보로는 30분, 차로는 약 10분 거리였는데, 은경은 매일같이 출근을 할 때 운전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K 대학까지 걸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부르릉.

은경이 운전하는 빨간 마티즈가 부드럽게 T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갔고, 평소보다는 빠르게 - 오늘따라 신호등에 단 한 번도 걸리지 않아서 더욱 더 기분이 좋은 은경이었다 - K 대학 정문에 통과할 수 있었다.

중앙 도서관 뒤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은경은 도서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이 일하는 자리로 갔는데, 동료사서이자 친한 동생인 연희가 벌써 출근해 있었다.

“언니 왔어요?.”

“좋은 아침.”

“오늘 언니 평소와는 다르네요. 아들이 군대 가서 우울해 하는 것 같더니... 오늘 보니까 남자들이 졸졸 쫓아다니겠는데요?.”

“에이... 그럴 리가...”

“진짜인데... 언니 정말 예뻐요.”

“그래?. 호호.”

연희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은경은 그녀의 칭찬이 듣기 좋았다.

“아참. 어제 소개 해준 그 카페 말이야.”

“아. 소설세상이요?.”

“거기 내 취향이랑 딱 맞더라.”

“그럴 것 같았어요.”

“고마워.”

“뭘요.”

연희와 간단한 대화를 나눈 은경은 자신의 업무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은 날이었기 때문에 일도 막히지 않고 술술 처리가 되었는데, 그만큼 평소보다 시간도 빨리 흘러갔다. 그렇게 일을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연희야. 밥 먼저 먹을래?.”

“오늘은 언니가 먼저 하세요.”

“그럴까?.”

점심시간이라고 하더라도 도서관 사서가 모두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기 때문에 보통은 교대로 식사를 하는 편이었다. 은경은 연희를 놔두고 다른 동료 사서와 함께 학교 교직원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30분이 지나서 도서관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자신의 자리에서 얼마 되지 않은 곳에서 낯설지 않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바로 그 남학생이었다.

“레포트 잘 썼어요?.”

은경은 수줍어하던 그 남학생을 발견하고 자신의 옆을 지나갈 때 말을 걸었다. 은경이 말을 걸자 그 남학생은 살짝 몸을 움찔거렸는데, 이내 은경임을 확인하고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다.

“네.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 준 것도 없는데... 잘 썼다니 다행이네요.”

“네. 안녕히...”

여전히 쑥스러워하며 얼굴을 못 마주치는 그 남학생은 급하게 인사를 하고 은경을 지나쳐 도서관 밖으로 나갔다. 은경은 한동안 그 남학생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연희야 밥 먹고 와.”

“응. 그런데 언니. 저 학생이랑 아는 사이야?.”

“아니.”

“그런데 무슨 대화를 하던데?.”

“아... 어제 레포트 쓴다고 책 빌려야 한다고 해서... 살짝 조언을 했거든. 그런데 저 남학생 숫기가 없나봐.”

“그런 것 같더라. 방금 책 반납하는데도... 고개를 숙이고 있던데...”

“그래?.”

은경은 연희와 대화를 하면서 내심 그 남학생이 걱정이 되었다. 물론, 그 남학생을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심각할 정도로 사람을 상대하지 못하면 나중에 사회생활을 어떻게 할는지... 더구나 자신의 아들인 수만과 비슷한 나이 같아서 안타까운 심정이 더했다.

“아참. 저 학생 무슨 과야?.”

“잠시만.... 국문학과이고... 올해 신입생이네. 03학번.”

“그래?.”

“그러면... 언니 나 밥 먹고 올게.”

“응.”

연희가 자리를 비우고 은경은 방금 전 그녀가 남긴 말을 곱씹었다. 올해 신입생이라면 자신의 아들인 수만과 동갑이었다. 비록 수만은 대학을 가지고 않고 바로 입대를 결정했지만...

“잘하고 있겠지?.”

자신의 아들인 수만도 낯가림이 심한 것을 알고 있는 은경으로서는 방금 전 본 남학생의 영향 때문인지, 훈련소에서 힘든 훈련을 하고 있을 아들 생각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던 은경이었지만, 역시 아들 생각에는 어쩔 수 없는 어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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