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2일 수요일

음란장모(淫亂丈母:근친의 덫) - 6부

잠든 남편은 내 말을 듣지 못하겠지만,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불경스런 괴질로 인해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는 나를 붙잡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렇게 말해야 했다.
나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린 후 가운을 벗고, 잠옷으로 꺼내 들었다.
방금 전 거실에서 사위와 맞닥뜨렸을 때 흐른 것인지 속옷의 한 부분이 살짜기 젖어있었다. 나는 행여나 그 모습을 남편이 볼까봐 서둘러 잠옷을 걸친다.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남편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잠들어 있었고, 나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남편이 누워있는 침대위에 몸을 누인다.
누워있지만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지 쿵쾅거리는 내 심장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돌려 남편을 바라봤다.
신혼때는 볼 수 없었던 주름들이 남편의 얼굴 곳곳에서 그와 내가 함께 살아온 세월들을 이야기해준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아마 그 주름들은 더 굵어질 것이다. 하얀 백발이 되고, 나 역시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런 미래의 상상에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가 있는 모습은 단 한번도 떠올려 본적이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난 잠든 남편의 손을 꼬옥 잡고 나직히 속삭였다.


“붙잡아줘요 날...”




밤새 뒤척거린 탓인지 난 느즈막한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편은 여느때처럼 새벽 촬영을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큰 딸애도 학교에 갔는지 집은 온통 고요했다.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엔 사위와 딸이 아침을 먹고 나간 흔적인지 밥 그릇 두 개가 놓여져있었다. 난 그 것들을 개수통에 넣고는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또... 마트에... 가야겠구나”


지난 두달여의 시간동안 마트는 내게 공포와 두려움의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평소처럼 둘러보다가도 어느 순간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리는 나, 주위를 살피곤 주머니속에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쑤셔 넣는 나, 계산대 앞에서 공포에 질린 채 두려워 하면서도 결국 또 같은 짓을 반복하는 나...
나는 내가 두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피해버리고 억눌러버릴 경우 괴질의 증상이 더 심해질꺼라는 의사의 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반복된 괴질속에 갇혀버렸다.


“가자... 이대로 피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안돼!”


사위의 일도, 지긋지긋한 도벽도... 더 이상 피하기만 해선 아무것도 나아질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사위와 인연을 끊고, 딸과 싸우고, 그 흔한 마트나 백화점 한번 갈 수 없는 삶을 살 순 없었다. 그건 두 손과 두 발을 꽁꽁 묶고 내 두눈을 가린 채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나는 굳은 다짐을 하며 집을 나섰다.



진열대 가득 즐비한 물건들... 나는 다시금 떨리는 마음으로 마트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간단한 식료품을 사고 코너를 돌아 계산대를 향해 걸어간다. 혹시나 다시 도질지 모르는 도벽에 대한 두려움으로 내 걸음을 빨라진다.
그리고 계산대를 향해 걸어가던 나는 순간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사람들이 없는 모퉁이에 도달하자 내가 제어 할 수 없는 어떤 마음이 나를 그 자리에 멈춰 세웠다.
떨리는 손이 앞으로 뻗어진다. 작은 파인애플 캔 하나가 손에 잡힌다.


[나... 난...]


어느샌가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나... 다행히 주변엔 아무도 지나는 이가 없다. 떨리는 내 손은 그 캔을 재빨리 집어든다.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고, 내 두 눈은 초점없이 주위를 살핀다. 한쪽 손은 주머니를 열고 다른 한쪽손은 캔을 든 채 자연스럽게 겉옷 주머니속으로 향한다.


[머... 멈춰!!!]


내 몸을 향해 외치는 내 마음의 소리가 울려퍼진다.
손의 움직임이 멈추고, 떨림이 잦아든다. 이제까지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나는 다시금 힘을 주어 내 마음의 소리로 부덕한 육체를 향해 명령했다.


[제자리... 제자리에 돌려놓자!]


팔이 들어올려진다. 겉옷 주머니를 열며 도벽에 동조하던 다른 한쪽 손은 다시 자신이 원래 있던 위치인 카트 손잡이로 돌아갔고, 캔을 들고 있던 손은 천천히 캔이 처음 놓여있던 곳을 향해 움직인다.


“돼!!! 됐다!!!”


나는 터져나오려는 기쁨의 환호성을 애써 참으며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 동안 그렇게 해보려해도 되지 않던 도벽이란 괴질을 최초로 극복한 것이다. 물건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계산대 앞에서 떨때까지도 말을 듣지 않던 내 몸이 내 마음의 지시에 드디어 반응했다. 나는 온 몸을 부르르 떨며 내 자신에게 감사했다.


“저기 괜찮으세요?”


때마침 내 곁을 지나던 마트 직원이 내게 말을 건넨다.


“괜찮아요 너무 괜찮아요!”
“예?”


내 기쁜 목소리와 확신에 찬 대답이 조금 의아한지 직원은 잠시 날 바라보다가 곧 머쓱한 표정으로 사라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얼굴엔 자신에 대한 믿음과 괴질을 극복해 냈다는 환희가 어려있었다. 그렇게 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 당당한 표정과 자세로 계산대를 향했다. 평소와 같았다. 나는 카드를 내밀고, 계산원에게서 영수증을 받아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전에 느꼈던 두려움이나 불안은 당연히 말끔히 사라졌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면서도 극도로 예민해져 있던 나도 함께 사라졌다. 모든 것이 도벽이 시작되기전 그때로 돌아온 것이다.



“음... 증상이 많이 괜찮아지셨다구요?”
“네!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으니까 그대로 됐어요!”


모처럼 찾은 병원에서 나는 기쁨에 찬 표정으로 의사에게 대답했다. 그러자 의사는 그런 내모습을 바라보며 다행스럽다는 표정으로 다른 질문을 건넸다.


“좋은 현상이시네요. 원래는 참 쉽지 않은 일인데 다행입니다. 혹시 그 사이에 어떤 심경적 변화같은 것은 없으셨나요?”
“심경적 변화요?”
“네! 뭐 우울증이나 갱년기 증상이 완화되는데에는 통상 심리적인 안정이나 욕구의 충족 같은 원인이 있게 마련이거든요. 모든일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원인 없는 결과는 없죠. 그걸 알면 앞으로의 치료에 더 속도가 붙을수도 있구요”


의사의 말에 나는 그동안 내게 있었던 심경적 변화를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사위의 육체를 느끼고, 사위에게 음탕한 생각을 품었던 나... 하지만 그런 일련의 사건들을 의사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따... 딱히...”
“이니면 뭔가 억눌린 욕구를 충족시켜준 사건이라든가 아니면 계기가 됐을만한 일도 없었을까요? 통상 그냥 증상이 완화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거든요”


의사가 습관처럼 자신의 안경을 고쳐쓰며 나를 바라본다. 전에도 몇 번 그런적이 있었건만, 사위와의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른 나는 그 모습이 왠지 껄끄러웠다. 뭐랄까? 내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 나는 의사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속마음을 숨긴 채 거짓 대답을 했다.


“그냥 제 의지가 더 강해져서 인 것 같아요”
“아 의지요? 보통 환자분 같은 경우는 의지는 있지만 그게 쉬운일은 아닌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의사가 미소를 지으며 내 차트에 뭔가를 적어내려간다. 묘한 피해의식 때문인지 그 모습조차 나를 비웃는 듯 하다. 대단하다는 의사의 칭찬 역시 왜 그동안은 그 의지를 발휘하지 못했냐는 듯한 비아냥으로 들렸다.


“일단은 호전되시고 있는게 분명하니까, 좀 더 추이를 살펴보고 다시 방문 날짜를 잡으시면 되겠네요.”
“네 감사합니다.”
“아 참!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고 하시니 상관없겠지만, 그 계기가 혹시라도 생각나시면 되도록 억누르기 보다는 잘 풀어보세요. 심리적 증상 완화라는게 보통 당사자는 잘 몰라도 분명히 그 계기라는게 있게 마련이거든요. 운동이든 취미생활이든 최근에 새로 시작하신 일이 있다면 꾸준히 계속 해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네...”


나는 대답을 하고 서둘러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최근에 새로 시작한 일... 꾸준히 계속 해보라는 그 의사의 말...
그 것들이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나는 애써 부인하고 있지만, 내게 새로이 생긴 그 일들이 무엇인지는 분명했다.


[사위의 몸... 사위의 엉덩이... 사위의 그것...]


내 얼굴이 붉게 물들어 간다. 생각하는 것조차 치욕스러우면서도 묘한 떨림이 나를 흔든다. 나는 서둘러 간호사에게 병원비를 지불하고는 병원 밖으로 빠져나왔다.


[제발... 제발 그만...]


사위의 단단한 몸이 눈앞에 어른 거렸다. 딸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터져나왔지만, 사위의 팬티속에 손을 넣었을때의 감촉이 나를 떨리게 했다. 사위의 음낭을 만졌던 순간의 짜릿함이 다시금 떠오른다. 


[안돼 안돼!!!!!!]


나는 남편의 얼굴을 생각했다. 곤히 잠든 남편의 평온한 얼굴로 내 두 눈동자에 아로새겨진 사위의 커다란 물건을 지워보려 애썼다. 단단하게 발기된 음경의 모습과 그위로 튀어나온 굵은 힘줄들이 내 의지를 방해한다. 
그제서야 나는 깨닳았다.
도벽은 치유된 것이 아니라 더 치명적이고 지독한 병으로 옮겨갔음을...
사위에 대한 욕망이라는 금지된 열매로...

나는 그 욕망이 나를 송두리째 파멸시킬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니 그것은 누구라도 쉽게 추론해 낼 수 있는 단순한 결과였다. 40대에 찾아온 갱년기의 증상이든 나를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불만이든, 원인은 중요치 않았다.
나는 나를 지켜야만 했다.
아니 나와 내 가정을 지켜야만 했다.

그때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나를 괴롭히는 죄책감을 억누르며 수화기의 버튼을 눌렀다.


“엄마! 뭐야 도대체!”
“뭐가!”
“도대체 오빠한테 어떻게 한거야!!!”
“내가 뭘?”


나는 당황했다. 최서방에게 어떻게 한거냐는 딸의 느닷없는 질문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기에, 덜컥 겁부터 났다. 혹시나 딸이 뭔가를 알아챈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치밀어 올랐다. 


[아니야... 그럴리 없어...]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는 수화기를 꽉 잡은 채 심호흡을 했다.


“설마 내가 어제일로 짜증 좀 냈기로서니 오빠한테 막 뭐라고 한거냐고! 오빠가 아침부터 전화해서 엄마한테 사과하라고 계속 뭐라고 한단말야!”
“사...사과?”
“그러니까 내가 왜 엄마한테 사과를 해! 엄마가 나한테 사과를 해야지! 내가 공연도 못 보고, 발만 동동 구른게 도대체 누구때문인데!!!”


딸의 언성이 높아져 간다. 나는 그제서야 대충 딸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됐다. 아마도 나의 냉랭한 태도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이유에서인지 사위가 딸에게 사과를 하라고 한 모양이었다.


“그 얘기면 그만하자!”
“뭘 그만해~ 진짜 오빠가 나한테 그렇게 화 낸적이 없었는데, 오늘 아침엔 전화해서는 버릇없는 행동을 했다느니, 어떻게 엄마한테 그런식으로 말하냐면서 막 큰소리로 화를 내는거야 내가 어쩜 정말 황당해서”


나는 언성을 높여 화까지 냈다는 딸의 말에 조금 의아했다. 내가 아는 한 사위는 늘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사람으로 사리분별이 확실한 편이었다. 어제 일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나의 잘 못이었고, 설사 딸이 내게 조금 버릇없이 굴었어도 잘 타이를만한 일이지 절대 언성까지 높여가며 화를 낼만한 일은 아니었다. 


“최서방이 화를 냈어?”
“나한테 실망을 했다느니, 왜 엄마를 핍박하냐는 둥 별에 별 소리를 다하더라니까! 내가 그거 예매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나 진짜 되려 화가 다 나더라니까!”
“그러게 왜그랬을까 쉽게 화 내고 그런 사람은 아닌거 같던데...”
“몰라! 오빠네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 없이 자란건 아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왜 나한테 화를 내냐구! 아 짜증나~ 암튼 엄마! 혹시라도 우리 오빠 보면은 내가 사과했다고 그렇게 얘기 좀 해줘! 알았지?”
“사과?”
“응! 막 화를 내면서 꼭 사과하고, 다시 자기한테 확인전화 하라고 하더라니까! 내가 참 어이가 없어서! 엄마! 이거 나 기선 제압할려고 그러는거지? 왜 있잖아 남자들 결혼하면 자기 마누라 잡고 살려고 별거 아닌걸로 꼬투리 잡아서 막 화내고 그런다면서! 암만 봐도 딱 그거 같애! 우리 오빠 정말 그런 사람아닌 줄 알았는데... 아니야 오빠 친구들이 바람을 넣었나? 아 짜증나 암튼! 엄마 최서방한테는 내가 엄마한테 일단 사과한걸로 할테니까 그렇게 알아! 알았지?”
“그... 그래”


딸은 뭐가 그리 바쁜지 서둘러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왜 최서방이 딸에게 그렇게 화를 냈는지 궁금했다. 딸이 내게 짜증을 내긴했었지만, 엄마와 딸 사이에서 그런일은 다반사다. 결혼 후에도 그런 일이 전혀 없지 않았을뿐더러, 어제 딸이 그리 심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사위가... 왜...]


나는 문득 어젯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다가 사위와 마주쳤던 것이 생각났다.


[거실에서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린건가?]


사위에게 냉랭하게 대한 후 방으로 도망치듯 가버렸던 것도 떠올랐다. 


[아무래도 내가 갑자기 냉랭하게 대하니까 그런건가? 아니면... 설마 어제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한 죄책감? 그래... 사위도 사람이니까 후회스러웠겠지 장모가 자고있는 방에까지 찾아와 자위를 하다니... 지도 사람이면 죄스럽고 미안했을 거야 아마 그래서 별 것 아닌 일인데도 딸에게 사과하라고 했겠지 그래! 맞아! 사위도 반성하고 있는거야!!]


사위가 대체 어떤 생각으로 딸에게 화를 냈는지는 사실 나도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 탓인지, 나는 내 멋대로 해석하고 이해하려 애썼다. 아니 꼭 그래야만 했다. 더 이상 부도덕한 생각과 행동들로 나와 내 가정을 위태롭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제발... 그랬으면... 제발...]


난 애원에 가까운 마음으로 기원했다. 마음 한구석에서 밀려오는 알 수 없는 아쉬움을 억지로 무시하면서...


그리고 며칠이 흘러 주말이 찾아왔다. 그동안과 다를 바 없는 평온한 날들이 계속됐다. 그 즈음에 나는 제법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사위는 평상시처럼 나를 대했고, 딸을 대하는 내 마음도 많이 편안해졌다.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 자연스러웠고, 순리대로 흘러갔다. 내 가정은 평화롭고 행복했다.
다만 단 한 사람... 나만은 예외였다.
이틀전 출근하던 도중 스타킹이 나가 편의점에 들렀던 나는, 증상이 완화됐음에 방심하고 있다가 또 다시 작은 껌 하나를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나왔다.
어제는 촬영장에서 방송용으로 준비돼어있던 상품의 일부를 가방에 담아 집에 가져왔다. 완치되어가고 있다고 믿었던 괴질의 망령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 원인은 부인하려해봐도 하나뿐이었다. 사위와의 관계가 예전처럼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나는 문득 의사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아 참!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고 하시니 상관없겠지만, 그 계기가 혹시라도 생각나시면 되도록 억누르기 보다는 잘 풀어보세요. 심리적 증상 완화라는게 보통 당사자는 잘 몰라도 분명히 그 계기라는게 있게 마련이거든요. 운동이든 취미생활이든 최근에 새로 시작하신 일이 있다면 꾸준히 계속 해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애써 의사의 말을 부인했다.


[새로 시작한 일을 꾸준히 계속 해보라니... 미친놈!!!]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제와 새삼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내 가정을 위태롭게 할 순 없었다. 마트, 백화점은 최악의 경우 안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내 가정이 무너지는 것은 도저히 볼 수 없었다.


“여보 이거 어때?”


남편이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남편이 가리킨 곳에는 멋스러운 꽃병이 놓여 있었다. 
일반적인 꽃병이라고 보기엔 크기도 크고 모양도 독특했다.


“왠 꽃병? 되게 특이하게 생겼다! 모양도 그렇고... 나쁘진 않은데 방 분위기와는 잘 안어울리지 않을까?”
“어허~ 이번에 촬영갔다가 선물 받은거야! 복을 가져다 준다나? 하하하 선물로 준다는데 뿌리칠 수가 있어야지! 좀 보기 이상해도 며칠만 놔둬봅시다 좀 지나면 적응이 될 수도 있고”
“그래도 좀... 나는 별론데...”
“딱 일주일만 놔둬 보자구~ 그때도 좀 이상하다 싶으면 내가 2층에 올려 놓을께 응 여보!”


꽃병은 사실 굉장히 특이했다. 중국풍의 커다란 꽃병이었는데 받침대는 용이 꿈틀대는 모양이고 그 위는 커다란 도자기로 되어있었는데, 곳곳에 반짝거리는 유리장식이 붙어있었다.
단연코 말하지만 내 취향은 절대 아니었고, 평상시였다면 아마 난 화를 내며 당장 치우라고 말했을 것이다.


“일주일뒤에도 영 이상하다 싶을땐 치울테니까 그땐 딴 소리하면 안돼요!”
“하하하 알았어! 봐봐 이 용이 액운을 쫓아준대! 비싼 거라니까! 며칠만 둬보자구!”


평소였다면 절대로 반대했을 나였지만, 요즈음의 나는 남편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화를 낼 수 가 없었다. 내가 남편에게 느끼는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씻길수만 있다면 이런 기괴한 꽃병을 안방에 놓도록 허락하는 일 따윈 몇 번이라도 할 수 있었다.
나는 남편의 취향이 다소 못 마땅하긴 했지만, 웃으며 점심 준비를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엄마~ 냉장고가 아주 텅텅 비었네!”
“아... 내가 마트엘 한번 가야되는데... 시간이 없어서!”


사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냥 다시금 시작된 도벽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트에 가지 못할뿐이었다.


“그래? 그럼 잘 됐다. 간만에 우리식구 다 같이 마트 들렀다가 외식이나 할까? 오빠도 뭐 좀 살게 있다고 하더라구”
“마... 마트?”
“응~ 왜 놀래고 그래~ 같이 가면 더 좋지 뭐 요즘은 맨날 엄마 혼자 갔잖아 갔다가 어디 근사한데 가서 식구들끼리 점심 먹어 엄마~”
“그러세요 장모님 저도 뭐 좀 살 것도 있고 같이 가시죠?”


어느샌가 사위까지 나타나 마트를 가자고 부추긴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혼자 있을때라면 어떻게든 해볼테지만, 가족들과 함께 마트에 갔는데 도벽이 다시 시작된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도무지 대책이 서질 않았다.


“아... 나는 몸도 별로 안 좋고 그냥 좀 집에서 쉬고 싶은데...”
“에이~ 엄마 빼고 우리끼리 밥먹으러 가면 좀 그렇잖아”
“아니 그럼 밥만 같이 먹으러 가던가!”
“그... 그럴까?”


나는 다행히 너무 쉽게 마트에 가자는 딸의 요청을 막아냈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사위와는 조금 껄끄러웠지만 남편까지 동행하여 밥을 먹는 것이라면 분명 큰 문제가 없으리라 여겨졌다.


모처럼 시내 중심가의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른 우리는 다른 단란한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화기애애했다. 남편은 사위와 농을 하며 뭔가 유쾌한 분위기였고, 나와 딸 역시 시시콜콜한 신변잡기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행복한 한때를 보냈다.
다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기쁨에 별 것 아닌 음식도 맛있게 느껴질 정도였다.


“타시죠 돌아갈때는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장인어른”
“어허! 이거 운전대는 아무나 맡기는게 아닌데!”
“아빠는 사위가 왜 아무나야~ 히히히 아빠랑 엄마랑 뒤에 타 나랑 오바랑 앞에 탈게~”
“너는 결혼 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오빠냐!”
“아빠는... 히히히 밖에서는 또 안그래!”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늘 정확한 호칭을 써야지”
“여보~ 라고 어떻게 그래~ 닭살 돋아 히히히”
“하하하 장인어른 가족들기리 있는건데요 뭐 괜찮습니다”
“뭐 암튼 그럼 자네한테 키 맡기고 오늘은 좀 편하게 돌아가 볼까?”
“네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사위는 넉살 좋게 웃어보이며 남편에게서 차 키를 받아가 시동을 걸었다. 나는 그런 사위의 모습에 뭔가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지만, 별로 대수럽지 않게 생각하며 남편과 함께 뒷 자리에 올라탔다.
하지만 그 알 수 없는 위화감은 차를 타고 가면서 점점 더 증폭됐다.
자동차 룸미러를 통해 사위가 자꾸만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나와 두어번 눈이 마주치기도 할 정도였다. 나는 의아함을 느꼈지만 내 옆엔 남편이 있고, 앞자리 조수석엔 딸이 타고 있는데 설마 무슨일이라도 일어나랴 싶어 입고 있던 치맛자락을 무릎 아래로 살짜기 끌어당기며 시선을 차창밖으로 옮겼다.
그러자 조용히 운전을 하고 있던 사위가 예의 그 넉살 좋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 이거 오늘 너무 잘 먹었더니 소화가 잘 안돼네요”
“그러게 오빠 나도 오늘 너무 많이 먹었어 거기 샐러드가 참 괜찮네”


사위와 딸이 패밀리 레스토랑의 음식이 괜찮았다고 말하자, 곁에 앉아있던 남편도 덩달아 한마디 거든다.


“하하하 나도 오늘 먹은 스테이크 꽤 괜찮던걸? 빵도 맛있고, 당신도 오늘 괜찮았지?”
“연하고 좋네요”


그때까진 이 대화가 어떤 내용으로 이어질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화도 잘 안되는데... 나온김에 마트라도 한바퀴 돌까요?”
“그럴까? 안그래도 원래는 마트 들렀다가 밥 먹으러 갈려고 했었거든! 잘됐다 엄마! 우리 마트가자! 오빠도 살거 있다고 하고 나도 살거 좀 있어”
“음~ 그럽시다 여보 애들이랑 마트 좀 들렀다 가지 뭐 당신도 괜찮지?”
“아... 마...마트...”


순간 쇠망치로 뒤통수를 때리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아침 마트에 가자는 딸애를 잘 달랬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순간 차 안의 분위기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럼 저 앞쪽에 마트가 있으니까 여기서 차를 잠깐 돌리겠습니다.”


사위는 어느새 핸들을 꺽어 신호에 맞춰 유턴을 한다.
그 모습에 평온을 되찾았던 내 마음도 차와 함께 불안함을 향해 유턴하여 달려가기 시작한다.


“당신 왜그래? 어디 몸이라도 안 좋아?”


얼굴이 하얗게 변한 나를 보며 남편이 말한다.


“아! 맞다 아침에도 내가 엄마한테 마트 가자고 했는데, 몸이 별로 안 좋다고 하시드니... 아직도 그런가보네...”
“많이 안 좋아?”
“아... 그게...”


나는 아직 채 진정되지 않은 표정으로 룸미러를 바라보았다. 룸미러 속에서 사위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었다.


[내게 도벽이 있다는 것을 사위가 알아챈 걸까? 그래서 날 함정에 빠뜨린거야? 그래! 백화점에서 귀걸이를 훔쳤을 때 사위가 그걸 봤지... 하... 하지만 그것만으로 내가 도벽이 있다는걸 확신할 순 없을텐데...]


불안한 마음이 내 안에서 그 덩치를 계속 불려간다. 사위는 정말로 악의없이 마트에 가자고 말한 것일지도 몰랐다. 사위를 의심하고 불안해 하는 것은 순전히 나 혼자만의 착각 일수도 있다.
하지만 또 다시 도벽증세가 나타나 내가 마트에서 물건을 훔친다면???
나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여보 많이 안 좋아?”
“머... 머리가 좀 아파서...”


내가 머리가 아픈 척 짐짓 고개를 숙이자, 남편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응시한다. 


“어쩌지 이거?”
“장인어른, 마트에 약국이 있으니까 일단 같이 들어가시죠”
“아 그래 여보 가서 두통약이라도 하나 먹지 뭐”
“아... 나.. 난...”
“그러세요 장모님 막상 좀 걸으시면 괜찮으실 거예요”
“그래 엄마 같이 가서 약도 먹고 금방 사가지고 가자”
“예 장모님 간단한것만 좀 살꺼니까 오래 안걸릴꺼예요”


난처한 상황이다. 하지만 다들 이렇게 성화니 마냥 버틸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차는 어느새 마트 주차장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차가 멈추자 크게 심호흡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일단 약국으로 갈까? 마트 약국은 주말에도 하더라구!”
“그래 내가 장모님 모시고 약국에 갔다 올테니까 넌 장인어른 모시고 간단한 찬거리라도 좀 사고 그러고 있어 내가 바로 쫓아갈게”
“응~ 전화해! 난 아빠랑 카트 가지고 먼저 들어가 있을께...”


사위와 딸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지만 내 귀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내 주위로 부산히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그저 주저앉고만 싶은 기분이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도벽에 대한 욕구가 느껴졌다. 무엇때문인지 이 욕구는 최근 더 강해져서 과연 내가 제어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장모님 괜찮으세요?”


나의 불안한 마음을 눈치챈 것일까? 사위가 나에게 다가와 부축한다. 나는 당황하여 앞을 바라보았는데 어느새 딸과 남편은 카트를 끌고 마트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아... 나... 나는...”
“장모님 몸이 안 좋으시다고 해서 제가 약국까지 모시고 가고, 민서랑 장인어른은 먼저 장 보고 계신다고 하네요 가시죠 장모님”


사위의 커다란 손이 내 어깨를 감싸고 마트 건물 구석에 위치한 약국을 향해 걸어간다.


[따듯하다...]


내 어깨를 감싼 사위의 손에서 따듯함이 느껴진다. 사위는 한 손으로 내 어깨를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 내 오른손을 잡으며 나를 부축했는데, 그 손길에서 나는 포근하고 따듯한 느낌을 받았다. 


[미! 미쳤어!!!]


사위의 품안에서 온기를 느끼는 내가 당혹스러웠다. 몸을 빼내고 싶지만, 몸이 안 좋다고 이야기한건 내쪽이었고, 갑작스럽게 사위의 손을 뿌리칠 명분도 없었다.


“괘... 괜찮네... 그냥 걸을 수 있어”
“아닙니다 장모님 약국까지만이라도 제가 모실께요”


사위가 예의바른 미소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불안했다. 저 예의바른 표정속에 욕망에 목마른 독사같은 모습이 숨어있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내 몸에 닿은 사위의 두 손이 더 뜨겁게 느껴진다. 부축하기 위해 내 옆구리 끝에 맞닿은 사위의 골반에서 야릇한 기분이 느껴진다.


[이러면 안돼... 정신차려... 그냥 사위가 장모를 부축하는 것 뿐이야]


그냥 사위와 단 둘이 걷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다행히 약국은 그리 멀지 않았다.


“두통약하고... 또 어디 더 불편하신데 있으실까요?”
“어.. 없어...”
“예 그럼 두통약만 주세요 아주 잘 듣는걸로요”
“예... 삼천원입니다”
“아 드링크도 하나 주시겠어요 기운나는걸루”
“예 여기습니다.”


사위는 약사와 뭔가 이야기를 하더니 두통약과 드링크제 하나를 들고 다시 나에게 다가온다. 천천히 다가오는 사위의 얼굴이 오늘따라 왠지 더 잘생겨 보인다. 짙은 눈썹과 남자다운 눈매, 오똑한 코... 굳게 다문 입술이 내 가슴을 흔들어 댄다.


“장모님 어서 드셔 보세요”
“고... 고맙네...”
“뭘요 당연히 해드려야 할 일인데요”


사위가 나를 보며 웃는다. 그 모습에 어느새 흠뻑빠져 얼굴에 홍조까지 띄우는 내가 원망스럽다. 사춘기시절에나 느꼈을법한 감정에 가슴까지 콩닥콩닥 뛴다. 


[사위야! 네 사위라구 남자가 아니야!!]


사위에 대한 마음을 최대한 비워내야 했다. 사위가 건넨 두통약을 먹고 드링크제를 마시면서도 나는 오직 그 하나만을 생각했다.


“장모님 여기 잠깐 좀 계시겠어요? 저 화장실 좀 다녀오려구요”


사위가 웃으며 내게 양해를 구한다. 나는 잠깐이라도 사위가 내게서 멀어지는 편이 낫겟다는 생각에 천만 다행이라 생각하며 어서 다녀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럼 잠깐만 계세요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화장실을 향해 걸어가는 사위의 뒷모습 조차 쳐다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내 마음속에 숨쉬는 부도덕한 존재를 먼저 몰아내야만 했다. 사위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그 날 딸과 사위의 섹스를 훔쳐 보던 날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사위의 단단한 등, 그리고 아름다운 굴곡을 자랑하던 그 엉덩이... 난 그 모든 것을 없었던 일처럼 지워버려야 했다.

주말의 마트는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이제 막 쇼핑을 하려 들어가는 사람들, 쇼핑을 모두 마치고 마트 내 식당가를 향해 움직이는 사람들... 또 마트에서 쇼핑을 끝내고 나처럼 약국에 들른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냥 서 있었다. 딸과 남편은 장을 보러 매장안에 들어가 있었고, 사위는 화장실에 가겠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 안에 숨어있던 어두운 그림자가 천천히 내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아... 안돼...]


내 곁에 카트를 세워 놓은 채 약사와 상담하던 한 여자가 화근이었다. 카트가 나와 너무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다. 두 눈은 약사와 그 여자를 바라본다. 그림자로 어두워진 내 손은 천천히 그 여자의 카트를 향한다. 대충 훑어봐도 그녀의 카트안에는 내가 탐낼만한 물건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손은 제 주인인 나를 배신하고 도벽이란 이름의 검은 그림자를 따라 점점 더 나아간다.


[제발... 제발 멈춰!!!]


내 마음속 외침은 이제 더 이상 힘이 없었다. 며칠전에 느꼈던 괴질 극복에의 환희도 이젠 더 이상 부질없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금 괴질의 노예가 되었고, 그의 조종을 받고 있었다. 내 손은 벌써 그 여자의 물건중 하나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손은 움켜쥘때처럼 빠른 속도로 그 물건을 품안으로 갈무리한다.


[하아... 하아...]


다시금 숨이 가빠져온다. 여자는 아직도 약사와 상의 중이다. 
손이 떨려왔다. 약사가 그 여자에게 뭔가를 꺼내 전달한다. 
이빨이 덜덜덜 떨렸다. 여자가 약사에게 돈을 지불한다. 
두 눈동자가 정신없이 흔들린다. 여자가 천천히 자신의 카트를 향해 걸어온다. 
입안이 바짝바짝 마른다. 그 여자가 나를 바라본다.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린다. 그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미칠듯한 긴장감과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누가봐도 난 정상이 아닌 상태였고, 그 여자 역시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물건은 주머니 속도 아닌 겉옷 안에 그냥 들려져 있었다. 생각보다 부피가 커서 옷섶이 불쑥 튀어나와있었다. 


“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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