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5일 일요일

이모 접수 - 4부

얻어맞으면서 사는 것도 걱정이었고 누나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울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났나? 폰이 풍뎅이처럼 뱅뱅 제자리를 맴돌았다.

폰을 집어보니 메시지가 와 있었다. 미애의 메시지. 집에 도착한 모양이다.

“오늘 즐거웠어.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어. 고마워 우리자기. 우리사이 영원하면 좋겠어. 민호가 사랑하는 여보야. 미애.”

기분이 좋아졌다. 정신이 맑아졌다. 미애가 나를 버리고 간 것은 아니었던 거다. 다행이다.

내 실수로 파랑새를 놓친 것 같아 얼마나 아쉬웠는지.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나도 답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야. 짐 싸들고 이리로 와라.”

“크크크. 나 먹여 살릴 준비 되어 있어?”

“그럼. 콩 한조각도 나누어 먹으면 되지.”

“우리 열심히 벌어서 집이라도 하나 장만해서 합치자.”

“집? 좋지. 열씨미 일해야지. 미애를 위해서.”

“고마워 우리자기. 착한 자기.”

미애의 화답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사과도 없이 화해를 하고야 말았다.

다음 낭 정장 촬영은 나 혼자였다. 다른 모델은 없었고 사진작가와 메이크업아티스트,

그리고 지희였다. 디자이너 정은 바쁜지 얼굴도 볼 수 없었다. 머리를 컴에 처박고 있었다.

모델이 몇 사람 되면 교대로 옷 갈아입고 메이크업하고 대기하는 시간도 있는데

혼자 하니 바빴다. 옷 갈아입을 동안 작가와 아티스트가 놀았다. 메이크업 할 동안

사진작가가 놀았다. 촬영할 동안 역시나 아티스트가 놀겠지?

미애는 나만 깝쳤다. 동작이 느리다고 작가와 아티스트가 보는 앞에서 수차례 면박을 주었다.

나는 요롱소리 나도록 뛰어야 했다. 4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모델료 아끼려고 나만 불러 가지고 혼을 빼는 미애를 쥐어박고 싶어 주먹을 불끈 불끈 쥐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촬영은 끝났다. 컴퓨터에 머리를 처박고 있던 디자이너 정이 일어나

나에게 하얀 봉투를 내 밀었다. 모델 페이였다.

나는 디자이너 정에게 봉투를 받으며 지희를 향해 고개 돌리고 감사합니다. 를 외쳤다.

“이번 금요일 속옷 촬영 있어요. 지난 번 보충하는 거니까 컨디션 관리 잘해요. 술 먹지 말고.”

“예. 사장님. 몇 시부터 시작하나요?”

“9시부터 시작하니까 8시 반까진 와 야해요. 집에서 거울보고 표정연습도 좀 하세요.”

“알겠습니다. 금요일 날 뵙겠습니다.”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입꼬 버꼬를 뛰어 나왔다.

공터 끝에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려는데 크락숀 소리가 요란하게 울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미애의 차가 비상등을 깜박이고 있었다.

나는 단숨에 달려가 조수석에 올랐다.

“촬영 잘했어?”
“아픈데 나았어?”

우리는 동시에 물었다.

“항상 하는 건데 뭐. 아! 사장이 잔소리가 심해서 미치겠어. 사람을 완전 무시해.“
“아직은 아파. 시간이 약이겠지.”

우리는 동시에 대답했다. 나는 또 할말이 있었지만 꾹 참았다.

미애의 말과 겹치지 않기 위해서. 근데 미애도 침을 한 번 꿀꺽 삼키더니

말이 없었다. 서로 상대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는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차가 출발했다.

“금요일 속옷 촬영 한 대지?”

“여보야도 연락 받았어? 여보야하고 같이 하니까 금요일이 기다려진다.”

“나두. 자기하고 같이 일한다는 생각에 금요일이 기다려져.”

우리는 앞을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미애의 차는 나의 아지트로 향했다. 한 번도 급정거를 하지 않고 신호 잘 지키며 달려왔다.

“오늘은 정신이 온전하네. 운전 잘하네.”

내가 지희를 칭찬해 주었다.

“운전 실력은 자랑도 칭찬도 하는 게 아니야. 잘 하는 게 정상이거든.”

주차장도 없고 공터도 없어 골목에 차를 세워 놓았다. 집에 들어오니 별천지다.

모든 게 정리 정돈되어 있었고 커튼도 핑크색으로 바뀌었고 좁은 방을 2인용 침대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 여기 우리 집 맞아?”

“흐~ 여기 우리 집 맞아. 빨리 들어 가.”

미애가 내 등을 떠밀었다. 침대에 털썩 앉았다. 쿠션이 좋다.

“여보야. 집 살 돈 이렇게 써버리면 어떻게.”

“해주고 싶었어. 사주고 싶었어. 마음이 시켰어.”

나는 미애를 끌어안고 뽀뽀세례를 퍼부었다.

한참이 지나고 미애가 부엌으로 나가더니 밥상을 차려 왔다.

시장도 보고 요리도 한 흔적이 보였다.

“와. 진수성찬이네. 고맙다. 잘 먹을게.”

미애는 웃음으로 화답했다.

금요일 아침 예고도 없이 미애의 차가 집 앞에서 부르릉대고 있었다.

미애가 나 태워주려고 일부러 온 것이었다.

“고마워. 일부러 이렇게 애 쓰지 마. 버스타고 가면 되는데.”

“해 주고 싶어. 마음이 시켜.”

우리는 마주보고 웃었다. 차가 서서히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 날의 촬영도 월요일과 다를 바가 없었다. 미애와 내가 속옷을 입고 때로는 홀로,

때로는 세트로 카메라 앞에서 폼 잡는 일이었다. 지휘는 지희가 했고

아티스트와 작가는 전에 그 사람들이었다. 아는 안면에 화기애매하게 작업은 진행되었다.

지희의 칼바람이 가끔 불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점심시간 김밥과 어묵이 배달되었다.

우리는 식탁에 들러 앉아 두 줄씩의 김밥과 한 그릇의 어묵을 나누어 먹었다.

김밥을 부지런히 먹는데 내 옆에 착 달라붙어 낮아 김밥 먹던 미애가 어묵 한 개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손도 대지 않고 입만 벌리고 받아먹었다. 작가가 우리를 보며 씩 웃었다. 아티스트가 묘한 웃음을 흘렸다.

“너희 둘이 사귀니?”

“예.”

지희가 물었고 내가 대답했다.

미애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지희의 얼굴도 파래졌다.

“미애는 밥 먹고 집에 가. 오늘 촬영 끝났어. 앞으로도 부를 일 없으니까 다른데 알아 봐.”

갑작스런 지희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미애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사장님 왜 그러세요. 아직 저기 옷 많이 남았는데. 제가 무얼 잘 못 했나요?”

미애의 물음에 지희가 앙칼지게 쏘아 붙였다.

“여기는 직장이야. 일터란 말이야. 너희 둘이 같은 차타고 놀러 온 거니? 연애질은 느그 집구석에서 하란 말이야. 직장 분위기 흐리지 말고.”

미애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고개가 숙여졌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죄송한 줄 알면 됐어. 먹던 거 먹고 가. 민호 입에 넣지 말고.”

“사장님. 용서해 주세요. 잘 못 했어요.”

미애는 바닥에 무릎을 대고 손바닥을 마주 비볐다. 지희를 향해.

“정아. 미애 페이 계산해서 보내.”

그리고는 밖으로 휑하니 나가 버렸다. 디자이너 정이 봉투를 들고 왔다.

미애는 디자이너 정에게 언니! 언니! 하며 통사정을 했다.

“나까지 날벼락 맞게 하고 싶니? 사장님 성질 알잖아. 다른 사람은 다치지 말자. 제발.”

디자이너 정의 말에 미애는 눈물을 줄줄 쏟으며 봉투를 받아 뛰쳐 나갔다.

미애가 쫓겨 가고 지희가 왔다. 오후 촬영이 시작 되었다.

‘모든 게 제 잘못입니다. 저에게 책임을 물으십시오.’

‘저도 그만 두겠습니다. 좋은 사람 구해서 잘 해 보십시오.’

두 마디를 꼭해야 하는데 하지 못했다. 미애와 함께 뛰쳐나와야 했는데 하지 못했다.

오후 내내 지희에게 표정관리 안된다는 지적을 받으면서도 나는 시키는 데로 움직이며

시간을 채워야했다. 촬영이 끝나고 공터 끝까지 나왔지만 크락숀은 울지 않았다.

혹시나 했지만 미애의 차는 가버리고 없었다. 전화를 걸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왔지만 미애는 받지 않았다.

재발신 했다. 내가 탈 버스가 올 때까지 미애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통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나를 몹시 불안하게 만들었다. 기분 나빠서 갔는데

통화가 되지 않으니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지희가 원망되기 시작했다.

남자와 여자가 사귀는 것이 당연하거늘, 사귀면 표시도 나는 것이거늘.

사귄다고 한 사람을 해고 한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었다.

기분 나빠도 나쁘다고 대들지 못하는 나의 가난이 원망스러웠다.

미애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지희를 가만 두지 않으리라 이를 갈았지만,

복수할 뚜렷한 방법은 없었다.

집에 오니 미애가 내 방에서 잠들어 있었다. 코를 드르렁 골며 큰 대자로 누워 자고 있었다.

자기가 나에게 사 준 그 침대에서 혼자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

자는 모습을 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옆에는 소주 빈병이 두 개 구르고 있었고 안주는 깨끗이 비운 듯 빈 접시만 달랑 있었다.

머리맡에 있는 종이 한 장이 나를 긴장 시켰다. 종이에는 미애의 글씨가 적혀 있었다.

‘조물주님! 목을 매려니 아프고 뛰어내리려니 무서워요.’

얼마 전 자살한 여자 아나운서가 적었다던 글귀가 생각나는 글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머리카락이 하늘로 치솟았다. 피가 거꾸로 용솟음쳤다.

얼른 미애의 코에 내 손가락을 갔다댔다. 숨은 쉬고 있었다.

가슴으로도 숨은 쉬고 있었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정말 죽을 만큼 기분이 나빴을까? 아니야. 자존심이 상했겠지.

정말 죽고 싶었을까? 혼자 울었을까? 소주 마시면서 안주는 먹었을까?

같이 뛰쳐나오지 못한 것이 후회 되었다. 둘이 사귀느냐고 지희가 물었을 때 예라고 대답한 내가 실수였다.

시침 뚝따고 아니라고 우겼으면 될 것을 .

지희가 질투하나? 남자 여자 사귀는 것이 일하는데 무슨 지장이 있다는 말인가.

순전히 지희의 억지였다. 힘없는 우리라서 당하고 사는 것이었다.

복수하고 싶었다. 한을 풀고 싶었다. 미애의 원수, 엄마의 원수를 갚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방법은 없었다. 덤벼봐야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뿐이었다.

온갖 잡생각을 하면서 미애의 옆에 누워 미애의 팔을 당겨 복잡한 내 머리 밑에 고였다.

살짝 잠들었나 보다. 미애가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 보니 어느새 미애가 밥상을 차려놓고 내 목을 팔로 받치고 있었다.

“언제 일어났어? 더 자지?”

“잠은 밤에 자는 거야. 아직 초저녁인데.”

“아까 보니 자고 있던데?”

“속상하고 머리 아파서 잠시 누워 있었는데 잠 들었나봐.”

“이 건 뭐야? 이거 진심이야?”

나는 미애가 적은 글귀를 보여주며 다그쳤다. 미애가 생긋이 웃으며 말한다.

“그거 낙서야. 속이 상해서 남의 글 따라 해봤어. 아무것도 아니야”

미애는 내 손에서 종이를 뺏어 갈기갈기 찢더니 뭉쳐서 휴지통으로 던져 넣었다.

우리는 함께 밥을 먹었다.

미애는 설거지까지 해 주고 내일 먹을 반찬과 찌개를 챙겨주고 언니 집으로 갔다.

집을 나서는 미애에게 나는 소리쳤다.

“여보야. 이력서하고 프로필 사진하고 메일로 보내라. 스타일 쩐다, 난다긴다, 멋내봐에 내가 부탁해 볼게.”

“속옷 모델하면 이미지가 안 좋아서 다른 데는 안 받아줘. 마음만으로 고마워.”

“나. 힘 있는 남자야. 믿어 봐. 안되면 본전이잖아.”

“알써. 힘 있는 자기 믿어 볼게. 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본전이니까.”

미애가 언니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고 30분도 지나지 않아 메일이 왔다.

나는 미애의 프로필 중에 학력을 깨끗이 지웠다. 그리고 스타일 쩐다, 난다긴다, 멋내봐에 가서 어떻게 부탁할 것인지 밤새 고민해야했다.

스타일 쩐다, 난다긴다, 멋내봐의 사장님들을 찾았다. 면담 요청을 했다. 안 되면 본전이라는

미애의 말이 용기를 주었다. 나는 당당하게 미애를 나의 애인이라 밝혔다.

속옷 모델을 할 정도로 피부나 몸매는 수려하다고 자랑을 했다. 취직을 부탁했다.

스타일 쩐다, 난다긴다, 멋내봐의 사장님들은 모두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검토해 보겠다는 대답만 했다.

나는 바지 붙들고 통 사정을 하고 싶었지만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사장님들은 주판알을 퉁길 것이다. 미애의 몸매와 얼굴이 경력을 묻을 수 있을지.

미애를 채용함으로 민호가 더 성실하게 일하게 될까를 계산할 것이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기본이다. 미애의 가치와 나의 신의가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안 된다는 대답을 듣지 않았으니 기대를 해도 좋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디자이너들과 사진작가들에게 형님, 누님 하며 아양을 떨어 두었다.

디자이너와 사진작가에게 사장님들이 물어 볼지도 모른다. 훈수꾼이 무척 중요하단 사실을 살면서 나는 배웠다.

미애에게는 희망적이니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 주었다.미애의 취직을 위해 뛰어 다니는 나에게

입꼬 버꼬에서 연락이 왔다. 수요일 속옷 촬영이 있단다.

연락을 준 디자이너 정에게 미애는 안 부르냐고 물었더니 이번엔 지희가 직접 여자 모델을 한다고 대답했다.

약간 짜증이 났다. 미애와 함께 하면 좋은데. 지희가 상대역이면 무척 부담이 될 것 같아 몸이 굳었다.

수요일. 촬영 시작 30분 전에 입꼬 버꼬에 도착했다. 마음이 크게 내키지 않았지만 돈 줄을

포기할 자신이 나에겐 없었다.

그 날도 디자이너 정은 업무에 바쁘고 아티스트와 작가와 지희, 그리고 내가 촬영에 임했다.

“오늘은 나를 사장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파트너라고 생각해요.”

미애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편안하게 하란다. 보기만 해도 찬바람이 부는 지희를

나에게 페이를 주는 지희를 편안하게 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종일 지희의 신경질에 시달려야 했다. 종일 지희의 잔소리에 더욱 몸이 굳었다.

몸이 굳었다고 표정이, 자세가 안 나온다고 지희는 촬영을 중단시키고 나를 수차례 거울 앞에 세웠다.

스타일 쩐다, 난다긴다, 멋내봐에서는 잘한다고 칭찬만 들었는데 정말 내가 못하는 것인지

지희의 트집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미애의 잔소리에 신경질에 내가 몸이 자꾸 굳는 것은 사실이었다.

표정도 자세도 자꾸 위축이 되어갔다. 나 때문에 촬영이 지연되고 있었다.

지희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찍고, 찍고 몇 번씩 재촬영을 해야 했다.

저녁 6시가 되자 택배기사가 상품을 수거해 갔다. 6시 10분이 되자

진열장의 불이 꺼지고 상품 관리하던 아주머니와 아가씨가 퇴근을 했다.

연이어 디자이너 정이 컴퓨터를 끄고 엉거주춤 촬영을 지켜보고 있었다.

퇴근 시간은 지났는데 사장이 일하고 있으니 집에 가겠다는 말을 차마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셈이었다. 아티스트도 주변을 정리하며 지희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정아. 퇴근 해. 아티스트 김도 퇴근해요. 우리 셋이 마무리하면 되니깐.”

디자이너와 아티스트가 가벼운 걸음으로 나란히 쇼핑몰을 빠져 나갔다.

사진작가만이 덩그러니 남아 똥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도 난감했다. 미애가 저녁을 차려놓고 기다릴지도 모르는데.

촬영은 재탕, 재탕하다가 절반도 못했다. 밤을 세워야할 지도 모른다.

미애는 내 얼굴을 보고 집에 갈 작정일 것이다. 늦게까지 가지 않으면

집에도 못 갈지도 모른다. 밤새 기다릴지도 모른다.

“우선 세 사람. 밥이나 먹고 해요. 민호야. 뭐 먹을래?”

지희가 손뼉을 짝짝 치며 촬영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똥씹은 얼굴을 하고 있던 사진작가가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문을 열었다.

“저어, 사장님. 저도 오늘 약속이 있는데요. 다음에 날 잡아서 찍으면 안 될까요?”

지희의 인상이 파리해졌다. 입술은 유난히 새빨개지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요. 하던 일은 마치고 가야 프로 아니겠어요? 프로가 그렇게 책임감이 없어서야.”

“워낙 중요한 일이라. 제가 늑장 부린 건 아니잖습니까?”

“그럼 누구 책임인가요? 좋은 작품 만들려고 노력하다보면 진행이 더딜 수도 있는 거지. 누구 탓을 해야겠어요?”

화살이 나에게 날아올 것 같아 나는 또 뒤가 캥겼다. 둘의 다툼이 나 때문에 생긴 일 같아 나는 궁지에 몰렸다.

“하여튼 저는 가야 합니다. 다음에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작가. 배가 불렀군요. 면접 볼 때 생각 안나요?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한다 메.”

“오늘은 워낙 중요한 약속이래서.”

작가는 양손을 마주 비비고 있었다. 지희는 들고 있던 브래지어를 구석으로 집어 던졌다.

“좋아요. 가세요. 당신같이 자기주의인 사람은 이 바닥에서 앞으로 사라지게 될 거에요.”

사진작가도 화가 나는 듯 카메라 장비를 챙기면서 지희와 시선을 달리한 채

신경질적으로 말을 뱉었다.

“예. 사장님 수단 잘 압니다. 저를 매장시키겠다고요? 누구 파워가 쎈가 두고 봅시다.”

“긴소리 치우고 내 앞에서 사라지세요. 나도 카메라 셔터 누를 줄 알고. 당신 필요 없어요.”

지희는 작가의 페이를 봉투에서 꺼내더니 작가 앞에 집어 던졌다.

돈이, 작가의 페이가 나비처럼 춤추며 바닥으로 뿔뿔이 흩어져 사뿐사뿐 내려앉았다.

작가가 돈이 사라질세라 허겁지겁 주워 챙기더니 액수를 확인하고 지갑에 넣었다.

카메라와 장비를 어깨에 메고, 손에 들고 잊은 것이 없나 두리번거리며 도망치듯 멀어져 갔다.

갑자기 쇼핑몰이 조용했다.

마흔 평 건물에 나하고 지희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마흔 평 쇼핑몰 중에 15평 스튜디오에만

불이 대낮처럼 밝게 켜져 있었다.

“민호. 뭐 먹을래. 밥이나 먹고 하자. 자기 일처럼 해주는 놈이 없어. 빌어먹을 것들.”

지희는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었다.

“저녁 먹지 말고 빨리 하죠. 저도 바빠서.”

“그럴래? 나중에 배고프다 하지 마. 민호가 제대로 못하면 오늘 밤을 새울지도 몰라.”

“예. 밥값은 돈으로 주세요.”

“야. 너 돈에 환장했니? 내가 제공하는 밥을 거부했는데 밥값을 달라고?”

“죄송합니다. 저 메시지 한 통 보내도 되죠?”

“누구? 미애에게? 동거하냐?”

“아니요. 저를 기다리는 친구가 있어서.”

“누구에게 보내든 상관없어. 계획이 늦어지면 알릴 건 알려야지.”

나는 재빨리 미애에게 ‘오늘 많이 늦을 것 같으니까 기다리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곧이어 내 폰에 메시지가 왔다고 진동을 했지만 열어 볼 수가 없었다.

지희가 촬영을 서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나마나 ‘왜 늦느냐’는 미애의 메시지일 터.

카메라를 손보는 지희 앞에서 나는 다음 촬영할 옷을 갈아입었다.

어둠이 몰려오는 공간에서 단 둘이 벌거벗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묘한 기분을 불러 일으켰다.

지희 움직이는 소리와 옷 갈아입는 소리, 그리고 셔터 움직이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촬영은 셀프로 진행되고 있었다. 지희가 나에게 구도를 설명하고 내가 자세를 잡으면 지희가

카메라를 정조준하고 5초안에 내 옆에 와서 포즈를 완성하면 셔터가 눌려지는 반복이었다.

완숙한 미모의 여인과 속살을 맞대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이

낮에는 긴장되고 어색했는데 자꾸 흥분이 되고 분위기에 젖어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음이 바빠서인지 지희도 군소리 없이 부지런히 촬영을 진행했다.

“그래, 민호. 난다긴다에 에이스라 하더니 빈말 아니네.”

지희 입에서 나를 칭찬하는 소리가 나왔다. 지희에게서 처음 들어보는 칭찬이었다.

지희 입에서 처음 나온 칭찬일지도 모른다.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칭찬을 나에게

처음 했을 것이다. 나는 지희의 신경질적인 모습만 보았지 웃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지금처럼만 하면 입꼬 버꼬에서도 에이스 대접 해줄게.”

지희는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나에게 말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나도 은연중에 신바람을 냈다.

벽시계가 밤 10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원탁테이블에 올려놓은 내 휴대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메시지가 왔음이었다. 미애일 것이다. 아직도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가늠하건데 이 속도로 나가면 촬영은 한 시간 안에 마칠 수 있었다.

나는 지희의 눈치를 보았다. 원탁테이블에 가서 답을 해야 하느냐 갈등이었다.

미애를 생각하면 빨리 답을 해주어야 하지만, 지희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걱정이었다.

내가 폰을 만지고 있으면 지희는 또 인상이 고양이처럼 변할 것이다.

지희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 나는 굳어질 것이고 촬영은 진행되지 못한다.

나는 메시지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속으로 ‘미애야. 그만 집에 가라. 언니 걱정한다.’를 외쳤다.

아! 그래도 문자가 왔는데 답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꾸 신경이 폰으로 쏠리고 있었다.

아무리 촬영이 급하다지만, 문자도 확인 못하는 것은 큰 불만이었다.

무슨 내용일까? 급한 일은 아닐까? 너무 늦으면 혼자 보내기 불안한데.

다른 쇼핑몰에서였으면 사장이 먼저 ‘문자 확인하라’ 하는데. 아니면 내가 먼저 양해를 구하면

당연히 답까지 하라고 하는데 지희는 아는지 모르는지 촬영만 계속하고 있었다.

종종거리면서 나의 다시 자세를 표정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니

당연히 표정이나 자세가 자연스럽지 못한 것 같다. 폰만 집어 들면 해결 될 텐데.

“민호야. 약간 우측으로 기울여. 왼팔은 허리에 오른 팔은 의자를 향해 쭉 뻗어.”

카메라가 정조준 되면 지희가 내 오른 쪽 의자에 앉게 된다.

그럼 앉아 있는 지희의 팬티를 내가 손으로 가리키는 그림이 된다.

지희가 카메라 앞에서 손을 내저으며 지시를 한다.

“사장님. 잠깐만요.”

나는 잠깐을 외치고 원탁테이블을 향해 걸어갔다.

순간 지희는 타임을 맞추어 놓고 의자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셔터는 찰칵했고 지희는 의자 앞에 서 있었다. 어차피 한 판 버렸으니

나는 그냥 문자를 확인했다.

‘조금 늦는 게 아니네. 언제 와?“

역시 미애의 문자였다. 나는 재빨리 답을 보냈다.

“오늘은 기다리지 말고 그냥 가라. 늦었다. 아직...”

전송을 누르지 못했는데 폰이 사라졌다. 내 폰이 지희의 손에 있었다.

화가 난 지희가 어느새 달려와 내 손에서 폰을 탈취해 가버렸다.

그리고는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연이어 지희의 손이 내 뺨을 갈겼다.

“야 이새끼야. 사장이 물로 보이냐?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여?”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얼마나 소중한 폰인데. 나를 키워준 고모가 사준 폰이었다.

나는 외로울 때면 폰을 보며 고모를 떠올리고 얼굴도 모르는 엄마, 아빠를 생각하곤 했었다.

거기다 여자에게 뺨까지 맞았다. 갑자기 온몸의 피가 머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자는 물론, 나는 이제껏 고모부외의 다른 사람에게 맞아본 적이 없었다.

고모부는 나를 때리며 아빠 대신이라 했다. 그런데 여자가 내 뺨을 때렸다.

순간, 나도 반사적으로 양손으로 지희의 양 어깨를 밀어 버렸다.

지희가 속옷만 입은 채 발라당 넘어졌다.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손을 바닥에 짚고

일어나는 지희가 갑자기 내 눈에 아름다운 여인으로 보였다.

지희는 일어나더니 얼굴이 하예져서 나에게 대들었다.

“너 이새끼. 콩밥 먹고 싶어? 사장을 폭행 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입으로 욕을 하면서 양 손을 휘저어 내 얼굴이며 가슴을 때리는 지희를 나는

그냥 둘 순 없었다. 이미 콩밥을 먹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나는 몸을 뒤로 빼며 내 양손으로 지희의 양 팔목을 잡았다.

“어, 어. 이새끼가 완력을 써? 어, 어...”

내가 지희의 양 손목을 잡고 밀어 제쳤더니 어어만 연발하며 지희는 뒷걸음질을 했다.

나는 지희가 또 엉덩방아를 찧을까봐 손을 놓지 못하고 계속 밀기만 했다.

한참을 밀리던 지희는 스튜디오 소품용 침대에 발라당 넘어졌고 손을 놓지 못한 나는

그 위에 같이 엎어졌다. 엎어져서 보니 난동 중에 지희의 브라자가 목까지 올라가 있었다.

가슴을 출렁이며 넘어져서 나를 뿌리치고 일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지희를 보니 내 손아귀에

붙잡힌 한 마리 참새 같았다. 나는 나의 다리를 지희의 다리사이에 끼워 지희의 하체를 제압했다.

배로 지희의 배를 누르고 손은 머리위로 밀어 올려 만세 부르는 자세를 만들었다.

일단 지희가 진정이 될 때까지 힘으로 제압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지희의 가슴이 보였다. 선홍색 피부에 밤색꼭지.

아이를 낳은 여자답지 않게 봉그란 가슴은 지희의 호흡이 거친 만큼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내 입이 지희의 젖꼭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판사판 공사판이었다. 어차피 이지경이면 지희 썽질에 나를 가만 둘리 없다.

법으로 갈 것이고 나를 매장시키려고 혈안이 될 것이다.

나는 지희의 젖꼭지를 빨지 않고 자근자근 씹었다.

꽉 깨물어 떼어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지희는 발악적으로 욕설을 뱉었다.

욕설이 비명으로 흐느낌으로 바뀌고 있었다. 나는 지희의 팔을 모아 오른 손에 쥐고

왼손으로 빤추를 벗겼다. 지희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안 된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이제 멈출 수 없었다. 멈추어도 다칠 것이고 저질러도 다칠 것은 분명했다.

젖꼭지 물고 있던 입으로 지희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지희의 사타구니에

성기를 집어넣었다. 물이 나오지 않아서인가? 빡빡한 게 쉽게 들어가지 않았다.

“너 이새끼. 양아치 새끼. 너 무사할 줄 알지? 니 인생 끝났어 임마.”

지희의 입에서는 계속 협박적인 욕설이 나왔다.

머리를 세차게 도리질을 하며 입이 삐끄러질 때마다 욕이 튀어 나왔다.

나는 상체를 일으켰다. 왼손으로 지희의 손목을 모아 쥔 채 오른 손으로 지희의 뺨을

사정없이 세차례 갈겼다. 이제 힘으로 제압해야 했다.

나는 이제 무사하지 못할 테니 그만 둘 수 없었다.

할 짓은 하고 벌을 받아야 했다. 벌거벗은 여자. 내 앞에 발랑 누운 여자를 그냥 두고 벌을 받기에는 억울했다.

절반만 들어간 채 피스톤 운동을 했다. 오늘 따먹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무사하지 못 하더라도 오늘은 끝장을 보아야 했다. 죽여 버리던가 도망가던가는

나중에 생각할 일이었다. 뜻밖에 지희가 조용해졌다.

뺨을 맞고 난 지희의 입에서는 욕설대신 흐느낌이 나오고 있었다.

흐느낌은 신음으로, 비명으로 변해갔다.

지희의 입에서 흐느낌이 나올 때 부터 지희의 사타구니도 느슨해졌다.

다리는 바닥에 있고 등은 침대에 누인 채 지희는 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세차게 피스톤 운동을 했다. 지희는 신음이 비명으로 바뀌면서 다리를 들어 나의 허리를 휘감았다.

내 손아귀에서 놓인 손으로 나의 가슴과 등을 쓸기 시작했다. 지희도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잘하면 내가 무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희가 팔과 다리로 내 몸을 휘감고 엉덩이를 돌리며 반응할 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점점 격정적인 남녀가 되어 갔다.

지희의 몸 속 깊이 사정을 하고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희의 엉덩이를 들어 몸을 침대위로 밀어 올렸다.

끝나면 또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지희는 조용했다.

가쁜 숨을 고르면서 잠자듯이 누워 있었다.

그 때 내 머릿속을 퍼뜩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나체 촬영.

침대위의 벌거벗은 여체를 촬영해 둘 필요가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지희의 얼굴과 벌거벗은 몸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그 것은 내가 무사할 수도 있을 하나의 방편이었다.

내가 사진을 찍는데도 지희는 거부하지 않았다.

달려들지도 않았다. 앞을 다 촬영하고 엉덩이를 들어

몸을 뒤집으니 지희는 스스로 엎어져 줬다.

뒤도 구석구석 촬영을 했다. 입꼬 버꼬쇼핑몰 사장의 나체를 나는 70여 장 찍었다.

그리고는 메모리 카드를 빼서 지갑에 챙겨 넣고 카메라를 제자리로 가져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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